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냐 헤겔이냐

현재 미학사 입문이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헤갤 사후 헤겔의 논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데
이때 반헤겔파들의 주로 꺼내는 논지는 대부분 칸트에서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의 내면을 탐구한 칸트와 개인을 하찮은 것으로 끌어내린 헤겔은 상극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헤겔과 칸트의 논지는 양립할 수 없는 상극의 존재인가요?
혹은 양립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그런지 사례를 알수 있을까요?

4개의 좋아요

헤겔을 '칸트 이전적 철학자(pre-Kantian philosopher)'로 해석할 것인지 '탈칸트적 철학자(post-Kantian philosopher)'로 해석할 것인지에 따라 연구자들마다 의견이 갈립니다. 고전적인 헤겔 해석에서는 (특별히, 헤겔의 비판자들은) 헤겔이 칸트가 나누어 놓은 현상계/예지계의 구분을 무시하고서 사물 자체에 대한 형이상학을 성립시키고자 한 '칸트 이전적 철학자'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해석들은 헤겔이 칸트의 철학에 내재된 비정합성을 지적하고서 칸트의 사유를 정말로 철저하게 전개시켜 칸트를 극복한 '탈칸트적 철학자'라고 하죠. 둘 중 어느 입장의 해석을 따르는지에 따라 칸트와 헤겔 사이의 관계에 대한 평가는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전에 이와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지난 겨울방학 때 이 주제로 저희 사이트에서 세미나도 열렸습니다.

8개의 좋아요

개인의 내면을 탐구한 칸트와 개인을 하찮은 것으로 끌어내린 헤겔

칸트는 개인의 내면을 탐구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을 탐구한 것입니다. 칸트적 의미에서 인격체이기도 하고 동물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인격체라는 점에 방점이 주어진 인간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인간은 헤겔 철학에서 보면 인간이 그 안에서 존재하고 통해서 발전하는 사회와 역사로부터 추상된 인간이고 궁극적으로는 자연을/객체를 낮선 것으로 대면하고 있는 소외된 인간입니다.

자유주의자라면 개인에게는 사회의 안녕을 위한다는 명분과 다수결에 의해서 침해할 수 없는, 그래서 헌법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일정한 권리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자유주의자가 전혀 아니더라도 개인에게 권리를 전혀 인정해주지 않는 이는 없지만 자유주의자는 개인의 권리를 가장 후하게 인정해줍니다). 물론 그 권리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그 권리들이 어느 정도로 보장되어야 하는 지는 논란될 수 있고 논란되어 왔습니다.

'헤겔이 개인을 하찮은 것으로 보았다'는 주장은 중립적으로 재기술하면 우선은 그 주장을 하는 이가 개인의 사회성/역사성을 헤겔보다 덜 강조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그 주장은 더 나아가 '헤겔은 전체주의자이다'는 주장으로도 읽힙니다. 헤겔은 확실히 자유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헤겔이 개인을 하찮은 것으로 보았다'는 주장은 헤겔 전공자들과 상당수의 정치철학자들은 싫어할, 뭔가 과한 표현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4개의 좋아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앞으로 좀더 숙고해 작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