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예전에 석사 후기들을 올렸던 유시원입니다 (후기 1: 미국 철학 석사 느낀 점; 후기 2: 미국 철학 석사 느낀 점 2). 한국에는 미국 석사에 대한 정보가 너무 안 풀려있는 것 같아 글을 올리기 시작했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계속 올리게 됐네요. 이번에 석사를 졸업하게 됐고, 뭔가 더 적을 게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올리게 됐습니다. 저번에 여름을 시작하면서 글을 썼었으니, 여름 때부터 있었던 일을 적어야하겠네요.
2학년 여름
조지아 주립대학교에서는 1학년이 끝나고 나면 그 동안 썼던 과제 논문 중 하나를 정하고, 관련 교수님께 수락을 받으면 과제 논문을 입시논문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밟게 됩니다. 저는 1학년 때 헤겔의 Science of Logic 에 대해서 썼던 논문이 마음에 들어서 관련 교수님께 찾아갔고, 다행히도 지도를 수락하셨습니다. 5월 초에 학기가 끝나, 5월 중순부터 입시 논문 작업을 시작하게 됐네요.
입시 논문 작업은 매주 월요일마다 제가 논문을 써가면 화요일에 미팅을 하고, 그 다음 월요일에 다시 써오는 구조였습니다. 매 미팅마다 제 논문이 왜 부족한지 등을 알려주셨고, 7월까지는 매주 논문을 다시 써가면서 입시논문의 기반을 다져갔습니다. 그렇게 7월 중순이 되니 지도교수님께서 제 논문은 헤겔 학자들에게는 흥미로울 수 있겠지만 비헤겔 학자들에게는 너무 독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입시 위원회는 분석철학자들로 이루어져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여야하니, 제 논문을 분석 철학의 방향으로 잡으라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분석철학의 여러 저작들을 읽어가며 다행히 분석 철학의 방향으로 잡을 수 있었네요. 기억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이때 분석철학의 방향을 잡아가던 초기 형태를 올빼미의 Work in Progress Conference에서 발표를 했었습니다.
2학년 1학기, 그리고 입시의 시작
그렇게 가을이 시작됐고, 저는 수업 1개를 듣고 강의 3개를 하며 입시 준비를 하게 됐습니다. 굉장히 빡센 스케줄이었지만, 가장 큰 고민거리는 제 입시논문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입시논문 주제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헤겔의 악명높은 Science of Logic인 것도 모자라, 2차자료가 전무한 기계론에 대한 논문이었고, 기계론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면서 그 해석이 현대 철학에 기여를 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었으니깐요. 하지만 그때까지도 저는 기계론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없었고, 그러니 제대로 된 해석도, 제대로 된 철학에 기여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5월부터 9월초까지 매주 40시간씩은 입시 논문에만 투자했음에도 굉장히 불만족스러운 논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학기는 시작했고, 매주 최대 10-20시간 밖에 투자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업은 그렇다쳐도 무엇보다 강의에 시간을 썼어야했거든요. 수업에 시간 투자를 안 하면 저만 손해지만 강의는 학생들에게 영향이 가니깐요.
그러다 10월 초에 갑자기 큰 영감이 왔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이해가 안 돼오던 기계론이 어느 날 갑자기 이해가 됐습니다. 그 결과 저는 거의 반년 가까이 써오던 논문을 분석철학적 방향성만 유지한채 완전히 새로 썼고, 지도교수님께서는 완전히 다시 썼다는 것에 살짝 불편한 기색을 보이셨지만, 그래도 이렇게 다시 씀으로써 더 나아졌다고 덧붙이셨습니다. 그렇게 10월 중순부터 12월초까지 수정을 마무리하고 만족스러운 입시 논문을 낼 수 있게 됐습니다.
2학년 2학기, 그리고 입시 결과
2학년 2학기에는 여러모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조지아 주립대학교 막학기에서는 수업 세 개를 듣고 강의 두 개를 해야합니다.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따라갈 수 있는 스케줄이지만, 입시를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런 것들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업 리딩과 강의 채점 페이스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올해 입시는 최악이었다고 말을 합니다. 제가 지원한 학교 중 약 70%가 정상 인원을 받지 않았으며, 제가 지원한 탑20 중 정상인원을 받은 학교는 (정확히 말하면 정상인원을 받지 않았다고 듣지 않은 학교는) 다섯 군데 중 단 한 군데밖에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상인원을 받는 학교에서도 인원을 훨씬 보수적으로 뽑게 됐으며, 합격하기가 평소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제 해석을 적어보자면 이렇습니다. 작년 입시에서 펀딩 컷과 함께 받을 수 있는 학생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펀딩 컷에 영향을 받지 않은 학교들에서 평소와 같이 받을 수 있는 학생의 1.5 배에서 2배를 받았고, 평소 같으면 다른 학교에서 합격 결과를 받고 오퍼를 거절했어야할 학생들이 전부 오퍼를 수락하게 됐습니다. 비행기 오버 부킹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이지요. 하지만 비행기 오버 부킹과는 다르게 입시에서는 오퍼를 수락한 학생은 모두 받아야하기 때문에 그 다음 해, 즉 올해에서 입학 학생 수에 큰 제한을 둘 수 밖에 없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아주 많은 대학들이 작년에 너무 많이 받았단 이유로 입시를 진행하지 않거나 학생 수를 크게 제한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입시는 오버 부킹의 백래쉬 + 지속된 펀딩 컷의 영향으로 굉장히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 것 같습니다.)
이 때문인지 저는 13군데를 지원하고도 다음과 같은 결과를 받았습니다:
합격: 1
대기: 4
불합격: 8
합격을 한 곳은 제가 진학할지 확신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아마 진학을 하더라도 전학을 꾀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지요. 대기는 아쉬운 마음이 컸습니다. 왜냐면 대기를 받은 네 프로그램 중 세 군데가 정상인원을 받지 않았었거든요. 특히 그 중 두 군데는 그 결과 경쟁률이 100대 1을 상회했습니다. 특히 그 중 한 군데는 국제 학생을 위한 스팟이 4군데 밖에 없었지만, 국제 학생이 447명 지원했다고 해요. 그로 인해 저는 입시 위원회에게 "그래도 지원자 중 2% 안에 들었다" 라는 말과 함께 대기를 받게 됐습니다. 핑계일 수 있겠지만, "정상 인원을 받았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네요.
이러고 저는 입시 결정 데드라인 (4/15) 나흘 전까지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어요. 데드라인 이틀 전인 4/13에 두 군데에서 불합격 통보가 왔고, 결국 남은 것은 대기 두 군데 밖에 없었어요. 대기 중 한 군데는 딱히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나머지 한 군데는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요. 대기 학생을 위한 버츄얼 투어도 했었는데 굉장히 마음에 들었었거든요. 다행히도 4/14에 제가 가고 싶었던 대기 프로그램인 UC Riverside에서 합격 통보가 왔고, 바로 통보를 수락했습니다. UC Riverside의 입학사정관분과 같이 줌 미팅을 하면서 펀딩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UC Riverside가 정상인원 (4명) 을 받았음에도 상황이 이렇다보니 원래 뽑혀야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를 주게 됐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위안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석사 후기인 만큼 조지아 주립대학교의 placement를 적자면: 피츠버그 대학교 HPS (1), UC Riverside (1), 오하이오 주립대 (1), 밴더빌트 (1), 신시네티 (2), 테네시 (1), 아이오와 대학교 (1), SUNY Albany (1)가 있네요. 올해 입시가 너무 빡셌던 걸 고려하면 실망스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만족합니다. 특히 재수나 전학을 생각하다가 행선지가 정해졌으니 더더욱이요. 이제는 행선지가 정해졌고, 당분간은 마음을 놓고 아무런 assistantship duty가 없이 철학 공부에만 전념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박사에 대해서는 풀린 정보가 많으니 굳이 적을 것 같진 않네요. 그 동안 석사 관련 글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로써 미국 석사를 진학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정보가 많이 풀리고, 감도 많이 잡혔길 바랍니다. 댓글로 질문 써주시면 다 답해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올빼미에서 종종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