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연재글]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는가 (1)

번역으로 연재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예전에 공동번역으로 한 번 작업하다가 제가 컴퓨터를 한 번 날려 먹는 바람에 원고가 싹 날아갔었는데, 이번에 그 때 번역했던 원문의 출판본을 하나 찾아서 새로 한 번 번역해보려고 합니다.
오역 지적은 댓글로 해주시면 한 번 확인해보겠습니다.
원문은 Williamson, Timothy (2014), "How Did We Get Here from There The transformation of Analytic Philosophy", Belgrade Philosophical Annual 27:7-37 이고 philarchive에서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20세기 중후반 분석철학의 트렌드를 (아마도) 형이상학의 발전과 엮어서 기술한 내용이고 저자의 관점이 좀 개입이 되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원래 이런 썰풀이는 관점을 끼고 읽으면 또 재밌지 않겠습니까.


분석철학의 적대자들은 종종 분석철학을 논리실증주의와 엮는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분석철학”이라고 알려진 넓은 전통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단순하고 엄격한 검증가능성 원리를 유의미성의 기준으로 보고 형이상학을 인지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이유로 배제했던 비엔나 학파의 논리실증주의가 하나의 큰 줄기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분석적 전통의 발전하는 과정에 있었던 또 하나의 큰 줄기는 일상 언어 철학이었다. 이들은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자들의 방식을 의심스러워했는데, 이는 형이상학자들이 단어의 의미가 의존해 있다고 여겨지는 일상적인 사용 맥락에서 벗어나 단어들을 마음대로 사용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십 년 간 우리는 대놓고(boldly) 사변적인 형이상학이 분석철학적 전통 안에서 발전한 것을 목도했다. 논리실증주의적 혹은 일상 언어적 양심의 억제 아래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이런 분석적 형이상학에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우리의 경험적 세계와 아득히 떨어진 것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칸트보다는 라이프니츠의 정신에 가까운 전비판적(pre-critical)인 철학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나 많은 반형이상학적 유전자 풀을 가진 철학의 한 분파가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완전히 다른 극단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체계적으로 답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관점이 필요한데, 우리가 이를 얻어내기에 이제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 이러한 작업을 책보다 작은 지면에 제대로 담아내기엔 그 내용이 너무나 방대하다. 이 글에서 나는 단지 분석철학이 어떤 방식으로 바뀌어 왔는지에 대해 비형식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몇 가지 언급을 하고자 한다. 특히 2절에서 나는 그러한 역사의 과정 후반부를 살았던 한 명의 사람으로서 글을 쓸 것이고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 집중할 것이다. 이는 최소한 그러한 격동의 세기를 경험한다는 것이 그러한 전통에 대해 대체로 우호적인 관점에서 어떤 것인지를 어느 정도는 알려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3절에서 나는 최근의 분석철학에 대한 역사기록학(historiography)에 관해 몇 마디를 덧붙이며 글을 마무리 할 것이다.

Ⅰ.
20세기의 마지막 사반세기에 있었던 분석 형이상학의 발전에서 가장 중심적이고 중요한 인물이자, 최근 분석철학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현대 철학자는 의심의 여지없이 데이빗 루이스(David Lewis)이다. 그는 또한 그의 괴상스러운 계산 능력과 기계적인 발음, 일상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있는 것 같은 어슴푸레한 분위기, 그리고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은 수염 때문에 “기계 속의 유령”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길버트 라일(Gilbert Ryle)이 시계처럼 돌아가는 데카르트적 몸 안에 있는 비물질적인 데카르트르적 자아를 가리켜 “기계 속의 유령”이라고 한 것과 대조해보라). 루이스의 사변적 형이상학의 모범적 사례라고 할 만한 것은 결국 그의 악명 높은 양상 실재론(modal realism)일 것이다. 양상 실재론에 따르면 현실 세계와 같은 구체적인 시공간적인 계(system)인 무한히 많은 가능세계들이 서로서로 단절되어 존재한다는 것이다. 루이스에게 있어서는 말하는 당나귀는 글자 그대로 엄밀한 의미에서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모두 동의하듯이) 말하는 당나귀가 있을 수도 있었기(could have been)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가능세계는 말하는 당나귀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며, 그 당나귀는 우리 세계에서 우리가 본 당나귀처럼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살아 있는 당나귀이다. 물론 다른 가능세계들을 우리가 관찰할 수는 없다. 세계 사이를(trans-world) 관찰할 수 있는 망원경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그러한 가능세계를 상정(postulate)하는데 왜냐하면 가능세계들의 존재는 그가 단순성, 강력함, 우아함, 설명력 등의 측면에서 가능성, 필연성, 그리고 그와 관련된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이론인 양상 실재론으로부터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퍼스(C.S. Peirce)의 말을 넓게 써서 말하자면, 양상 실재론에 대한 루이스의 논증은 귀추법(abduction)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루이스는 현실이 아닌 가능세계(non-actual possible worlds)를 라이프니츠보다 더 심각하게 다룬다. 라이프니츠에게 있어서 가능세계는 그저 신의 정신 속에 있는 실현되지 않은 관념에 지나지 않았다. 라이프니츠의 신은 모든 가능세계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만을 존재하게끔(realize) 하지만 루이스의 가능세계는 전부 동일하게 존재한다(realize). 우리는 루이스의 양상 실재론을 현대 분석철학에서 사변적 형이상학의 부활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 연구로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철학자들은 가능세계를 끌어들이는 모든 논의를 형이상학적 낭비로 간주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인데, 왜냐하면 어떤 이론들은 가능세계를 그저 현실 세계에 있는 것들로부터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harmless) 구성할 수 있는 추상적 대상이나 표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논리실증주의자이자 가장 뛰어난(par excellence) 반형이상학자였던 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은 명시적으로 그의 상태기술(state-description)과 라이프니츠의 가능세계를 비교했다. 상태기술이란 “가능한”과 “필연적”과 같은 양상 연산자를 포함하는 카르납의 의미론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최대 일관적인 문장 집합(maximal consistent classes of sentences)을 의미한다. 그는 또한 이를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의 가능한 사태(possible states of affairs)와 비교하기도 한다. 카르납에게 있어서 필연성은 순전히 언어 내적인 문제로 의미에 의해서 참이 보장되는 것이고 가능성이란 일관성(consistency)이라는 의미론적 형태에 상응하는 것이다. 루이스의 양상 실재론은 언제나 소수설이었고 그러한 종류의 가능세계를 다루는 분석 형이상학자들 사이에서도 소수설이었다. 양상 실재론은 극단적인 형이상학의 한 예였다. (역자-재밌게도 루이스는 본인 저서에서 자신의 이론이 어떤 의미에서 “극단적”인지 모르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루이스의 양상 실재론은 어디에서 온 걸까? 루이스의 초기 출판 논문 중 하나(“Counterpart Theory of and Quantified Modal Logic”)에서 이미 한 번 등장하기는 한다. 솔 크립키(Saul Kripke)의 저작에서 쌓아올려진 양상 논리학의 발전은 이미 가능세계라는 아이디어를 양상 연산자를 포함하는 언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심적인 아이디어로 자리매김 시켰다. “필연적으로”는 “모든 가능세계에서”로 이해되었고 “가능한”은 “어떤 가능세계에서”로 이해되었다. 수학적으로 기술적인(technical mathematical) 이유에서 가능세계를 카르납의 상태기술 혹은 다른 표상적 존재자와 동일시하는 것이 그다지 생산적이지(fruitful) 않다는 것이 드러났고 대신 양상 언어의 모델을 특징짓는데 있어서 가능세계의 본질에 대해서는 제약을 두지 않는 방식으로 내버려두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능세계에 대해 더 형이상학적으로 사변적인 관념을 강요하지 않고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둔 것이다.
또 다른 유의미한 요인은 시제 논리(tense logic)의 발전이었는데, 대부분은 아서 프라이어(Arthur Prior)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가능세계가 양상이 개입된 상황에서 하는 역할과 시간이 개입된 상황에서 시간(moment of time)이 하는 역할이 같다는 점에서, 양상 논리와 시제 논리 사이에 강한 구조적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다. 양상 논리에서 “필연적”으로 읽는 바로 그 연산자를 시제 논리에서는 “언제나”로 읽는다. 만일 누군가 시제 표현을 포함하는 논리식들을 본다면 그 논리식들은 아주 분명하게 시간의 구조와 시간 속의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원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독법은 양상 표현을 가진 동일한 식을 더 형이상학적으로 읽을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그 위에서 가능성의 구조와 가능한 혹은 필연적인 존재의 구조에 대한 유비적인 형이상학적 원리가 표현되는 것이다. 이에 카르납의 언어 내적 양상은 대상들이 정말로 무엇일 수 있었는지를 다루는(how things really could have been) 크립키의 형이상학적 양상으로 대체될 수 있다.
하지만 양상 논리 안에서의 이러한 발전을 보더라도 루이스의 양상 실재론은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 왜냐하면 크립키를 비롯한 선도적인 양상 논리학자들은 양상 실재론의 길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상 언어에 대한 루이스의 양상 실재론적 의미론은 순전히 기술적인(technical) 관점에서 보면 딱히 끌어들이지 않아도 되는 복잡함을 끌어들이는 게 사실이고 이는 시간과 향상에 대한 프라이어의 유비에 입각해서 봐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루이스는 하나 이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개체(individual)는 없다고 가정하는데 이는 둘 이상의 순간에 존재하는 개체는 없다는 굉장히 믿기 어려운 가정과 유사하다. 우리가 달리 행위 할 수 있었다는 상식적인 아이디어를 이해하기 위해 루이스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서로 다르지만 아주 유사한 개체들 사이에 성립하는 상대역 관계(counterparthood relation)에 대한 정교한 이론을 도입해야 한다. 이런 복잡한 체계는 바로 루이스가 가능세계가 존재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도입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루이스가 1960년대 중반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을 할 때 지도교수가 그 당시 양상 논리에 반대하는 진영의 수장 격이었던 윌러드 밴 오먼 콰인(Willard Van Orman Quine)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콰인은 특히 카르납과 러스 발칸 마커스(Ruth Barcan Marcus)에 의해 발전된 양화 양상 논리(quantified modal logic)에 비판적이었다. 양화 양상 논리는 결과적으로 단순히 어떤 사태가 성립할 수 있었는가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개체가 어떤 속성이나 관계를 가질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추론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 콰인은 양화 양상 논리가 가능성, 필연성, 현실성 사이의 구분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비정합적이고 그런 점에서 기술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했다. 순수하게 형식적인 콰인의 논증이 기술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게 드러나자 콰인은 서서히 비판의 방향을 바꾸어 양화 양상 문장에 대한 이해가능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논리학에 있어서 그의 이해가능성 기준은 단순하고 엄격했다. 그것은 비양상적 일차 술어 논리였다. 거칠게 말해 논리 상항 “not”, “and”, “or”, “everthing”, “something”, 그리고 “is”에 관한 논리학이었다. 콰인에게는 비양상적 일차 술어 논리가 곧 논리학이었다. 루이스가 양상 실재론을 가정한 것은 양상 실재론이 가능세계들과 그 세계 안에서의 개체들에 관해 말하는 양화 양상 언어를 비양상적 일차 술어 논리로 환원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정적으로, 루이스의 양상 실재론은 가능세계가 무엇인지를 비양상적 용어들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 대략적으로 말해, 가능세계란 하나의 시공간적인 계로서 그 계에 존재하는 개체들은 시공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반면 그 계 밖에 있는 것들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다. 루이스는 이로써 양화 양상 논리를 그의 스승의 이해가능성 기준에 맞게 만들고자 했다. 자연 언어로 이루어지는 많은 일상적 담화는 최소한 양화 양상 논리가 가지는 정도의 표현력을 가진 말들을 포함하고 있고 (아무리 적게 잡아도“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는 일상적 표현이다) 이에 더해 루이스의 작업은 자연 언어의 화자들을 바보로 만드는 해석보다는 합리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해석을 선호해야 한다는, 콰인도 명시적으로 받아들인 자비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었다. 어떤 것이 우리 세계에 있진 않지만 있을 수 있었다는 일상적인 진술을 참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세계가 아닌 가능세계들과 그 안의 거주자들이 필요했다. 루이스는 양화 양상 담화를 자비롭게 해석하는 콰인의 문제에 대해 기발한 해답을 제시했고 콰인적인 용어로 이를 해냈지만 콰인은 그 선물을 거부했다.
양상 실재론에 대해 콰인이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그가 반형이상학적 입장을 취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형이상학의 분야로서의 존재론을 분석철학의 지도위에 올려놓는 데에 누구보다 기여를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철학에 대한 그의 생각은 철학이 자연 과학과 연속적인 한편 명시적으로 형이상학적 이론화에 대한 자연주의적 접근을 포함하는 학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반형이상학적 입장 때문이라기보다는 양상 실재론이 자연 과학의 지지를 받지 않는 이론이었기 때문에 그가 그것을 거부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콰인은 형이상학적 이론들이 자연 과학으로부터 특별한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집합이나 수와 같은 추상적 개체들에 대한 존재론적 개입을 하는 수학이 자연 과학에 응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체론적으로 정당화된다(holistically justified)고 보기도 했고 집합론의 표준적인 공리들을 자연 과학에 응용되는 부분들을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간주하면서도 그 공리들이 갖는 힘은 자연 과학이 요구하는 것을 훨씬 능가하고 이는 단순성, 우아함, 그리고 다른 몇 가지 탁월성의 기준에 따라 정당화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수학에 대한 콰인의 정당화는 루이스가 양상 실재론을 정당화하는 것과 비슷하게 귀추적이다. 만일 콰인이 양상 실재론과 자연 과학적 이론 사이에 긴장을 느꼈다면 그는 그것을 양상 실재론을 거부할 좋은 이유로 생각했을 것이고, 그건 아마 루이스도 그랬을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둘 중 누구도 그 사이에서 그런 긴장을 느끼지는 않은 것 같아 보인다. 내가 보기에 거기엔 실제로 어떤 긴장, 비일관성이 있었지만 그것을 밝히기 위한 논증은 섬세하게 만들어져야 했고 그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콰인은 그의 커리어 상에서 더 이상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자신의 입장을 급진적으로 수정하지 않으려 하던 시기에 양상 실재론을 접했다. 양화 양상 논리에 대한 잘 확립된 회의주의적 입장을 대외적으로 거두어들이는 것은 아마도 삼키기 어려운 쓴 약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또한 양상 논리학에 대한 순수하게 기술적인 모형 이론의 발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특히 크립키를 비롯한 학자들이 발전시킨 양화 양상 논리의 모형 이론은 이제는 표준적인 수학의 한 분야로서 콰인의 이해가능성 기준에 대해 다른 수학의 분야와 크게 다르지 않아졌음에도 그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개의 좋아요

좋은 컨텐츠 감사합니다! 번역문 관련 아카이브를 기획해보겠습니다.

3개의 좋아요

와 좋은 글을 연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개의 좋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

2개의 좋아요

아주 재기발랄한 글이죠. 그 윌리엄슨이 썼다고는 믿기 힘들만큼! 동시에 20세기 후반 (옥스포드) 철학사를 (본인의 견해가 '잘 부각되는' 방식에서) 흥미롭게 조명해주는 유익한 수필을 이렇게 번역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이후에 전개될 더 깜찍한 에피소드들 또한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slight_smile:

2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