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불교적 '연기'개념에서 필연성이 나온 이유는 이러합니다. 저는 불교에서의 연기를, 모든 존재가 상호 유기적으로 원인이되고, 결과가 되는 그러한 작용으로 이해했는데요. 그것을 살짝 다르게 표현해보자면, 조건이 있기 때문에-결과가 있다.
필연성이 존재한는가에 대한 의문은 조건-결과 기반의 세계관에서, 그렇다면, 세상이 조건-결과로 이루어진것이고, 결과는 다시 조건이 된다면, 결국 세상은 수도없이 많은 조건들로 인해 결정지어진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결국 시간이란 축까지 고려했을때, 하나로 이미 완결난 그림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세상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이처럼 세계의 필연성을 상정하면, 기존의 도덕이라는것이 더욱 허상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불완전하고,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의 윤리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제가 이러한 세계관 속에서도 윤리를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음 적절한 답변이 되셨다면 좋겠네요. 더 많은 질문과 궁금증은 적극 환영입니다! 감사합니다.
추천해주신 책은 입시 끝나고 꼭 읽어볼게요!
불교도 분파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연기(緣起)' 개념은 대체로 '무자성(無自性)' 혹은 '공(空)'이라는 사상의 근거로 제시됩니다. 모든 것이 '연기'라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면, 어떠한 것도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 고정된 '자성(自性)' 혹은 '본질'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어떠한 것도 이런 '자성'이나 '본질'이 없다는 것은, "반드시 이러이러하다."라고 할 만한 필연적인 대상이나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교는 "반드시 이러이러하다." 혹은 "반드시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필연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하죠.
불교에서 연기가 공 사상의 근거로 제시되고, 이러한 연기 사상이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주장이 연기임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필연성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본질'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이 인과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 연기사상 이전에 공 사상이 있는 것이 아니듯, 연기사상을 내새우기 위해서는, 원인과 조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꼭 하나의 물리법칙이 아니더라도, 각자 다른 법칙을 따르더라도, 절대적인게 아니더라도, 원인,조건은 연기적 세계관의 근본 같은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인과가 있다면, 그렇게 무수한 조건들에 의해 결과는 고정된것과 마찬가지, 이것을 저는 필연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필연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은 맞습니다. 그야 불교에서는 모든 집착을 내려놓으라고 했으니까요. 애초에 불완전한 인간인 이상 자신이 믿는것을 필연이라고 생각하는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행위가 이전의 수많은 조건들로 인해 결정된 상태라는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불교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그리 많지 않으니 오류가 있다면 얼마든지 짚어주세요!)
전 불교에 대해서 잘 몰라요. 제가 저걸 언급한 이유는 @Sari_42 님의 논증에 딱히 도움이 되진 않는 것 같아서 그런거였어요. 결국에 형이상학적 필연성이면 어찌어찌해야한다라는 주장을 하시는 건데, 불교에 대한 논의가 도움이 되진 않는 것 같아요. 특히 윤님처럼 반대를 할 사람도 있고요. 그렇다면 득은 없는데 실만 있는 상황이죠 (그래도 불교와의 연관성을 완전히 지우고 싶진 않습니다. Galen Strawson이란 사람이 얼추 비슷한 생각을 하는데 그 사람도 불교고, 그 사람의 불교적인 믿음이 그 논문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물론 이 보고서에서 언급을 해야하는지는 별개의 이유겠죠).
근데 앞서 말했듯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아보입니다. 말 그대로 빼거나 주석으로 넣으면 되니깐요. 지금은 반박할 논문을 찾아나서는 게 더 중요해보입니다. 윤님도 문헌 추천을 해주셨고요. 그리고 원하시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형이상학적 필연성 이 꼭 중요한지 생각을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만일 형이상학적으로 필연적이지 않은 결정론적인 세상이면 어떨지 등의 문제 말이에요. 또, 세상이 결정론인지의 여부가 정말 중요한지, 비결정론적인 세상이더라도 @Sari_42 님의 결론을 유지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결정론과 필연성에 대해서 예전에 간략하게 적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좋은 자료와 다양한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현재 저의 글이 가지고있는 여러 구조적 취약점들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정리를 하고 생각을 구조화 한다고 해도 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ㅎㅎ 사상적 뿌?리 같은 느낌인지라.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다음에 정리할때는 좀더 연결 구조를 탄탄하게 해서 오해의 소지가 없게 만들어보겠습니다! 사실 이번에 정리한 글이, 행동에대한 원칙을 새운다기 보다는, 여러 사상가들의 공부를 통해 형성된 '저'의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늘어놓아 보기 위해 쓴 느낌도 있어서 맥락이 좀 어색한 부분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YHK님 말씀처럼 다른 논문들도 읽고 비판해가며 견문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입시 끝나고요ㅎㅎ)
아, 추가로, 형이상학적 필연성 이야기가 많이 나오길래 조금 찾아봤는데, 제가 생각한 필연성하고 다른사람들이 말해온 혹은 제가 배운 사상가들의 필연성하고는 조금 다?른 맥락 같더라고요. 완전 다른건 아니긴 한데..
아무튼 이에대해 지피티군이 좀 정리한개 있어서 이게 맞는지 조금 확인을 부탁드리겠슴다
어...죄송한데 혹시 형이상학적 필연성이랑 결정론은 완전히 다른 개념일까요? 전 스피노자가 말한 필연성에서 결정되어있다라는 맥락에서 필연이라는 워딩을 사용한거긴 해서...
어쩌면 스피노자에대한 얕은 이해가 부른 오해일수도 있겠네요 허헣
아래에 구리님 말씀에 따르면 저는 기계적 결정론을 믿고있는 쪽이긴 합니다.
혹시 두개의 차이점에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필연성이란 개념이 많이 복잡하긴 합니다. 일단은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결정론이 사실이라고 해봐요. 그럼 빅뱅 이후부터 모든 것이 정해져있었겠죠. 하지만 상황이 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빅뱅이 다른 방식으로 일어났다던가, 아니면 자연법칙이 달랐다던가, 등등이요. 예를 들어 저는 지금 타자를 치고 있어요. 하지만 어떤 세상속에는 제가 타자를 치는 게 아니라 책을 읽고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다시 말하면 제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제가 타자를 치는 것은 필연적이지 않아요. p가 필연적이라는 건 p가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타자를 치는 것은 이미 결정론에 의해 정해졌지요. 그렇기 때문에 결정론적으로 p라고 해서 꼭 필연적으로 p일 필요는 없습니다. 스피노자도 언급하셨는데, 스피노자 학계에서도 스피노자가 결정론자라는 건 다 동의하지만 스피노자가 필연론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논쟁이 많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결정론 = 기계적 결정론 = 강한 결정론"이라는 공식은 처음 들어보고 정확한 서술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의외로 가능성이 도덕성과 많이 연결됩니다. 결정론이 사실이더라도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 책임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예: 데이빗 루이스, 비벨린, 파라 등등). 철학 연구자가 되고 싶으시다면 무시할 경우의 수는 아닙니다. 또, 왜 애초에 @Sari_42 님께서 필연성이란 단어를 썼는지 생각해보세요. 다른 경우의 수가 있다는 것과 도덕성의 관계를 봐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또, 결정론의 여부가 정말 중요한지, 즉 비결정론적인 세상에서도 @Sari_42 님의 결론을 유지할 수 있는지도 한 번 생각해보셔요. 그 부분에서도 이런저런 논쟁이 많습니다 (넬킨, 갈렌 스트로슨,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