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 님, @Herb 님의 날카로운 지적에 대한 답변 잘 읽었습니다. "인간의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대상을 고려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가능하다"는 말씀이, 마치 차머스가 '논리적으로 가능한' 좀비를 상정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들려 흥미롭습니다. 다만, Herb님의 비판의 핵심은, '대안적 관점'이 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인간인 우리가, 인간의 관점이 아닌 관점을 취하는 것" 자체가 "총각이 아닌 총각"처럼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형용모순이라는 점인 것 같네요.
가령 논점을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 물자체에 관한 관점과, 물자체를 보는 관점으로 나눠볼 수 있을듯 합니다. 전자인 '물자체에 관한 관점'은, "신(神)과 같이 인간의 인식 조건(현상)을 벗어난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아마도 사물을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파악할 것이다"라는 식의, 대안적이지만 논리적으로 가능한 사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개념적으로 모순은 아닙니다. YOUN님께서 말씀하신 "'논리적으로는' 다른 관점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종류의 사변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이 관점에서 '물자체'에 관한 관점은 불포화된 개념이라 판정가능성의 측면에서는 단지 타당한 관점입니다.)
그러나 Herb님이 비판하는 것은 후자, 즉 '물자체를 보는 (우리의) 관점'입니다. 이것은 "유한한 인식 조건을 가진 인간인 우리가 , 바로 그 유한한 조건을 벗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물자체로)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결혼한 총각"처럼, 주어('인간인 우리')와 술어('인간의 조건을 벗어나 본다')가 서로를 부정하는, 따라서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한 형용모순입니다.
YOUN님께서는 이 둘을 동일시하여, 전자의 논리적 가능성을 후자의 개념적 불가능성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시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만약 하이데거가 정말 '두 측면 해석'을 지지한다면, 이는 하이데거에게 '존재'란, 바로 이 논리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응답해야만 하는, 일종의 모순적 결단에 속하는 영역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 혹은 대안적 현상, 대안적 존재자이거나요.
(재미있게도 저번에 @Astrantia 님이 제시한 논의와 관련이 있는것 같아 내용 인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