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 철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좋은 설명을 해주셨다고 봅니다. 저는 『논어』의 해당 구절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조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해당 구절은 「위정」에 있죠. 원문은 "子曰: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大車無輗, 小車無軏, 其何以行之哉?"입니다. 일단 YOUN님이 말한 것처럼 텍스트를 잘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텍스트를 잘 이해라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접근 방법이 있을텐데, 『논어』의 경우에는 세 가지 접근법이 먼저 떠오르네요. 첫 번째는 단편적인 구절만 가지고 생각하지 말고 장 전체의 문장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지금 질문자께서는 전체 구절 중 일부만 가지고 여러 가지 비판거리를 찾으셨는데요. 전체 문장 속에서 해당 구절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조금 더 구체화해보는 것입니다. 전체 문장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 있겠네요.
"사람이 신의가 없다면 그 가능성을 알 수 없다. 큰 수레에 끌채쐐기가 없고 작은 수레에 멍에막이가 없으면 어떻게 운행하랴?"
(번역은 박성규 역, 91쪽을 인용했습니다.)
위의 번역에서는 '신의'라고 해놨네요. 신의라고 번역해야 할지 신뢰라고 번역해야 할지 여부는 조금 더 고민해야겠지만 최소한 전체 문장에서 신의가 수레의 끌채쐐기와 멍에막이로 비유되고 있다는 전반적인 문장의 구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끌채쐐기와 멍에막이가 뭘까 하고 보니까 박성규 선생은 이렇게 주석을 달아놨네요.
끌채쐐기: 끌채 끝의 멍에를 메는 부분, 수레의 쐐기, 끌채 끝의 가로대를 고정하는 쐐기.
멍에막이: 끌채(큰 수레 양쪽의 길게 나온 두 개의 나무, 그 끝에 멍에를 걺.)
고대 중국의 멍에와 끌채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해설을 읽었을 때 끌채쐐기와 멍에막이가 최소한 수레를 작동할 때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와 같은 정보를 종합했을 때 신뢰 혹은 신의는 수레의 작동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로 비유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즉 수레와 그것의 구성요소의 관계가 인간과 신뢰(혹은 신의)의 관계와 대응하고 있는 것이죠. 일단 여기까지 『논어』의 해당 장을 전반적으로 살펴봤을 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 두 번째는 여러 번역이나 주석들을 참조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비로소 나가오 다케시, 하안, 주희, 오규 소라이 등의 학자들의 말을 조금씩 보면서 信의 의미가 무엇일지 생각해볼 수 있겠죠. 아마 질문자께서 한문 원문을 읽기에는 어려울테니 주석보다는 다양한 번역들을 참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인용하신 나가오 다케시는 '신뢰'라고 했는데, 제가 인용한 박성규는 '신의'라고 했군요. 신뢰와 신의는 같은 말일까요, 아니면 다른 말일까요? 이런 의문을 가지고 한 번 여러 번역서들의 설명들을 살펴보면서 해석을 더 심화시켜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박성규 역에 있는 추가 설명을 한 번 보고, 그냥 옆에 있는 다른 번역서 몇 종을 한 번 인용해보겠습니다.
박성규: 『어류』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말에 진실이 없으니, 어디선들 행세할 수 있겠는가? 집에 있으면 집에서 행세하지 못하고, 마을에 있으면 마을에서 행세하지 못한다. 이것은 '말이 충직하고 신실하지 못하면, 동네에서라도 행세할 수 있겠는가?'(15-6)라는 의미와 같다.
김도련, 논어, 63-64쪽: '信'은 信實함. 사람이 말을 했으면 반드시 실천하는 것을 '信'이라 하고, 말한 것에 하나의 虛도 없이 誠實한 것을 '實'이라 하지만 이 '信'자는 말과 행동 모두를 포괄한다. (중략) 사람의 언행에 있어서도 믿음이 없이 다른 사람과 서로 일을 같이 하게 되면 반드시 도처에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당시의 大車 小車의 중요한 부분을 비유로 하여 '믿음'이야말로 立身行事에 있어 중요한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을호, 한글논어, 23쪽: 수레와 소 - 혹은 말 -은 본시 완전히 딴 것들이다. 이것들이 한데 묶여서 수레를 끌게 하자면 멍에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과도 말하자면 아주 딴 사람들이다. 이들이 한데 어울려 굳게 맺어진 사이가 되자면 信이 멍에의 구실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信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멍에인 것이다.
위의 해설들은 공히 멍에의 비유에 집중해서 信의 의미와 역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도련은 말과 행위가 일치하는 것을 信으로 규정하였고, 이을호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준다는 점에서 信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고 있군요. 제가 나가오 다케시의 책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두 선생님의 말을 보면 신뢰 혹은 신의를 설명할 때 사람으로서의 자격이라기 보다는 나와 타자의 관계 속에서 신뢰(혹은 신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네요.
본문의 질문을 보면 갑자기 "한 사람에게라도 신뢰받는다면 살아갈 자격이 있다."라는 말에서 '자격'이라는 말에 꽂혀서 사유가 전개되고 있네요. 하지만 제가 갖고 있는 몇 종의 번역서만 보더라도 신뢰가 인간의 자격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보다는 신뢰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질문자께서 보신 나가오 다케시라는 사람도 위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정말로 『논어』의 말에 딴지를 걸려면 '살아갈 자격? 그런 게 있기는 해?'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 아니라 '신뢰는 어떠한 점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걸까?'라는 질문이 더 문맥에 부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논어』의 다른 구절 속에서 信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 혹은 信에 대한 추가 정보는 없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박성규 역의 추가 설명을 보면 『어류』라고 표시가 된 부분이 있는데요. 이는 주희와 제자들의 문답을 기록한 『주자어류』를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15-6과 지금 이 장의 내용이 같은 맥락이라는 정보가 있네요. 여기서의 15는 『논어』의 15번째 편을 의미하고, 6은 그 편의 여섯 번째 장이라는 뜻입니다. 즉 「위령공」의 제6장을 찾아가보면 되겠네요. 해당 장의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장이 '행실(행세)'를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말이 충직하고 신실하며, 행위가 돈독하고 경건하면, 야만의 나라에서도 행세할 수 있다. 말이 충직·신실하지 못하고, 행동이 성실·경건하지 못하면, 동네에선들 행세할 수 있겠는가? 서 있으면 그런 마음가짐이 앞에 펼쳐지는지 살피고, 수레를 타면 그런 마음가짐이 가로대에 깃들어 있는지 살펴라. 그러면 행세할 수 있다." 자장은 말씀을 허리띠에 적었다.
여기에 보면 수레의 비유가 다시 사용되고 있으며 신실(信)뿐 아니라 다양한 덕목들이 예시되어있네요. 이러한 내용을 다시 읽어서 「위정」의 내용과 비교하고 대조해보면 보다 信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해볼 수 있을 것 같군요. 한편 그 밑에 딸려있는 주희의 주석을 보면 信에 대해서 주희는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알아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질문하신 분은 문장의 일부분, 그 중에서도 몇 가지 단어에만 꽂혀서 트집을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텍스트의 핵심에 접근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논어』만 하더라도 ①해당 장의 전체적인 맥락, ②장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 ③다른 장과의 연관성 등을 고려해서 내용을 이해해볼 수 있죠. 저는 이러한 접근이 『논어』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철학 텍스트에도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