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스토크라시

제가 요즘 보는 글에서 로토크라시에 대한 설명이 잘 나와있어서, 내용을 정리한 글을 업로드 합니다. 서강올빼미에서는 이미 한 번 로토크라시에 관한 글이 업로드된 적이 있습니다.


선거제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시민을 대표하는 방식을 포함하여 정치적 대표[대의, 재현]를 다루는 이론들이 발전하고 있다. 이 발전의 배경에는 선출된 대표, 정당, 그리고 의회와 같은 전통적인 대표 기관이 시민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신뢰 수준의 하락이 있다. 신뢰 수준의 하락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1) 선출된 대표는 주로 엘리트 집단에서 탄생하며, 그들은 대개 일반 시민과 닮지 않았다. (2) 정치적 의제를 발전시킬 때, 선출된 대표는 일반 시민의 이해 관심보다는 경제적 유력 인사의 이해 관심에 반응한다(responsive to).

일련의 규범적 이론은 선거를 통한 대표제를 비판하며 입법자(국회의원)를 선택하는 더 나은 방법으로서 또는 선거에 대한 필수적인 보완책으로 추첨제를 제안한다. 이들의 선거를 통한 대표제 비판은 다음의 두 가지 근거에 기초하고 있다: (1) 선거가 엘리트주의적 경향 덕분에 채택되고 옹호되었다는 사실을 수정주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2) 대의제 기관의 과두제화를 경험적 증거를 통해 알 수 있다.

마냉의 수정주의 역사 분석에 따르면, 사실 역사적으로는 추첨제를 통한 선발이 민주주의의 핵심이었고, 반면 선거는 귀족주의나 과두제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선거가 기본적으로 공익에 부합하는 합리적이고 좋은 정책을 추구하기 위한 ‘가장 뛰어난 사람’을 구별하는 선출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때, 그 가장 뛰어난 사람이 대개 부유한 계층에서 배출되었다는 사실은 별로 관심을 받지 못했는데, 특정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반드시 그 계급 출신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1) 대표자들이 일반 시민과 전혀 다르며, (2) 평범한 시민들의 이해 관심을 위한 정책 의제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경험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이하의 두 근거에 기반한다:

(1) 모든 자유 민주주의가 공직에 출마할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지만, 후보 자격과 선거에 접근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교육적, 그리고 정체성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모든 민주주의 체계에서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공직에 출마하고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 저소득·중산층 유권자들의 의견 및 이해 관심이 그들의 대표자의 정책 의제나 지지하는바 등 사이에 괴리가 발견된다. 그리고 기업과 금융계의 로비와 입법 정책 의제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음도 발견된다. 게다가 대표자가 일반 시민의 이해 관심에 반응하지 않고 경제 엘리트의 이해 관심을 추구할 때, 우리는 그들을 쫓아내고 잘 대표하는 행동을 장려하는 소명 책임 시스템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책 의제는 너무 복잡하며 대개의 일반 시민은 어쩔 수 없이 무지의 상태에 있어서 엘리트를 쫓아내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엘리트는 심지어 일반 시민이 아니라 부유층이 선호하는 정책 의제를 추구한 것에 대한 처벌을 피하는 방법도 안다.

지금까지 설명한 대의제의 위기에 대한 평가가 적절한지 누군가 물을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1) 후보자 선발, 의제 설정 그리고 반응성을 기준으로 현존하는 대의제 기관들이 어느 정도로 과두제적인가? (2) 시민들은 현존하는 대의제 체제가 어느 정도로 부자에게 편향되어 있다고 느끼는가? 두 가지 평가에 대한 정답은 “어느 정도는”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중요하다. 누군가는 선거를 통한 대의제적 기관의 민주적 정당성을 완전히 위협한다고 느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대의제의 과두제적 경향을 인정하면서도 선거를 완전히 없애지 않고 그것을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 이론 내에서는 경쟁적인 선거가 본질적으로 부자를 선호하기에 정치적 평등을 매우 빈약하게 구현하며, 선출된 대표하는 의회가 언제나 과두제로 가는 미끄러운 비탈길에 있다고 확신하는 계열이 성장하고 있다. 이렇게 선거제를 우려하는 입장이 새로운 것은 아니나, 로토크라시(추첨제 민주주의; Lottocracy)를 선거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그들은 총 세 가지 이유에서 추첨제가 선거보다 더 낫다고 주장한다: (1) 추첨제는 정치적 평등을 더욱 잘 구현한다; (2) 추첨제는 더 바람직한 대표성의 이상을 구현한다; (3) 추첨제를 통해 꾸려진 의회의 숙의가 선거를 통한 의회의 숙의보다 실질적으로 더 낫고, 더 나은 결과를 낳기에 추첨제가 선거보다 인식론적으로도 우월하다. 세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이 구체화된다:

(1) 추첨제는 선거와 달리 시민들 사이에 어떠한 구별을 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추첨제는 누구나 같은 당첨 확률을 갖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추첨제는 ‘누구나 권력 행사에 대한 평등한 접근 권한을 가져야만 한다’라는 의미의 정치적 평등을 구현한다. 게다가 선거제보다 더 잘 구현한다. 왜냐하면 선거는 단순히 유권자 선발의 수준에서 편향되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경쟁 선거인 이상 본질적으로 돈, 캠페인, 외모 등과 연결되기 때문에 정치적 평등을 잘 구현하지 못한다. 반면 추첨제는 그러한 것들과 관계가 없다.

(2) 추첨제는 입법자들을 무작위로 선발하기 때문에 마치 대표 표본 조사(Representative survey sample)처럼 거울 역할을 함으로써 인구 전체의 단면(cross-section)을 재생산한다. 이로써 입법자들은 일반 시민과 같아진다. 반면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입법자들은 대개 일반 시민과 매우 다르다.

(3) 추첨제를 통해 꾸려진 의회의 숙의는 선거를 통한 의회의 숙의와 달리 불편 부당성, 다양성, 평등 그리고 좋은 실적을 가지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구체화하면, (a) 무작위로 선발된 자들이 꾸리는 의회는 특정 정당, 집단, 지지층을 대표하거나 그것들에 얽매이지 않는다; (b) 무작위로 선발된 자들이 꾸리는 의회는 평범한 사람들의 다양한 단면을 재생산하고, DTA 이론에 입각하면 대개 법조계 출신으로 꾸려지는 선거를 통한 의회보다 더 다양한 문제 해결에서 더 나은 성과를 보인다; (c) 무작위로 선발된 자들이 꾸리는 의회는 연공서열 등의 문제를 상대적으로 덜 겪는다; (d) 우리는 시민 의회와 소규모 공중이 증거 기반 주장을 사용하여 문제 해결에서 좋은 성과를 낸다는 오랜 기간의 실험 결과를 갖고 있다.

위와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이론은 위와 같은 주장이 선거를 추첨제로 대체하는 것을 정당화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로토크라시에 대한 반대 논변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1) 로토크라시는 일종의 테크노크라시와 같다. 왜냐하면 시민 의회의 강점이 그들은 당파적이지 않고 돈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기에 문제에 대한 더 좋은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라면, 이 강점은 인식론적인 차원에 속하는 것이지 민주적 차원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즉, 더 좋은 정책을 내놓는 것과 시민들의 요구에 반응적인 것은 별개의 것이다. 게다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는 시민 의회의 숙의 결과는 여론 조사의 결과와 다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시민 의회는 일반 시민과 다른 모습을 취하게 된다.

(2) 로토크라시는 시민들의 행위자성을 감소시킨다. 투표제와 마찬가지로 추첨제는 모든 시민의 공동생활을 어떻게 조직하고 규제할지에 대한 주권적 판단을 내릴 동등한 자격이 있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평등을 구현한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주권적 판단을 내리도록 요구하는 투표제와 달리 추첨제는 그렇지 않다. 추첨제에서는 시민들이 선발 과정에 참여하지 않기에 시민들이 정치 현안에 대안 정보를 얻거나 자신의 정치적 판단과 정치적 결과와 연결할 이유가 심각하게 감소한다.
나아가 1인 1표로 대표되는 투표제가 추첨제보다 ‘각 개인의 판단이 민주주의에서 동등하게 중요하다’라는 이념에 더욱 가까운 것 같다. 추첨제는 ‘단지 누구나 선택되어 판단할 동등한 기회를 지닌다’를 말할 뿐이기 때문이다.

(3) 로토크라시는 내전으로 이어진다. 최소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안정성은 패배자들이 다음 선거에서 승리자가 될 기회가 있음을 알기에 보장된다. 하지만 로토크라시에서 그러한 기회는 없다. 그래서 선발되지 않은 패배자들의 좌절과 불만은 계속 커져서 반체제적이고 폭력적인 개입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상의 세 가지 이유에 더해 또 하나의 로토크라시에 대한 반대 이유가 있다. 추첨에 의한 의회가 갖는 불편부당성은 한편으로는 장점이기는 하지만, 해당 의회가 ‘유일한’ 의회일 경우 다양한 사회적 집단들이 주장하고 행동을 요구할 배출구의 역할을 행하지 못한다. 투표가 아닌 추첨제에 따라 일원제 의회가 구성되더라도 사회 운동이 있겠지만, 사회 운동은 정당과 당파적 의제를 통해 더욱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추첨제가 도입되면 경쟁적인 선거와 결합된 의사소통적 병리 현상들이 사라지긴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생산적인 공적 여론이나 의지 형성의 가능성도 감소할 것이다. 이는 곧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경쟁적인 선거를 통한 시민들의 자기 이해력의 부재로 이어진다. 과연 정기적인 선거와 의제와 입장들 사이의 경합 없이 공론장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출현하는 장소의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이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로토크라시에 대한 비판이 극단적 소수의 이론가들을 겨냥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로토크라시 이론가들 중에는 투표제를 폐지하고 추첨제로 완전히 전환해야 한다고 보는 급진적인 자들도 있지만, 추첨제가 선거제의 과두제적 경향에 대한 교정책이 될 수 있다고 보는 덜 급진적인 자들도 있다. 많은 비판가들이 쉬운 비판의 대상인 전자에 집중한 나머지, 후자에서 펼쳐지는 가치 있는 주장들—예컨대, 추첨을 통한 시민 의회를 이원제의 한 원으로 제시하는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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