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에 대해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철학을 접하여 흥미를 가지게 된 이후 쭉 철학과를 지망하고 있습니다! 제가 철학과를 지망하기에 철학동아리도 개설하고, 거의 모든 학교활동도 철학 관련된 쪽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활동을 하며 철학에 관해 모르거나 궁금한 점이 생기면 주변에 철학 관련 지식이 많으신 분이 없기에 해소할 방법이 없어 답답하였는데 이런 곳을 발견해 정말 기쁩니다 ㅠㅠㅠㅠㅠ

!!!본론!!!
제가 신념에 관한 영어 지문 내용으로 발표를 해야하는데 지문 내용이 확실히 이해가 가지 않아 도움을 요청합니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 내용과 회의주의 철학에 대해 추가로 조사하여 발표할 예정인데 이와 관련해서 좋은 자료(영어면 더 좋아요!)가 있다면 추천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원문을 올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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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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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ictions feel certain. But not everything we feel certain about is a conviction. I don't need conviction for anything I'm absolutely or logically certain about. When René Descartes declared he was certain that he thinks and exists (popularly, but erroneously, understood as the inference "I think, therefore I am"), he meant he couldn't actively doubt he was thinking at that moment — because doubting is thinking. But it would be odd to say this was Descartes's conviction. Indeed, the interesting thing about convictions is that they are often formed in the face of opposite convictions. Unlike logical certainties like 2 and 2 make 4, or philosophical certainties like Descartes's belief in his own existence, we generally know that others may oppose our convictions. We are aware that our convictions can be doubted and challenged, even if we ourselves just cannot imagine that they are false.

정확히 어떤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를 부연해주시면 보다 도움이 되는 답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확실하다고 느껴지는 믿음은 의심 불가능한 믿음신념의 두 가지로 나뉩니다. 전자는 의심할 경우 논리적 모순이나 개념적 오류에 빠진다는 점에서 확실한 믿음이고, 후자는 의심하더라도 오류에 빠지지는 않지만 여전히 개인이 확실하다고 고수하는 믿음입니다. 전자에는 수학적, 철학적 진리들이 포함되고, 후자는 불명확하지만 종교적 믿음, 정치적 견해, 삶에 대한 가치관 등이 예시로 제시될 수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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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본문의 주제가 되는 '신념'이라는 개념이 딱히 철학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비슷한 부류의 믿음과 관련될 수 있는 철학적 주제를 소개하려 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추론 혹은 직관에 의해 (데카르트가 이 명제를 추론으로 생각했는지 아니면 직관으로 생각했는지는 해석상의 논쟁거리입니다) 정당화되는 참된 믿음입니다. 반면 거짓이고 정당화되지도 않지만 개인으로서는 믿을 수밖에 없는 믿음들이 있는데, 이를 비의지적(involuntary) 믿음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어떤 아이가 부모를 일찍 여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부모님이 여전히 살아계신다고 믿게 된다면, 아이의 믿음은 거짓이고 정당화되지도 않지만 아이는 이 믿음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비의지적 믿음은 지식을 정의하는 데 필요한 정당화 개념을 분석하는 한 가지 방식인 의무론적 입장에 난점으로 작용합니다. 의무론적 분석(의 소극적 버전)에 의하면, 내 믿음이 정당화된다는 것은 내가 그 믿음을 믿지 말아야 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위 사례에서의 아이 역시 자신의 믿음을 믿지 말아야 할 의무를 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의무론적 분석에 따르면 아이의 믿음은 정당화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결론은 부조리합니다. 따라서 정당화 개념을 의무 개념에 의해 분석하는 의무론적 분석은 이와 관련해 난점에 맞닥뜨립니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을 참조하실 수 있습니다.

Ps. Oxford University Press의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에 Descartes도 포함되어 있네요. 서지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Tom Sorell (2000). Descartes: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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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ㅠㅠ

전 이 단락이 정말 명료함은 하나도 없는 단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Conviction이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도 모르겠고, conviction이 느낀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요. 그럼에도 데카르트이 코기토 논증에 대한 깊은 이해는 있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글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데카르트에 그 정도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의아했거든요. 그래서 찾아보니 Lynch - Know-it-all Society의 책의 발췌였고, Lynch는 저 단락 전에 conviction이 뭔지, conviction이 feel certain한다는 것이 뭔지 충분히 설명을 하네요:

The poet Ralph Waldo Emerson famously noted that nothing good was ever
achieved without enthusiasm—and, one might add, nothing bad was ever
accomplished without it either. By “enthusiasm” here, Emerson presumably
meant more than just joyful participation; he meant a motivating emotional
commitment to what matters to us. That’s a good approximation of what we
mean by “conviction.” Convictions are the wellsprings of action but the offspring of doctrine.
As any demagogue can tell you, to galvanize voters it
helps to appeal to an ideology—namely, one people can identify with. What
matters is getting voters to go beyond mere belief to total commitment.

This is why there is an emotional component that comes along with
conviction—what we call the “feeling of conviction.” When directed at
something you also believe, it is the feeling of self-confidence. It is a good
feeling. It is good to be right, but it is also good to just feel as if you are right.
That’s why, for those of us worried about the fragile state of democracy, the
old Yeats line still resonates: the “best” are often filled with self-doubt,
while the worst are filled with the passion of conviction.
And it is also why it is important to understand why our convictions form in the first place.

린치에게 conviction이란 우리가 감정적으로 갖고 있는 믿음과 비슷한 걸 뜻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정치적인 믿음을 갖고 그것을 밀고 나가게 하는 무언가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conviction에는 감정적인 부분이 들어가는 것이고, 그때 린치는 "feeling of conviction"이란 구절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런 feeling of conviction을 가질 때, 우리는 맞는 이데올로기를 지지한다고 생각하지요. 우리는 그런 면에서 self-confidence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맥락에서 올려주신 단락이 이해돼야합니다. conviction은 단순한 확신이 아닙니다. 단순 확신은 논리적이기만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2+2 = 4라는 것에 대해 우리는 확신을 갖지만 우리는 2+2=4를 감정적으로 지지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conviction은, 린치가 말하길, 반대 입장에 맞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파에 대한 conviction이 있다면 좌파에 맞선다는 것을 인지하고 한 당을 지지하는 것이지만, 논리적인 것은 그렇지 않죠. 논리적인 것은 사실이며,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니깐요. 이런 맥락에서 린치의 conviction과 certainty가 이해돼야하는 것입니다. certainty는 conviction을 포함하지만, conviction이 아닌 논리적 사실도 포함하는 것이지요.

린치란 사람은 잘은 모르지만, 이렇게 보니 잘 써진 글이네요. 근데 앞뒤 맥락 다 잘라먹고 단락 단위로 올려놓으니 정말 무슨 단락인지 모르겠네요. 문제 출제자가 조금 더 문제 출제에 있어서 신중했어야하는 것 같습니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에 있어서는, 당연하게도, <성찰>의 제 1성찰입니다. 짧고 읽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만일 2차저작이 필요하시다면 Carriero - Between Two Worlds의 첫번째 챕터가 자세하고 좋지요. 또, 조금 어렵긴 하지만, SEP에 Descartes's Method라는 글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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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마이클 린치는 참고로… 예전에는 진리 다원주의에서 많은 기여를 하다가 최근은 무슨 사회철학같은 걸 내는 사람입니다. 메인스트림은 아닌데 나름 영향력 있는(?) 팀 버튼 (철학자) 류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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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어디서 발췌되었는지까지 찾아주시다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