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철학이 주는 시사점?

몇 가지 주제들을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존재의 일의성: 스피노자가 오늘날 새롭게 주목받게 된 데에는 들뢰즈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들뢰즈는 스코투스, 스피노자, 니체, 베르크손을 중심으로 자신의 철학적 계보를 설명하거든요. 이 인물들을 '존재의 일의성(univocity of being)'이라는 표어 아래에 하나로 묶어서, 그들이 존재자들 사이의 위계를 거부하였다는 급진적 해석을 제시하는 거죠. 가령, 데카르트가 '연장(extension)'과 '사유(thought)'를 이분법적으로 분리해서 연장을 폄하하고 사유에 철학적 우위를 준 것과 달리, 스피노자는 자신의 대표작인 『에티카』에서 그 두 가지가 모두 동일한 실체를 표현하는 서로 다른 속성들이라고 이야기해요. 실체의 양태(mode)들은 연장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도 있고 사유의 측면에서도 이해될 수도 있을 뿐, 그 두 가지가 위계에 따라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거죠.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이런 일원론적 형이상학이 가치의 서열화, 획일화, 계층화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봐요. 그래서 자신의 존재론을 구축하는 데 스피노자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죠.

(2) 예속에 대한 비판: 스피노자는 대중이 왜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서 권력에 예속되기를 추구하는가에 대해서도 논의했어요.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이 이런 문제를 다룬 책이죠. 스피노자에 따르면, 예속화의 경향은 결국 '미신'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대중들이 사물의 합리적 질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상 속에서 잘못된 원인들을 상정하게 되고 거기에 복종하게 된다는 거죠. 스피노자의 이런 정치철학적 사유들도 오늘날 들뢰즈, 네그리, 발리바르 등 유럽의 정치철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죠.

(3) 추론주의의 선구자: 영어권 철학에서는 브랜덤이 스피노자를 추론주의적 사유의 선구자들 중 한 명으로 바라보기도 해요. 추론주의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에서 파생된 의미론이거든요. 언어가 어떻게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문장과 문장 사이의 추론 관계를 바탕으로 해명하려는 입장이죠. 브랜덤은 추론주의의 계보를 칸트, 프레게, 비트겐슈타인을 중심으로 그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종종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등 17세기 대륙합리론 철학자들을 자신의 계보에 포함시키기도 해요. 영국경험론 철학자들은 외부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상(representation)'하여 철학의 체계를 구축하려 했던 것과 달리, 대륙합리론 철학자들은 공리로부터 정리들을 '추론(inference)'하여 철학의 체계를 구축하려 하니까요.

  • 하지만 저에게 스피노자는 가정파탄의 철학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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