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주의와 헤겔주의: 헤겔에 대한 옹호(3)

41022_hegelglasses

(11) 철학사에서는 헤겔이 칸트의 '사물 자체'를 극복하기 위해 칸트 이전의 독단적 형이상학으로 회귀하고자 하였다는 신화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헤겔의 철학에 대한 전통적 해석에 따르면, (a) 헤겔은 '절대 정신(absolute Geist)'이라는 신적 실체를 무비판적으로 상정하였고, (b) 자신의 철학이 신적 실체에 대한 '절대지(absolute Wissen)'를 제시하고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c) 언젠가 소위 '역사의 종말(Ende der Geschichte)'이 도래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철학이 증명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반헤겔주의를 주장하는 철학자들은 이러한 신화를 바탕으로 헤겔이 근대적 주체 개념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전체주의적 철학을 만든 인물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12) 여기서 '주체(Subjekt)'란 세계를 아래에서부터 떠받치는 일종의 토대입니다. 가령, 데카르트 이후로 인간의 의식은 모든 확실성의 근거라고 여겨졌습니다. 의식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은 확실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의식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성은 가장 확실하다고 상정되었습니다. 따라서 근대철학은 대개 '코기토(cogito)' 같은 의식의 확실성으로부터 세계의 존재를 추론하고자 시도하였습니다. 의식의 확실성은 세계의 존재를 정당화하고, 표상하고, 정초하는 최후의 토대라고 평가되었습니다.

(13) 헤겔의 철학도 바로 이러한 사유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석되었습니다. '절대정신'은 세계를 정초하는 일종의 유사-의식이고, '절대지'에 대한 철학적 서술은 의식의 자기 반성을 통해 이루어지며, '역사의 종말'에 대한 기대는 의식의 확실성으로부터 정당화되는 형이상학을 함의한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헤겔의 철학은 세계를 유사-의식의 형태를 지닌 신적 실체 속에 억지로 집어넣어 '현상/사물 자체'의 구분을 없애고자 한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14) 그러나 헤겔의 철학은 결코 데카르트의 '코기토' 같은 주체를 상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지닌 믿음의 체계를 아래에서부터 체계적으로 정초하여 세계를 완벽하게 표상하는 주체란 헤겔이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형식주의'라는 이름으로 비판하는 대상입니다. 오히려 헤겔의 철학에서는 '실체(Substanz)'가 주체이고 '진리(Wahrheit)'가 주체입니다. 즉, 우리가 공고하게 지니고 있던 기존 믿음의 체계를 깨부숴버리는 타자적 사건이 주체입니다. 소위 '타자 철학'에서는 헤겔이 동일성의 체계 속으로 모든 이질적 요소들을 환원하고자 한 절대적 관념론의 철학자라고 비난하지만, 사실 헤겔이야 말로 '나'라는 존재가 타자를 만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상처받고, 해체되고, 수정되고, 갱신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지적한 인물입니다.

(15) 헤겔의 철학에서 '나'는 어떠한 고정된 진리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세계의 존재를 추론하기 위한 토대는 결코 '나'에게 놓여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체가 끊임없이 현상하는 과정에서 진리가 매 순간 새롭게 계시될 때마다 '나'가 지니고 있는 믿음의 체계 역시 매 순간 새롭게 수정됩니다. 소위 '의식의 경험(Erfahrung des Bewußtseins)'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주도하는 쪽은 '실체' 혹은 '진리'입니다. 따라서 헤겔의 철학은 "실체는 곧 주체이다."(헤겔, 『정신현상학』, 51쪽; 52쪽; 75쪽; 92쪽.)와 "진리는 본질적으로 주체이다."(헤겔, 『정신현상학』, 103쪽.)라는 논제를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나'가 실체와 진리를 성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체와 진리가 '나'를 성립시킨다는 것입니다.

(16) 비형이상학적 헤겔주의 진영에 속한 철학자들은 서로 논점은 달라도 헤겔이 지닌 바로 이러한 측면에 주목합니다. 가령, 가다머는 헤겔의 경험 개념이 우리의 지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였다고 해석합니다. 로티는 헤겔이 변화하는 시간적 내러티브 뒤에 숨겨진 '영원성'을 부정하여 철학사에서 결정적으로 새로운 단계를 열었다고 평가합니다. 지젝은 헤겔이 개념의 체계에 내재된 균열을 봉합하려는 모든 종류의 시도를 거부하여 우리가 지닌 개념의 체계가 언제나 '비-전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지적합니다. 버틀러는 헤겔이 '나'라는 존재가 지닌 탈아적 성격을 드러내어 '나'가 언제나 새로운 만남 속에서 변화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고 이야기합니다.

(17) 이러한 해석은 헤겔의 철학을 독단적 형이상학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입장을 완전히 뒤집어버립니다. 즉, 헤겔이 고정된 진리를 상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경우 '절대정신'과 '절대지'라는 개념은 더 이상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처럼 등장한 존재론적 전제와 인식론적 이상으로 여겨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헤겔이 경험의 과정을 통해 인식의 수정이 끊임없이 계속된다고 강조하였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경우 '역사의 종말'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헤겔의 철학에 귀속될 수 없습니다.

(18) 오히려 우리는 헤겔의 철학이 현상학, 해석학, 실존주의, 해체주의, 실용주의 등 20세기 이후에 등장한 급진적 사조들과 상당히 유사한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조들 역시 '현상/사물 자체'의 이분법을 비판하고, 고정된 진리를 거부하며, 진리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롭게 주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헤겔이 그리스도교 신학, 그리스 철학, 낭만주의 문학 등 자기 시대의 문화적 개념을 바탕으로 서술한 체계를 우리 시대의 철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더욱 명료하게 재해석해 보고자 할 수 있습니다.

(19) 얼핏 독단적 형이상학의 잔재처럼 보이는 '절대정신'과 '절대지'에 대한 서술 역시 현대철학의 관점에서 훨씬 세련된 방식으로 해명될 수 있습니다. 가령, 헤겔의 철학은 현상 바깥의 '사물 자체'를 거부합니다. 진리는 '의식' 혹은 '정신'의 끊임없는 경험의 과정에서 성립합니다. 더 이상 우리는 실재를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파악하여 진리를 성립시킨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일상적 세계는 신의 관점에서 기술된 순수한 '사물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관점에서 기술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즉, 경험의 과정은 언제나 특정한 사회적-역사적-문화적 '지평(horizon)'과 '맥락(context)'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실재에 대한 지각에는 언제나 우리가 학습받은 내용, 우리가 얽혀 있는 권력 관계,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적 배경, 우리가 소속된 공동체의 신념이 개입합니다. 따라서 헤겔의 철학은 세계가 절대정신의 자기 실현이라고 강조합니다. 전통, 전승, 규범, 질서, 제도 등 온갖 정신적 산물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의 과정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20) 실제로, 영미권 비형이상학적 헤겔주의를 대표하는 연구자 피핀은 헤겔의 정신(Geist) 개념이 일종의 '규범(norms)' 혹은 '집단적 제도(collective institution)'라고 해석합니다. 피핀에게 영향을 받아 헤겔을 분석철학적 관점에서 다루는 연구자 레딩은 절대정신을 '문화적 영역(cultural realm)'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피츠버그의 '분석적 헤겔주의자'라고 일컬어지는 브랜덤 역시 정신 개념을 실용주의 전통의 관점에서 '규범적 영역(normative realm)'이라고 해석합니다. 마찬가지로, 핀카드는 절대정신이 우리가 본질적으로 누구인지에 대해 공동체가 수행하는 '자기 의식적, 분절적 반성의 체계(network of self-conscious, articulate reflections)'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21) 따라서 헤겔주의는 결코 칸트 이전의 독단적 형이상학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시대착오적 시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헤겔주의가 칸트주의를 훨씬 일관적으로 발전시킨 입장이라고 평가해야 합니다. 즉, (a) 헤겔주의는 우리가 유한한 인식을 바탕으로 세계를 경험한다고 강조한다는 점에서 칸트주의를 유지합니다. 다만, (b) 헤겔주의는 현상 넘어에 존재하는 '사물 자체'를 상정하지 않고서도 유한한 인식이 지와 진리의 구별을 통해 해명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여 칸트주의를 수정합니다. 더 나아가, (c) 헤겔주의는 우리 시대에 등장한 비판과 의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대답을 제시하여 칸트주의를 현대철학에 적용합니다. 칸트주의가 제시한 통찰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비판적으로 수정하고, 현대적으로 적용하는 작업은 헤겔주의에서 진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7개의 좋아요

언제나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헤겔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언제나 흥미롭고 헤겔철학을 아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이러한 해석이 체계의 완결성에 대한 헤겔의 집요한 주장을 지나치게 약화시키거나 아니면 무시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어, 이 둘 사이에서 언제나 갈팡질팡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해석은 헤겔철학을 헤겔 자신이 언제나 강하게 비판한 "악무한의 철학"에 노출되도록 만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비아가 자아에 의해 완전히 파악되지 못하고, 반동으로서의 비아에 의해 자아가 끊임없이 새롭게 영원히 운동해야만 하는 피히테의 열린 체계는 헤겔의 주비판대상이었습니다. 헤겔에 대한 이러한 해석 방향은 그러나 헤겔이 피히테에게 한 저 비판에 그대로 통용됩니다. 둘 사이의 양립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요?

8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