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가 올린 글에서 진짜 A가 무엇이냐! 를 둘러싼 얘기가 오고갔습니다.
https://forum.owlofsogang.com/t/mega/3234/2?u=sophisten
@YOUN 님께서는 하이데거의 니체 이해에 관한 얘기를 꺼내셨습니다.
이에 관하여 예전에 썼던 글을 하나 가져옵니다.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Will to Power)'라는 용어에 대한 문헌적 분석을 경유해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의 타당성을 조사하는 글입니다 (williams 1996 참고). 이는 제가 저번에 올린 글과도 관련있습니다.
편의를 위해 약어를 사용했습니다.
(1) 니체는 ‘Wille zur Macht(will to power; 이하 WP)를 그가 비판하는 대상들의 대체물로 제시하는데, 그 범위가 너무 넓어 의미를 확정하기 힘들다. 동시에 그는 WP에 대한 별다른 설명을 제공하지도 않기 때문에 해석상에 큰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WP 이전에도 그는 힘(Macht; power)와 관련된 단어를 줄곧 사용해 왔다. 그것들을 알아보는 것이 WP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2) 니체는 WP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초기 저작에서부터 Macht를 단독으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BT』에서 Macht는 예술, 음악, 신화 등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맥락에서 ‘변화를 꿰차는 능력(ability to change)’의 의미로 사용됐다. Macht에 대한 일반적인 단어 사용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표현은 『HH』에서도 발견된다.
2년 후 그가 저술한 『HH2(WS)』와 『M』에서 니체는 ‘Machtgelust(lust/desire for power; 힘에 대한 욕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때 힘은 항상 정신/심리적 동기부여와 연결되어 사용됐다. 『M』에서는 ‘Gefühl der Macht(feeling of power; 힘에 대한 느낌)’과 ‘Machtgefühl(power-feeling; 힘-느낌)’이라는 단어도 사용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니체의 생각 속 힘의 의미가 외부에서 감행되는 힘/물리력에서 내적 상황으로서의 힘쪽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하여 힘에 대한 니체의 서술이 외적 의미의 힘 또는 물리적 힘의 의미를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M 356』에서 니체는 힘에 대한 심리적 감정으로부터 힘에 대한 육체적 표현이 나온다며 외적 의미의 힘을 배제하지도 않고 있으며 외적/내적 힘을 연결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또한 이 시기 니체의 유고 노트에서 WP가 처음 등장했다. 해당 구절에서도 WP는 내재적, 심리적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Machtgelust와 Machtgefühl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선 1882년(Z 출간 이전 해) 이후 전자는 출간 저작과 유고 모두에서 더 이상 등장하지 않으며, 후자는 그 후에도 유고에서 종종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니체가 해당 용어를 고집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게, WP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Z(1883년 출간) 이후 『AC』의 딱 한 구절을 제외하고서는 출간 저작에서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니체는 왜 이런저런 용어들을 폐기하고 WP라는 용어를 선택하고 사용했던 것인가?
(3) 윌리엄스(williams 1996)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니체가 Macht를 통해 표현하는 의미의 변화와 관련 있다. 상술한 대로 Macht는 그 외연이 확장됨에 따라 그는 일반적 의미의 Macht보다 한층 더 큰 용어를 필요로 하게 됐다. Macht 단독으로는 자신의 의도를 잘 담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도입된 Machtgelust는 심리적/내적 동기부여(motivation)의 측면을 잘 담아내고 있었다. 반면 Machtgefühl은 단순한 느낌과 감정을 나타내는 것인바, Machtgelust가 담지하는 심리적/내적 동기부여와 목표-지향적 측면을 잘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니체는 우리가 ‘차’와 같은 어떤 고정된 유형의 것(tangible)이 아니라 더 포괄적인 것(general)을 추구한다고 생각했기에 Lust의 대상에 Macht를 위치시켰다.
Macht 용어의 외연의 확장 및 포괄화가 더욱 전면적으로 이루어지고, 그에 대해 욕망(lust, desire)하는 의지가 결합됨에 따라 다른 용어들은 사상되고 WP가 니체 철학에서 줄곧 사용되는 용어로 자리잡는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WP 이전 단계의 용어들은 WP가 처음으로 소개된 출간 저작 『Z』 이후 거의 나타나지 않는데, 『Z』에서 WP는 심리적/내적 영역과 관계되는 용어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훨씬 더 넓은 범위에서 사용된다.
『Z』에서 WP가 등장하는 구절은 셋이다. 첫 번째 구절에서는 WP는 극복해야 하는 도덕성과 관련되어 사용된다. 두 번째 구절에서는 WP가 총 8번 언급되는데, 그중 첫 셋은 마찬가지로 도덕성과 관련되어 사용되고, 이어지는 다섯은 삶과 생명과 관련되어 사용된다. 세 번째 구절에서는 영원회귀와 연결되어 사용된다. 정확히 어떤 의미에서 연결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구절이지만 내적 영역과 관련된 구절로 추정된다. 어쨌든 니체가 너무나 드물게 용어를 사용하다 보니 정확히 WP를 통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알기 힘들지만, 물리적 힘과 내적 힘을 넘어선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Z』가 발간된 다음해인 1884년 말부터 1885년 초까지 니체는 WP의 의미의 폭을 더 넓혀 사용한다. 해당 시기에 모든 유기체의 욕망과 세계 자체가 WP로 환원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나아가 그는 WP를 ‘Kräften(forces)’와 연결시켜 사용하며 무기체조차 WP로 환원 가능한 것으로 그린다. 즉, 한층 더 그 범위를 확장한다. 이는 흔히 실증주의 시기라고 불리우는 중기시기(HH, M, FW; 1878-1882)에 그가 읽은 Lange의 저작에 영향 탓으로 보인다.
이렇게 의미가 대단히 확장된 WP의 면모는 WP 관련 구절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세계는 힘에의 의지이다. 그리고 그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너희 자신 또한 이 힘에의 의지이다. 그리고 그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 구절 또한 1885년의 6-7월에 작성된 것이며, 동생에 의해 부당하게 편집된 『WP 1067』에 수록됐다. 핵심은 이 세계의 모든 것이 WP로 환원 가능한 것으로, WP가 모든 것의 근본 여겨지므로 니체가 WP라는 용어를 통해 하나의 형이상학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의 형이상학의 지위까지 갖추게 된 WP라는 용어가 출간 저작에서는 형이상학적 면모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1885년 이후 1888년 중반까지 많은 유고에서 WP는 형이상학으로 제시되나, 출간 저작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띠고 있지 않기에, 내용상 엄청난 불일치가 있다. 기본적으로 니체가 쇼펜하우어에 영향을 받았으나 그의 형이상학적 개념인 Wille(의지) 개념을 비판한다는 점과 줄곧 형이상학을 비판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그가 또 다른 형이상학을 제공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오히려 단지 세계 전반을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WP를 제시했다고 여기는 것이 더 합리적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출간 저작과 출간되지는 못했지만 수정까지 니체가 완료한 권위를 인정받은 작품(이하 권위를 부여받은 작품) 일부에서 WP는 심리적 힘보다는 더 넓은 범위에서 말해지곤 한다. 예를 들어, 『JGB』, 『FW 5권』, 『GM』에서 WP는 인간의 도덕성이나 심리, 생명을 논하는 구절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세계’라던가 ‘사건’과 같이 애매모호하고 훨씬 범위가 넓은 것과 연결되는 구절은 정말 몇 없다. 그나마 꼽을 수 있는 구절이 『JGB 36』이다. 해당 구절에서 니체는 모든 것을 WP로 환원하는 형이상학적 사유를 시도하나, 계속해서 자신의 사유가 그러한 환원이 가능하다는 ‘가정’하에 이루어지는 것이라 분명히 말한다. 따라서 출간 저작과 권위를 부여받은 작품에서 드러나는 WP의 용례를 통해 그가 형이상학을 전개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한편, 유고에서 WP가 Kraft와 연결되어 사용된다는 점을 들어 WP가 형이상학적 개념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 연결지점에서 Kraft는 다소간 물리적 힘 개념으로 사용되기에 WP는 형이상학적 개념(meta-physics)라기보다 물리학적(physics) 개념에 가깝다고 반박 가능하다. 카우프만은 WP를 Kraft와 연결시키며 현상 세계를 설명하는 새로운 일원론적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그가 형이상학을 전개한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니체가 형이상학적이든 물리학적 개념이든 뭐든 간에 WP를 통해 세계를 설명하는 일원론적 방법을 제시했다는 주장에 대해 클락은 한층 더 강하게 반박한다. 니체가 만약 모든 것이 환원되는 WP 개념을 만들어봤다고 한들, 그것은 오히려 니체 자신의 발목을 잡기 때문에 그가 출간 저작에서 WP를 하나의 강한 개념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WP 설명에 따르면 WP 자신과 경쟁하는 다르 이론이 있어야 하는데, 또 형이상학적 WP 개념에 따르면 모든 것은 WP에 환원되기 때문에 WP 개념 자체가 모순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WP가 물리학적이든 형이상학적이든 상관없이 니체는 WP에 관련된 이런저런 이론들을 모두 폐기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WP가 출간 저작에서 왜 배제되었는지 달리 설명할 좋은 방법이 없다.
(4) 지금까지의 분석을 토대로 ‘진짜’ 니체는 출간 저작 및 권위를 부여받은 작품의 니체인지 유고의 니체인지, ‘진짜’ 니체는 어떤 니체인지 가려내는 시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하이데거는 니체의 출간 저작과 권위를 부여받은 작품이 모두 ‘쇼’일뿐이고, 말년의 유고가 그의 진면모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전자에서 WP는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됐으나 후자에서는 straight-forward 및 matter of fact로 제시되기 때문에 우리는 후자에서 그의 철학을 간파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 즉 말년의 유고에서 WP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사용됐고 니체가 WP를 자신 철학의 테제로 제시했으니, WP로 대표되는 니체 철학은 형이상학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주장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그가 배제하는 권위를 부여받은 작품들에는 그가 진짜 니체 철학이라고 주장하는 말년의 유고에 실린 구절들이 똑같이 실려있다. 그러니 같은 내용이 실려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는 왜 가짜이고 하나는 진짜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둘째, 상술한 대로 출간 저작 및 권위를 부여받은 작품과 유고는 내용상 너무나 차이가 크다. 그리고 WP 용어 사용에서 그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기에, 전자가 아닌 후자가 우리의 유일한 분석 대상인지 납득 가능한 설명을 제공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것을 하이데거가 제시하지 못한다. 그가 말하는 WP로 대표되는 형이상학적 니체는 그가 자의적으로 ‘진짜’라고 택한 말년의 유고에서만 잘 드러날 뿐이다.
하이데거와 정반대로 홀링데일은 유고를 니체의 사유 실험장이라는 이유로 분석 대상에서 완전히 배제해 버린다. 하지만 하이데거를 비판한 이유와 같은 이유로 홀링데일을 반박할 수 있다. 왜 출간 저작 및 권위를 부여받은 작품만이 ‘진짜’ 니체이고, 유고의 니체는 ‘가짜’ 니체라는 말인가? 이에 대한 좋은 대답을 정말로 제시할 수 있는가?
극단적인 두 주장을 결합한 입장도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입장이 가장 납득할만하다. 이 입장은 홀링데일과 마찬가지로 유고를 니체의 사유 실험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홀링데일과 달리 유고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다만 출간 저작 및 권위를 부여받은 작품보다 신뢰 점수를 덜 부여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니체에 관해 어떤 주장을 펼칠 때, 그 주장이 유고에만 등장하는 구절을 근거로 한다면 출간 저작 및 권위를 부여받은 작품에 근거한 주장보다는 타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런 분석 방식을 통해 우리는 니체의 어떤 작품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내용상의 차이를 인정하며 논의를 진행할 수 있다. 이를 지금 논의의 주요 대상인 WP에 적용시켜 얘기해 보자면, 하이데거처럼 출간 저작 및 권위를 인정받은 작품은 배제하고서 유고에만 입각해서 WP를 해석해 내고, 또 그를 기반으로 니체 철학을 규정하는 작업은 정당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