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시험장에 나오는 문제에서 무엇을 요구하느냐에 전적으로 의존할 것 같네요. 문제가 추가적으로 공부한 지식을 요구한다면 그렇게 답을 써야겠고, 그렇지 않으면 배운 내용에 기초해서 쓰면 되겠지요. 조교나 교수자들이 어떤 식의 서술을 선호하느냐에 대해서 역시 명료하게 논증적으로 쓰라는 추상적인 답밖에는 드릴 수 없습니다. 개념을 서술하라는 문제가 나오면 개념의 의미 등을 충분하게 풀어쓰고, 이론을 서술하라는 문제가 나오면 해당 이론의 핵심 주장과 그 근거들을 논증적으로 서술하고, 자기 입장을 서술하라는 문제가 나오면 주장과 근거가 잘 드러나도록 자기의 주장을 쓰면 되겠지요.
철학은 사람을 많이 타는 분야입니다. 똑같은 글에 대해서도 누가 평가하는지에 따라 입장이 크게 갈리죠. 물론, 철학에서도 어느 정도의 합의된 입장들은 존재하고, 또 서로 입장이 다르더라도 논쟁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일이 자주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적어도 '시험'이라는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는 굳이 모험(?)을 감행하시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철저하게 해당 과목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가르쳐주신 내용에 기반하여, 그 교수님의 설명 방식을 따라, 그 교수님의 입장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답안을 쓰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가령, 저의 경우에는 학부 시절에 다른 참고자료를 보기보다는 교수님이 수업에서 설명하신 내용에 집중하였습니다. 매 수업 시간마다 강의 내용을 타이핑하고, 시험 기간에는 그 내용을 A4 용지로 4-5장 분량으로 도식화하여, 그렇게 도식화한 내용을 머릿속에 완전히 외웠습니다. 눈을 감고도 제가 도식화한 내용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백지에 써내려갈 수 있을 정도로요. (예시: 철학자들과 함께 추석연휴를?!) 이렇게 하고 나면, 시험장에 들어가서 어떤 문제가 나오든지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만으로 충분히 답안을 쓸 수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쓸 것이 많아 고민일 정도로요.)
이런 수동적인 암기 위주의 공부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저는 학부 시절에만큼은 수동적인 자세에서 철학의 기본 지식들을 습득하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조차 미리 쌓여 있는 기초 지식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철학은 처음 방향을 잘못 잡게 되면 완전히 엉뚱한 논의로 빠지기 쉬운 분야입니다. 잘 훈련된 교수자에게 직접 지도받지 않은 채 혼자 글을 읽거나 생각에 잠긴다면, 정말 엉터리 주장과 해석이 난무하게 되죠.
그래서 학부 시절에는, 다른 고전이나 연구서나 해설서를 읽기에 앞서, 강단에서 한 학기동안 수업을 진행하시는 교수님과 직접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의 이해를 점검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적어도 대학 강단에 서신 분들은 학계에서 자격이 충분히 검증된 인물들이니까요. 시험 공부 역시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내가 이 교수님의 설명을 완벽하게 이해하였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서, 백지 위에 그 교수님의 설명을 눈 감고도 빠짐없이 쓸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하시면 됩니다. 그만큼 준비가 되었다면, 철학과 수업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좋은 성적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