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인 고민들

글쓰이 님께서 아마도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car_nap 님이 적으신 것처럼,아카데믹한 '철학' 담론에서 다루어지기에는 약간 범위가 넓은 질문들이 있긴 하지만, 간략히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페르소나란?: '페르소나'라는 말은 오늘날 용어로 직역하면 '인격(person)'입니다. 이 말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 πρόσωπον이나 라틴어 persōna는 단순히 '가면(mask)'이라는 의미였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그리스도교가 1세기부터 로마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이 용어들이 삼위일체(trinity; three persons, one substance)' 교리를 설명하는데 사용됨에 따라, 이 용어들에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철학, 종교, 법 등에서 사용하는 '인격'이라는 개념은 보에티우스나 아퀴나스 등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이 정립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가령, "인격/비인격을 구분하는 근거는 무엇인가?"라든가 "인격에는 어떠한 책임과 의무가 부과되는가?"와 같은 물음에서의 '인격' 말입니다.) 가톨릭대학교 박승찬 교수님이 "인격 개념의 근원에 대한 탐구"라는 일련의 연구에서 '인격' 개념의 철학사적 변천에 대해 잘 설명하고 계십니다.

인격 개념의 근원에 대한 탐구 = 그리스도교 신학과 보에티우스의 정의를 중심으로
https://www.riss.kr/link?id=A101885735

글쓴이 님이 관심을 가지고 계신 칼 융의 맥락에서 '페르소나' 역시 기본적으로는 '인격'이라는 의미입니다.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주 일상적인 의미로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융은 의식적인 '페르소나'와 무의식적인 '아니마/아니무스'라는 개념을 대비시키죠. 쉽게 말해, 의식적인 '나' 이외에도 무의식적인 '나' 역시 존재하고 있고, 이 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우리 자신의 삶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융의 주장입니다. (종종 서브컬처계에서는 '페르소나'가 마치 '거짓된 나'인 것처럼 오해되기도 하는데, 융은 결코 페르소나에 부정적인 함의를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식적인 '나'와 무의식적인 '나' 모두가 '나'의 참된 모습이고, 둘 중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지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융의 강조점입니다.)

(2) 명백한 진실?: 철학적 해석학을 전공하는 저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은 해석이다."라는 주장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모든 것은 해석이다."라는 주장과 "진리(혹은 진실)은 존재한다."라는 주장이 서로 상충되는 관계에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모든 것은 해석이다."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것은 자의적이다."거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는 주장이 도출되지도 않는다는 것 역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댓글만으로 이 모든 논의들을 충분히 설명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상대주의나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서도 "모든 것은 해석이다."라고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는 논의가 오늘날 해석학의 주류 입장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맥락 의존적으로 참인 문장을 절대적으로 참인 문장으로 모두 번역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car_nap 님과 생각이 약간 다릅니다. 소위 '규칙주의regulism'와 '규칙성주의regularism'라는 입장들이 지닌 문제 때문인데, 특정한 문장이 참이 되기 위한 조건을 세세하게 기술하려는 시도가 결국 무한퇴행에 빠지거나 조건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 빠지게 된다고 봐서요.)

(3) 어떻게 해야 나를 더 잘 알 수 있는가?: 아카데믹한 철학의 범위를 벗어난 문제이지만, 저는 작성자 님이 관심을 가지신 융의 분석심리학이 이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석심리학이 과연 실증적인지의 문제를 떠나서, 분석심리학을 일종의 '자기수양'의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은 꽤 유익하고 권장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저는 융의 꿈 분석 방법이 전제하고 있는 해석학적 태도를 굉장히 좋아하긴 하지만, 융이 도출해내는 결론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융은 20세기 초중반의 종교학적 성과들을 바탕으로 상징과 꿈을 연구하다 보니,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틀린 것으로 밝혀진 사실들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어서요.)

(4) 철학은 세상을 다르게 보도록 하는가?: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철학을 통해 여러 가지 문제들을 더욱 명료하게 성찰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고, 사이비 문제들을 해소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철학이 분명히 세상을 다르게 보도록 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철학 자체가 인생에 새로운 방향이나 의미를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저는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서강올빼미의 여러 회원 분들이 글을 써주셨는데, 당장 생각나는 몇 가지 링크를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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