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결정론을 옹호한다면, 그 철학적 동기는 주로 어떠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결정론을 반박할 수 있는 철학적 논증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위와 같은 질문을 드리는 것은 저는 결정론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결정론과 관계되어 있는 여러 문제들과 동시에 어떤 오해들이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어떤 사람이 결정론을 옹호한다면, 그 철학적 동기는 주로 어떠한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결정론을 반박할 수 있는 철학적 논증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위와 같은 질문을 드리는 것은 저는 결정론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결정론과 관계되어 있는 여러 문제들과 동시에 어떤 오해들이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음, @guri 님이 결정론을 지지하는 철학적 동기를 알려 주시면 다른 분들이 답하기 더 좋을 듯해요.
단순합니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좀 의아한 것이 보통 많은 사람들은 모든 발생하는 것에는 원인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결정론을 거부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상적 믿음이 왜 결정론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지지 않는지에 대해서 저로서는 이해가 잘 되질 않습니다.
다소 폭이 넓은 질문이라 다루기가 조금 어렵네요. 결정론을 옹호하시는 이유를 몇 가지 제시해 주실 경우 좀 더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결정론과 관련된 오늘날 철학의 논의 전반을 이해하고 있는 분만 답변이 가능한데, 전공자들 중에서도 이렇게 넓은 스케일의 논의를 그려낼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아서요. (오히려 '전공자'들이라서 지나치게 넓은 논의가 얼마나 구멍이 많은지를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기 껄끄러워하죠.)
다만, 아주 거칠게 대답을 드리자면 결정론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들은 대개 '인과적 폐쇄성(causal closure of physics)'이라는 원리에 근거를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리적 현상들은 물리적 현상들로만 설명되어야 하고, 그 현상들 사이의 인과 관계에는 어떠한 초자연적 요소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리이죠. 그래서 우리가 가장 기초적인 물리 현상들 및 그 물리 현상들을 설명하는 자연법칙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으면, 전체 물리계에서 벌어질 사건들을 모두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많은 결정론자들이 내세우는 주요한 논증이죠. 가령, 인지과학자인 스키너(B. F. Skinner)나 해리스(S. Harris)가 이러한 종류의 결정론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철학자들 중 대부분은 이런 식의 결정론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주류 의견은 물리학적 법칙과 자유의지가 모두 옹호될 수 있다는 양립가능론이죠. 실제로, 이 점은 Philpapers라는 사이트에서 전세계 철학자들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왜 대다수의 철학자들은 양립가능론을 옹호하는지(혹은 자유의지의 가능성을 옹호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생기겠죠. 여기에 대해서는 정말 다양한 방식의 대답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다음 몇 가지 정도로 갈래가 요약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1) 자연법칙이나 자연과학에 대한 반성적 고찰 때문에: 자연법칙이 존재한다는 생각, 그리고 자연과학으로 자연법칙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견해를 지닌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자연법칙과 자연과학에 대한 논의들은 유한한 개별 사례들을 일반화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귀납적 방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a) 흄(D. Hume)이나 굿맨(N. Goodman) 등이 지적하듯이 귀납적 방법 자체가 소위 '귀납의 문제'라고 하는 고전적인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b) 포퍼(K. Popper)가 지적하듯이 아무리 기존에 검증이 된 자연과학의 이론이라고 하여도 반례에 직면할 경우 반증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결코 절대적일 수도 없고, (c) 카트라이트(N. Cartwright)가 지적하듯이 애초에 '인과적 폐쇄성'이나 '법칙'이라는 개념들 자체가 아주 특수한 제한 조건에서만 성립할 뿐 그 조건을 벗어나서는 일반화될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고, (d) 반 프라센(B. van Frassen)이 지적하듯 특정한 과학적 이론이 유용하다는 사실로부터 그 과학적 이론에 대응하는 고정된 실재가 존재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가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런 입장을 가진 철학자들은 자연과학을 통해 세계 전체를 결정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을 거부합니다.
(2) 의식이 지닌 독특한 성질 때문에: 소위 '감각질(qualia)'이라고 불리는 1인칭의 주관적 경험이 물리계에 대한 3인칭의 객관적 지식으로 손쉽게 환원되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철학자들도 많습니다. 가령, 네이글(T. Nagel)은 박쥐가 초음파를 통해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아무리 지식적으로 알고 있더라도, '박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 인간이 결코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초음파를 쏘는 경험 자체를 주관적 시점에서 느껴볼 수 없으니까요. 유사하게, 잭슨(F. Jackson)은 색을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과학자가 색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과학자는 색깔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코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고 지적합니다. 색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가지는 것과 색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주관적 경험인 '감각질'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는 철학자들은 인간의 의식이 결코 물리계에 대한 지식으로 완벽하게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의식이 물리계에서 자연적 과정으로 (가령, 오랜 진화의 과정으로) 발생한 것은 맞겠지만, 의식에 대한 논의가 물리계에 대한 논의만으로 완벽하게 해명될 수는 없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의식이 물리계와는 독립적인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3) '자유의지'와 '결정론'이라는 개념들이 지닌 애매성 때문에: 애초에 '자유의지/결정론'이라는 양자택일 자체가 일종의 개념적 오류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철학자들도 있습니다. 가령, '자유의지'가 단순히 아무런 조건이나 원인도 없이 자의적이고 우발적으로 솟아오르는 의지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과연 그런 것을 '자유의지'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불분명합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음식을 보고서 '먹고 싶다'라는 욕망을 자기도 모르게 갑작스럽게 느껴서 그 음식을 집어 먹었다면, 과연 그런 욕망을 '자유의지'라고 부를 수 있는지가 의문스럽겠죠. 그건 욕망에 굴복한 것이지 의지에 따라 주체적으로 선택을 내린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애초에 무엇을 '자유의지'라고 불러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경우를 '결정'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는지조차 논의의 대상입니다. 철학자들 중에서는 이 논의가 제대로 전제되지 않은 이상 '자유의지/결정론'이라는 문제 구도 자체가 잘못된 사이비 문제라고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데이비슨(D. Davidson)의 무법칙적 일원론에 근거한 양립가능주의가 이 입장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동일한 사건을 '자유의지'로 설명할 것인지 '물리학적 법칙'으로 설명할 것인지는 일종의 언어적 선택의 문제이지, 세계 자체에 자유의지나 법칙이 본래부터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니까요.
감사드립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결정론을 옹호하는 이유는 이런 일상적 믿음 때문입니다.
2에 대해서 말하자면, 동일한 원인은 항상 동일한 결과를 발생시킨다는 것인데, 이것을 반박할 수 있는 결정적 논증이 있습니까?
말씀하신, (3)에 관해서는 어떤 의미에서, 결정론은 신념 혹은 믿음의 문제이고 자유의지는 언어적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서로 떼어놓고 논할 수도 있나요? 결정론이 참이든 아니든 상관 없이 자유의지 그 자체의 실재성을 부정할 수도 있을지 않을까 싶어서요.
분석형이상학이 제 전공은 아니지만, 1과 2에 대해 모두 반박들이 있어요.
(1) 모든 것은 원인이 있다(혹은 인과관계가 존재한다)?: '원인' 혹은 '인과 관계'라는 것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철학자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흄이죠. 애초에 원인이라는 것은 세계에서 감각적으로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흄의 지적입니다. 가령, "당구공 A 때문에 당구공 B가 움직였다."라는 문장에서, 우리는 '당구공 A'가 무엇인지를 손으로 가리켜 보일 수 있고, '당구공 B'가 무엇인지도 손으로 가리켜 보일 수 있지만, '때문에'가 무엇인지는 손으로 가리켜 보일 수가 없죠. 그래서 흄과 같은 인물들은 '때문에' 같은 인과관계가 실제로는 허구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런 흄의 입장들을 이어받아서 현대에는 소위 '규칙성 이론가'들이라는 철학자들이 인과를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이라는 개념으로 환원해서 분석하려 하기도 합니다. 매키(J. L. Mackie)가 소위 'INUS 조건(즉, 필요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다발 내의 한 요소로서 충분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요소)'을 통해 인과를 규칙성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죠.
(2) 특정한 원인은 동일한 결과를 산출한다(혹은 '원인 없는 결과'나 '결과 없는 원인'은 없다)?: '인과'라는 것이 결코 그 자체로 자명한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인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철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립니다. 크게 '규칙성 분석'이라는 (존 매키로 대표되는) 입장과 '반사실적 조건문 분석'이라는 (데이비드 루이스로 대표되는 )입장이 현대철학에서 인과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두 가지 대표적인 입장이죠. 그런데 각각이 모두 인과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강점과 약점을 지닙니다. 가령, (a) 규칙성 분석의 경우 부수 결과(epiphenomenal effect)의 문제와 인과적 선점(causal pre-emption)이라는 문제에 빠지고, (b) 반사실적 조건문 분석의 경우 인과적 과잉 결정(causal overdetermination)이라는 문제에 빠집니다. 복잡한 논의이다 보니 여기서 세세하게 다룰 수는 없지만, 요지만 말하자면, (a)의 문제들은 어떤 것이 '원인'으로 여겨져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원인이 결과의 산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결론이 도출되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하고, (b)의 문제는 어떤 '결과'가 발생하기는 하였지만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도출되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말하자면, 둘 중 어느 쪽 분석을 택하든지 "특정한 원인은 동일한 결과를 산출한다"라는 우리의 직관과 맞지 않는 사례들이 등장하게 되는 거죠.
아래 책의 제6장 '인과성'의 내용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더군다나, 인과관계 자체가 자유의지에 대한 비판을 함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적 사태가 물리적 사태에 인과적 효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인과관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유의지를 물리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원인으로 인정할 수도 있습니다. 물리적 현상의 원인을 물리적 현상에서 찾으려는 형이상학적 입장만 (다시 말해, '인과관계'가 아니라 물리계의 '인과적 폐쇄성'을 받아들이는 입장만) 자유의지를 부정할 뿐입니다.
아, 자세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추천해주신 책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모든 것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 형이상학자들은 별로 없습니다. 반 인와겐이 충분이유율에 반대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되겠네요. van Inwagen - Metaphysics에 Cosmological Argument 챕터에 충분이유율 반박이 있습니다. 예전에 자유의지 책에서 썼던 논증을 다시 쓴 건데, 이 책에 있는 버전이 더 읽기 쉽네요. 반 인와겐의 반박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설득됐었고, 그 영향 때문인지 충분이유율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예일 대학교의 델라로카, 프린스턴의 부일러스 정도가 충분이유율을 믿네요 (다스굽타가 다른 의미의 충분이유율을 믿긴 합니다). 더 아시는 분 있으면 답해주셔도 되겠네요.
또, 결정론이 완전한 예측을 가능하게 해주는지에서도 여러 의문들이 남는다고 합니다. 전 읽어보진 않았지만, Builes & Teitel - Lawful Persistence, Nahmias - Why the Manipulation Argument Fails: Determinism Does Not Entail Perfect Prediction 정도가 있습니다.
반 인와겐은 유명해서 알지만, 그 분이 그런 주장을 하였군요. 한 번 자세하게 접해봐야 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예측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아무튼 감사드립니다.
보통 결정론이 자유의지를 막는다는 논리로 예측 가능성을 많이들 논합니다. Nahmais - Why the Manipulation Argument Fails의 초록을 첨부하겠습니다.
Determinism is frequently understood as implying the possibility of perfect prediction. This possibility then functions as an assumption in the Manipulation Argument for the incompatibility of free will and determinism. Yet this assumption is mistaken. As a result, arguments that rely on it fail to show that determinism would rule out human free will. We explain why determinism does not imply the possibility of perfect prediction in any world with laws of nature like ours, since it would be impossible for an agent to predict with certainty any future event that is causally influenced by events outside her own backward light cone yet inside the backward light cone of the future event. This is the light-cone limit and it undermines the Manipulation Argument or limits what this argument can tell us about the relevance of determinism to free will. We also respond to objections that the light-cone limit is irrelevant to the Manipulation Argument.
그렇긴 한데, 하지만 저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저는 그냥 단순하게 어떤 현상이 발생한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결정론과 예측 가능성 여부는 서로 떼어놓고 논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영어를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글쎄요.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항상 같이 논의돼야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 중 하나가: 결정론이면 예측이 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유의지는 없다입니다. 그리고 제가 첨부한 초록은 이 답에 대한 반박입니다. guri님이 이해하고 계신 결정론에 기반해서 자유의지와의 연관성을 논했는데,
라고 하시면 크게 할 말은 없습니다.
영어를 못 읽으신다니 아쉽네요.
물론 결정론이 참이라면 미래는 원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것이겠죠.(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원리적으로 예측 가능하다는 뜻이지, 실제적으로 예측이 가능하다는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냥 "원인이 있다"는 점만을 생각하지, 어떠한 현상에 대해 논할 때, 그 원인이란 것이 무엇이며, 결과와 어떤 관계인지와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결정론과 관련된 예측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공허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1)
위에서 제가 말한 예측들은 전부 원리적 예측입니다.
(2)
전 원리적 예측에 대해서 논한 것이고, 인지에 대해서 논한 적이 없습니다.
(3)
이 부분에 대해서 논쟁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전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연결고리에 대해서 현대 철학에서는 (원리적) 예측 가능성을 논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드린 것 뿐입니다. 만일 결정론과 (원리적) 예측 가능성이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신다면,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할 이유가 하나 있으신 겁니다. 반대로 결정론이 (원리적) 예측 가능성을 야기한다고 보시면, 결정론이 자유의지를 막는다고 생각하실 이유가 있으신 겁니다.
제가 조금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결정론이 참인 조건에서는 자유의지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주장인데, 그 이유는 예측 가능성 여부와는 별도로 "필연성"이란 것 때문입니다.
원리적 예측 가능성도 역시 저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무엇이 발생한다면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즉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필연성과 자유의지를 엮으려면 완전한 예측 (perfect prediction) 이 필요하실 것 같습니다.
그와 별개로, 철학자들이 어떤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면, 그 논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TheNewHegel 님이 다신 댓글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INUS 조건의 뜻을 영어로는 "insufficient, but necessary part of an unnecessary but sufficient condition"이라고 서술하는군요. '불필요하지만 충분한 조건의 불충분하지만 필요한 부분'으로 이해해도 되려나요?
처음 보는 말인데 호기심이 생기네요.
양립 가능론자라고 불리는, 위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가장 많은 철학자들이 속한 입장은 결정론에 딱히 반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은 결정론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도덕적 책임을 진다는 입장을 다양한 근거를 가지고 받아들입니다.
사실 물리적 영역에서의 결정론의 참/거짓 자체는 철학적 탐구의 대상은 아닐 것 같습니다. 결정론이 자유/책임으로 인해서 현실에서 깨지게 된다는 자유의지론자들도 행위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의 결정론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결정론을 옹호하는 이유는 이런 일상적 믿음 때문입니다.
- 모든 것은 원인이 있다.
- 어떠한 특정한 원인은 항상 동일한 결과를 산출한다.
확률론적 세계 때문에 이러한 순수성을 지키기 어려운 점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