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철학의 목표는?

현대철학이 언어철학이라고 하지만 공감하기 어렵다. 언어철학은 뜻과 지시체 등을 다루지만 일반 언어 사용자는 둘의 구별없이도 소통에 문제가 전혀 없다. 철학이기에 기본적인 것을 다룰 수도 있지만 이보다도 더 가치있는 언어철학의 주제는 없는가? 언어공학이라고 할 수 있는 예를 통해 언어 철학에서 얻고자 하는 바를 살펴보자.

발전소에서는 사건이 발생하면 기억에 의존하지 말고 절차에 따라 대응하도록 요구받는다. 이 일련의 과정을 위해 절차서가 구비되어 있다. 기술 발전에 따라 이제까지 종이에 기록된 절차서가 차츰 모니터에 표시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모니터에서는 종이보다 문장을 인식하는 역량이 줄어들므로 모니터의 장점을 활용한 절차서 방식이 요구된다. 우리는 절차서를 전산화시키면서 쉽게 인식되고 단계를 누락하지 않고 수행할 절차서 표현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절차는 일의 순서이기 때문에 순서도로 나타내면 좋다. 그러나 절차는 발전소 현재 상황에 따라 다양한 수행 경로가 제시되기 때문에 일의 순서를 표시하는 화살표가 많고 서로 교차하기 쉽다. 화살표가 교차하면 인간의 인식능력은 엄청나게 떨어진다. 교차없는 활살표 그래프를 얻기 위해 절차를 체계화 해야했으며 나중에 우리가 발명한 그래프가 프레게의 개념표시법과 유사함을 알았다.

우리가 흐름논리도로 명명한 이 그래프로 절차서를 작성하면 운전원들은 만족해한다. 국내 원자력발전소에는 이 그래프로 작성된 절차서가 도입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해외에도 수출했다. 그런데 미국 운전원들이 흐름논리도 도입을 거부하고 전통적인 Text 표현 방식을 선호했다. 우리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단계를 누락하지 않고 수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발명시 쳐다보지도 않았던 프레게의 개념 표기법, 오스틴의 Speech Act를 인용하면 설득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절차서의 설계 역무가 우리에게 부여되어 있으니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Text 기반 절차서를 설계하여 주었고, 우리는 한 제품에 두 개의 설계를 제공하고 두배의 이익을 챙겼다.

절차서를 전산화시키다 보면 일반 논리학을 확장해야 한다. AND, OR, Exlusive OR, n out of m Logic, Sequence AND, Sequence OR, If then else의 논리 연산자가 적용되고 모든 문장은 진리값을 지녀야 한다.

진리값을 가지는 문장을 보통 명제라고 하지만 절차서에서 문장은 참/거짓/모름의 3가지 상태를 지닌다. 모름 상태에서는 문장을 수행하는 운전원이 각종 정보를 참조하여 문장의 참/거짓으로 결정시켜 준다. 사실 절차 수행은 모름을 해소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문장이 진위값이 결정되면 다음에 나아갈 단계로 나타난다.

의문문은 일반적으로 참거짓을 지닐 수 있다. 그런데 절차서에 나타난 명령문은 어떻게 참/거짓을 지닐 수 있는가? 이것은 보기보다 쉽다. 이 명령을 수행하면 참이 된다. 모든 문장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뇌상태를 변화시키는 문장이다. 자신의 뇌나 동료의 뇌도 변화시켜야 한다. 문장대로 세상이 변화되거나 뇌가 변화되었으니 문장은 참이 된다. 부드럽게 표현하면 의사소통이 완료 되면 문장은 참이 된다.

이상은 절차서에 적용된 언어공학이다. 일반적인 논리학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확장시켜고 변화시켰다. 문장의 진리는 사태와 일치일 뿐만 아니라 세상과 뇌상태를 변화시키는 활동이다. 수십 페이지에 해당되는 절차서 문장은 논리 연산자와 원자적 문장으로 환원될 수 있다. 컴퓨터에 자동으로 절차서를 수행하라고 하면 컴퓨터는 발전소 상황에 따라 절차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한다.

라이프니츠나 프레게는 자연언어로 기술된 문장을 논리기호로 표시하기를 희망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 절차서 언어는 두 사람의 목적을 부분적으로 성취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미흡하다고 느낀다. 현대의 언어철학이 학습과 세태에 따라 매년 바뀌는 어휘에 집착하는 듯 보인다. 더 실용적인 언어 현안은 없는가? 가령 절차가 아닌 논문을 논리 기호로 표시할 방법이 있는가?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가? 정말 이런 문제들이 언어철학으로 풀릴 문제들인가? 이것이 라이프니츠나 프레게가 소망했던 숙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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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철학 입문은:

  1. 철학 논문 하나 혹은 두 개를 읽고
  2. 요약 후 반박 제기

의 방식으로 흘러갑니다. 보통 3페이지 정도를 적고, 3페이지를 적는다면 2 페이지 요약 1 페이지 반박 정도로 써집니다. 그리고 시작할 때는 흔히 말하는 "세줄 요약"을 하면 좋습니다. "누구누구는 이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난 이 사람이 이래서 틀렸다고 주장하겠다. 첫번째, 이 사람의 이런이런 주장을 설명하겠다. 두번째, 이 사람의 주장에 이런 이런 반박을 제시하겠다." (입문이라고 써놨지만 철학 연구에서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진행을 한다면

와 같은 overly broad한 주장보다는 조금 더 철학 학계의 맥락과 맞는 주장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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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논문 발표와 다르게 네이버에서 열린연단은 발표자외에 반론자를 지정하더라고요. 좀 특이하다고 느껐지만 의미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동일하게 논문을 요약하여 비평하는 태도는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이 방법일 수는 없지요. 철학의 방법이라고 여기면 그 말도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철학이 철학분야 자체만의 힘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므로 또 다른 방법을 무시할 수는 없지요. 저는 논문 읽는 것을 즐겨하는 편은 아니지만 sci논문 2편을 발표했습니다. 기업체에 다니면서 논문 발표도 쉽지 않습니다.
님처럼 논문 읽고 설명하여 주시는 분들의 혜택을 보았지요. 고마운 분들이지만 좀 게으른 사람들도 살아가야지요.

철학을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고, 말씀하신대로 철학이 다른 학문의 방법론을 채택하면서 모험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하면서 모험하기 전에 어느 정도 기본기가 있어야 그 방법들이 유효해집니다. 바이올린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사람이 새로운 주법을 내놓는다고 사람들은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본기를 키우는 가장 표준적인 방법은 논문 요약 - 반박의 형태로 글을 써보는 것입니다.

또, 주장하시는 바가 overly ambitious해보입니다. 이공계시니 이공계의 언어로 말씀드리자면 삼각형 넓이를 계산 못하는 사람이 르벡 적분에 대한 새로운 파라다임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f(x) = x 그래프를 그릴 줄 모르는 사람이 바나흐-타르스키 역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물론 연섭님의 자유겠지만, 지금대로 간다면 이 웹사이트에서 제대로 된 교류가 있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제 무지에 의해서 이렇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으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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