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설과 하이데거의 갈림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현상학 소개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현상학 소개문을 둘러싼 후설과 하이데거 사이의 논쟁을 열심히 공부해 보고 있습니다. 후설이 1927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929년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제14판, 제17권에 출판한 '현상학' 항목은 현상학 운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글로 평가받습니다. 현상학이 어떠한 분야인지를 당대의 가장 권위 있는 백과사전에 소개할 수 있을 만한 형태로 후설 자신이 간결하고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용면으로도 중요하지만, 이 글이 본래 후설과 하이데거의 공동 작업을 통해 출판될 예정이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죠.

하이데거는 후설과 함께 초창기 현상학 운동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주 언급되지만, 사실 후설의 현상학이 하이데거에게 얼마나 계승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단히 논란이 많습니다. 허버트 스피겔버그의 『현상학 운동』이라는 매우 권위 있는 현상학의 역사에 대한 저술을 보더라도, '마르틴 하이데거'라는 항목의 서두에서부터 그 두 인물 사이의 철학적 갈등 관계가 나타나 있죠. 후설이 한때 자기 자신과 하이데거만을 진정한 현상학자로 인정했다는 점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은퇴 당시 자신의 자리를 맡을 인물로 하이데거를 추천하였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하이데거는 후설의 '적통 계승자'인 것 같지만, 말년에 후설이 하이데거의 사상에 대해 엄청나게 반발했다는 점과 하이데거 역시 후설을 철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배반하였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하이데거는 현상학의 '이단'인 것 같기도 하죠.

하이데거의 사상이 현상학 운동의 역사에 정당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이 질문은 현재의 연구에 상당한 중요성을 지니지만, 대개 제기조차 되지 않았으며, 답하기에도 쉽지 않다. 특히 외부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이야기는 하이데거가 후설의 정당한 후계자라는 것이었다. 그가 후설의 추천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후의 교수직을 승계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철학은 후설의 현상학을 정당하게 발전시킨 것이며, 현상학에 대한 찬반 논쟁은 하이데거 저작에서 드러나는 그 논리의 최종적 귀결을 살펴봄으로써 결론지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일부는 후설이 하이데거의 사상을 최종적으로 배척했다는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마도 현상학이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에 대한 책임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바람에서, 그를 정통 현상학을 타락시킨 자, 심지어는 배신자로 보기도 했다. (Spiegelberg, 1994, 339)

그러다 보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현상학 소개문은 후설과 하이데거의 유일한 공동 집필 기획이라는 점에서 수많은 현상학 연구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 두 인물은 이 소개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네 벌의 초고를 만들었는데, 첫 번째 초고는 후설이 혼자 썼고, 두 번째 초고는 하이데거가 참여하였고, 세 번째 초고는 후설이 다시 혼자 썼지만 두 번째 초고에서 하이데거가 쓴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고, 네 번째 초고는 후설이 세 번째 초고를 축약하여 작성하였죠. 그 두 인물이 소개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주고 받은 편지까지 현재 남아 있다 보니, 주석가들은 초고 작성 시작일과 마감일까지 세밀하게 추적하면서 언제 어느 부분에 어떤 내용이 들어왔고 어떤 내용이 빠졌는지를 추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토마스 시한(Thomas Sheehan)과 리처드 E. 팔머(Richard E. Palmer)가 편집한 Psychological and Transcendental Phenomenology and the Confrontation with Heidegger에 그 내용이 아주 자세하게 분석되어 있죠.)

처음 이 초고들을 정리한 인물이 발터 비멜이다 보니,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현상학 소개문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는 비멜의 견해를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멜은 초고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하이데거가 후설을 비판한 부분들에 주목하여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 사이에 아주 극명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죠. 후설의 현상학이 '환원'이라는 방법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하이데거는 그 방법을 거부하였다고 하면서 "하이데거에게는 환원이 완전히 빠져 있다."라는 유명한 논제를 제시한 것도 비멜입니다. 그리고 이런 비멜의 견해가 초창기부터 유행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수의 학자들은 (특별히 하이데거만의 변별점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하이데거 연구자들은) 후설과 하이데거를 사실상 완전히 다른 사상을 전개한 인물로 취급하고는 합니다. 테오도어 키시엘처럼 하이데거의 초기 사상에 대한 방대한 연구를 수행한 인물도 정작 후설이 하이데거에게 준 영향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해버리기도 하고, 비교적 최근에 출판된 로버트 샤프의 Heidegger Becoming Phenomenological 같은 저서도 하이데거의 현상학이 후설이 아니라 딜타이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죠.

반면에, 이러한 경향에 맞서 후설과 하이데거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그리고 더 나아가 그 두 인물이 공통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칸트의 초월론적 철학의 영향에 대해 강조하는 연구자가 스티븐 크로웰입니다. 크로웰은 오히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현상학 소개문이야말로 후설과 하이데거의 공통점에 대해 잘 보여주는 글이라고 지적하죠. 하이데거가 후설의 초월론적 현상학을 비판하고 있기는 하지만, 하이데거의 비판점은 '초월론적 현상학 자체'가 아니라 '초월론적 현상학에 대한 후설의 해석'이라는 것이 크로웰의 핵심 강조점입니다. 하이데거에게는 '환원'이 빠져 있다는 비멜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 하이데거의 글들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면, 하이데거는 환원을 비판하지도 않은 데다, 오히려 하이데거의 사유 자체가 환원에 근거하여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죠. 단지, 하이데거는 후설이 '존재'라는 개념을 '세계 내적 존재'에 억지로 한정시킨 나머지, 세계 내적 존재가 아닌 '초월론적 주체의 존재'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못하였다는 점을 비판하였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크로웰의 글은 읽으면 읽을 수록 매우 탁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크로웰의 책 Husserl, Heidegger, and the Space of Meaning을 그동안 필요한 챕터만 뽑아내어 파편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요 몇 달동안 저 책의 내용을 다시 전체적으로 보니 정말 분석의 폭과 깊이는 물론이고, 독창성까지도 아주 훌륭하네요. 사실, 저는 비멜이 자신의 논문에서 후설과 하이데거의 차이로 분석해 놓은 내용을 보면서 아주 의아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비멜의 글이 이 분야 연구자들에게는 거의 고전이 되었지만, (적어도 제가 보기에) 실제 내용을 읽어보면 너무나 허술한 지점들이 있었거든요. 가령, 하이데거가 이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현상학 소개문 제2판을 작성하면서 스스로 '환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을 뿐더러, 『현상학의 근본문제들』이라는 강의록에서도 '환원'을 도입하고 있는데, 비멜은 별다른 근거 없이 "하이데거에게는 환원이 완전히 빠져 있다."라는 강한 논제를 내세우니 저로서는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또 비멜 자신이 애초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현상학 소개문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티가 나는 부분도 있는데, 이 소개문 마지막에 후설이 현상학을 '보편적 존재론'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에 반해, 비멜은 왜 현상학이 보편적 존재론인지 잘 모르겠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기도 하죠. (그리고 이 부분에서 비멜은 결정적으로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존재론' 사이의 공통점을 놓치고 있기도 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기존 연구의 허술함에 비추어 볼 때, 크로웰이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현상학 소개문으로부터 후설과 하이데거의 연속성을 이끌어내는 것은 참 시원하더라고요.

다만, 크로웰의 글에서도 몇 가지 아쉬움이 남기는 합니다. 크로웰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현상학 소개문의 첫 번째 초고와 두 번째 초고에만 집중해서 후설과 하이데거를 분석하지만, 저는 세 번째 초고와 네 번째 초고의 중요성이 좀 간과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네 번째 초고가 결국 최종적으로 다듬어져 출판된다는 점에서, 네 번째 초고에는 후설의 최종적 견해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네 번째 초고는 세 번째 초고의 축약본이거든요.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후설이 세 번째 초고 속에 하이데거가 두 번째 초고에서 작성한 내용을 상당 부분 넣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이데거의 '머리말'은 네 번째 초고에서는 완전히 사라지지만 세 번째 초고에서는 아주 약간만의 수정만을 거쳐 수록되어 있고, 하이데거가 작성한 '제1장'의 기본 골격도 세 번째와 네 번째 초고에서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죠. 이런 점들에 좀 더 주목하면, 후설과 하이데거 사이의 연속성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현상학 소개문 텍스트 내적으로 좀 더 분명하게 밝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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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하이데거 - 비멜 - 크로웰 - 윤유석 레츠고.. :mus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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