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 종합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이게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는, 이 시험을 쳐보지 않은 분들은 절대 모를 겁니다ㅠㅠ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철학 시험이었습니다. 연세대 철학과 박사과정 종합시험은 따로 기출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교재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범위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어서요. (석사과정에서는 미리 정해진 70개의 문제들 중에서 철학사 문제들이 출제되지만, 박사과정은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문제가 나올지는 순전히 출제하시는 교수님들만 아시는데, 교수님들이 문제에 대해 미리 언질을 주시는 것도 전혀 아니죠. 게다가, 문제 난이도도 굉장히 높습니다. 과사무실 근무자분들에 따르면, 재시험을 보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학과 내규에 종합시험 응시 가능 횟수를 2회로 제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작년 말부터 지도교수님이신 이승종 교수님께서 종합시험에 대해 주의를 많이 주셨어요. 예전에 2회를 모두 떨어져서 졸업 자체가 불가능해진 경우가 있었다고 하시면서요. (물론, 오래된 일이고 교수님께서도 행정 절차를 아주 정확하게 아시고 계신 것은 아니어서 실제 사례와 다를 수는 있지만, 종합시험에 2번 모두 떨어질 경우 재입학을 하더라도 학적상 기록이 남아서 졸업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하셔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이번에 제가 본 시험 문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공

  1. 가다머의 해석학을 아리스토텔레스의 프로네시스 개념과 연관지어 논하시오
  2. 분석적 해석학을 논하시오.
  3. 해석학적 순환이 인식의 순환성을 극복할 수 있는지 비판적으로 논하시오.
  4. 하이데거의 해석학을 논하시오.

철학사

  1.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의 존재론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시오.
  2. 보편자에 대한 스코투스와 오캄의 입장을 비교하시오.
  3. 데카르트의 관념 이론이 지닌 특징, 의의, 한계를 서술하시오.
  4. 데리다의 해체를 논하시오.

형이상학

  1. 크립키의 본질주의를 ‘고정지시어’와 ‘기원 본질주의’를 중심으로 서술하시오.
  2. 인격 동일성 문제와 해결 방안을 서술하시오.
  3. ”이 빨간 것과 저 빨간 것은 유사하다.“라는 진술을 보편자 실재론과 유명론이 각각 어떻게 해석하는지 논의하시오. (단, 유명론의 입장을 2가지 소개하되 트롭 이론을 반드시 포함시키시오.)
  4. 유형 인과(type-causation)와 개체 인과(token-causation) 중 어느 쪽이 더 근본적인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인식론

  1. 상식적 실재론의 타당성에 대해 논하시오.
  2. 인식론이 자연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자들의 견해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시오.
  3. 20세기 이전 인식론 중 하나를 선택하여 옹호하거나 비판하시오.
  4. 데카르트의 회의주의에 대한 오늘날 인식론의 대응을 서술하시오.

윤리학

  1. 덕 윤리가 공리주의와 의무론에 비해 지닌 강점을 서술하시오.
  2. 윤리적 상대주의를 옹호할 수 있는지 논하시오.
  3. ‘운’과 도덕의 관계에 대한 입장들을 비교하고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시오.
  4. 행위 공리주의와 규칙 공리주의의 장단점을 논의하시오.

각 과목에서 자신 있는 문제 3개를 골라서 쓰는 시험이었습니다. 과목당 시험 시간은 1시간 30분이었어요. 저 다섯 과목의 문제들을 이틀동안 풀었네요. 지도교수님이 일단 어떤 문제를 받든지 내용을 길게 써야 한다고 매우 강조하셔서, 주어진 시험지를 빼곡하게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매 과목이 끝나면 펜을 쥔 오른 팔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어요. 시험 시간 내내 쉬지 않고 글을 써야 각 문제당 시험지 한 쪽을 빼곡히 채울 수 있었으니까요.

여하튼, 이 시험을 보느라 정말 9월 한 달 내내 엄청 공부했습니다. 추석연휴 때에도 올렸지만, 노트에 철학사를 요약정리한 다음 달달 외우는 식으로 공부했거든요. 눈을 감고 노트에 있는 모든 내용을 백지 위에 그대로 쓸 수 있을 만큼요. 그래서 종합시험 일주일 전에는 이 내용들을 완벽히 숙달하느라 매일 4시간을 암기에만 쏟았네요. 가령, 연세대 기숙사에서 출발해서, 신촌역을 지나, 서강대교를 건너, 여의도에서 마포대교로 간 다음, 마포대교에서 서강대로, 서강대에서 다시 연세대 기숙사로 걸어가면 대략 4시간정도 걸립니다. 그렇게 계속 걸으면서 머리로는 노트의 내용들을 외웠네요.

무슨 종합시험 하나에 이렇게까지 오두방정을 떨면서 글을 쓰냐고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 시험은 저에게 엄청난 부담이었습니다ㅠㅠ 심지어 어젯밤에는 종합시험에서 떨어지는 악몽까지 꿨을 정도였어요. 꿈 속의 저는 종합시험 형이상학 과목에서 낙제해서 "아니, 내가 이렇게까지 공부했는데 떨어질 정도면, 도대체 누가 이 시험에 붙을 수 있는 거냐?!"라면서 거의 울분을 토했는데, 일어나 보니 꿈이어서 정말 안도했거든요.

여하튼, 종합시험이라는 큰 산을 넘으니 속이 후련합니다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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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험난한 재시험의 위험을 피해 초시합격으로… 호다닥 졸업까지 탈없이 지나가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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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박사과정이 힘든 것이 종합시험이겠죠. 이제 논문만 남으셨네요. 대단하시네요, 단번에 종합시험을 통과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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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당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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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고생하셨네요. 대단하십니다!! 축하드려요. 그러나 시험 문제들을 보니 이러한 시험들에 대한 의문과 불가피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박사 학위를 위해서 필요한 요건들이 또 더 있나요? 박사 학위 논문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또 이런 시험이나 코스웤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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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문제의 스펙트럼이 지나치게 크고, 문제가 요구하는 내용들이 '종합시험'이라고 하기에는 좀 세부적이죠? 종합시험 이외에도 영어 성적과 전공 외국어 시험도 봐야 해요. 다만, 전공 외국어 시험은 전공에 따라 그냥 학내 영어 시험으로 대체할 수도 있어요. 저는 독일어에 그다지 능숙하지 못한 데다, 전공이 해석학과 분석철학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 있어서, 영어 시험으로 대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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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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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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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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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문제들이 어마무시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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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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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수준이 정말 대단하네요..이걸 한 번에 통과하셨다니 YOUN님도 정말 대단하시고요! 고생많으셨습니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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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시험 난이도가 엄청나네요.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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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어느 학문이든 정통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인 것은 또 해본 사람들이라면 잘 알지요. 주위에서 사회적 명망을 받는 앞길이 되시길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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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올려주신 시험 문제보고 ㅎㄷㄷ 했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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