학교 도서관의 기증도서 무료 나눔 행사에 참여하였다가 우연히 나카자와 신이치의 『대칭성의 인류학』이 있는 것을 발견하여 이 책을 가져왔습니다. 나카자와는 일본의 종교학자인데, 실증적인 종교학 연구보다는 종교 사상이나 신화학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사상을 펼치는 종교철학자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주로 불교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신화 이론을 사용하여 논의를 전개하죠. 예전에 이분의 강의록인 '카이에 소바주' 제1권 『신화,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을 꽤나 재미 있게 읽은 적이 있어서, 해당 강의록의 제5권인 『대칭성의 인류학』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대략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몇 가지 떠오르는 단상을 남겨 보자면,
(1) 80년대부터 00년대 일본 사상가들은, 정말, 굉장히 야심찬 인물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80년대가 일본의 전성기여서 그런지, 이 시기 일본 사상가들은 자신들이 뭔가 세계 사상에 새로운 획을 그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을 드러내더라고요. (실제로, 이 시기 인물들 중 가라타니 고진만큼은 이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가의 반열에 올랐으니, 그 자신감이 마냥 허황된 것은 아니었죠.) 나카자와도 이 책에서 그런 야심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네요. 나카자와가 책의 서문에서 스스로 하고 있는 말을 인용하자면, "레비스트로스의 신화론, 클라스트르의 국가론, 마르크스의 경제학비판, 바타유의 보편경제학, 라캉에 의한 무의식의 토폴로지론, 들뢰즈의 다양체론 등"을 종합해서 "9. 11 이후 세계에 진정한 의미에서 도움이 될 사상을 탄생시키고자" 한다고 하니까요.
(2)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클라인 병' 구조에 대한 논의가 그 시기 사상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아사다 아키라가 『구조와 힘』에서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클라인 병 구조를 근대적 사유의 모델로 제시한 이후로, 이 구조가 일본 사상계에서는 상당히 많이 주목을 받은 모양입니다. 아사다와는 전혀 반대의 맥락에서이긴 하지만, 나카자와도 클라인 병을 가지고서 신화적 사유를 설명하려 하네요. 아사다는 들뢰즈적인 힘 개념으로 근대적 사유가 지닌 클라인 병 구조를 비판하고자 하고, 나카자와는 클라인 병 구조를 지닌 신화적 사유로 근대적 사유가 지닌 이항대립 구조를 비판하려 하는 거죠.
(3) 그런데 사실, 나카자와의 방대한 잡학 지식과 그 지식을 엮어내는 솜씨 자체는 무척 흥미롭지만, 저로서는 이 책이 주장하는 내용이 너무 피상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신화적 사유는 인간/동물, 삶/죽음, 전체/부분 사이의 모순을 거리낌 없이 수용하는 '대칭성' 사유이고, 그 대칭성 사유야말로 우리가 근대 이후로 처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원형적 사유라는 것이 핵심 주장인데, 저는 정확히 신화적 사유의 어떤 측면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이 책에서는 뚜렷한 근거를 발견하기가 힘드네요. 오히려 나카자와 본인부터가 이 책의 곳곳에서 신화적 사유가 현실과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방증하는 '변명 아닌 변명'을 자꾸 제시하고 있거든요. "대칭성에 의한 사고로는 현실세계를 살아가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47쪽)라든가, "'대칭성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종종 초현실주의자와 같은 행동을 한다."(99쪽)라든가, "[대칭성 논리가 실현된] 그런 이상의 세계는 이제까지 한 번도 지상에 실현된 적이 없으며 미래에도 실현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125쪽)라든가, "현대인이 더 이상 신화의 사고로 돌아가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134쪽)라는 고백들은, 나카자와 스스로조차 자신이 주장하는 '대칭성 사유'에 대해 한계를 느낀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합니다.
(5) 아마도 이런 의문이 생기는 것은 나카자와가 깊이 의존하고 있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신화 이론에 대해 제가 그다지 공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신화가 말하고 있는 내용 뒤편에서 신화가 말하지 않고 있는 구조를 발견해내려는 시도가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가령, 나카자와가 누토카족 신화에 등장하는 광동홍어에 주목하여, 광동홍어가 사실 '넓은 쪽'과 '좁은 쪽'의 결합이라는 대칭성 구조를 상징한다고 해석할 때, 이 해석을 도대체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해석이 정합적이라는 것이 반드시 그 해석이 옳다는 것을 보장하지도 않고, 심지어 그 해석이 옳다는 것이 반드시 그 해석만이 옳다는 것을 보장하지도 않으니까요. 하물며 신화가 그런 대칭성 구조를 말하고자 한다는 것이 텍스트에 명시화된 내용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내용을 대칭성 구조로 해석하는 것은 자칫 환원주의에 빠지기 쉽지 않은가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