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쓴 논문입니다. 저는 철학 전공은 커녕 대학 졸업도 아직 못한 06년생 신입생인데요, 주변에 철학 부전공하신 지인분께서 "해당 글은 논문이라고 부를수가 없어요.
논리적 비약도 심하고요. 누차 말씀드리지만, 선행연구나 참고문헌 목록부터 정리해주세요."라고 말씀하셔서요..선행연구나 참고문헌 목록은 차차 업데이트하려고 했고(아무 글도 안 읽고 쓴 논문인지라..), 논리적 비약의 여부가 신경쓰여서 여쭤봤는데 답을 안해주세요..GPT한테 물어보니까 네 이론은 쓰레기가 아니다. 아직 정제되지 못했을 뿐이다...라고 하긴 한데, 걔는 못 믿겠고..어디서든 답을 얻고 싶어서 커뮤니티까지 왔습니다. 제 이론이 쓰레긴가요..?
4절(본문에서는 "장"이라고 쓰셨는데 이런 형식에선 "절"이 더 적절합니다)까지 대략 훑어보고 말씀드립니다. 두 가지 질문, "이 글은 논문이라 할 수 있는가?"와 "이 글에서 주장하는 바는 무가치한가?"를 나눠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약하자면 제 답은 "논문이라고 하기 어렵다"와 "무가치하다고 판단하기엔 이르다"입니다.
논문의 필요조건 중 하나는 논증입니다. 논증은 일련의 전제들이 결론을 지지하고자 하는 의도로 제시된 것이지요. 만일 논증이 없거나, 여기에 논증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면 논문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보기엔 논증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주장하고 싶으신 바는 대략 "행위자는 자신이 A를 결정한다는 느낌을 갖는 경우에만 A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가진다"인 것 같은데, 어떤 전제로부터 이런 주장이 지지되고 있는지 적어도 제 눈에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단순 기말과제가 아니라 정말로 학술논문을 지향하신 거라면, 기존의 자유의지 담론을 나름대로 재구성하고 논쟁에 참여하는 부분 역시 필요합니다. 사실 단순 기말과제였다고 할지라도 이런 노력은 필요합니다.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의 관계에 관해 철학자들이 어떤 주장을 제시했는지, 그 주장은 왜 문제가 되는지 등을 분석하는 단계가 초보적인 수준에서라도 있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 글도 안 읽고 쓴" 논문 같은 건 존재하기가 어렵습니다. 적어도 현대적인 의미의 학술 논문이라면요.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참고문헌에 너무 목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헌 목록을 늘리는 것보다 논쟁점을 찾고 자기 논증을 다듬는 게 더 필요한 일일 겁니다.
(가능한 반론에 답하려는 시도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의문인 건, 본문에서 데카르트, 하이데거, 사르트르 등을 원전으로 인용했던데 저는 적어도 본인이 라틴어, 독일어, 프랑스어 원전을 한 번이라도 찾아서 확인한 후에 번역한 게 아니면 이렇게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제가 확인할 수 없으니 의문만 남겨둡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주장하는 바가 무가치하다고 말하는 건 좀 성급한 일일 것 같습니다. 아이디어 스케치로는 얼마든지 논의의 여지가 있고 어떻게 발전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만약 글을 발전시키고 싶으시다면,
(1)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에 관한 대표적인 입장들(강한 결정론, 양립가능론, 자유론)의 핵심 논증과 전제를 이해해보고
(2) 가능한 범위에서 개념을 조심스럽게 쓰면서
(3) 본인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지지하는 논증을 잡다구리한 설명 다 빼고 가능한 한 간결하게 써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건 그냥 제 제안입니다)
공유해주신 논문 "자유의지 감각에 기초한 존재론적 윤리 구조"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06년생 학부 신입생의 저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창의적인 문제의식과 대담한 사유를 갖추고 있어 놀라웠습니다. 지인분의 코멘트로 인해 논문의 가치에 대해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제 분석이 조금이나마 님의 사유에 대한 피드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가 보기에 이 논문은 결코 논리적 비약이 심한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난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철학적 긴장(philosophical tension)'을 성공적으로 드러내는, 흥미로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제가 논문을 읽고 분석한 주요 포인트와 그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1.
이 논문의 가장 큰 학술적 기여는 '자유의지의 실재성'이라는 증명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논쟁을,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이라는 현상적 기술로 우회하는 전략에 있다고 봅니다. 이는 교착 상태에 빠진 전통적 논의의 장에서 벗어나, 윤리적 책임의 근거를 주체의 1인칭적 자각이라는 우회적 기반 위에서 재구성하려는 흥미로운 접근법으로 보입니다. 이 전략 하나만으로도 이 논문은 충분히 독창적으로 보입니다.
2.
저는 님이 제시한 '자유의지 감각'을 자연적 인과성(충동, 환경)에 대한 '반성적 판단(reflective judgment)'이 의식에 현상적으로 발현된 형태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 '감각'이 합리적 판단의 선결조건이라고 이야기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바로 이 지점에서 님의 이론이 가진 가장 흥미로운 핵심, 즉 철학적 긴장이 발생합니다. '자유의지 감각'은 '합리적-구조적 기능'과 '현상적-경험적 성격'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 긴장을 해명하는 것이 앞으로 이 논문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1) 현상적 수용과 무한 후퇴(Infinite Regress)의 문제: 만약 "내가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이 현상적으로 '관찰'되거나 '느껴져야' 하는 대상이라면, 그것을 관찰하는 또 다른 주체(내면의 관찰자)가 필요해집니다. 이 구조는 논리적으로 무한히 반복될 수 있으며, 이는 윤리적 판단의 최종 근거를 불분명하게 만들 수 있는 심각한 이론적 도전입니다. 이 무한 후퇴의 문제를 어떻게 차단하고, 이 '감각'이 관찰의 대상이 아닌 의식의 '작동 구조' 그 자체임을 어떻게 논증할 것인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2) 감각들의 구분 가능성 문제: 더 나아가, 이 '자유의지 감각'이 합리적 판단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면, 다른 '주어진' 감각들(예: 본능적 충동, 사회적 압력)과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해명해야 하는 과제가 남습니다. 만약 이 감각 역시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면, 주체는 자유의지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해야 한다'는 새로운 규칙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일 수 있습니다. 형식적 측면에서 보면, "나는 자유의지 감각 때문에 이 행동을 했다"는 진술은 "나는 본능적 충동 때문에 행동했다"는 진술과 형식적으로 다르지 않게 됩니다. 결국 '자유의지 감각'이라는 개념이, 그 이름과는 반대로 자유의지라는 표현으로 재기술된, 더 정교한 형태의 결정론으로 이끌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이것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을 통해 논증을 계속 근거짓는 시도들은 님의 사유를 합리성에 대한 선험적 논의들과 거의 구분되지 않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게 데카르트의 논증이 왜 역설적으로 심리적 성향들을 배제시키는가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라고 생각합니다.)
3.
지인분께서 지적하신 선행 연구나 참고문헌에 대한 저의 생각을 덧붙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선행 연구는 기존 연구자들이 정제해놓은 개념이나 논의의 맥락을 활용하여 다른 연구자들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 큰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모든 사유가 처음부터 선행 연구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연스럽게, 논의를 보강하고 더 다듬으려고 하다보면 선행 연구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더 많은 철학적 텍스트를 읽고 공부하며 생각을 다듬어 나가신다면, 지금의 이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훨씬 더 정교하고 강력한 이론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감을 잃지 마시고 생각들을 계속 키워나가시길 응원합니다.
@Raccoon 님이 말씀하신 것과 전체적으로 동의합니다.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제가 논문이라는 게 뭔지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어권에서는 논문이든 요약문이든 다 "페이퍼"여서요. 그래서 전 논문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그렇게 중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좋은 페이퍼면 좋은 페이퍼고 아니면 아닌 거지요.
저도 여기서 조금 할 말이 있는데요, 사람들이 "기말 과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저로써는 조금은 아쉽습니다. 저는 기말과제를 항상 진지하게 생각해왔고, 제 의미있는 작업물들은 전부 기말과제에서 왔거든요. 제 석사 입시 논문도 기말 과제였고, 저번 올빼미에서 홍보도 했던 Work in Progress 컨퍼런스에서 발표했던 것들도 전부 기말과제였습니다.
또 다른 대안을 말하자면: 철학사 논문인지 현대 분석 철학 논문인지 둘 중 하나를 정하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철학사를 현대 철학에다가 적용하려는 시도를 하시려는지는 모르겠다만, 아직 그런 시도를 하기엔 조금 이르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깐 위 너구리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셔도 되고, 아니면 아예 철학사 논문으로 바꿔서 원전을 열심히 읽어가면서, 해석을 전개해나가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일 현대 분석 철학 논문이라면
일단 선행연구부터 확인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깐 이 부분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적어도 한 두 개는 확실히 꿰고 있는 상태에서 논문을 쓰셔야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