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렛의 몽키스패너: 예수 조폭설에 대하여

이 댓글을 읽다 보니, 예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이 생각나서 여기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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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역한 군대 선임 K가 얼마 전에 아래의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았다. 무엇인가 하고 보니, 디씨에서 나온 그 유명한 '예수 조폭설'이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164242

(2) 사실, 서브컬쳐에서 예수가 '조폭'과 연관되는 사례는 상당히 빈번한 편이다. 가령, '예수와 부처가 현대 일본에서 친구로 지내며 동거 생활을 한다면?'이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인트 영맨>이라는 애니에서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 조폭과 함께 사우나를 하던 예수가 자신의 과거 일화를 들려주며 조폭을 압도해 버린다는 에피소드이다.

(3) 웃자고 만들어진 '예수 조폭설'이지만, 여기에도 분명 진리는 존재한다. 어쩌면, 예수를 희화화하려고 쓴 저 글의 내용이 교회에 널리 퍼져 있는 일반적인 예수의 이미지보다도 더 진리에 가까이 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복음서가 기술하고 있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모습은 교회의 '셀 모임'이나 '목장 모임' 같은 친교 공동체의 모습을 훨씬 넘어서니 말이다.

(4) 예수 조폭설의 저자는, 자신이 직접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자료를 통해 영감을 얻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지적하고 있다. 바로 예수의 죽음에 정치적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는 로마에 대한 반역, 즉 국가내란죄로 사형당했다.
만약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가 그냥 친목질하면서 설교하는 사람이라면 로마 법정이 과연 저런 판결을 내릴까?
아니다.
예수가 반역이나 내란에 가까운 행위를 했으니까 로마 법정이 저런 판결을 내린 거다.1

그는 십자가 이야기를 조폭 예수 일당과 로마 사법부의 대결 구도로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 욕설이 사용되었지만, 예수 조폭설의 마지막 결론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사법부의 승리다. 씨발 개독새끼들아.

예수가 '로마에 대한 반역' 혹은 '내란죄'에 상응하는 활동을 하였다는 주장은 매우 정확하다. 예수의 처형 사건을 "사법부의 승리"라는 관점에서 독해하고자 한 시도 역시 그 사건의 핵심적인 문제를 꽤나 잘 통찰하고 있다. 복음서는 예수가,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정치적' 활동을 하였다고 분명한 어조로 증언한다. 또한 수많은 법학자들이 예수의 처형 사건을 바탕으로 '법' 혹은 '국가'의 권위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기도 한다. 저자는 비록 예수의 활동이 어떠한 점에서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그의 처형 사건이 어떠한 점에서 '법'의 문제와 관련이 되는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한 듯하지만, 적어도 예수의 활동에서 정말로 쟁점이 되는 사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큼은 일반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인들보다도 훨씬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5) 예수의 가르침과 활동은 대단히 '정치적'이다. 이러한 점은 신약성서에서 사용되는 핵심 단어들만 보더라도 잘 드러난다. 신약성서에서 등장하는 '복음(유앙겔리온)', '주님(퀴리오스)', '나라(바실레이아)', '구원(소테리아)', '신의 아들(테우 휘오스)', '거룩한(하기오스)' 등의 단어는, 1세기 로마 제국에서 대단히 정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단어들은 단순히 초자연적인 신성이나 내세에 있을 영혼의 구원을 묘사하기 위한 종교적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국가의 종교가 그 국가의 정치 체제를 정당화하였던 당시의 시대상에서는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정치'와 '종교'의 분리 자체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2 오늘날에는 교회에서나 쓰이는 저 단어들은, 사실 예수 당시의 로마에서는 황제의 통치를 홍보하고 옹호하는데 사용되는 정치적 전문 용어들이었다.

(6) 가령, '복음' 혹은 '기쁜 소식'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유앙겔리온'을 살펴보자. 이 단어는 새로운 황제의 등극시에 사용되는 용어였다. 왕위 계승식을 통해 기존 황제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새로운 황제가 되는 경우, 혹은 전쟁에서의 거대한 승리를 통해 새로운 인물이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경우, 이 소식은 황제의 전령을 통해 로마 제국이 다스리는 모든 지역에 통지된다. 이때 제국 전역에 퍼져나가는 황제 등극의 선포가 바로 '유앙겔리온'이다. 톰 라이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학자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듯이, 그리스 세계에서 유앙겔리온(euangelion)은 통상 위대한 승리, 혹은 황제의 탄생이나 왕위 계승을 선포하는 것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였다. [……] 새로운 통치자의 등장은, 특별히 아우구스투스의 시대에는, 평화에 대한 약속, 새로운 세상을 위한 새출발을 의미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오랜 내전을 거친 후 주전 31년에 최초의 로마 황제가 되었다. 주전 9년에 새겨진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신은 우리에게 관심과 열심을 쏟고 우리의 삶 전체를 섭리로 인도해왔다. 이제 신은 사람의 삶을 위한 가장 완전한 완성의 모습을 섭리로 정하셨는데, 그 완성의 과업을 아우구스투스에게 넘기셨고, 사람들 안에서 보호자의 일을 수행하기 위한 덕으로 그를 채우셨고, 우리와 후세들을 위한 구원자를 그 안에 보내셨다. 이를 통해 전쟁이 멈출 것이며, 도처에 질서를 가져올 것이다. …… 그 신(아우구스투스)의 출생은 그를 통해 사람들에게 미칠 기쁜 소식, 세상을 위한 기쁜 소식의 시작이다.3

(7) '주님'을 의미하는 단어인 '퀴리오스'와 '구원자'를 의미하는 단어인 '소테르' 역시 마찬가지이다. '퀴리오스'는 단순한 경어가 아니라, 로마 황제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또한 '소테르'는 국가를 안정화시킨 위대한 왕에게 적용되던 말이었다.

[……] 정중한 영어 단어인 'Sir'에도 더 엄격한 의미가 있어서 기사들에게 말을 걸 때 사용했던 것처럼, 바울의 세계에서도 퀴리오스는 단순히 사회적으로 지위가 더 높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정중한 경어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위에 있는 사람, 즉 황제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초대 로마에서 세상의 주는 궁극적으로 단 한사람뿐이었다.4

우리는 로마 제국의 몇몇 문서에서 황제의 등극을 언급하는 공식 구절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구절들에서 사고는 다음과 같이 흘러간다. (아우구스투스, 네로와 같은) 이런 사람이 이 나라를 위해 충직한 종의 역할을 해왔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아마도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는 내용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우리의 주로 맞이한다. 그리고 그가 우리의 구원자가 되도록 우리 자신을 그에게 맡긴다. 우리는 그를 퀴리오스(Kyrios, 주)로 맞이하며 그를 우리의 소테르(Soter, 구원자)로 신임한다.5

(8) 셰인 클레어본과 크리스 호가 쓴 『대통령 예수』(정성묵 옮김, 살림, 2010.) 역시 이와 관련해서 흥미롭게 참고할 만하다. 이 책의 내용을 만화로 요약한 RUST와 LINDON 작가의 『워킹맘과 가사도우미 신학자들』 12화와 13화의 일부분을 발췌해서 올려본다.

대통령_예수(1)
대통령_예수(2)
대통령_예수(3)
대통령_예수(4)

(9) 그런데 신약성서는, 놀랍게도, 로마 황제와 그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포장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단어들을 예수와 하나님 나라에 적용시키고 있다. 이러한 용법은 대단히 무모하고 혁명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현대인들에게 "예수가 주님이시다!" 혹은 "예수가 왕이시다!"라는 선포는 단순한 종교적 진술로밖에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황제 치하의 로마 시대에 로마의 황제 이외의 다른 인물을 '주님'과 '왕'으로 칭하며 제국의 질서를 받아들이길 거부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반역이었다.6 예수를 주님으로 선포하며 로마의 복음과는 다른 새로운 복음을 증언하였던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단순히 영혼 구원을 꿈꾸던 친목 집단이 아니라,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저항적 공동체였던 것이다. 라이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로마 세계 내부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이교도들은 카이사르를 주라고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정치적인 면에서 그렇게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종교적으로도 그렇게 인정하는 것은 동일한 총체적인 체계 내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바울은 말한다. 아니다, 퀴리오스 이에수스 크리스토스(Kyrios Iesous Christos), 즉 예수 그리스도가 주이시다. 바울이 특별히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는, 로마 식민지에 기반을 둔 공동체로서 카이사르의 주됨(Lordship)이 급박한 당면 문제였던 공동체에 이야기할 때였다.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할 때, 그런 주장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빌립보서, 특별히 빌립보서 2장의 기독론 배후에는 풍성한 유대교 신학이 놓여 있지만, 그에 덧붙여 이교가 소중하게 여겼던 심장부 중의 하나인 제국 이데올로기와의 대결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바울이 죽은 지 100년 후에, 늙은 주교였던 폴리갑이 카이사르에게 말뿐인 경배를 드리는 것조차 거부하여 화형을 당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폴리갑은 빌립보서 2장의 직계였던 것이다.7

(10)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 하다. 로마 시대 당시의 십자가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예수 조폭설 저자의 표현대로, '내란죄'에 해당하는 중범죄자에게만 내려졌던 형벌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당했던 화형과 짐승에게 물어 뜯겨 죽는 형벌은 모두 내란죄를 범한 이들에게 내려지던 형벌이었다.

로마법전Digesto에 따르면, "내란죄maiestatis crimen는 로마 제국의 신민과 그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가리킨다.(『로마법전』. 48. 4. 1. 1) 기원전 46년에 제정된 ​내란방지법​lex Julia maiestatis에 의하면, 이러한 범죄행위는 죄인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 십자가형 혹은 화형에 처해지거나 아니면 짐승들에게 물어 뜯겨 죽는 방식으로 처벌된다.8

(11) 로마 제국은 예수가 체제의 안정을 위협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예수는 '로마의 평화'에 도전하는 내란 선동자로 지목받아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 그의 처형 과정에는 '본디오 빌라도'가 대표하는 로마 제국의 정치적 계산과 이데올로기가 개입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은 예수의 활동으로 인해 유대인들 사이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 '로마의 평화'가 무너지는 것을 우려하였다. "나자렛 예수, 유대인의 왕(INRI)"이라는, 조롱이 섞여 있는 동시에 예수의 사역의 본질을 양면적인 의미로 지적하고 있는 팻말은 바로 이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수는 정치범으로 지목되어 법정에 섰으며, 빌라도는 그 정치범의 주장이나 의의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적어도 그가 로마 황제에 대립하는 다른 위험한 권위를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우려하고 있었다.9 위르겐 몰트만은 예수가 처형당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속에 담긴 정치적 함의를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로마 제국의 확장은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는 이념과 결부되어 있었으며, 로마의 평화는 모든 타종교를 허용하면서 동시에 로마 황제 숭배를 요구하였다. 그 당시의 세계에 있어서 로마 제국은 하나의 종교적-정치적 질서를 의미하였다. 이에 따라서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성전 안에 황제의 기들이 세워졌으며, 통용되는 화폐 위에는 시저의 얼굴이 새겨졌다. 그러므로 이것은 <율법을 위한 열심자들>에 있어서 제1계명의 파괴요 따라서 종교적 불경을 의미하였으며, 이에 대하여 반항해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즉 예수는 단지 예루살렘 내의 평안과 질서라고 하는 전략적이고 시국적인 이유에서 로마인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사실에 있어서는 로마의 평화를 보장하여 주는 로마의 국가신들의 이름으로 십자가에 달렸다는 사실이다. 종교 없는 정치란 그 당시 사회에 있어서 비정치적 종교와 마찬가지로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예수는 빌라도에 의하여 정치적 모반자로 열광자로, 심판받았다." 쿨만의 역사적 추측에 의하면 예루살렘 성전을 보호하기 위하여 투입되었던 로마 보병대는 예수를 겟세마네에서 체포하였다. 그 다음에 예수는 애초부터 그의 예루살렘 등장으로 인하여 대두된 폭동을 두려워한 로마 군인들의 포로였다. 그 다음 제사장들 앞에서의 심문은 하나의 도덕적 상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상담은 빌라도가 원한 것이었고, 이것은 빌라도가 상상하기를 열심당원의 지도자 나사렛 예수를 처형함으로써 유대 관원들과 백성들의 자기에 대한 반감을 피하기 위한 안전책이었다. 그 다음에 일어난 본래의 소송은 빌라도 앞에서 일어난 소송이었다. 즉 대제사장 회의와 빌라도의 합동유희에서 일어난 정치적 소송이었다. 십자가 위에 있는 제명, 즉 소위 말하는 제목은 그에 대한 형벌이 결정되어 있는 범죄를 전통적 방법에 따라 교시하고 있다. 이 제명은 예수를 가리켜 INRI-<나사렛 예수-유대인들의 왕>이라고 칭하고 있다. 복음서들에 전승되어 있는 이 제목은 기독교적 공동체가 발견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아니한다. 그러기에는 이 제목은 너무도 위험하였으며, 살아남기 위하여 기독교적 공동체들이 후에 로마제국과 추구하였던 화해의 방침에 모순되었다.10

몰트만은 예수가 단순히 정치적 오해 때문에 처형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예수가 열심당원으로 오해를 받아 처형 당했다는 루돌프 불트만의 해석에 반대하여, 빌라도가 예수의 활동이 지닌 정치적 함의를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었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러나 제국주의적인 로마의 평화에 대항하는 <선동자> 예수를 심판하는 데 있어서 사실상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이와 같은 그 당시 상황과 결부된 예수에 대한 <오해>가 아니었다. 예수의 자유와 하나님의 은혜의 법에 관한 그의 선포는 바리새인들과 열혈당원들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라, 로마 평화의 종교적-제의적 그리고 종교적-정치적 기초와 고대 모든 인간의 의에 관한 표상에도 해당된 것이었다. 열혈당원적인 선동자라는 직접적인 의미에 있어서 빌라도는 예수를 분명코 오해하였으며, 민중 봉기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를 그렇게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로마 평화와 그의 신들과 법률들을 문제화시켰다는 더 깊은 의미에 있어서 빌라도가 예수를 바르게 이해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추가하여 말할 수밖에 없다.11

(12) 이런 점에서 예수는 분명 로마 제국의 질서 속에서 위험한 인물이었다. 예수와 예수의 추종자들은, 말하자면, 황제를 중심으로 구축된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일종의 '사상범'들이었다. 즉, 그들은 로마 제국의 황제를 이 세상의 진정한 황제로 받아들이길 거부하였고, 로마 제국이 구축한 평화를 진정한 평화라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로마 제국이 경멸하고 무시한 것들,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와 그가 대변하였던 가난한 하층계급의 식민지 민중들이야 말로 종말의 날에 역사의 승리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때문에 그들은 로마의 황제와 신들을 경배하기를 거부하였고, '유대인/이방인', '시민/노예', '남성/여성' 등 당대의 사회적 구별에도 얽매이지 않았으며, 때로는 로마 군대에 소속되는 것도 거부하였다.

(13)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했다는 사실은 수많은 법학자들의 관심을 끌기도 한다. 법학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예수의 처형 사건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을 로마법의 관점에서 재구성하여 평가해보고자 노력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 사건을 과연, 예수 조폭설의 저자의 표현처럼, "사법부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지는 상당히 의문스럽다. 그러나 적어도 이 사건이 '사법부'의 정당성 문제와 매우 긴밀하게 연관을 맺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법학자들은 예수가 과연 당대의 법에 따라 정당하게 처형 당한 것인지, 아니면 법의 형식을 빌린 폭력에 의해 희생 당한 것인지에 대해 오랫동안 논쟁하였다.

법제사가들은 로마법의 견지에서 예수의 재판 과정을 평가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거기서 상이한 결론들이 제출되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위대한 법학자 살바토레 사타Salvatore Satta가 적었듯이 모든 재판 하나하나가 제각각 어떤 "비밀"이라면, 이 비밀의 모순성은 이 재판에서 유독 분명하게 드러난다.12

일부 학자들은 로마의 재판 절차는 [본디] 어떠한 형식도 갖추지 않았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고소장도, 고소에 대한 정확한 접수도, [범죄] 사실에 대한 확정이나 판결에 대한 명확한 공시도 일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법적인 견지에서 보면 "나사렛 예수는 [……] 사형을 당한 것이 아니라 [그냥]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의 처형은 부당한 처벌이 아니라 살인이었다."(로사디Rosadi, 407~408) 다른 학자들은 이 입장에 반대하여 로마법은 오직 로마 시민에게만 적용되었다고 주장한다. 예수와 같은 비-시민에게 [해당 속주의] 총독이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은 ​관할권​iurisdictio​이 아니라 ​징벌권​coercitio​이었지만, 여러 속주들에게서 정상적인 절차가 적용되어야 하는 경우와 ​예외 절차​cognitio extra ordinem​가 적용되어야 하는 경우, 즉 형식적인 재판 절차에 구속되지 않는 경우는 명확히 구별되지 않았다.(로마노, 313~314)13

(14) 예수의 처형 사건은 '법'의 권위와 한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과연 법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법은 어디까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사실, 예수와 예수의 추종자들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당대의 '법'을 문제시하고 있다고도 이해해볼 수 있다. 그들은 유대교 '율법'을 예수의 가르침에 비추어 새롭게 해석하였고, 제국을 유지하던 '로마법'보다도 더 높은 권위를 예수에게 부여하였으니 말이다. 한스 켈젠이 자신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첫 부분을 예수와 빌라도 사이의 대화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런 점에서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빌라도가 예수에게 던진 질문, "진리가 무엇이오?"(요 18:38)는 사실 메시아적 왕으로서 예수의 사역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정의가 무엇이오?"라는 질문으로 바뀔 수 있으며, 이 질문이야 말로 다른 모든 법학적 논의에 앞서는 근본적인 질문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의 사역은 "법이란 과연 정의로운가?"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When Jesus of Nazareth was brought before Pilate and admitted that he was a king, he said: "It was for this that I was born, and for this that I came to the world, to give testimony for truth." Whereupon Pilate asked, "What is truth?" The Roman procurator did not expect, and Jesus did not give, an answer to this question; for to give testimony for truth was not the essence of his divine mission as the Messianic King. He was born to give testimony for justice, the justice to be realized in the Kingdom of God, and for this justice he died data-on the cross. Thus, behind the question of Pilate, "What is truth?" arises, out of the blood of Christ, another still more important question, the eternal question of mankind: What is justice?14

(15) 아감벤은 예수의 처형 사건에서 아주 흥미로운 역설을 발견하기도 한다.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심판대 앞에 섰다는 사실 말이다. 즉, 법은 자신의 영역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심판한다. 그렇다면 정작 그 법을 심판하는 사건에 대해 법은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되는가? '법의 정당성', 혹은 '법의 정의로움'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는 사건을 법이 과연 심판할 수 있는가? 즉, 법은 자신이 심판을 내릴 때 참고하는 기준, 혹은 자신이 심판을 내릴 때 의존하는 법적 근본 토대가 비판의 대상이 될 경우 과연 자신에게 제기되는 비판 앞에서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아감벤은 이때의 법이 '진위 불명 상태(non liquet)', 곧 아무런 판결도 내릴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되고 만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러한 사건이 바로 빌라도와 예수 사이에서 일어났다고 강조한다. 세상의 법을 대변하는 빌라도는 그 법을 근본적으로 문제시하는 예수 앞에서 자신의 판결 능력을 상실한 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에 대해 마지막까지 아무런 '판결'도 선언하지 못한 채, 단지 그를 유대인들에게 '넘겨주었을' 뿐이다. 아감벤은 예수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기성의 법의 정당성을 뒤흔드는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모든 법은 이렇듯 자신의 토대에 대한 비판 앞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제시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주장한다.15

주목할 만한 점은 빌라도가 재판 과정 내내 판결을 피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는 사실이다. 아래에서 보게 되겠지만, 유대인들의 거센 압박에 굴복했을 때조차 이 총독은 아무런 판결도 내리지 않았다. 그는 [단지] 유대인들에게 피고인을 "넘겨주었을​paradoken​" 따름이다.16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의 교차는 재판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 재판은 판결이 내려짐으로써 종결된 재판이 아니었다. 이 세계에 의한 것이 아닌 왕국을 가진 예수는 재판관의 판결에 내맡겨진 제 처지를 [순순히] 받아들였지만, [정작] 재판관인 빌라도는 판결을 거부했다. 토론──그들의 대화를 일종의 토론으로 볼 수 있다면──은 여섯 시간 동안 진행되었지만, 재판관은 결국 판결문을 낭독하지 않은 채 피고인을 산헤드린 회원들과 사형 집행인들에게 "넘겨주었을consegnato" 따름이다.17

(16) 예수는 '나자렛의 몽키스패너'였는가? 그렇다. 하지만 이때 그가 든 '몽키스패너'란, 굳이 말하자면, 기성의 가치를 때려부수는 니체의 '망치'에 가깝다. 예수와 예수의 추종자들은 몽키스패너를 들고서 로마 제국이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고자 하였으니 말이다. 그들은 "예수가 주님이시다!" 혹은 "예수가 왕이시다!"라고 선포하며 '법', 곧 유대교의 율법과 로마 제국의 로마법이 지닌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문제 삼았다. 이 때문에 그들은 법을 위반한 '조폭'으로, 곧 내란 선동죄로 몰려 처형 당했다.18 어떤 점에서 보면, 예수의 처형 사건은, 예수 조폭설의 저자가 말한 대로 로마 '사법부의 승리'인지도 모른다. 예수는 그가 무너뜨리고자 했던 법에 의해 무너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 오히려 이렇게 무너짐으로써 예수는 그 '사법부의 승리'가 과연 진정한 '승리'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복음서는 바로 '십자가에 달린 자' 예수와 그를 따르는 자들이야 말로 종말의 날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의인이라고 '정당화(칭의)'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기성의 이데올로기를 전복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17) 결론을 이야기 하자.

우리 예수 행님 건들면 아주 X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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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용자 강조.

  2. 퓌스텔 드 쿨랑주의 고전적인 연구가 이 점을 잘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연구는 고대의 정치와 현대의 정치를 분리시키는 이 경계선에서 멈춘다. 우리가 살펴본 것은 신앙의 역사이다. 신앙이 자리 잡으면 인간 사회가 구성된다. 신앙이 변하면 사회는 일련의 혁명을 겪는다. 신앙이 사라지면 사회의 모습이 달라진다. 이것이 고대의 법칙이었다."(퓌스텔 드 쿨랑주, 『고대도시』, 김응종 옮김, 아카넷, 2000, 540쪽.)

  3. 톰 라이트, 『톰 라이트,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 최현만 옮김, 에클레시아북스, 2011, 64-65쪽, 인용자 강조. 마가복음은 아우구스투스의 등극을 선포하는 저 비문의 내용과 본따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막 1:1)라는 구절로 시작되고 있다.

  4. Ibid., 87쪽.

  5. Ibid., 88쪽.

  6. 가령,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할 것을 요구하며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요 19:16)라고 말한 것을 떠올려 보라. 요한복음에서 이 장면은 대단히 역설적으로 연출되고 있다. 로마인인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가리켜 보이며 "당신들의 왕"이라고 하는 반면, "하나님이 왕이시다."라고 고백해야 하는 유대인들은 "황제 폐하(카이사르)가 왕이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말이다.

  7. Ibid., 144쪽.

  8. 조르조 아감벤, 『빌라도와 예수』, 조효원 옮김, 꾸리에, 2015, 33-34쪽.

  9. 개인적으로, 나는 빌라도가 무책임하고 우유부단한 관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예수를 둘러싼 유대인들의 종교적-정치적 갈등에 휘말리고 싶어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유대 지역에서 발생할 지도 모르는 성가신 폭동을 대충 무마시키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아감벤이 잘 지적하는 것처럼, 예수에 대해 적극적으로 '판결(크리시스)'을 내리기보다는, 그를 단지 유대인들에게 '넘겨주었을(파라도켄)' 뿐이다. 자신이 예수를 사면하든 처형하든, 자신의 판결에 대해 불만족한 집단이 반발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10. 위르겐 몰트만,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김균진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1979, 195-196쪽.

  11. Ibid., 206쪽.

  12. 조르조 아감벤, 『빌라도와 예수』, 60쪽.

  13. 조르조 아감벤, 『빌라도와 예수』, 60-61쪽.

  14. H. Kelsen, What is Justice?: Justice, Law, and Politics in the Mirror of Science Collected Essays by Hans Kelsen, Berkeley/Los Angeles/London: University of Califonia Press, 2000, p. 1.

  15. 더욱 엄격하게 이야기하자면, 아감벤은 이 이야기 속에서 빌라도는 물론이고 예수조차도 '판결'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이야기한다(조르주 아감벤, 『빌라도와 예수』, 68쪽; 76쪽 참고.). 그는 모든 법에 내재된 판결불가능성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법의 한계를 들추어내고자 한다.

  16. 조르조 아감벤, 『빌라도와 예수』, 39쪽.

  17. 조르조 아감벤, 『빌라도와 예수』, 87쪽.

  18.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는 유대교의 맥락에서는 '신성모독죄'로, 로마 제국의 맥락에서는 '선동죄'로 고발되어 처형 당했다.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제4장을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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