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파탄의 철학자 스피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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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사귄 여신님께서 아래 링크를 보내셨다. 읽어보니 스피노자의 철학을 언급하면서 연애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10년의 연애를 지키기 위해 스피노자를 까는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

10년 사귄 커플이라도 무조건 헤어져야 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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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가 이래서 스피노자를 싫어해! 사랑은 '약속'이라고 키에르케고어가 그랬어. 키에르케고어 읽어!

여신님: 너 스피노자 싫어해? ㅇㅁㅇ

나: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철학자야.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칭송해서 더 싫어.

여신님: ㅇㅁㅇ

나: 과대포장돼 있어.

여신님: 스피노자 엄청 유명하잖아. 그리고 천재래. 저거 엄마가 처음 본 건데, 나보고 "스피노자가 가장 천재적인 철학자야?"라고 물어봤어. 그래서 너한테 링크 보냈지!

나: 내가 반대하는 철학 계보의 수장급 철학자야. 나는 헤겔주의고, 그 반대편에 있는 게 스피노자주의인데, 그래서 내 적이야.

여신님: ㅇㅁㅇ

나: 내가 스피노자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딱 저 링크에 나오는 사고방식 때문인데, 감정을 무슨 계산할 수 있는 단위처럼 생각해. 사과 하나 더하기 사과 하나는 사과 둘 되는 것처럼, 사랑이나 미움도 '충동(코나투스)'으로 환산해서 더하기나 빼기를 할 수 있는 것처럼 가정한단 말이야. 이게 철학적으로 엄청 순진한 생각인데도 사람들이 다들 떠받들어줘서 문제야!

여신님: ㅇㅁㅇ!

나: 철학자 중 누구나 동의할 만한 '천재'는, 공대에서 비행기 만들다가 철학 공부해서 현대철학을 두 번이나 뒤집어 놓은 비트겐슈타인이나, 고등학생 때 양상논리의 완전성 정리 논문 써서 하버드 대학에 교수 제의받은 크립키 정도 아니면 없어. 나머지는 다 '범재'들인데, 범재들 중에서 모든 천재 제치고 '철학의 신'으로 불리는 사람은 칸트고, 철학사적으로 칸트보다는 영향력이 조금 떨어지지만 내가 제일 위대하게 생각하는 철학자는 헤겔이고, 스피노자는 따까리야!

여신님: ㅇㅁㅇ!!

나: 스피노자 같은 사람 말이나 들으니까 10년 사귀고도 개박살나는 거야! 가정파탄의 철학자 스피노자! 가정이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지고, 이게 다 스피노자를 읽어서 그런 거야!!

여신님: ㅇㅁ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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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noza est-il le Christ des philosophes, et les plus grands philosophes ne sont guère que des apôtres, qui s'éloignent ou se rapprochent de ce mystère. Spinoza, le devenir-philosophe infini. II a montré, dressé, pensé le plan d'immanence le 《meilleur》, c'est-à-dire le plus pur, celui qui ne se donne pas au transcendant ni ne redonne du transcendant, celui qui inspire le moins d'illusions, de mauvais sentiments et de perceptions erronées ... " (Deleuze &Guattari, Qu'est que la philosophie?, Paris: Edition Minut, 1991, p.59 ).

"스피노자는 철학자들의 그리스도요, [철학사의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은 [스피노자의] 신비로부터 멀어지거나 보다 더 가까워지려고 하는 사도들에 지나지 않는다. 스피노자는 무한히 철학자가 되어가는 자다. 그는 가장 순수하고, 자신을 외재성에 내맡기거나 어떠한 어떤 초월자를 복원하지도 않고, 가장 적은 환상, 나쁜 감정, 감각적 오류를 일으키는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내재성의 평면을 보여주고, 만들어내고, 사유했다."

들뢰즈 센세 가로되, "나의 스피노자 쨩은 찐따가 아냐"라고 하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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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쫓겨난 찐따입니다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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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급진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백년전 시대착오적 교리에 얽매여 좀 듣기 싫은 소리했다고 무자비하게 집단린치를 가한 네덜란드 유대인공동체(세파르딤)가 찐따 아닙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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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철학이 당대 독일의 스피노자 르네상스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출현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이러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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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이 스피노자를 아주 높게 평가한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스피노지스트가 아니면 철학자가 아니라던가, finite cognition의 절정이 스피노자라던가, 등의 말을 했으니요. 또 철학사적으로도 pantheism controversy가 스피노자/야코비로부터 시작하기도 했죠. 개인적으로 헤겔의 absolute idea가 스피노자의 신 개념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YOUN 혹시 스피노자가 사랑이나 미움도 코나투스로 환산해서 더하고 뺄 수 있다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스피노자 형이상학 말고는 거의 공부를 안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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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맞아요. 헤겔은 스피노자를 아주 높이 평가하였는데, 들뢰즈로 대표되는 오늘날 유럽철학의 반헤겔주의자들이 스피노자를 자신들의 아이콘으로 삼으면서 헤겔주의/스피노자주의라는 대립이 생겨나버렸네요.

(2) 『에티카』 3부와 4부에서 나오는 내용입니다. 『에티카』는 실체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유로부터 출발해서 정념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거든요. 결국 정념을 올바르게 통제하기 위해 자연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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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데 그건 유럽철학이 갖고 있는 헤겔 리딩과 스피노자 리딩에 기반한 것 아닌가요? 들뢰즈가 스피노자/헤겔을 정확하게 읽었다는 말은 한 번도 못 들어봐서요. 그렇다면 헤겔주의/스피노자주의의 대립이 아닌, 들뢰즈의 헤겔/들뢰즈의 스피노자의 대립일 수는 없을까요?

(2) 에티카 3부와 4부 어디에서 감정끼리 더하고 뺄 수 있는지 말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 3/4부의 전체적인 내용은 passive affect는 우리의 본질이 아니고 active affect가 우리의 본질이고, 그렇기 때문에 active affect를 갖도록 나아가야하는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과 하나 더하기 사과 하나가 사과가 둘 되는 것처럼, 사랑 더하기 사랑, 혹은 사랑 더하기 미움이 가능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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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실, 이런 '~주의' 같은 용어들은 논쟁 구도를 너무 단순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죠. 그렇지만, 헤겔주의/스피노자주의라는 도식이 적어도 20세기 후반 유럽철학의 논쟁 구도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령, 피에르 마슈레의 유명한 스피노자 연구서의 제목도 『헤겔 또는 스피노자(Hegel ou Spinoza)』잖아요. 당대 스피노자 연구는 헤겔의 철학에 대한 일종의 대안으로 스피노자의 철학을 제시하려 했던 거죠.

(2) 사실, 『에티카』는 학부 시절 이후로는 거의 읽은 적이 없어서 스피노자에 대한 저의 평가에 왜곡이 들어가 있을지도 몰라요. 10년도 더 전에 학부생 때 썼던 글을 뒤져 보니, 코플스턴의 『합리론』과 들뢰즈의 『스피노자의 철학』을 참고 문헌 삼아 『에티카』를 읽으면서 제 생각을 정리해 둔 게 있네요. 스피노자에 대한 제 지식은 이 시절에 멈춰 있다 보니, 제가 스피노자를 너무 단순화하거나 곡해한 것일 수도 있어요.

https://blog.naver.com/1019milk/80167334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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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래서 대화하는 사람의 배경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제 저도 Youn님의 배경을 아니, 오해없이 잘 들을 수 있겠네요.

(2) 블로그를 잠깐 보았는데, 들뢰즈가 나오는 순간 이해를 못하겠네요. 안 그래도 들뢰즈 잘 모르는데, 한국어로 읽으니깐 머릿속이 완전 하얘지네요.

코나투스는 무엇보다도 존재로 이행하려는 경향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양태의 본질은 가능태가 아니라, 어느 것도 결핍되어 있지 않은 물리적 실재이기 때문에, 그것은 존재로 이행하려는 경향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양태가 존재하도록 결정되면, 즉 자신의 관계 아래 무한히 많은 외연적 부분들을 포괄하도록 결정되면, 그것은 존재 속에 계속해서 머무르려는 경향을 갖는다.

"이행," "양태," "가능태," "물리적 실재," 또 다시 "이행," 이런 단어들을 보니 뇌가 생각을 거부합니다...ㅋ

저도 코나투스는 잘 모르지만, 코나투스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해답을 줄 수도 있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1) Pantheism/Determinism 과 마주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윤리적인 기준을 만들 수 있는가?
(2) Pantheism/Determinism이 맞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가?
(3) 한 물체의 존재가 어떻게 process로 설명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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