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새 시대의 정치철학에 대해

일론 머스크가 얼마 전에 파격적인 내용을 발표했었습니다. 미국 행정부의 효율성을 위해 AI로 대체할 것이라는 내용이였죠. 이 내용을 미국 대통령 집무실에서 직접 기자회견 했다는 점도 주목을 끌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상 속에서 나온 일론 머스크의 의견이 흥미로웠습니다. 관료주의가 민주주의에 배치된다는 것이 골자죠. 구체적으로

  1. 국민과 관료 사이에 피드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관료들이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2. 국민이 투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반영하고 대통령, 국회 등의 선출직이 정책을 시행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가 아닌 관료주의이다.
  3. 따라서 대통령, 국회 등의 선출직이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도록 이 피드백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이것이 미국 행정부의 효율성을 올리기 위해 AI를 도입한다는 근거로써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머스크의 주장은 흥미로웠습니다. 한국도 아마 조만간 정치제도의 칼질이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에서 정치철학적인 관점에서 궁금합니다.

  1. 관료주의와 민주주의를 서로 대립관계에 있는 존재로 봐야하는가? 제 생각에는 아예 다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고요.
  2. 투표를 통한 선출직만이 정통성을 갖는다는 주장은 사법부에 대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사법부는 독립성을 보장받습니다만 사법부도 투표해야한다는 극소수의 주장도 있고 찾아보니 멕시코는 사법부직선제를 밀어붙였다고 하더군요.
  3. (아직은 좀 미래의 얘기겠지만) AI로 행정부, 나아가 일선 공무원까지 완전 대체나 최소한의 인력 운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이 정말 이상적인 혹은 옳은 시스템일것인가? 일론 머스크가 주장으로만 보자면 선출직이 온전히 국가를 운영하니 대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시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행정부가 탄생하게 된 배경과 이유가 있을 것인데 제가 그 부분을 잘 몰라서 행정부 탄생의 배경과 이유를 충분히 반박하면서 AI로 관료를 대체하는 것이 맞는지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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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슘페터와 베버로 대표되는 엘리트주의 이론가들은 대규모의 정치적 참여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직접 민주주의든 대표제이든 시민들은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최소의 역할[선거]만을 수행해야 하고, 더 단련된 정치적 행위자들에게 통치라는 복잡한 작업을 맡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논의는 정치철학/정치학계의 클래식입니다.

아닙니다. 많은 정치철학/정치학 이론가들은 오래전부터 투표가 시민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represent하지 못한다는 점으로 인해, 투표 중심의 민주주의가 아닌 숙의 민주주의와 같은 이론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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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에 비슷한 질문을 한 듯하지만 한 번 더 여쭐게요. 숙의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면 정확히 무슨 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하나요? 아니면 어떤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야 하나요?


어느 한 나라에 속하는 사람들이 공공장소에 모여 구조가 잘 짜인 토론을 벌여 특정 문제를 논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겠네요. 이 밖에도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방법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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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질문 모두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들에 충분히 답하기 위해서는 철학뿐 아니라 법학, 정치학 등 인접 학문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텐데 저는 이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네요. 다만 집구석에 쳐박혀 있던 알렉산더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살펴보니 몇 가지 관련 언급이 있었습니다. 토크빌의 저술이 워낙 고전적인 내용이라 지금은 이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토크빌의 주장을 소개해보고 제 견해도 좀 덧붙여 보겠습니다. 모든 인용표시와 쪽수는 한길사에서 출판한 박지동 역(1983) 근거합니다(제가 갖고 있는 책이 최신 번역본이 아닌 게 아쉽네요).

  1. 관료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

토크빌은 관료에 대하여 "법집행이 위임되는 모든 관리"(p.205)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이 관료들은 전제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 모두에서 상당수의 재량권을 부여받습니다. 전제 국가의 경우 왕이 신하(관료)의 생명, 재산 등을 주거나 빼앗을 수 있어서 신하(관료)는 국왕의 의사를 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기적으로 치뤄지는 선거를 통해서 관리들의 권력을 탈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토크빌은 전제 국가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관리들에게 더 큰 자율성을 보장하는 사례들이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전제 국가의 왕은 거대한 관료 조직을 혼자서 통제할 수 없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관료는 법률이 규정하는 영역에서 벗어나서 재량권을 행사할 수 없으며, 설사 행사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주권이 최고 권력일 뿐 아니라 보편적으로 존재"(p.206)하기 때문입니다. 토크빌은 뉴잉글랜드의 사례를 듭니다. 이곳에서는 행정위원이 술집에 상습음주자의 이름을 게시하고, 마을 주민들이 그들에게 술을 주는 것을 금지하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토크빌의 관점에서 봤을 때 언뜻보면 심각하게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풍기단속권이 프랑스와 달리 미국에서 원활하게 기능하는 이유는 아마도 풍기단속권을 남용하게 될 경우 그 행정위원은 다음 선거에서 시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관료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원론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민주주의가 기능하기 위해서 관료들은 필수적입니다. 왜냐하면 관료들은 생각보다 귀찮은 일들을 대신 처리해주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뉴잉글랜드의 사례만 보더라도 제가 볼 때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상습음주자를 적발하는 일은 너무나 귀찮은 일이라서 누군가(공무원을 비롯하여) 대신 처리하는 것이 낫습니다. 위의 댓글에서 "더 단련된 정치적 행위자들에게 통치라는 복잡한 작업을 맡겨야 한다"고 말한 것도 아마 이러한 맥락이 아닐까 싶네요. 행정 전문가들이 괜히 필요한 게 아니겠죠...

  1. 사법부와 민주주의 관계

누구나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토크빌은 사법부가 민주주의의 평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합니다. 관련 전문을 인용해보겠습니다.

"법률가들은 비록 유일한 집단은 아닐지라도 민주주의적 요소에 대한 가장 강력한 평형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합중국에서는 법률업이 그 특질이나 그 결함에 의해서마저 민주정치에 내재하는 폐단을 없애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아메리카 국민들이 감정에 휘말려버리거나 격렬한 사상에 들뜬 경우, 법률가들의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영향을 받아서 제어당하고 중단당한다. 이들 법률가들은 자신들의 귀족적 성향을 국민의 민주적 본능에, 옛 것에 대한 자신들의 미신적인 집착을 국민의 새로운 것에 대한 애호에, 그리고 자신들의 인숩적인 지연전술을 국민의 불타는 듯한 격정에 은밀하게 대결시킨다. (중략) 법률의 위헌선포권을 가지고 있는 아메리카의 사법관은 언제나 정치문제에 간여한다. 사법관은 국민에게 법률을 만들도록 강요할 수 는 없지만 적어도 국민들 자신이 만든 법률에 복종하지 않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스스로 일관성을 잃는 일이 없도록 국민들을 강제할 수는 있다. 합중국에는 사법권을 감축시키려는 은밀한 성향이 있다는 점을 나는 알고 있다. 또한 몇개 중의 대다수 법률에는 주정부가 입법 양원의 요구에 따라서 판사를 해임할 수 있다. 일부 다른 주의 법률은 사법관들을 선거로 뽑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사법관들은 자주 시행되는 재선거에 응해야 한다. 이와 같은 개선책에는 조만간 치명적인 결과가 따르리라는 것을 나는 감히 예언하는 바이다. 또한 이처럼 사법부의 독립성을 감소시킴으로써 그것은 사법권뿐 아니라 민주공화정 자체를 공격한 결과로 앞으로 어느 땐가 나타날 것이다."(p.269)

제가 근래에 아렌트 학회에 참석했는데, 논평으로 참여한 모 교수님의 발언으로부터 재미있는 사례를 들었습니다. 헌법에는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하는데, 그렇다면 한국에 온 외국인에게는 기본권이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등 기본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도 헌법 상 문제가 없을까요? 법률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그렇게 해도 무방하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부당해보입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에서는 기본권의 보장 대상을 국민으로 한정하지 않고, 인간의 권리라고 해석할 수 있는 권리는 당연히 외국인에게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토크빌의 논의에 기초하여 제 생각을 정리해보면, 사법부는 사회가 공통으로 지켜야 할 가치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보완하며, 시민들이 스스로 규정한 법률을 일관성 있게 지키도록 감시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강화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이러한 측면이 역효과를 낳아서 지금은 사법부의 민주적 통제라는 과제도 부상하게 되었지만, "투표를 통한 선출직만이 정통성을 갖는다는 주장"의 타당성을 고려할 때 위와 같은 점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미국의 민주주의』 1부 8장은 헌법에 대한 서술인데 이 부분도 사법부와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할 때 도움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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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관료들을 대체한다는 얘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을까요? 위 영상에는 그런말이 안보이는데요

아 해당 영상에서 나온 내용은 아니고 며칠 전쯤에 관련해서 보도된 내용입니다.

늘 이런 부분에 있어서 좀 더 깊은 지식과 논리가 궁금했었는데 좋은 글을 작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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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에 대해서 특히 흥미가 가네요.

사상적인 면과 실용적인 면을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우선 재미없는 실용적인 면부터... 전 행정직이나 공무원에 많은 부분이 데이터 수집과 그 절차의 집행, 그리고 절차에 대한 피드백을 반영한 수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AI는 충분히 효율적일 수 있죠. 가장 극단적인 employment at will 과 함께 AI 기술이 접목된다면, 공무원 조직을 상당부분 (머스크 말처럼 50프로 이상인지는 해봐야 알겠지만)을 감축시키는 게 가능할 겁니다. 누군가는 암묵지를 얘기하지만... 과거와 달리 메신저나 메일에 업무 기록이 다 남아있고, 신입들은 그걸 보고 일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더군다나 공무원은 (물론 얘기해보면 인수인계 개판으로 해놓았다고 항상 뭐라하지만) 기업 조직에 비하면 메뉴얼화가 잘되어 있습니다. AI가 학습하면 최소한 말단 신입들이 하는 업무는 많이 대체할 수 있겠죠. 그리고 이런 건 실제로 행정 인력이 부족한 곳에서는 바로 필요한 걸겁니다.

사상적인 면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결국 행정부를 누가 운영할 것이냐의 문제로 나뉠 거 같은데요. 저는 머스크의 주장이 과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국민이 뽑은 대표자, 혹은 그 대표자가 임명한 사람이 정부 행정 조직을 운영하는게 민주주의 원리와 맞겠죠. 다만, 행정 조직은 상당히 높은 도메인 지식이 있어야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운영은 실무진들에게 맡기고 대표자가 그에 대해 보고를 받는 체제를 구상했을 겁니다. 밀이 얘기하듯, 대표자가 실제로 운영은 못하지만 평가는 할 수 있다는 취지겠죠. 만약 AI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면(물론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그 역할을 대표자가 가져오는 게 이상하지는 않다고 보여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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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에 대해서는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가 도움이 될 듯합니다.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에 따르면 관료제와 민주주의를 대립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둘의 핵심적인 차이는 데이터의 흐름과 처리 방식에 있습니다.
관료제는 데이터가 중앙으로 집중된다고 합니다. 관료제에서는 정보가 위계적인 피라미드 구조로 흐르며, 최상위에 있는 지도자나 엘리트 집단이 최종 결정을 내립니다.
관료제에서는 정보가 독점되고 통제됩니다. 정보는 제한된 계층에서만 공유되며, 하위 조직들은 상부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만을 사용합니다.
관료제에서는 결정 속도가 빠르지만, 경직됩니다. 중요한 결정을 몇몇 사람이 독점적으로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의사 결정이 신속할 수 있지만, 변화에 대한 적응력은 낮을 수 있습니다. 제국의 관료 시스템, 전통적인 대기업, 공산주의 국가의 중앙계획경제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중국의 사회 신용 시스템이나 20세기 소련의 중앙계획 경제는 국가가 시민의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관료적 시스템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반면에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데이터가 분산되고 피드백이 활발합니다.
민주주의 시스템에서는 데이터가 국민 개개인과 다양한 기관에 의해 생성되고 공유되고 평가됩니다. 정책 결정은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반영하며 단일 엘리트 집단이 독점하지 않습니다. 선거, 여론조사, 언론, SNS, 공청회 등의 방식을 통해 정보가 다양한 방향으로 흐르며 정책이 피드백을 받아 수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정 속도가 느릴 수 있지만 유연하기도 합니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율해야 하므로 단기적으로는 의사 결정이 느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적응력이 높을 수 있습니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 네트워크 조직, 집단지성 기반 플랫폼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나 미국의 공청회 제도는 민주적 방식의 데이터 분산과 피드백 시스템을 잘 보여줍니다.

하라리는 데이터가 소수 엘리트(정부, 대기업, AI 시스템)에 집중될 경우, 기존의 관료제보다 더욱 강력한 디지털 독재(Digital Dictatorship)가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현대 기술(AI, 빅데이터, 감시 시스템)이 결합된 관료제는 과거보다 훨씬 더효율적이고 강력한 정보 독점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중국식 감시국가 모델이 대표적인 예시로, 정부가 국민의 데이터(행동 패턴, 경제 활동, SNS 발언)를 종합 분석하여 정치적 행동을 통제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민주주의가 유지되려면 데이터가 개방적으로 공유되고, 피드백이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하더라도, 이를 소수 권력이 독점하지 않고, 시민들도 알고리즘과 데이터를 검토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 기술처럼 데이터의 분산성과 투명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민주주의와 잘 맞을 수 있습니다.
결론을 내리면 ‘데이터 민주화’가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하라리의 관점에서 보면 관료제는 데이터를 중앙에서 독점적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이고 민주주의는 데이터를 분산하고 피드백을 적극 반영하는 시스템입니다.
AI와 빅데이터 시대에 민주주의가 살아남으려면, 데이터가 개방되고, 투명하며, 시민이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데이터가 특정 기관(정부, 대기업, AI 시스템)에 집중되면, 민주주의는 약화되고 ‘디지털 관료제’ 또는 ‘디지털 독재’로 변할 위험이 있습니다.
하라리는 결국 ‘데이터 민주화(Data Democratization)’가 미래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즉 미래의 정치 체제는 데이터의 흐름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관료제로 회귀할 수도 있고,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근데 또 일론 머스크의 말은 하라리의 주장과도 배치되는 것 같습니다.
관료제와 민주주의가 대립하는 것은 맞지만 시스템의 성격과 속성을 고려해야지 단순히 관료를 AI로 대체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관료를 AI로 교체한다고 해도 시스템의 성격이 기존의 관료주의처럼 데이터가 중앙집중적으로 흐른다면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2번에 대해서는 투표 그 자체가 민주주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독일 나치도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권력을 장악한 당이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독단적인 의사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은 아니고 민주주의의 핵심은 시스템 내에 존재하는 자정 작용과 데이터의 흐름과 처리 방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데이터나 잘못된 의사결정이 존재할 때 숙의와 토론을 통해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시스템 등이 갖춰져 있는가, 올바른 정보가 분산적으로 흐르고 많은 대중에게 공유되는가 등등을 고려해야 할 듯합니다.

AI로 관료들을 대체할 때는 앞서 말한 디지털 독재가 발생하지 않을까, 의사결정마저 AI에게 맡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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