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s the community itself is the existing Spirit, the Spirit in its existence [Existenz], God existing as community.
The first moment is the idea in its simple universality for itself, self-enclosed, having not yet progressed to the primal division, to otherness—the Father. The second is the particular, the idea in appearance—the Son. It is the idea in its externality, such that the external appearance is converted back to the first [moment] and is known as the divine idea, the identity of the divine and the human. The third element, then, is "this consciousness—God as the Spirit." This Spirit as existing and realizing itself is the community.
그러므로 공동체 자체는 실존하는 정신, 자신의 실존 속에 있는 정신, 공동체로서 실존하는 하나님이다.
그 첫 번째 국면은, 단순한 대자적 보편성 속에 있는, 스스로 닫혀 있는, 아직 근원적 구분인 타자성으로 진행된 적이 없는 관념—아버지이다. 두 번째는 개별자, 현상 속에 있는 관념—아들이다. 이는 자신의 외재성 속에 있는 관념, 곧 외적 현상이 첫 번째의 것[계기]으로 전환되어 신적 관념으로 알려진 그러한 것, 다시 말해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동일성이다. 세 번째 요소는, 그러므로, "이러한 의식—영[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이다. 실존하며 실재화하는 자체로서의 이러한 영[정신]이 공동체이다.1
헤겔의 종교철학 강의에 나타나 있는 위의 구절은 여러 모로 참 놀랍다고 생각합니다. 헤겔 특유의 장황하고 불친절한 문체로 쓰여 있긴 하지만, 저는 이 구절이 헤겔 철학의 독창성과 탁월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봐요. 몇 가지 특징적인 점들을 뽑아보면 이렇죠.
(1) 공동체가 곧 정신이다.
헤겔의 철학에서 '정신(Geist)'이라는 개념만큼 많이 오해된 혼란스러운 개념도 없을 겁니다. 보통 헤겔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계신 분들은 '정신'을 일종의 '유사 신적 지성(quasi-divine intelligence)' 정도로 생각하죠. 저 하늘 어딘가에 '정신'이라고 하는 초월자가 존재하고 있어서, 이 세계와 역사를 조종한다는 식으로요. 하지만 정작 헤겔은 자신이 말하는 '정신'이라는 것이 공동체라고 수많은 텍스트에서 강조합니다. 공동체 속에서 성립하는 문화나 제도 같은, 일종의 규범적 질서들이 바로 '정신'이라고요.
더욱 와닿게 말하자면, 한국어로 '민족의 얼'이라고 할 때 그 '얼'이 헤겔의 '정신'에 거의 정확히 들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가령, 한국인은 한국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한국인의 얼을 바탕으로 세계를 이해하잖아요.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와 우리가 어떤 얼(정신)을 가지고 있는지가 서로 분리되지 않는 거죠. 그리고 이런 얼이 표출된 형식이 (객관정신의 측면에서 보자면) 법 같은 국가적 제도이고, (절대정신의 측면에서 보자면) 예술, 종교, 철학 같은 인문적 유산이죠. 한국인의 세계 이해를 규정하는 한국인의 얼은, 한국인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이런 제도와 유산 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거예요.
(2) 정신이 곧 성령이다.
독일어 'Geist'나 영어 'Spirit'은 '정신'이라고도 번역되지만 종교적인 맥락에서는 '영'이라고도 번역되죠. 특별히, 그리스도교의 맥락에서는 '성령'으로도 번역되고요. 위의 구절에서도 헤겔은 바로 이런 효과를 노리면서 '아버지(the Father, 성부)'와 '아들(the Son, 성자)'이라는 용어와 함께 '영(the Spirit, 성령)'이라는 용어를 병렬적으로 나열하고 있죠.
즉, 헤겔에 따르면, (특별히, 그의 종교철학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교회가 역사를 통해 형성해 온 문화가 바로 그 자체로 성령이라는 거예요. 가령, 교회에서 종종 "성령이 지금 여기서 일하신다."라거나,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거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다."라는 말들을 할 때, 헤겔은 이런 말들이 무슨 신비주의적이고 초자연적인 의미로 이해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지적하고 있는 거죠. 교회 공동체가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 속에서 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일들에 참여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일들이 일어나는 사건이니까요.2
더욱 구체적으로, 교회의 선교를 통해 실제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쉽죠. 140여년 전에 조선 땅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같은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그 이전에는 없었던 근대적 학교가 세워지고, 병원이 세워지고, 복지 사업 이루어지고, 신분제와 차별이 문제시되었다면, 이렇게 새로운 문화가 시작된 사건은 그 자체로 '성령의 역사'라고 부를 수 있다는 거예요.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정신'이 일어나는 사건이 바로 '성령'이 활동하는 사건이라는 거죠.
(3) 성령이 곧 하나님이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렇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정신' 혹은 '성령'을 경험하는 사건이 바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사건이라는 이야기죠. 즉, 헤겔의 종교철학에서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저 멀리 예지계 어딘가에서 흰 수염을 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모든 사람이 지금, 여기, 이 땅의 교회 공동체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존재가 하나님이라는 거죠.
바로 이 부분은 칸트의 종교철학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신을 이성의 이념으로 상정하고, 『실천이성비판』과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단순한 희망의 대상으로 요청했다면, 헤겔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가 먼 곳에 있지 않다고 강조하는 거죠. 현실의 교회를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새로운 정신이 바로 성령이고, 성령을 경험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이니까요. 말 그대로, 하나님이 어떻게 이 세상에서 일하고 계신지는 매일 같이 생생하게 우리의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다는 거죠.
(4) 헤겔의 종교철학이 일으킨 혁신
저는 헤겔의 종교철학이 대단히 강력한 실천적 함의를 지닌다고 봐요. 헤겔은 종교를 (특별히, 그리스도교를) 결코 이론적이거나, 낭만적이거나, 신비적인 영역에 놓아 두지 않으니까요. 그의 종교철학에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 땅에서 실제로 증명해내는 공동체로서 교회가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죠. "하나님이 존재한다."라는 주장을 형이상학 체계를 통해 논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주장을 교회 공동체의 실천을 통해 실제로 실현시키는 것이 중요하게 되는 거죠. 새로운 정신(성령)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고, 새롭게 세상을 뒤바꾸어서 "지금 여기서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신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는 일들 말이에요.
실제로, 헤겔은 이런 실천적인 문제들에 주목하죠. 헤겔이 1807년에 크네벨에게 보낸 편지에는 "너희는 먼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도 너희에게 역시 주어질 것이다."3라는 놀라운 구절이 쓰여 있을 정도로요. 이 구절은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먹을 것과 입을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을 패러디한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 나라'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고 본 헤겔에게는, 이 땅에서 가난한 자들이 회복되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고, 소외된 자들이 인정되는 사건들이야말로,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사건들이라고 여겨진 거죠. 흔히 마르크스가 현실을 변혁시키기 위해 헤겔의 관념론을 뒤집어서 유물론을 주장했다고 하지만, 이미 헤겔은 현실 변혁의 문제를 대단히 강조하고 있었던 거죠.
현대신학에서는 헤겔의 이런 통찰들이 대단히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죠. '보편사의 신학'을 제시한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나 '희망의 신학'을 제시한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에게서 (서로 강조점은 조금 다르지만) 헤겔이 말한 하나님 나라 개념이 갱신된 형태로 등장하죠. 특별히, 저는 하나님 나라 개념이 얼마나 강력한 실천적 힘을 지닐 수 있는지를 몰트만의 신학에서 자주 목격합니다. 몰트만의 글들은 실제로 남미 교회가 빈곤과 폭력의 문제에 목소리를 내도록 자극하였죠. 심지어 그가 쓴 『희망의 신학』은 우리나라에서도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교 지식인들 사이에서 읽혔고, 그 내용 중 일부는 법정 최후의 진술에서까지 낭독되었을 정도로 한국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주었으니까요.
(5) 헤겔의 종교철학이 지닌 한계
그러나 헤겔의 종교철학은 '교회'라는 현실의 공동체에게 강력하게 호소하는 만큼, 이 현실의 공동체가 지닌 한계로 인해 많은 부분 위태로울 수밖에 없죠.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 경험되고 입증될 수 있는 통로가 바로 교회라면, 그 교회가 지닌 문제는 곧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 지닌 문제가 되어버리니까요. 물론, 저는 대중 매체를 통해 드러나는 피상적인 교회 비판과는 달리, 사회에서 실제로 교회가 수행하고 있는 긍정적 역할들은 대단히 많다고 봅니다. 복지의 영역만 하더라도, 국가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복지의 사각지대를 개신교와 가톨릭이 상당 부분 메워주고 있기도 하죠. 그렇지만 아무리 이런 긍정적인 면모를 강조하더라도, 분명히 현실의 교회가 완전무결한 공동체가 아니라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현실의 교회가 지닌 한계가 너무나 명확한 데도, "하나님이 지금 여기 교회에서 일하고 계신다."라고 말하는 것은 공허할 수밖에 없죠.
특별히, 이런 문제는 소위 '크리스텐덤(Christendom)'이라고 하는 그리스도교 국가의 영역에서 심각하게 드러나죠. 세계사적으로 크리스텐덤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었는지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죠. 로마의 그리스도교 국교화 이후로 1000년의 세월동안 유럽 사회 전체를 그리스도교가 지배하였지만, 그 기간이 좋은 시대였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중세에 대한 비판도 솔직히 너무 과장이 심하다고 보긴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종교재판이나 마녀사냥은 중세 말기의 흑사병 이후부터 르네상스기까지 중세 사회가 정말 물리적으로 '개판'이 된 다음에 벌어진 것들이니까요.)
헤겔이 이런 한계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헤겔은 분명 근대인이었고, 세계사의 우여곡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고, 청년 시절에는 본인부터가 그리스도교 비판에 앞장 서던 인물이기도 했으니까요. 다만, 제 지식이 부족해서인지, 저는 헤겔의 종교철학에서 현실의 신앙 공동체가 지닌 한계에 대해 어떠한 대답이 제시되고 있는지 찾지는 못하였습니다. 물론, 헤겔에게는 역사가 결국 '자유'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일종의 낙관주의적 기대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기대가 얼마나 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지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헤겔의 종교철학이 지닌 강력한 실천적 힘을 유지하면서도, 그의 종교철학이 자칫 빠질 수 있는 현실적 문제를 극복해내는 길을 찾는 작업은 매우 유의미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판넨베르크나 몰트만이 20세기 후반부에 이런 작업을 수행한 대표적인 인물들이었고, 오늘날에는 예일학파의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나 급진 정통주의의 존 밀뱅크(John Milbank) 등이 이와 유사한 맥락의 작업들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물론, 이 학자들이 항상 헤겔을 직접 거론하면서 자신들의 논지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라는 공동체의 정치철학적-정치신학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의 논의를 전개한다는 점에서만큼은 헤겔의 영향권 안에 있다고 보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무쪼록 헤겔 이후로도 교회 안에서 새로운 '정신'들이 많이 일어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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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W. F. Hegel, Lectures on the Philosophy of Religion, R. F. Brown, P. C. Hodgson, and J . M . Stewart with the assistance of H. S. Harris (tran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20, p. 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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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종교철학은 '공동체(community)'라는 용어로 명백히 현실의 교회를 가리키고 있어요. "우리가 지금까지 본 개념을 지닌 공동체는 또한 자신을 실재화한다. 실제 공동체를 우리는 일반적으로 교회라고 부른다. 이것은 더 이상 나타나는 공동체가 아니라, 자신을 유지하면서 존속하는 공동체이다. 존속하는 공동체 속에서 교회는, 대체로, 그것을 통해 주체들이 진리로 나아오고, 진리를 자신들에게 전유하며, 따라서 성령(Holy Spirit)이 그들 속에서 실재적, 현실적, 현재적으로 되는, 그래서 그들 가운데 거하게 되는 기관이다."(G. W. F. Hegel, Lectures on the Philosophy of Religion, p. 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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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W. F. Hegel, Hegel: The Letters, C. Butler and C. Seiler (trans.),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84, p. 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