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인 고민들

제가 최근에 고민하던 주제에 대하여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여쭈어보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첫번째는, 페르소나에 대한 질문입니다. 사람의 페르소나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궁금합니다. 페르소나를 쓰고 있는 사람은 정확히 어떤 상태에 있는걸까 ? 하는 궁금증이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페르소나는 정확히 어떻게 정의되는 개념인지 혹시 이에 관한 명확한 정의가 있나요 ?

두번째는, 명백한 진실이 존재하는가 ? 에 대해서 입니다.
모두가 동의하는 명백한 진실이 있는지에 대해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진실은 없고 해석만 있는 느낌이랄까요 ?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어떤 살인사건에 대해 명확히 분석하려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또 그 모든 요소들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어떠한 형식을 통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됩니다. 그 분석은 나의 해석인지 아니면 진실인지에 대해서도 의심이 듭니다.

제 나름대로, 단정하지 않고 어떤 것을 바라보는 것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철학적 개념이 있나요 ?

세번째는, 어떻게 해야 나를 더 잘 알 수 있는가 ? 에 대해서 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제 마음상태를 관찰하고 그것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내가 이런 상태에 있다’ 라는 것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는데요, ‘어떤 틀이나 형식을 거치면 나를 점점 더 잘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나를 더 잘 알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게 무의식의 의식화를 더 잘 하고 싶다는 말과 같은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철학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자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제 느낌 그대로의 언어입니다.) 그래서 칼 융의 철학도 찾아보고 여러가지를 찾아보기는 했는데 뭔가 명확한 개념이나 형식이나 해답을 찾지는 못해서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철학공부를 할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시는지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궁금하구요. 이러한 가치관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바라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요.)

제가 필력이 좋지 못하고 명확한 철학적 개념이 잡혀있지도 않지만, 그래도 제 나름대로의 고민들을 최대한 풀어내보았는데,아무거나 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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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1과 3은 (분과학문으로서의) 철학보다는 각각 심리학, 자기수양의 문제로 보입니다. 철학 커뮤니티가 아닌 해당 전문서적 또는 전문가를 참조하는 것이 좋습니다.

2에 관하여:

아주 단순한 사실들, 가령 ‘어디엔가 무언가가 있다’라거나 ‘내 앞에 무언가가 있다’ 따위는 명백한 참이겠죠. 또, ‘2+2=4’, ‘H2O 분자는 수소 원자 둘, 산소 원자로 이루어진다’ 따위도 명백한 참입니다.

물론, 드신 예시들처럼 맥락이나 사회적 관습이 배경이 되어야만 진위를 판단할 수 있는 문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참이란 없다’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흰 까마귀의 존재가 검은 까마귀의 존재의 반례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요.

(사실, 우리는 맥락 의존적 참들을 모두 절대적 참 문장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절대적 진술’이라 부를 만한 형태로 바꾸면 됩니다. 가령, 맥락 c에서, 그리고 그 맥락에서만 참인 문장 p가 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c일 때, p이다’는 절대적 참이 되죠.)

다만 우리는 ‘보다 심오한’ 진리가 있어서, 그것의 절대적 참이랄 게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심오한 진리, 라는 것이 있는지는 일단 문제되는 ‘심오한’ 문장(들)이 무엇인지 발견되어야 답해질 수 있는 질문입니다. 따라서, 본인이 어떤 것의 단순하고 절대적인 진리를 찾고자 하는지를 명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그런 ‘심오한’ 진술들은 무의미한 것으로 판정되기도 합니다. 또는, 너무나 사소한 사실을 표현하는 것임이 개념적 분석을 통해 밝혀지기도 합니다. 논리적으로 모순됨이 밝혀지기도 하고요. 어찌되었건, 그것이 어떤 식으로 어떤 진리값을 갖는지는, 그 진술을 특정하고 그에 대한 탐구를 일일이 진행해야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4에 관해서도 답할 수 있겠습니다:

철학은 적어도, 우리가 문제에 대해 갖는 오해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확실히 ‘세상을 보는 관점’의 변화를 도울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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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에 대해서, 적어도 오늘날의 (학문으로서의) 철학과 이러한 전통의 시발점이 되는 서양 근대 철학에 있어서는,

이라는 @car_nap 님의 지적이 옳습니다.

다만 고대와 중세 그리고 비-서양에서는 '철학'이라 하면 자기수양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따라서 예전 철학 책을 읽을 때, 혹은 예전 철학책에서 여전히 자기 수양이라는 관점의 해석을 하는 학자의 책을 읽을 때는, 이러한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어 읽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이와 관련된 예전의 글들을 몇 가지 첨부합니다.)

다만 @car_nap 님이 말했듯, 이것이 오늘날 왜 '철학'이 아닌지 역시 유념할 부분이긴 합니다. 오늘날 철학이란 (i) 검증이 가능하든 아니면 설명력이 있든, 어쨌든 다수의 사람들이 '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어떠한 합리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에 비해, 이러한 '자기 자신을 앎' 혹은 '자기 수양'이라는 테마는 아무래도, 이러한 '소통 가능한 합리성'의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여러 저작들을 '나룻배'처럼 저 너머로 가는 도구로 여길 뿐, 어떠한 진리로 여기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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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이 님께서 아마도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car_nap 님이 적으신 것처럼,아카데믹한 '철학' 담론에서 다루어지기에는 약간 범위가 넓은 질문들이 있긴 하지만, 간략히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페르소나란?: '페르소나'라는 말은 오늘날 용어로 직역하면 '인격(person)'입니다. 이 말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 πρόσωπον이나 라틴어 persōna는 단순히 '가면(mask)'이라는 의미였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교가 1세기부터 로마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이 용어들이 삼위일체(trinity; three persons, one substance)' 교리를 설명하는데 사용됨에 따라, 이 용어들에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철학, 종교, 법 등에서 사용하는 '인격'이라는 개념은 보에티우스나 아퀴나스 등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이 정립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가령, "인격/비인격을 구분하는 근거는 무엇인가?"라든가 "인격에는 어떠한 책임과 의무가 부과되는가?"와 같은 물음에서의 '인격' 말입니다.) 가톨릭대학교 박승찬 교수님이 "인격 개념의 근원에 대한 탐구"라는 일련의 연구에서 '인격' 개념의 철학사적 변천에 대해 잘 설명하고 계십니다.

인격 개념의 근원에 대한 탐구 = 그리스도교 신학과 보에티우스의 정의를 중심으로
https://www.riss.kr/link?id=A101885735

글쓴이 님이 관심을 가지고 계신 칼 융의 맥락에서 '페르소나' 역시 기본적으로는 '인격'이라는 의미입니다.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주 일상적인 의미로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융은 의식적인 '페르소나'와 무의식적인 '아니마/아니무스'라는 개념을 대비시키죠. 쉽게 말해, 의식적인 '나' 이외에도 무의식적인 '나' 역시 존재하고 있고, 이 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우리 자신의 삶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융의 주장입니다. (종종 서브컬처계에서는 '페르소나'가 마치 '거짓된 나'인 것처럼 오해되기도 하는데, 융은 결코 페르소나에 부정적인 함의를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식적인 '나'와 무의식적인 '나' 모두가 '나'의 참된 모습이고, 둘 중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융의 강조점입니다.)

(2) 명백한 진실?: 철학적 해석학을 전공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은 해석이다."라는 주장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모든 것은 해석이다."라는 주장과 "진리(혹은 진실)은 존재한다."라는 주장이 서로 상충되는 관계에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모든 것은 해석이다."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것은 자의적이다."거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는 주장이 도출되지도 않는다는 것 역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댓글만으로 이 모든 논의들을 충분히 설명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상대주의나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서도 "모든 것은 해석이다."라고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는 논의가 오늘날 해석학의 주류 입장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맥락 의존적으로 참인 문장을 절대적으로 참인 문장으로 모두 번역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car_nap 님과 생각이 약간 다릅니다. 소위 '규칙주의regulism'와 '규칙성주의regularism'라는 입장들이 지닌 문제 때문인데, 특정한 문장이 참이 되기 위한 조건을 세세하게 기술하려는 시도가 결국 무한퇴행에 빠지거나 조건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 빠지게 된다고 봐서요.)

(3) 어떻게 해야 나를 더 잘 알 수 있는가?: 아카데믹한 철학의 범위를 벗어난 문제이지만, 저는 작성자 님이 관심을 가지신 융의 분석심리학이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석심리학이 과연 실증적인지의 문제를 떠나서, 분석심리학을 일종의 '자기수양'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꽤 유익하고 권장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저는 융의 꿈 분석 방법이 전제하고 있는 해석학적 태도를 굉장히 좋아하긴 하지만, 융이 도출해내는 결론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융은 20세기 초중반의 종교학적 성과들을 바탕으로 상징과 꿈을 연구하다 보니,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틀린 것으로 밝혀진 사실들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어서요.)

(4) 철학은 세상을 다르게 보도록 하는가?: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철학을 통해 여러 가지 문제들을 더욱 명료하게 성찰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고, 사이비 문제들을 해소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철학이 분명히 세상을 다르게 보도록 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철학 자체가 인생에 새로운 방향이나 의미를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저는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서강올빼미의 여러 회원 분들이 글을 써주셨는데, 당장 생각나는 몇 가지 링크를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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