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생물학의 철학 (2020)(완료)

(-) SEP의 "생물학의 철학"(Philosophy of Biology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에 대한 번역입니다. 몇몇 전문적 과학 용어는 잘못 번역되었을 수 있습니다. 역자 편의에 따른 의역이 존재합니다. 따로 윤문은 하지 않아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0) 서문

생물학에 대한 철학적 관심이 지난 40년간 성장한데에는, 동시대 생물학의 중요성이 점차 증대한데에서 기인한다. 오늘날 다양한 생물학적 주제에 대한 (철학적) 논문이 존재하며, 이를 이 글 하나에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대신 이 글은 "생물학의 철학이란 곧 무엇인가?"를 설명하는데 집중할 것이다. (다시 말해) 왜 철학과 생물학은 서로 관련이 있는가? [이 백과사전에 있는 생물학의 철학에 대한 개별 주제들은 하단에 수록할 것이다.]

세 가지 상이한 종류의 철학적 논의가 통상 '생물학의 철학'으로 분류된다. (a) 첫째는 과학철학의 일반적인 논제를 생물학이라는 맥락에서 논의하는 것이다. (b) 생물학 내에 존재하는 개념적 문제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이다. (c) 전통적인 철학적 질문에 생물학을 활용하는 일이다.

생물학의 철학은 특정한 영역의 생명과학으로 세분화될 수 있다. 생물학은 극도로 다양한 종류의 분야를 가지고 있는다. 예컨대, 고생물학 같은 역사적 과학(historical science)부터 생명공학 같은 공학까지 포괄한다. 각 분야에서 다른 철학적 문제들이 제시된다. 후반부는 이러한 몇몇 생물학의 세부 분야에서 철학자들이 어떠한 논의를 하는지 설명할 것이다.

(1) 생물학의 철학의 전사

(2) 세 종류의 생물학의 철학

세 가지 상이한 종류의 철학적 논의가 통상 '생물학의 철학'으로 분류된다. (a) 첫째는 과학철학의 일반적인 논제를 생물학이라는 맥락에서 논의하는 것이다. (b) 생물학 내에 존재하는 개념적 문제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이다. (c) 전통적인 철학적 질문에 생물학을 활용하는 일이다.

생물학의 철학에서 이루어진 첫번째 대논쟁이 첫번째 종류 (a)의 예일 것이다. 바로, 과학철학에서 나온 환원주의/반-환원주의를 유전자에 적용하는 일이다.
Kenneth Schaffer는 논리실증주의자들의 환원주의 모델을 고전적인/멘델 유전학과 분자유전학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사용했다. David Hull에 따르면, 이 일의 교훈인 멘델 유전학이 분자 유전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를 둘러싼 논쟁은 70/80년대에 특정한 과학이 보다 근본적인/기반이 되는 과학으로 환원될 수 없이 그 자체로 '자율적'이라는 (거의) 합의된 견해를 강화했다. 어쨌든, 생물학에 있어서 분자 혁명 [즉, 생물학에서 DNA 발견을 통해 분자 단위가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발전한 일]이 과학적 환원에 대한 성공적인 예가 아니라는 명백한 부조리는, 학자들로 하여금 보다 적절한 환원적 이론에 대한 타구로 이어졌다.

또다른 논쟁은 (b) 생물학 내부의 개념적 문제를 해소하는 것과 연관된다. 생식 적합도(reproductive fitness ; 개별 유전형질/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정도)는 진화론의 핵심이지만, 이 개념의 지위는 언제나 문제적이었다. 생물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비판을 피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진화의 법칙을 엄격한 의미에서 만들려 한다면, 우리는 중언부언에 빠지는 듯하다. 예컨대, 안드로메다에서도 '적합한 것이 생존할 것이다.'라 말할지라도, 우리는 아무런 주장도 안 함 셈이다. 왜냐하면 '적합함'은 '생존'이라는 개념을 통해 정의되기 때문이다." 이는 "중언부언의 문제"로 알려졌다.
Alexander Rosenberg와 Mary Williams는 '적합성'이 환원될 수 없는 원초적인 것으로, 그 뜻이 진화 이론의 공리에 기반한다 주장한다. 이것이 옳다면, 중언부언의 문제를 해소된다. 왜냐하면 이따금 공리는 중언부언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70년대에 새로운 세대의 생물학의 철학자들은 중언부언의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방법을 두 단계로 제시했다. 우선 그들은 '적합성'이 개별 유기체가 수반하는 속성이라 주장했다. 개별 유기체의 적합성은 반드시 유기체가 가진 특정한 종류의 물리적 특성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 의존할 수 밖에 없지만, 같은 적합성을 가진 두 유기체는 서로 전혀 다른 물리적 특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 단계는, 이들은 이렇게 수반된 속성이 어떠한 경향성(propensity)라 주장한다. 즉, 가능한 자손의 숫자를 보여주는 확률분포의 형태로 재현되는 개연적 성향(probabilistic disposition)이라는 것이다. 비록 적합성은 번식 성공률로 정의되지만, 적합한 유기체가 가장 자손이 많다는 것은 중언부언은 아니다. 마치 주사위를 굴릴 때 숫자 육보다는 짝수가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 중언부언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적합한 유기체가 생존할 경향성과 주사위의 각 면이 동등하게 나올 확률은 우리에게, 무엇이 생길지 믿을만한 예측을 할 수 있게 해주며, 이 예측은 표본의 규모가 증가할 수록 더 믿을만 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인구 생물학에서 '적합성'이 차지하는 역할을 할 특정한 확률 분포가 얻을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개념적 문제'라는 표현은 매우 넓게 이해되어야 한다. 생물학의 철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개념 작업들은 부드럽게 이론 생물학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이는 철학자로 하여금, 생물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주장들을 비판하고 평가하도록 이끌고 이는 철학자들이 지금 진행되는 생물학적 논쟁에 참여하도록 만든다. 같은 방식으로 첫번째 종류 (a)의 철학자들 역시 생물학의 방법론을 향상시킬 특정한 조언을 토대로 생물학계 내로 들어오곤 한다. 이는 생물학의 철학 논문이 가진 특징적인 점으로, 철학자들이 생물학 저널에 출간하거나 생물학자들이 생물학의 철학 저널에 투고하곤 한다.

생물학의 철학은 또한 생물학과 사회를 중계하는 잠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대중이 생각하는 (popular representation) 생물학은 넓은 영토의 실험적 발견과 이론적 작업을 토대로 형성된다. 과학철학자들은 이들 특정한 생물학적 발견의 중요성에 대한 해석을 평가할 명확한 의무가 있다. 두 가지 중요한 예시로, 생물학의 철학자들은 창조론/지적 설계론 그리고 사회생물학/진화심리학을 명료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c) 형태의 생물학의 철학은 윤리학/인식론 같은 전통적인 철학적 주제의 입장을 생물학을 통해 지지하려고 할 때 생긴다. '생물학적 목적론'(biological teleology)에 대한 광범위한 논문이 예가 될 것이다. "현대 진화 이론(modern synthesis ; 다윈의 자연선택, 멘델의 유전 법칙, 집단 유전학의 성과를 종합한 진화 이론)"의 탄생에 따른 소란이 지나간 후, 그 과정에서 '목적론적 표현/어법에 대한 진화론적 해석'을 특별히 함축하기 위해 도입된 '목적론적 형질(teleonomy)'이 도입되었고, 진화생물학자들은 기능과 목적 지형됨성 (goal directedness ; -ed이기 때문에 요상하지만 수동으로 옮겼습니다)라는 생각을 별 문제 삼지 않고 수용하였다.
그러나 70년대에 철학자들은 생물학이 가진 규범적 개념들 (질병, 장애[disorder], 오자동[malfunction] 등)에 대해 보다 명확하고 과학적인 기반을 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이룰 둘러싼) 철학적 논쟁은 현대 진화론과 근본적으로 흡사한 '목적론적 표현'에 대한 해석이 형성되었다.
기능에 대한 "선택된 효과(selected effects)" 이론에 따르면, 어떠한 특성의 기능은 그 특성이 선택되었기에 있는 활동이다. (또한) '정상적인 작동(proper function)'이라는 생각은 철학 일반과 언어 철학/심리철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개념적 도구가 되었다.

(3) 진화 생물학의 철학
최근까지도, 진화생물학의 (생물학의) 철학에 대한 관심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들 작업은 때론 과학철학에서의 '일반 이론'(general thesis)(예컨대, 이론에 대한 의미론적 관점 혹은 모델 기반의 관점 등)을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들 분야의 대부분의 작업은 이론 내에서 등장한 개념적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들 작업은 때로 과학철학만큼이나 이론 생물학과 유사하다.
예컨대, Elliott Sober의 고전적인 작업인 <자연 선택 ; 진화 이론에 대한 철학적 접근>은 많은 철학자로 하여금 생물학의 철학에 대해 알게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Sober는 집단 유전학의 구조를 뉴턴 역학과 힘의 (역학적) 합성과 유비해서 분석한다. 즉, 유전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제 변화는, [자연 선택, 무작위 유전적 부동(random genetic drift), 변이, 이주 등의] 여럿 구분되는 "힘"의 결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후 몇몇 생물학의 철학자들은 통계학적 관점에서 진화 이론에 대한 이 해석에 도전하였고, 이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진화 생물학에서의 개념적 문제의 또다른 예시는 '무작위 유전적 부동'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어떻게 자연 선택과 부동을 구분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유전적 부동은 유전 과정에서 일어나는 무작위한 변동이 생겼을 때를 일컫지만 변화한 환경에 의한 자연 선택 역시 매우 유사한 패턴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몇 생물학의 철학자들은 자연 선택과 유전적 부동을 "과정의 차이"로 구분해야지, 단순히 "패턴의 차이"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주장한다. 이 중 한 방법은, 무작위 샘플링 과정-작위 샘플링 과정(discriminate sampling processes)로 구분해 보는 것이다. 이제 (학자들의) 질문은 탐구 대상이 되는 특성이 유전 과정에서의 변화와 인과적으로 연관된지/아닌지에 대한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집단 유전학의 방법론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전통적인 진화 이론의 수학적 기반에 대한 예시는 지속적으로 흥미로운 결과들을 가져오고 있다.

80년대에 벌어진 진화 이론에 대한 강한 철학적 관심은 부분적으로 두 가지 논쟁에 기반한다 할 수 있다. 첫째는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1975)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인간 본성에 관하여>(1978)로 촉발된 "사회생물학" 논쟁이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 진화 생물학을 적용하려는 이러한 시도의 가장 중요한 비판은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에게서 나왔다. 이와 같은 적응주의(adaptatism)을 둘러싼 논쟁은 다양한 종류의 염려와 연결되어 있다. 진화는 적응을 만들어내는가? 최적성 모델(optimality model)의 역할은 무엇인가? 진화론의 방법론은 무엇인가? 철학적 작업들은 논쟁상의 여러 혼란을 구분하는데 도움을 주여, 적응주의에 대한 격렬한 찬반 토론을 벌린 생물학 작업들이 가진 혼란을 줄이는데 기여했다.

두번째 논쟁은 조지 윌리엄스의 <적응과 자연선택>(1966),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1976)의 출간에 따른 것이다. 그들은 자연 선택의 단위는 유기체, 유기체 무리 혹은 종이 아니라 개별적인 멘델 대립 형질 유전자라 주장했다. 이는 "자연 선택의 단위"에 대한 초기 철하적 작업의 폭발을 불러왔다. 이러한 초창기 논쟁은, 자연 선택의 확실한 단위가 있는 것인지, 있다면 무엇이 기준인지에 대해 논의하였다. "다층 자연 선택 모델(multi-level selection models)"과 Price 방정식(유전적 특성이 시간에 따라 어느정도 빈도로 변하는지 보여주는 방정식)이 등장함에 따라, 논의는 이러한 모델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로 전환되었다. 예컨대, 어느 "집단 선택 모델(group selection model, 자연 선택이 개별 유기체나 유전자가 아닌 집단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이론)"에든 이와 관찰로 증명 가능한 (empirically) 동일한 "개별 선택 모델"이 존재한가? (유전자형과 유전모델의 관계처럼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매우 동일한 인과 구조의 재현인? 친족 선택(kin selection)은 집단 선택의 일종인가?

단언하건데, 철학자들은 몇 형태의 "집단 선택 이론"을 90년대 진화 생물학에서, 두 세기 가까운 무시와 경멸에서 부활시키는데 일조했다.

(4) 계통분류학의 철학

계통 분류학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60-70년대에 걸쳐 이러난 계통분류학의 "과학적 진화"에 대한 반응이었다. 이 진화는 계통 분류학이 표현학(phenetics, 해부학적으로 드러난 특성에 기반해 생물을 분류하는 것)과 진화 분류류학에서, 양적 방법론의 적용과 함께 Willi Henning이 주창한 "분기학적"(cladistic) 접근으로 귀결되었다. 이 접근은 계통 분류학의 단일 목표는 유기체의 "자연적 그룹"을 대변해야 한다 주장한다. 분기학자들은 "자연적 그룹"이 단일계통 그룹이라 여긴다. (단일 계통 그룹은 조상 종과 그 조상 종의 모든 후손 종을 포괄한다.) 그러므로 분기학적 접근은, 오로지 공통된 후손들의 특징이라는 계통 발생적 특성만을 대변한다. David Hull은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이다.

나아가, 계통 분류학적 추론(phylogenetic inference)의 특성에 대한 많은 양의 개념적 작업물들이 있다. 계통발생은 주로 계통수로 표현된다. 계통 발생을 발견한다는 것은 "증거에 의한 이론의 과소결정"(이론을 확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한 경우)이라는 친숙한 문제를 가져온다. 예컨대, 만약 우리에게 네 개의 분류군이 있다면, 15개의 가능한 계통수가 있다. 어쨌든, 오직 하나의 계통수만이 실제 역사적 계보와 대응된다. 나아가, 주어진 분류군의 계통 발생은 직접적으로 관찰될 수 없으므로 추론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계통 분류학적 추론은의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 가정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지와 연관된다.
계통 분류학을 결정하는 종래의 방법은 절약성/경제성(parsimony)로, 더 적은 진화론적 사건을 제안하는 계통수를 선택하는 것이다. 몇 계통 분류학자들은 칼 포퍼의 반증주의(falsificationism)을 활용해, 이 접근을 옹호하였다
70년대에 Joseph Felsenstein은 특정한 체계적 분류(topology) 형태의 계통수가 경제성에 근거한 분석에서 체계적인 오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문제는 "먼 가지 간섭(long-branch attraction)"으로 불리며, 긴 가지의 끝에 있는 분류군이, 보다 가깝게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는 분류군 대신, 경제성에 근거한 분석에 의해서 실수로 동일한 그룹으로 묶이는 것을 지칭한다. Felsenstein은 (최대 공산법 maximum liklihood이라는) 통계적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회피할 것을 제안했다. 두 진영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생물학자 Michael Ghiselin은 생물학적 종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해서 계통 분류학은 근본적으로 잘못 생각했다고 그가 주장했을 때, 철학자들이 주었던 관심에 대해서 언짢아했다. 생물학적 종은 화학 원자들이 그러하듯 자연종(natural kind)가 아니다. 대신 이들은 국가나 우주처럼 역사적으로 특정한 것이다. 그들은 종분화로 시작되어, 생물학적 관련성으로 통합되는 부분들을 가지다, 멸종으로 인해 사라진다. 나아가, 결혼 반지가 금의 예시인 것과 다르게 개별 유기체는 생물학적 종의 예씨가 아니다. 대신, 개별 유기체는 종의 부분이다, 한 개인이 가족의 일부인 것처럼 말이다. Smart가 언급했듯, 이 사실은 생물학적 종 그 자체는 (최소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과학적 법칙"(nature of law)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한다. David Hull은 나아가 "개별로서의 종" 이론을 발전시키고 주장했다. 그는 종의 명칭, 과학적 법칙, 인간 본성 등의 다양한 주제가 가진 함축에 대해 탐구했다.

여하튼, 종들을 개별로 보는 것은 여전히 종에 대해 해결되지 않은 중요한 질문을 남겨두며, 그 자체로도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예컨대, 자신이 집단생물학자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무수한 종들 사이에서 개별자들을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해보자. 그렇다면 어떤 개체를 개별자로 세야 하는가? 철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은 이 질문에 답하여 여러 기준들을 제시하였다. 여기에는 번식, 생애주기, 유전자, 성별, 발생학적 필수 단계(developmental bottleneck), 배아-체세포의 분열, 감시 체제, 공간적 경계 혹은 인접성, 면역 반응, 적합성 최적화, 협동 혹은 갈등, 생물학적 공동 분산(co-dispersal, 태어난 지역에서 번식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 신진 대사 자율체계, 마지막으로 기능적 통합이 있다. 그러므로, "생물학적 개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생물학자들은 그래왔으며, 여전히 "종의 범주"(species category)에 대해 큰 이견 차를 가지고 있다. Ernst Mayr의 유명한 생물학적 종 개념 (BSC)를 보자. 그는 "종이란 서로 상호 교배할 수 있는 자연적 집단으로, 다른 집단과 재생산에 있어서 독립되어 있다."라 정의한다. 이러한 BSC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들이 있다. 무성(성별이 없는) 유기체는 상호 교배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BSC에 따르면, 무성의 유기체들은 종이 없는 셈이다. (또한) 많은 종들은 어느정도의 유전적 침입(introgression)을 보여주므로, 구별되는 종이라 부를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BSC는 화석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종에 적용하기 극도로 어렵다. 왜냐하면 대체로 생식 기관들은 화석으로 남지 않기에, 번식 활동이 어떠한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BSC와 관련된 이러한 문제이 비추어, 생물학자들은 다른 종 개념을 제시한다. 종 다원주의(Species pluralism)은 유기체들을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 단일하고 옳은 종 개념은 없다 주장한다. 차라리, 몇 개의 옳은 종 개념이 있다 본다. 종 단일주의(Species monism)은 하나의 옳은 종 개념이 있다 주장한다. 몇 주장된 종 다원주의는 일시적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종국에는 단일한 최선의 개념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종 다원주의자와 종 단일주의자 간의 논쟁은 계속되어 있다.

생물학적 종은 때때로 "자연종"에 관한 전통적인 예시로 여겨져왔다. 계통 분류학의 철학자들은, 자연종과 분류에 관한 최근 작업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예컨대 생물학에서 발견되는 "개체군 사고(population thinking)"과 정합적인 자연종의 개념 혹은 본질주의를 우리는 찾을 수 있는가?

(5) 분자생물학의 철학

앞서 생물학의 철학에서, 첫번쩨 큰 논쟁은 멘델 유전학을 분자 유전학으로 환원하는 것이라 언급했다. 이 Schaffner와 Hull 사이의 논쟁은 차후, "반 환원주의 합의"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환원주의적 입장은 Kenneth Water의 중요한 논문들에 의해 부활했으며, 두 분야 사이의 인지적 관계(cognitive relationship)에 대한 논쟁은 지속되어 있다. 여하튼, 오늘날 질문은 단순히 환원주의-반환원주의를 선택하는 것이 초점이 아니다. 다중 실현 가능성(multiple realizability), 실현(realization), 매커니즘 등의 개념이 논의에 도입되고 활용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유전학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경과학이나 세포생물학에서도 중요하게 논의된다. 예컨대, Lindley Darden/Schaffner 등은 분자 셍물학에서의 설명은 하나의 존재론적 층위에 깔끔하게 고정되지 않으므로, 고전적인 예시(19세기 물리학에서 현상적인 [보일의] 기체 법칙을 분자 역학으로 환원할 수 있었던 과 같은)에서 나온 것 같은 환원 개념은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분자 생물학은 물질 과학에서 익숙한 방법을 따, 법칙의 체계나 수학적 모델에 기반한 거대 이론이 아니다.
대신 하나의 모델 유기체에서 드러난 고도로 특정화된 매커니즘이 하나의 "예시자"로 활용되어, 비슷하지만/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닌 다른 유기체가 가진 동일한/유관한 분자적 상호작용자를 설명하는데 쓰인다. Darden 등은 이들 "매커니즘"(특정한 종류의 개체들의 집합과 그들의 구분되는 역할)이 분자 생물학뿐 아니라 보다 다양한 특정 과학 분야에서 과학적 발견/설명의 기본적인 단위라 주장한다. 이는 매커니즘의 개념이 생물학의 다른 영역에 적절히 적용될 수 있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질문을 야기한다.

분자 생물학의 철학에서 중요한 다른 주제는 유전자의 개념이다. 철학자들은 유전적 정보(genetic information)에 관해 많은 양의 논문을 썼지만, 이들 논문은 대체적으로 분자 생물학자들이 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정도를 정당화할 정도로 정확히 이 개념을 재구성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예컨대, DNA는 실제로 의미론적 정보(semantic information)을 전달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는 유용한 픽션인가? 아니면 분자생물학을 방해하는 요소인가?

(6) 발생생물학의 철학

80년대에 일어난 적응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철학자들을 진화 생물학에서의 생물학적 특징을 설명하는 것과 발생 생물학에서 동일한 특징을 설명하는 것 간에 복잡한 상호관계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발생 생물학은 자연 선택에서 가능한 범위의 다양한 선택지들을 보여주며, 진화가 이들 선택지에 대한 자연 선택의 결과보다는 어느정도까지 가능했던 선택지들 중 하나를 고른 결과인지 질문을 제기한다. (이를 발생적 제제약[developmental constraints]라 한다 ; 자연 선택과 구분되어서 물리적 제약 혹은 발생 과정 상의 제약으로 나타나는 생명체의 한계) 발생적 제한을 둘러싼 논쟁은, 발생 생물학을 순전히 진화론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주는 것의 관점에서 본다.

하지만, Ron Amundson이 지적하듯, 발생 생물학자들은 그들 고유의 질문을 하고 있으며, 이들 질문을 다루기 위해서는 다른 "제약" 개념이 필요하다 주장한다. 90년대에 두 종류의 설명을 종합하는 것을 목표로 한 새로운 학문, 진화론적 발생 생물학의 출현은 이 학문을 방법론의 관점에서 특징지을 것을 목표로 한 철학적 논문이 나오도록 했다.
예컨대, 발생적 시스템 이론가들은 유전적 요소와 비유전적 요소 간의 "동등함(parity)"를 주장한다. 첫째, 유기체들은 유전자뿐 아니라, 발생적 장(developmental matrix, DNA를 제외한 다른 요소들 - 예컨대 환) 역시 상속 받는다. 둘째로 생물학적 특징의 발생에 유전자의 역할은 인과적으로 특별하지 않다. 사실 유전자는 "정보를 전달"하거나 같은 것을 "복제한다.'하지만, 이는 다른 요소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유전자와 (다른) 발생적 요인들은 인과적으로 생물이 가진 표현형의 특성에 동시에 작용하는 셈이다. 하지만 "확장된 복제자'(extended replicators)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유전자는 목적-의미론(teleosemnatic) 관점에서 독특한 정보를 전달한다 주장한다.

발생 생물학에서 일어나는 또다른 철학적 논쟁은 모든 생물학적 특성이 선천적인 것(innate)것인지, 선천성이란 무엇인지, 이다. 철학자들은 이 논쟁과 관련된 여러 개념들을 명료하게 만드는게 기여했다.

(7) 생태학과 보전생물학의 철학
이 영역은 최근까지도, 생물학의 철학에서 그다지 발전되지 않은 분야였다. 이는 놀라운 지점인데, 왜냐하면 이 분야는 생물학의 철학이 가진 세 가지 접근법에 기여할 명백한 잠재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환경윤리학에 관한 철학적 논문들이 상당량 있는데, 이 분야는 생태학/보전생물학의 관점에서 면밀한 검토를 요구하는 질문들을 탐구한다. 최근 20년 가량, 이 분야는 급속도록 발전했다.

철학자들은 생태학을 간과한 것에 대해 슬퍼하며, 이 분야에 관한 여러 책을 출간했다. 여러 논의들이 이루어졌는데, 생태학에서의 수학적 모델과 경험적 데이터 사이의 복잡한/문제가 있는 관계, 독립된 생태학적 법칙이 있는지, 생태학적 공동체와 생태계의 본질과 현실, 생태학적 법칙들의 견고성, 생태학적 안정성과 자연의 균형이라는 아이디어, 생물다양성의 정의, 생태학과 보존 생물학의 관계 등이 있다. 최근에는 생태학의 역할에 대한 흥미로운 논의 역시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생태학자들과 진화 생물학자들은 생태학적 공동체/생태계가 자연 선택의 단위라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연 선택의 법칙은 손쉽게 적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생태학의 철학자들은 다른 대안들을 탐구하고 있다.

(8) 생물학의 철학에서의 방법론과 미래

대부분의 생물학의 철학자들은 스스로 자연주의적이라 여기며, 내용이나 방법에 있어서 철학과 과학 사이의 단절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상적으로, 생물학의 철학은 생물학과 그 지적 기반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각자가 묻는 질문에 차이가 있다. 철학자들은 전문적인 수준의 생물학적 자료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대체로 생물학자보다 학문의 역사에 대해 보다 많은 지식을 가진다. 생물학의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대상이 되는 영역에 학계 자리를 갖는 경우와 긴밀히 협력하는 과학계 동료를 가지는 경우가 흔하다. 생물학의 철학이 가지는 자연주의와 과학과의 연속성은 다른 과학철학들, 특히 신경과학의 철학과 공유하는 내용이다.

때로는 생물학이 제기하는 질문과, 생물학의 철학이 제기하는 질문이 다른지도 명확하지 않다. 앞서 말했듯, 생물학의 철학자는 대체로 세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a) 과학의 본성에 관한 일반적 질문, (b) 생물학 내에서의 개념적 문제, (c) 생물학적 지식을 통해 전통적인 철학적 의문을 다루는 것. (b)와 같은 문제를 다룰 때, 생물학의 철학과 이론 생물학 간의 차이는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입장은 혹자로 하여금, 생물학의 철학자들이 "과학 저널리즘"이라는 자신들의 의무를 버렸다는 혐의를 제기하게 만들지 모른다. 이와 같은 말은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생물학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 기여한 바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말할 수 있다. [즉, 하나마나한 소리] 분명히, 철학자의 전문적 능력이란 내재적인 개념적 혼란만큼이나 다른 두 종류의 질문과도 관련되어 있다. 이 세 종류의 질문 모두 생물학의 특정한 발견과 복잡한 질문의 연쇄를 통해 연관될 수 있다.

생물학의 철학에는 새로운 다양한 시도들이 있다. 예컨대, 암, 문화적 진화(cultural evolution), 인간본성, 미생물학 그리고 고생물학 등에 관한 철학적 문헌이 있다. 생물학의 철학은 과학 철학은 물론 철학 일바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분야 중 하나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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