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심미까. 작디 작은 학부생입니다.
참새 같은 머리로 혼자 공부하다보니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 많이 없어 좋은 질문을 드리진 못한다는 점. 미리 사과드리겠습니다.
자유의지를 설명하는 이론 중에 양립가능론, 자유론, 결정론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홉스와 흄이 고전적 양립론을 지지하지만 이는 의지의 자유(freedom of will)을 온전히 비추는 것이 아닌, 형이상학 논의에서 벗어난 행위의 자유를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한 고전적 양립론은 "욕구는 인과적으로 정해진 결과이지만 자유로운 행위란 욕구를 실현하는데 있어 강제나 방해의 부재를 뜻하기에 양립가능하다" 는 입장입니다)
해리 프랭크퍼트가 욕구의 위계를 구분하여 1차 욕구와 2차 욕구(욕구에 대한 욕구)를 주장하였을 때, 그의 주장은 '욕구는 인과적으로 결정 된 것일 수도 있다' 는 결정론적 형식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2차욕구는 일련의 통제(숙고)를 통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양립론을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2차 욕구 또한 인과적 지배 하에 결정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데, 그는 결정된 욕구에 의해 '다르게 선택할 가능성' 이 없더라도 행위자에게 책임을 귀속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양립론이 말장난이라는 칸트의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양립불가능론(자유론, 결정론)의 입장들을 확고히 할 만한 명징한 논증을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양립론자들의 한계는 우리가 행위 하는 것에 있어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욕구 그 자체를 욕구 할 순 없지만 (선택지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욕구 하는 것 내에서 우리는 자유롭다 (선택지 내에서 결과를 선택할 수 있다) 주장하는 것이 양립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이해한 고전적 양립론은 "욕구는 인과적으로 정해진 결과이지만 자유로운 행위란 욕구를 실현하는데 있어 강제나 방해의 부재를 뜻하기에 양립가능하다" 는 입장입니다)
요건 제가 기억하는 게 맞다면 A.J. Ayer가 "Freedom and Necessity"라는 논문에서 취한 입장으로 고전적인(20세기 한정) 양립가능론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랭크퍼트의 입장은 약간 미묘한데요, 저는 존 마틴 피셔(John Martin Fischer)가 양립가능론과 반(半)양립가능론(semicompatibilism)을 구별하고 프랭크퍼트의 입장을 후자로 간주한 구분법이 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도 어느정도 되는 것 같구요.)
그에 따르면
양립가능론 : 결정론과 자유가 양립가능하다.
반양립가능론 : 결정론과 자유는 양립불가능하지만, 결정론과 도덕적 책임은 양립가능하다.
라는 식으로 구별되는데, 프랭크퍼트는 설령 1, 2차 욕구가 인과적으로 결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어떤 행위가 2차 욕구에 의해 동일시된 1차 욕구에 따른 행위인 경우 우리는 그 행위자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 행위자는 숙고의 과정에서 바로 그 행위 혹은 그 행위를 하고자 하는 욕구를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지요.
[이에 대한 유명한 반론으로 Gary Watson의 "Free Agency"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양립론자들의 한계는 우리가 행위 하는 것에 있어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얼핏 이런 류의 반론이 Thoams Nagel의 The View from Nowhere에서 제시됐던 것 같은데 아마도 이건 고전적인 양립가능론에 대한 반론으로 봐야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은 이렇게 써야 하는군요.. 제가 해야 했었던 말들을 자세한 설명(및 출처)을 덧붙여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이 말씀 주신대로 존 마틴 피셔의 양립가능론과 / 반(半)양립가능론(semicompatibilism) 을 먼저 구별해 보는 게 제 공부에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semicompatibilism 이란 것을 처음 들어봤습니다))
다만.. semi-compatibilism 이 어떻게 결정론과 도덕적 책임을 양립 가능하다는 것을 논증하는지 그 형식을 알고 싶습니다.
"Semicompatibilism"이라는 용어는 널리 쓰이는 말은 아닌 걸로 압니다. 저도 피셔가 쓰는 걸로 처음 접했지만 용어 자체가 엄청 중요한 함의를 갖고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러니 굳이 피셔의 글을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가 논의 구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자유의지와 관련해서는
양립가능론 : 자유로운 행위와 결정론은 양립가능함
양립불가능론 : 자유로운 행위와 결정론은 양립불가능함
-강한 결정론 : 따라서 자유로운 행위는 없음
-자유론 : 따라서 결정론은 거짓임
이정도의 고전적인 구분이 있습니다. 행위자의 자유는 또한 그 행위자에게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문제와도 직결되죠.
오직 행위자가 자유롭게 한 행위인 경우에만 그 행위자에게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라는 게 통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결정론이 참이라고 주장하는 강한 결정론자에 따르면
만일 결정론이 참이라면 자유로운 행위를 할 수 있는 행위자는 없다.
자유로운 행위자가 아니라면 그에게 도덕적 책임도 물을 수 없다.
그런데 결정론이 참이다. 따라서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행위자는 없다.
대략 이런 논증이 성립합니다.
피셔가 반양립가능론이라고 말하는 프랭크퍼트는 행위자의 자유로움이 도덕적 책임의 필요조건이라는 저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고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는 겁니다. (잘 알려진 Frankfurt-style example이 바로 저 원리에 대한 반례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그 조건은 결정론과 양립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피셔의 글을 보기 보다는 프랭크퍼트가 쓴 고전적인 논문 "Alternate Possibilities and Moral Responsibility"와 "Freedom of Will and the Concept of A Person" 논문을 직접 읽어보시고 정리하는 게 더 도움 될 겁니다!
'양립가능론'이 형이상학적으로 어떤 입장이고 윤리학적으로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Raccoon 님이 잘 설명해주셨네요. 그런데 양립가능론 내에서도 이론적 스펙트럼은 정말 다양할 거예요. 대부분의 영어권 철학자들이 양립가능론을 옹호하는 입장이니까요. 가령, 2020 Philsurvey에서는 양립가능론을 옹호하는 철학자들이 전체의 59.2% 나와요.
그러다 보니, 같은 '양립가능론'으로 묶인다고 해도, 정확히 어떤 종류의 이론적 근거와 주장을 제시하는지는 꽤나 천차만별일 거예요. 양립가능론의 일반적인 정의는 "자유로운 행위와 결정론은 양립가능함"이겠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철학자들마다 편차가 큰 거죠.
개인적으로, 저는 데이비슨의 '무법칙적 일원론'에 근거한 양립가능론을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옹호하는 편이에요. 사건과 사건 사이에 인과적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관계를 '물리적'으로 기술할 것인지 '정신적'으로 기술할 것인지에 따라 엄격한 결정론적 법칙을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가 달라진다는 입장이에요. 말하자면, '법칙'이란 일종의 언어적 문제라는 거죠.
그렇지만 이런 식의 양립가능론이 심리철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인지는 제가 이 분야 전공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요. 여하튼, 양립가능론의 기본 테제에 있어서는 많은 철학자들이 동의하지만, 양립가능론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하지 않을까 합니다.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어떤' 양립론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지금 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다양한 글이나 논문을 읽으며 글쓴이가 얘기하고 싶은 바는 무엇이고 스스로 어떤 방법론을 채택하여 논증하고 있는지 파악하는게 제 수준에 있어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