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Astrantia님.
공유해주신 논문 "자유의지 감각에 기초한 존재론적 윤리 구조"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06년생 학부 신입생의 저작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창의적인 문제의식과 대담한 사유를 갖추고 있어 놀라웠습니다. 지인분의 코멘트로 인해 논문의 가치에 대해 고민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제 분석이 조금이나마 님의 사유에 대한 피드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가 보기에 이 논문은 결코 논리적 비약이 심한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난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철학적 긴장(philosophical tension)'을 성공적으로 드러내는, 흥미로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제가 논문을 읽고 분석한 주요 포인트와 그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1.
이 논문의 가장 큰 학술적 기여는 '자유의지의 실재성'이라는 증명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논쟁을,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이라는 현상적 기술로 우회하는 전략에 있다고 봅니다. 이는 교착 상태에 빠진 전통적 논의의 장에서 벗어나, 윤리적 책임의 근거를 주체의 1인칭적 자각이라는 우회적 기반 위에서 재구성하려는 흥미로운 접근법으로 보입니다. 이 전략 하나만으로도 이 논문은 충분히 독창적으로 보입니다.
2.
저는 님이 제시한 '자유의지 감각'을 자연적 인과성(충동, 환경)에 대한 '반성적 판단(reflective judgment)'이 의식에 현상적으로 발현된 형태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 '감각'이 합리적 판단의 선결조건이라고 이야기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바로 이 지점에서 님의 이론이 가진 가장 흥미로운 핵심, 즉 철학적 긴장이 발생합니다. '자유의지 감각'은 '합리적-구조적 기능'과 '현상적-경험적 성격'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 긴장을 해명하는 것이 앞으로 이 논문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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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상적 수용과 무한 후퇴(Infinite Regress)의 문제: 만약 "내가 선택하고 있다"는 감각이 현상적으로 '관찰'되거나 '느껴져야' 하는 대상이라면, 그것을 관찰하는 또 다른 주체(내면의 관찰자)가 필요해집니다. 이 구조는 논리적으로 무한히 반복될 수 있으며, 이는 윤리적 판단의 최종 근거를 불분명하게 만들 수 있는 심각한 이론적 도전입니다. 이 무한 후퇴의 문제를 어떻게 차단하고, 이 '감각'이 관찰의 대상이 아닌 의식의 '작동 구조' 그 자체임을 어떻게 논증할 것인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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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감각들의 구분 가능성 문제: 더 나아가, 이 '자유의지 감각'이 합리적 판단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면, 다른 '주어진' 감각들(예: 본능적 충동, 사회적 압력)과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해명해야 하는 과제가 남습니다. 만약 이 감각 역시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면, 주체는 자유의지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해야 한다'는 새로운 규칙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일 수 있습니다. 형식적 측면에서 보면, "나는 자유의지 감각 때문에 이 행동을 했다"는 진술은 "나는 본능적 충동 때문에 행동했다"는 진술과 형식적으로 다르지 않게 됩니다. 결국 '자유의지 감각'이라는 개념이, 그 이름과는 반대로 자유의지라는 표현으로 재기술된, 더 정교한 형태의 결정론으로 이끌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이것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을 통해 논증을 계속 근거짓는 시도들은 님의 사유를 합리성에 대한 선험적 논의들과 거의 구분되지 않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게 데카르트의 논증이 왜 역설적으로 심리적 성향들을 배제시키는가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라고 생각합니다.)
3.
지인분께서 지적하신 선행 연구나 참고문헌에 대한 저의 생각을 덧붙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선행 연구는 기존 연구자들이 정제해놓은 개념이나 논의의 맥락을 활용하여 다른 연구자들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 큰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모든 사유가 처음부터 선행 연구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연스럽게, 논의를 보강하고 더 다듬으려고 하다보면 선행 연구들을 살펴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더 많은 철학적 텍스트를 읽고 공부하며 생각을 다듬어 나가신다면, 지금의 이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훨씬 더 정교하고 강력한 이론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감을 잃지 마시고 생각들을 계속 키워나가시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