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크로웰(Steven Crowell)의 Husserl, Heidegger, and the Space of Meaning에는 하이데거 연구자들의 다소 편향된 경향을 꼬집는 흥미로운 논평이 있습니다. 크로웰의 책은 제6장 "Heidegger's Phenomenological Decade"에서 영어권의 유명한 하이데거 연구자들 중 한 명인 테오도어 키지엘(Theodore Kisiel)의 The Genesis of Heidegger’s Being and Time을 다룹니다. 여기서 크로웰은 키지엘의 책이 초기 하이데거 사상의 발전 과정을 대단히 자세하게 풀어낸다는 점을 아주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책이 후설-하이데거 사이의 영향 관계에 대해서는 거의 무시하고 있다는 점을 의아스러워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죠.
키시엘은 이 문제를 광범위하게 다루지만, 새로움과 이탈에 초점을 맞춘 그의 전략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10년에 대한 그의 설명을 접한 후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에 대한 하이데거의 긍정적 빚에 대해 거의 배우지 못한다는 결과를 낳는다. 여기서 키시엘은 후설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제시하는 하이데거의 평소 방식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일반적으로 “획기적” 성과들(지향성, 선험, 범주적 직관)을 인정하면서도, 그것들이 후설적 형태로는 철학적으로 무용하다는 점을 암시하는 방식이다.
Though Kisiel deals with this question extensively, his strategy of focusing on novelties and departures has the paradoxical consequence that we come away from his account of Heidegger’s phenomenological decade having learned little about Heidegger’s positive debt to the founder of phenomenology, Edmund Husserl. In this Kisiel echoes Heidegger’s usual way of presenting his relation to Husserl: generally acknowledging “breakthrough” achievements (intentionality, the a priori, categorial intuition), while insinuating that, in their Husserlian form, they are philosophically useless.
Steven Crowell, Husserl, Heidegger, and the Space of Meaning, Evanston, Ill.: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2001, p. 121. (DeepL 번역 및 인용자 수정 & 인용자 강조)
실제로, 하이데거는 『현상학의 근본 문제들』 같은 저서에서 자신이 말하는 '현상학'이 후설이 말하는 '현상학'과 이름만 같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세간에는 하이데거가 후설의 조교로 잘 알려져 있고, 후설 다음으로 현상학을 계승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고, 후설 본인 역시 한때 진정한 현상학자는 자기 자신과 하이데거밖에 없다고 공언하였음에도, 정작 현상학 내부에서는 후설과 하이데거 사이의 관계에 대한 평가가 다소 미묘합니다. 키시엘도 바로 후설의 현상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증언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하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초기 하이데거의 사유에서 하이데거에게 영향을 준 다른 사상들은 아주 면밀하게 추적하면서도 정작 후설의 현상학이 준 영향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는 것이죠. 크로웰은 이러한 점을 매우 아쉽게 생각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죠.
따라서 키시엘은 독창성을 강조함으로써 현상학적 측면을 제외한 모든 측면에서 하이데거를 제시한다. 반성적-일반적 범주의 방식을 통해 철학의 논리를 발전시키는 라스크-하이데거가 있고, '삶'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여 역사성의 존재론을 추구하는 딜타이-하이데거가 있으며, '역사적-현실화' 상황이 『존재와 시간』의 카이로스론적 핵심을 향해 패러다임적으로 이끄는 성 바울-하이데거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하이데거는 포이에시스, 프로네시스, 테크네라는 자신의 삼항을 통해 존재론적 전통의 이론주의를 돌파한다; 마지막으로 칸트-하이데거는 시간성의 '지평적 도식'을 통해 『존재와 시간』의 핵심적 혁신을 제시한다. 그러나 후설-하이데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후설은 배경이나 대조적 요소로만 만연해 있을 뿐이다.
By emphasizing originality, then, Kisiel gives us a Heidegger for all seasons except the phenomenological. There is the Lask-Heidegger who develops a logic of philosophy by way of the reflexive-general categories; there is the Dilthey-Heidegger who adopts the term "life" and seeks an ontology of historicality; there is the Saint Paul–Heidegger whose "actualization-historical" situation leads paradigmatically to the kairological core of Being and Time; there is the Aristotle-Heidegger whose triad—poeisis, phronesis, techne—breaks through the theoretism of the ontological tradition; and finally there is the Kant-Heidegger whose "horizontal schema" of temporality is the central innovation of Being and Time as published. But there is no Husserl-Heidegger; or rather, Husserl is ubiquitous but as a backdrop or foil.
Steven Crowell, Husserl, Heidegger, and the Space of Meaning, Evanston, Ill.: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2001, p. 122. (DeepL 번역 및 인용자 수정 & 인용자 강조)
크로웰은 키지엘의 책만을 콕 집어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후설-하이데거의 영향관계에 대해 의도적으로 무시하려는 태도는 주요한 하이데거 연구자들 사이에서조차 아주 광범위하게 나타납니다. 당장 독일어권의 고전적 하이데거 연구자들인 프리드리히빌헬름 폰 헤르만(Friedrich-Wilhelm von Herrmann)이나 발터 비멜(Walter Biemel)도 그렇고, 영어권의 고전적 하이데거 연구자인 윌리엄 리차드슨(William Richardson)도 그렇고, 단순히 후설에 대한 하이데거의 평가에만 집중하여서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완전히 다른 현상학인 것처럼 취급하려는 태도를 자주 드러냅니다. 그래서 현상학의 역사를 해설하는 유명한 책인 허버트 스피겔버그(Herbert Spiegelberg)의 The Phenomenological Movement에도 후설과 하이데거 사이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혹은 후설과 하이데거 사이의 관계를 바라보는 연구자들의 시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평이 등장하죠.
하이데거의 사상이 현상학 운동의 역사에 정당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이 질문은 현재의 연구에 상당한 중요성을 지니지만, 대개 제기조차 되지 않았으며, 답하기에도 쉽지 않다. 특히 외부인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이야기는 하이데거가 후설의 정당한 후계자라는 것이었다. 그가 후설의 추천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후의 교수직을 승계한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철학은 후설의 현상학을 정당하게 발전시킨 것이며, 현상학에 대한 찬반 논쟁은 하이데거 저작에서 드러나는 그 논리의 최종적 귀결을 살펴봄으로써 결론지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일부는 후설이 하이데거의 사상을 최종적으로 배척했다는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마도 현상학이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에 대한 책임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바람에서, 그를 정통 현상학을 타락시킨 자, 심지어는 배신자로 보기도 했다.
How far is Heidegger's thinking rightfully to be included in the history of the Phenomenological Movement? This question, which is of considerable importance for the present enterprise, was usually not even raised; nor is it easy to answer it.' The usual story, especially among outsiders, was that Heidegger was Hussed's legitimate heir, as evidenced by his succession to his chair in Freiburg at his own recommendation; that consequently Heidegger's philosophy represents the rightful development of Hussed's phenomenology; and that the case for or against phenomenology can be settled by looking at its logical outcome in Heidegger's work. But there are also those who, partly because of their better knowledge of Hussed's final repudiation of Heidegger's thinking, and perhaps also from a desire to acquit phenomenology of responsibility for Heidegger's philosophy of existence, saw in him merely a corruptor of, or even a deserter from, Uorthodox" phenomenology.
Herbert Spiegelberg, The Phenomenological Movement, Dordrecht: Kluwer Academic Publishers, 1994. (DeepL 번역 및 인용자 수정)
적어도, 저는 단순히 후설에 대한 하이데거의 발언 자체에만 지나치게 무게를 두어서 그 두 인물의 현상학을 완전히 별개인 것처럼 취급하는 태도가 그다지 정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철학 연구자가 단순히 문헌 연구자에 국한되지 않는 이상, 후설과 하이데거가 어떠한 부분에서 서로 닮아 있고 어떠한 부분에서 서로 다른지는 그 둘의 입장으로부터 추론되는 철학적 귀결에 따라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지, 단순히 텍스트에 쓰인 문구만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게다가, 단순히 문헌적 분석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하이데거가 후설의 현상학을 무시하는 듯한 암시를 보이는 문구가 종종 발견된다는 점만큼이나 하이데거가 말년에 다시 현상학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문구 역시 종종 발견된다는 점을 간과할 수가 없죠. 그런데도 무엇이 그 두 인물을 연결시키고 가르는 요소인지에 대한 '철학적' 분석이 그동안 그다지 제대로 수행된 것으로 보이지 않을 뿐더러, 그 두 인물의 텍스트에 대한 '문헌적' 분석조차 너무 파편적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아서 저로서는 항상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상학의 역사가 이제 100년이 넘었는데도, (그리고 후설과 하이데거에 대해 그동안 그렇게나 수많은 논문이 쏟아졌는데도,) 현상학의 핵심적인 두 인물에 대한 연구가 무엇인가 여전히 제자리 걸음만 걷고 있다고 느껴져서 답답하기도 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