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더글라스 하링크라는 신약성서학자가 쓴 『칭의 대신 정의의 시선으로 로마서 읽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특별히 사도 바울의 로마서에서 강조되는 핵심 단어 중 하나인 '디카이오쉬네'를 단순히 '의(righteousness)'라고 독해하기보다는 '정의(justice)'라고 독해해야 사도 바울이 주장하는 맥락이 훨씬 더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로마서 해석입니다. 하링크는 사도 바울의 로마서를, 단적으로 말해, "정의에 관한 방대한 논문"이라고 요약합니다. 사실, 이런 경향의 해석은 근래 몇 십년 동안 성서신학과 조직신학 모두에서 강조된 것이다 보니, 그 아이디어 자체가 아주 새롭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하링크의 책은 그 연구를 실제로 로마서 전체를 독해하는 데 아주 적극적으로 적용한다는 점에서 무척 강력하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책의 '서문'에서 눈길이 가는 이름을 하나 발견했네요. 이탈리아의 정치철학자인 '조르조 아감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어서요. 하링크는 자신의 책에 큰 영향을 준 인물들 중에 아감벤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직접적인 인용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하링크는 아감벤의 로마서 해석인 『남겨진 시간』을 인상적으로 읽은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근래의 신약성서학자들이 철학의 연구들을 참조하는 이런 모습이 꽤나 놀랍더라고요. 사실, 신약성서학자들도 바울서신을 다루고, 철학자들도 종종 바울서신을 다루지만, 그 두 진영의 논의 맥락은 오랫동안 서로 단절되어 있었거든요. 신약성서학자들은 정말 문헌학적이고 역사학적인 관점에서 바울서신에 접근하다 보니 텍스트 분석 자체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고, 철학자들은 ‘정의‘나 ‘법‘이나 ‘욕망‘과 같은 특정한 주제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바울서신에 접근하다 보니 텍스트 분석에 대해서는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요. 실제로, 그 두 진영에서 바울서신에 대한 논의는 아주 상이한 맥락에서 등장했죠.
(1) 철학에서 바울서신에 대한 논의는 칼 슈미트나 발터 벤야민의 정치철학적 논의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슈미트의 ‘주권‘과 ‘예외상태‘라는 개념을 벤야민이 유대교 종말론을 바탕으로 ‘메시아적인 것‘이라는 개념으로 급진적으로 재해석하면서, 대륙 정치철학 내부에서는 기성의 법 질서 속에 들어오지도 않을 뿐더러, 그 법 질서 자체를 해체해 버리는 ‘정의‘나 ‘사건‘이나 ‘타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죠. 그리고 유대-그리스도교의 성서에서 강조되는 메시아의 이미지가 바로 그런 급진적 정의, 사건, 타자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통찰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요. 바울서신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타우베스, 바디우, 아감벤 같은 철학자들에게 주목을 받으면서 정치철학적으로 재해석되었죠. ‘율법‘에 대한 바울의 비판이란, 단순히 종교적 법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법 일반‘이 지닌 근본적 한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말이에요.
(2) 조직신학과 성서신학은 훨씬 더 복잡한 맥락을 통해 바울서신을 새롭게 읽게 되었습니다. 칸트의 종교철학에 근거해서 신약성서를 읽으려는 시도들이 20세기 초에 수많은 비판에 직면하면서 새로운 흐름들이 산발적으로 나타났거든요. 알베르트 슈바이처나 요한네스 바이스 같은 성서학자들은 신약성서의 ‘하나님 나라‘가 칸트의 ‘목적의 왕국‘과는 전혀 다른 종말론적 함의를 지닌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칼 바르트 같은 조직신학자들도 기독교를 칸트식의 윤리학으로 환원하려는 태도에 맞서 변증법적 신학 운동을 일으켰죠. 그러면서 바울서신을 서구의 인간학적, 도덕적, 종교적 선입견 없이 읽어보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이루어지다가, 결정적으로 1970년대 말부터 샌더스, 던, 라이트에 의해 ‘바울에 대한 새관점‘이라는 연구사조가 나타나면서, 유대교의 맥락에서 ‘율법‘이나 ‘의‘에 대한 바울의 논의들이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논의에 많은 성서학자들이 동의하게 된 것이고요.
그런데 2010년대 무렵부터는 이 두 가지 흐름이 종종 만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신약학자들이 그동안 자신들이 수행한 작업과 철학자들이 수행한 작업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하는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실제로, 바울에 대한 새관점 운동에 다시 혁신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평가받는 신약학자인 존 바클레이는 자신의 대표작인 『바울과 선물』(2015)에서 알랭 바디우의 바울 해석을 논평하기도 하고, 데리다의 무조건적 선물 개념에 대해 비판하기도 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바클레이는 그야말로 신약성서학의 탑티어급 학자인데도, 철학자들의 바울 해석이나 기독교 해석을 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데다, 바디우의 해석 같은 경우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더라고요. 또 위의 하링크의 책(2020)도 아감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뿐만 아니라, 하링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울, 신학, 신정 정치 비전: 아감벤, 바디우, 지젝 등에 대한 비판적 관여』(Paul, Philosophy, and the Theopolitical Vision: Critical Engagement with Agamben, Badiou, Žižek, and Others)(2010)라는 논문집을 편집하기도 하였더라고요. 또, 약간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사도 바울을 당대 그리스-로마의 아리스토텔레스, 세네카, 키케로, 에픽테토스 같은 철학자들과 비교하는 연구들도 2010년대 이후에 상당히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고 말이에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철학의 매력은 ‘요점‘ 혹은 ‘통찰‘을 잘 잡아낸다는 데 있지 않은가 합니다. 사실 전문적인 신약학자들은 바울서신을 연구하기 위해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 라틴어 같은 언어들을 습득하고, 제2성전기를 중심으로 유대교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그 당시의 유대교와 그리스-로마 문헌을 뒤적이고, 비평 방법론을 습득하는 등 정말 방대한 작업을 수행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16장밖에 안 되는 로마서 같은 편지 한 통에 대해 수백 페이지가 넘는 주석을 쓰기도 하죠. 그런데 철학자들은, 비록 문헌학적이고 역사적인 분석에서는 신약성서학자들보다 훨씬 덜 훈련받았겠지만, 그럼에도 신약성서학자들에게까지 영감을 주는 바울서신 해석을 써낸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애초에 신약성서학 자체에 대해 관심이 없으신 분들은 ‘신약성서학자들이 뭐라 말하든, 그게 무슨 알 바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분야 학자들이 얼마나 깐깐하고 엄격한 사람들인지 옆에서 기웃거려서 알게 된 저로서는, 철학자들의 바울서신 연구가 실제 신약성서학자들에게까지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철학의 저력(?)을 증명하는 게 아닌가 해서 감탄스럽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