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론자가 드리는 질문들

다소 폭이 넓은 질문이라 다루기가 조금 어렵네요. 결정론을 옹호하시는 이유를 몇 가지 제시해 주실 경우 좀 더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결정론과 관련된 오늘날 철학의 논의 전반을 이해하고 있는 분만 답변이 가능한데, 전공자들 중에서도 이렇게 넓은 스케일의 논의를 그려낼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아서요. (오히려 '전공자'들이라서 지나치게 넓은 논의가 얼마나 구멍이 많은지를 잘 알기 때문에 더욱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기 껄끄러워하죠.)

다만, 아주 거칠게 대답을 드리자면 결정론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들은 대개 '인과적 폐쇄성(causal closure of physics)'이라는 원리에 근거를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리적 현상들은 물리적 현상들로만 설명되어야 하고, 그 현상들 사이의 인과 관계에는 어떠한 초자연적 요소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리이죠. 그래서 우리가 가장 기초적인 물리 현상들 및 그 물리 현상들을 설명하는 자연법칙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으면, 전체 물리계에서 벌어질 사건들을 모두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 많은 결정론자들이 내세우는 주요한 논증이죠. 가령, 인지과학자인 스키너(B. F. Skinner)나 해리스(S. Harris)가 이러한 종류의 결정론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철학자들 중 대부분은 이런 식의 결정론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주류 의견은 물리학적 법칙과 자유의지가 모두 옹호될 수 있다는 양립가능론이죠. 실제로, 이 점은 Philpapers라는 사이트에서 전세계 철학자들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왜 대다수의 철학자들은 양립가능론을 옹호하는지(혹은 자유의지의 가능성을 옹호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생기겠죠. 여기에 대해서는 정말 다양한 방식의 대답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다음 몇 가지 정도로 갈래가 요약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1) 자연법칙이나 자연과학에 대한 반성적 고찰 때문에: 자연법칙이 존재한다는 생각, 그리고 자연과학으로 자연법칙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견해를 지닌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많은 경우 자연법칙과 자연과학에 대한 논의들은 유한한 개별 사례들을 일반화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귀납적 방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a) 흄(D. Hume)이나 굿맨(N. Goodman) 등이 지적하듯이 귀납적 방법 자체가 소위 '귀납의 문제'라고 하는 고전적인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b) 포퍼(K. Popper)가 지적하듯이 아무리 기존에 검증이 된 자연과학의 이론이라고 하여도 반례에 직면할 경우 반증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결코 절대적일 수도 없고, (c) 카트라이트(N. Cartwright)가 지적하듯이 애초에 '인과적 폐쇄성'이나 '법칙'이라는 개념들 자체가 아주 특수한 제한 조건에서만 성립할 뿐 그 조건을 벗어나서는 일반화될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고, (d) 반 프라센(B. van Frassen)이 지적하듯 특정한 과학적 이론이 유용하다는 사실로부터 그 과학적 이론에 대응하는 고정된 실재가 존재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가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런 입장을 가진 철학자들은 자연과학을 통해 세계 전체를 결정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을 거부합니다.

(2) 의식이 지닌 독특한 성질 때문에: 소위 '감각질(qualia)'이라고 불리는 1인칭의 주관적 경험이 물리계에 대한 3인칭의 객관적 지식으로 손쉽게 환원되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철학자들도 많습니다. 가령, 네이글(T. Nagel)은 박쥐가 초음파를 통해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아무리 지식적으로 알고 있더라도, '박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 인간이 결코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초음파를 쏘는 경험 자체를 주관적 시점에서 느껴볼 수 없으니까요. 유사하게, 잭슨(F. Jackson)은 색을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과학자가 색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과학자는 색깔을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결코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다고 지적합니다. 색에 대한 객관적 지식을 가지는 것과 색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주관적 경험인 '감각질'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는 철학자들은 인간의 의식이 결코 물리계에 대한 지식으로 완벽하게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의식이 물리계에서 자연적 과정으로 (가령, 오랜 진화의 과정으로) 발생한 것은 맞겠지만, 의식에 대한 논의가 물리계에 대한 논의만으로 완벽하게 해명될 수는 없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의식이 물리계와는 독립적인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3) '자유의지'와 '결정론'이라는 개념들이 지닌 애매성 때문에: 애초에 '자유의지/결정론'이라는 양자택일 자체가 일종의 개념적 오류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철학자들도 있습니다. 가령, '자유의지'가 단순히 아무런 조건이나 원인도 없이 자의적이고 우발적으로 솟아오르는 의지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과연 그런 것을 '자유의지'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불분명합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음식을 보고서 '먹고 싶다'라는 욕망을 자기도 모르게 갑작스럽게 느껴서 그 음식을 집어 먹었다면, 과연 그런 욕망을 '자유의지'라고 부를 수 있는지가 의문스럽겠죠. 그건 욕망에 굴복한 것이지 의지에 따라 주체적으로 선택을 내린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애초에 무엇을 '자유의지'라고 불러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경우를 '결정'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는지조차 논의의 대상입니다. 철학자들 중에서는 이 논의가 제대로 전제되지 않은 이상 '자유의지/결정론'이라는 문제 구도 자체가 잘못된 사이비 문제라고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데이비슨(D. Davidson)의 무법칙적 일원론에 근거한 양립가능주의가 이 입장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동일한 사건을 '자유의지'로 설명할 것인지 '물리학적 법칙'으로 설명할 것인지는 일종의 언어적 선택의 문제이지, 세계 자체에 자유의지나 법칙이 본래부터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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