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함의 기준이 무엇인가

혼자 머리 싸맨다고 철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사를 살펴보고 사상가들의 이론을 접하고 비판 하는 방법을 배우고 공부하며
철학적인 사고 논리를 갖추기 위해서는 개인 단위에서의 생각/연구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요즘 심오해보이는 딜레마적 문제 여러개를 가져와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나는 철학한다.'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철학을 배우거나 공부하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논리적으로 많이 빈약합니다. (제 경험상.)
하지만 소수가 그런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그러했습니다. (제 경험상.)

아무리 천재가 있다고 한들, 철학적 사고방식에 대해서는
'배워야만 한다고'생각합니다.
그것이 효율적으로나 결과적으로나 옳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흔히말하는 '패션철학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들의 솔직한 의견이 궁금합니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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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철학에 과문하긴 하지만, 그런 '패션철학'이 철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그런 경로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구요.

다만 말씀대로 공부하지 않고 철학적 문제들에만 골몰하는 것은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는 용어를 명료하게 사용하기 굉장히 힘들고, 어떤 주장에 어떤 근거가 있는지 정립도 안되고, 근거가 주장을 지지하는 방식도 고려하지 못하고, 나아가 철학적 문제 자체가 굉장히 불투명하게 떠오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패션철학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제 자신의 경험을 되살려보자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철학적 문제 의식에 표면적으로라도 공감하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진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좋은 것 같습니다. 비록 겉보기엔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 같아 언짢은 기분을 느낄 순 있을지라도, 철학 공부에 대한 가능성이 열려있기도 하고, 또 철학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니 좋은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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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비전공자일뿐더러 철학사를 깊게 파보지 않았기에 이러한 의견을 펼칠 수 있음을 먼저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철학의 본질은 '사유' 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주장한 이론은 대게 서로의 의견을 접하고 이를 수용하거나 비판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지만, 고대 철학자나 몇몇 종파의 경우 새로운 갈래로 탄생한 학파 또한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철학과 문학, 예술이 서로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의 경우를 거론하자면)
문학을 예시로 들면, 기존 문학작품이나 각 시대의 고전을 전문적으로 살피지 않았음에도 새로운 감각적 표현과 기법, 사상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는 예술 또한 예술 작품을 접해본 적 없는 가난한 소년(ex. 바스키아) 이 시대의 흐름을 관통하는 작품을 그려내듯, 모든 범위의 철학사를 살펴보아야 할 의무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철학사를 살펴보는 것이 기존 철학자들의 뛰어난 사유를 살펴보는데 도움이 되며 영감을 주는 것은 저 또한 동의합니다만_본인이 관심있는 학파나 사상을 위주로 하여 단편적인 철학사만을 탐구하거나, 혹은 관련된 학자를 찾아보는 선에서 그쳐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 철학사를 살펴보는 것이 모든 철학하는 이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론 접하지 않는 것이 새로운 길을 펼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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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단 읽어보고 제가 놓친 부분을 알게된 것 같네요.
대중들이 흥미를 가지고 철학을 접한다는 것 자체는
긍정적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철학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는 길 인 것 같네요.
이런 긍정적인 측면도 있구나 생각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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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깊이, 자신이 만든 사상이나 이론에서의 수준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전문 학자가 아니고 너무 거만하지 않는다면 답변자님 말씀대로 공부하고 싶은 것만 골라보아 라이트하게 사유하는 것도 틀린 방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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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잘 모르지만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라는 공자의 유명한 격언이 있듯이.. 비단 "철학함" 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함"에 있어 學과 思가 겸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완벽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패션철학이라고 하든, 개똥철학이라고 하든, 딜레탕티즘이라고 하든 그런 아마추어리즘이 프로페셔널리즘의 저변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Bleeding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이상은 원론적인 얘기고, 주제에 좀 벗어난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 전공자분들이 다른 학문에 비해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비전공자로서 그 점에 대해선 안타깝게 여기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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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주제에 관해 이미 서강올빼미에서 여러 글들이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철학을 공부하면서 이런저런 사례들을 보니, 철학에 관심을 갖고 진입할 때에는 그처럼 혼자서 던지는 물음들이 아무래도 적지 않은 동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뭔가 진짜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같은 물음들은 전문적인 철학을 접하지 않아본 이라도 누구나 한 번씩 던져볼 법한 의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골몰하는 일은 좋든 싫든 철학이 계속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큰 유인 중 하나인 듯합니다.

그런데 철학을 학문으로서 진지하게 공부하겠다고 하면 이 큰 유인이 되었던 혼자 골몰하는 사색은 그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습관인 것 같습니다. 역사 속의 위대한 철학들은 항상 종래의 철학들로부터 배워오면서 출현했습니다. 설령 그것이 기존 이론들과의 비판적 대결의 형태를 띠더라도 말입니다. 철학이 다른 분과들과 더불어 하나의 학제로서 정립된 이후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아주 넓은 의미의 철학사, 그러니까 기존의 철학 이론들을 공부한다는 것은 철학이라는 게임에 진정 참여자로서 참여하기에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필요조건에 해당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Bleeding 님께서 아주 잘 말씀해주신 것 같습니다.

철학이 그저 쓸모없고 지리멸렬한 사색이 아니라 제대로 된 문제를 설정하고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는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기존 학자들의 이론을 단순히 무시하거나,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영감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스승으로 삼아야 합니다. 기존 철학자들의 사유와 구별되는 나 자신의 독창적인 사유를 개진하기 위해서조차 그렇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들뢰즈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내가 여기서 특별히 겸손을 떨려는 건 아닌데, 단순히 이런 식으로 말할 철학자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 나한테 굉장히 충격으로 다가오고는 해. “이제 내가 철학을 할 건데, 나 자신의 철학을 할 거야! 그래, 내 철학이 여기 있다!” 이런 말들은 얼간이들이나 하는 말이지. 자기 철학을 하겠다는 거. 왜냐하면 철학은 색깔과 같거든. 철학에 들어서기 이전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데, 철학의 색깔을 장악하기 전에─철학의 색깔이라는 건 개념이지─, 그러니까 개념을 발명하고, 발명하는 데 성공하는 법을 알기 전에, 굉장한 양의 작업이 요구되는 거야. 철학사라는 건 이런 느린 겸손함이고, 초상화를 그리는 데 오랜 시간을 쓰는 거지. 초상화를 그려야 해.

그건 이런 거랑 마찬가지야. 만약 어떤 소설가가 이렇게 말한다고 쳐보자. “네, 전 소설을 쓰죠. 하지만 있잖아요, 내 영감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소설을 읽지는 않아요. 도스토예프스키? 아뇨, 읽어본 적 없어요!” 젊은 소설가들이 이런 무서운 말들을 입에 담는 걸 들은 적이 있네. 이건 연습할 필요가 없다는 거랑 똑같은 말이야.

누가 어떤 일을 하든 간에, 그 일을 온전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연습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철학사는 예비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자족적이기도 한 그런 역할을 하는 거지. 무언가를 다룰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하나의 초상화 그리기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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