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 신화 이론에 대한 리쾨르의 비판


리쾨르와 레비스트로스

최근에 나카자와 신이치의 『대칭성 인류학』을 구해서 읽은 이후로, 제 본 전공인 철학적 해석학 논문을 쓰다가 짬 날 때마다 나카자와의 『신화,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이나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신화 이론 관련 글들을 찾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리쾨르가 『해석의 갈등』에서 레비스트로스를 비판했던 내용이 다시 떠올랐네요.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딱히 관심을 가지던 주제는 아니라서 내용을 대충 훑고 넘어 갔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제가 구조주의 신화 이론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을 리쾨르도 정확하게 지적해서 아주 감탄을 하면서 보았습니다. 역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철학책들은 두고두고 음미하면서 찾아 읽어야 그 가치를 자꾸 깨닫게 되는군요. 리쾨르의 비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구조주의는 너무 야심찬 기획을 제시하는 것 아닌가?

『구조 인류학』이라는 저서에서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 언어학으로부터 차용한 발상을 야생 사회의 친족 관계 분석에 우선 적용합니다. 친족 관계가 짜이는 방식이 일종의 언어적 의사소통 체계와 비슷하다는 작업 가설을 세우고서, 언어학 모델을 사회학과 인류학으로까지 확장하는 거죠. 그리고 『야생의 사고』라는 저서에서는 이 발상을 친족 관계를 넘어서 모든 종류의 사고로까지 더욱 확대합니다. 특별히, 야생 사회의 신화가 구조주의적으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죠.

그런데 리쾨르가 보기에, 레비스트로스의 이 작업 가설은 지나치게 야심찬 기획입니다. 구조주의 신화 이론은 결국 모든 신화가 동일한 모델에 따라 분석될 수 있다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내세우는 셈인데, 과연 그렇게 주장할 만한 근거가 무엇인지는 다소 막연하다는 거죠. 리쾨르는 레비스트로스가 일종의 '내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얼마나 성공적일지도 확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도 확실하지 않은 '내기'를 말이죠.

[구조주의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의미에 실린 의도를 찾아 해석이라는 역사 행위(그 자체가 계속되는 전통 속에서)로 그것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호를 알아내 여러 가지 차원의 사회 현실(씨족 조직, 동물과 식물의 목록과 분류, 신화, 예술 따위) 속에 서로 같은 것들이 늘어서 있음을 확인하려고 한다. 그러한 방법론은 한마디로 의미론을 버리고 통사론을 취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슨 내기라면 나름대로 신념을 가지고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잘못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기도 아닌데, 그런 선택이 얼마나 타당한지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있어 문제다. 그런 사고 방식이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 생각이 모자랐다. 간단히 말해 한계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 한계는 저자의 글 속에서도 여기저기 나타나 있다.

폴 리쾨르, 『해석의 갈등』, 양명수 옮김, 아카넷, 2001, 47-48쪽, 인용자 강조.

(2) 왜 토템 신화만을 고려하고 다른 신화들은 고려하지 않는가?

리쾨르는 레비스트로스가 실제로 토템 신화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어 그 신화를 다른 모든 신화로까지 일반화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토템 신화들은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신화 이론의 분석에 잘 들어맞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 문화권에는 더욱 친숙할) 인도-유럽 신화나 히브리 신화는 레비스트로스의 분석에 그다지 잘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로서는 저자가 든 보기들이 모두 어떤 지역, 곧 토테미즘이 지배한 지역에 치우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셈족이나 그리스나 인도-유럽 쪽 사고 방식은 다루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처럼 소재를 특정 인종에 제한한 것이 어떤 뜻이 있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토템 환상>에서 생각이란, 의미 조각을 손질하고 짜맞추는 것이므로 내용보다 배열이 더 중요하다. 그런 문화를 야생의 사고로 본 것은 나무랄 데 없고 멋있기조차 하다. 그러나 신화가 모두 똑같은지 이 책 어디서도 전혀 묻지 않고 있다. 야생의 사고가 모두 토템 신화와 같은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나 서양과 관련 있는 신화 세계, 곧 셈족 신화(이집트, 바빌로니아, 아람, 히브리)와 그리스 계통과 인도-유럽 계통도 모두 그렇게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폴 리쾨르, 『해석의 갈등』, 48쪽, 인용자 강조.

(3) 구조를 배열하는 것만으로 신화 해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리쾨르는 신화를 '해석한다'는 활동이 근본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도 질문합니다. 토템 신화에서 암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들을 드러내었다고 해서, 과연 그 신화가 '해석'되었다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셈족 신화들처럼 '구조' 자체보다는 '이야기'가 훨씬 중요한 신화들에서는 단순히 신화에 일정한 구조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그 이야기가 정말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야생의 사고』에 나온 보기를 보면 내용은 중요하지 않고 배열만 잔뜩 등장하는데 이것은 설득력이 없으며 매우 치우친 느낌을 준다. […] 앞에서 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내용을 중요하게 보지 않으면서 배열을 너무 중요시하는 것이다. 내가 볼 때 토템 사고야말로 구조주의와 가장 가깝다. 그가 보기로 든 토템 사고가, 정말 본보기인지 아니면 예외인지는 모를 일이다.

폴 리쾨르, 『해석의 갈등』, 49쪽, 인용자 강조.

(4) 신화는 철학적 사고를 요구하지 않는가?

여기서 리쾨르는 토템 신화가 아닌 다른 신화들이 '철학적' 사고를 요구한다고 지적합니다. 특별히,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인인 리쾨르는 자신의 종교 전통인 성경의 신화들을 강하게 염두에 두고 있죠. 그 신화들은 단순히 특정한 구조로 세계를 분류하는 문제보다는 (물론, 리쾨르는 주목하지 않지만, 구약성경의 레위기 같은 책들은 그런 문제를 다루기도 합니다) 악이나, 구원이나, 정의나, 희망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상징들로 이루어진 이야기 속에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상징들을 따라가면서 각각의 주제들에 대해 철학적 생각을 펼쳐나가는 일이야말로, 성경의 신화들을 해석하는 작업에서는 정말로 중요한 일이라는 거죠.

다른 쪽 신화 사고가 있다. 그 사고 방식은 통사론적 구성이 약하고, 제의와 접촉점이 뚜렷하지 않으며, 사회의 여러 영역과 연결이 약하다. 오히려 의미론 측면이 강하여 변화하는 사회 상황의 역사를 찾아내야 한다. 나는 앞서 히브리 세계에서 그 보기를 들었다. 거기서 구조주의 사고 방식은 덜 중요하며 적어도 지배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해석학적 사고 방식으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서 내용을 해석하고 삶으로 나아가며 그 결과 철학적 사고로 들어간다.

폴 리쾨르, 『해석의 갈등』, 49쪽, 인용자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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