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없이는 과학도 없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또 하나의 이야기

저는 유튜브로 과학 영상이나 역사 영상을 자주 찾아보는 편입니다. 딱히 공부를 목적으로 삼지 않더라도,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이런 영상을 듣는 것이 꽤 재미있더라고요.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제 자신이 세상 돌아가는 문제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서 아쉬울 때도 있는데, 과학이나 역사 관련 지식들은 철학의 아쉬운 부분들을 채워주기도 해서 좋아하고요.

그렇지만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교양' 영상들은 아무래도 한계가 명확하다고 느낍니다. 복잡한 문제를 제한된 분량 안에 다루려 하다 보니, 영상의 내용이 너무 틀에 박힌 도식에 따라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서요. 전문성을 꽤 신뢰할 수 있는 지식 채널들에서조차 과학이나 역사와 관련해서 종종 지나치게 단순화된 설명을 하더라고요. '유튜브'라는 매체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더라고요.

1. 중세 vs. 근대?!

특별히,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대부분의 교양 영상들이 근대의 계몽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 '중세=종교=미신'과 '근대=과학=이성'이라는 도식으로 두 시대 사이에 일어난 이행을 이야기하더라고요. 과학이 발달하면서 신이 중심이던 시대인 중세가 인간이 중심인 시대인 근대로 변화하였다는 식으로요.

물론, 이런 도식은 중세와 근대의 차이를 매우 극적으로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유용하기는 하죠. 실제로, 17-18세기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합리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꼈기도 하니, 저 설명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고요. 적어도, 저 설명이 (다소 거칠기는 해도) 근대인들의 자기 이해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만큼, '교양' 수준에서는 충분히 통용될 만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다만, 유튜브의 거의 모든 과학 영상과 역사 영상이 매번 이런 도식만으로 '중세'와 '종교'를 폄하하고 '근대'와 '과학'을 찬양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과연 근대가 중세보다 더욱 '계몽된(enlightened)' 시대였는지에 대해서는 지난 세기 이래로 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수많은 의문들이 제기되었으니까요. 사실, (a) 중세를 '암흑 시대'라고 폄하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비판과 (b) 근대를 '계몽'과 '합리성'의 시대로 찬양하는 것 역시 이데올로기적이라는 비판은 이제 학자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특별하지도 않을 정도로 널리 퍼져 있는데 말이에요.

2. 종교 vs. 과학?!

종교와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계몽주의적 관점에도 동일한 문제가 제기되죠. 종교의 지배에 반대하여 과학이 출현했다는 흔한 설명과는 달리, 종교가 과학사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고 강조하는 학자들도 꽤나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20세기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 N. Whitehead)입니다. 화이트헤드는 16-17세기에 과학 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유럽의 기독교 신앙을 지목합니다. 이 세상을 합리적인 하나님이 창조하였다는 믿음 덕분에 자연에서 합리적 질서를 찾고자 하는 과학적 탐구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내가 보기에 과학 운동의 형성에 기여했던 중세기의 유산에 대해서는 아직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든 사건들 하나하나가 자신에 앞서 있는 사건들과 일정한 방식으로 명확하게 연관되어 일반 원리를 예증해 보이고 있다는 확고부동한 신념이다. 이러한 신념이 없다면 과학자들의 엄청난 노력도 가망이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상상적 사고 앞에 생생하게 그 모습을 나타내는 이 본능적인 확신이야말로 과학적 탐구의 원동력인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비밀, 밝혀낼 수 있는 하나의 비밀이 있다고 하는 확신이었다. 대체 어떻게 해서 이러한 확신이 그처럼 생생하게 유럽인의 정신에 뿌리 내리게 되었던 것일까?

유럽의 사상이 띠고 있는 이 색조를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은 다른 문명들의 사유 태도와 비교해 볼 때, 그 기원이 되는 것은 하나인 것 같다. 그것은 여호와의 인격적 힘과 그리스 철학자의 합리적 정신을 모두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하느님의 합리성을 중세인들이 끝까지 주장한 데 연유했음이 틀림없다. 신은 미세한 사물들에 이르기까지 그 하나하나를 질서 지어 보살핀다. 그래서 자연에 대한 탐구는 결국 합리성에 대한 신념을 옹호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는 여기서 몇몇 사람들이 표명했던 신앙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에 유의하기 바란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여러 세기에 걸쳐 자명한 것으로 여겨졌던 신앙이 유럽 정신에 심어 주었던 특징이다. 그리고 이때의 신앙이란 사상의 본능적 색조를 의미하며 단순히 말로 표현되는 신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A. N. 화이트헤드, 『과학과 근대세계』, 오영환 옮김, 서광사, 2008, 34쪽 인용자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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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이런 화이트헤드의 주장을 이어받아 종교가 과학에 기여했다고 강조하는 미국의 종교사회학자가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입니다. 그는 『기독교의 승리(The Triumph of Christianity)』(한국어: 『기독교 승리의 발자취』)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저서에서 유럽의 기독교 신앙이 근대 과학의 발전을 위한 토양을 만들어주었다고 지적하죠. '과학'의 이름으로 종교를 비방하는 무신론자들에 대해 거의 격분한(?) 어조로 글을 쓰면서요.

이보다 훨씬 심각한 것은 계몽주의 시대 동안 볼테르나 기번과 같은 유명 작가들이 과학과 종교 간의 갈등과 비슷한 허위를 많이 날조하고(이들은 바로 "암흑시대"와 같은 용어도 조작해냈다), 그때 이후로 화이트, 버트런드 러셀, 리처드 도킨스 같은 호전적 무신론자들은 이러한 날조된 정보를 유포하면서 새롭게 추가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기독교는 과학의 발흥을 저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과학의 발흥을 위해 꼭 필요했다. 기독교를 신봉하는 서구에서만 과학이 발생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더군다나 갑작스러운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 같은 것은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와 뉴턴을 비롯한 16-17세기의 과학자들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은 과거 수 세기에 걸쳐 과학이 정상적으로 발전해온 것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로드니 스타크, 『기독교 승리의 발자취』, 허성식 옮김, 새물결플러스, 2020, 401-402쪽.)

스타크는 소위 '세속화 이론(secularization theories)'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종교가 근대 이후로 영향력을 잃어버렸다는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대표적인 사회학자인 거죠. 흥미로운 점은, 스타크가 1999년 이래로 세속화 이론을 꾸준히 논박하였지만, 그는 종교적으로 기독교인이 아니라 불가지론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2007년에는 자신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성립된 서구 문명에 깊게 개입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스스로 ''문화적' 기독교인(cultural christian)'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지만, 굳이 '문화적'이라는 표현을 붙인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전통적인 교회나 신조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인물이죠. 그래서 종교가 근대 과학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스타크의 주장은 단순히 그의 개인적 신앙을 변호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화이트헤드가 과학의 발전에 대한 종교의 기여를 간략하게 언급만 하고 지나갔다면, 스타크는 이 기여를 매우 구체적으로 파고듭니다. 특별히, 그는 근대의 과학 운동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 같은 인물들이 16세기에 갑작스럽게 출현한 '시대의 이단아'들이 아니었다고 지적합니다. 오히려 이들은 모두 스콜라 학파에 속한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학자들이었고, 이들의 과학적 성과는 스콜라적 경험주의를 자신들의 연구에 계승한 결과였죠. 스타크는 바로 이 스콜라 학파의 사상적 기저에 '이성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이성의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였다면, 자연에는 이성의 하나님이 심어둔 일정한 법칙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근대의 과학자들에게 널리 공유된 생각이었다는 거죠.

화이트헤드는 기독교 신학이 과학의 발흥에 필수적 요소였음을 인식하고 있던 만큼이나 여타 지역에서는 타종교의 신학이 과학적 기상을 억눌렀던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예를 들어 데카르트는 자신이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근거를 하나님이 완전하고, 따라서 "가능한 한 항상 불변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까닭에 그러한 법칙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찾는다. 다시 말해서 우주는 합리적 규칙과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중세 스콜라학자였던 니콜 오렘의 말마따나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어떤 사람이 시계를 하나 만들고서 그것이 스스로 움직임을 지속하도록 설정하는 것과 상당히 비슷하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이성의 능력을 주었기에, 우리가 하나님이 정한 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반드시 가능하다. (로드니 스타크, 『기독교 승리의 발자취』, 417쪽.)


로드니 스타크

미국의 가톨릭 신학자 존 호트(John F. Haught) 역시 이런 관점에서 종교와 과학이 '지지(confirmation)'라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과학이 세계에 대한 일종의 '선험적 믿음들' 혹은 '암묵적 믿음들'을 전제로만 형성된다고 지적합니다. 가령, 세계에 합리적 질서가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이런 선험적 믿음이라고 할 수 있죠. 문제는, 이런 믿음들은 과학적 탐구나 발견에 선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과학 자체만으로는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세계의 이해 가능성에 대한 확신은 일종의 '종교적' 층위에서만 성립한다는 거죠.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과학은 우주가 합리적 질서를 갖춘 사물의 총합이라는 일종의 선험적 '믿음'에 근거하지 않고는 출발조차 할 수 없다. 과학자들은 항상 몇 가지 암묵적 믿음들(과학자들은 좀처럼 명확히 의식하는 방식으로 그것들을 숙고하지 않는다)에 의존한다. 거기에는 실제 세계가 '저기에' 있다, 이 실제 세계는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마음은 적어도 세계의 이해 가능태intelligibility 중 몇몇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아무리 우리가 탐구를 심화시켜도 여전히 밝혀낼 이해 가능태는 존재한다 등이 포함된다. 이런 종류의 신뢰 없이 자연에 존재하는 질서를 찾거나 이 질서의 특수양상을 계속해서 더 깊이 탐구할 동기가 있을 수 없다. (존 호트, 『과학과 종교 상생의 길을 가다』, 구자현 옮김, 코기토, 2003, 37쪽.)

그러므로 실재의 무제한적 합리성에 대한 기본적 신뢰라는 의미에서 믿음은 과학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의 원천이다. 모든 인간의 지식처럼 과학은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가 "신탁(信託)적"(fiduciary, 라틴어의 fideo, '신뢰하다'에서 유래) 측면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신뢰의 요소가 없다면 우선 과학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려는 동기가 아예 없을 것이다. (존 호트, 『과학과 종교 상생의 길을 가다』, 38쪽.)


존 호트

3. 창세기 vs. 과학?!

종교와 과학이 서로 갈등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 아마도 어떤 분들은 갈릴레이의 지동설에 대한 종교 재판이나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창조론의 반발을 떠올리면서 의아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오늘날에도 성경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을 지지하는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진화론을 과학적 사실로 인정하길 거부하니, 과학과 종교 사이의 대립은 마치 생생한 현실의 문제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죠. 하지만 기독교의 역사나 신학을 조금만 파고들어 보더라도, 이런 갈등이나 대립은 사실 대단히 허구적이라는 점이 금방 드러납니다. 로드니 스타크는 주류 기독교 신학이 결코 성경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죠.

이러한 모든 논란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신학의 기본도 모르는 이야기다. 초기부터 위대한 기독교 신학자들은 "문자적 무오성"(literal inerrancy)에 매달릴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은 성경이 해석을 필요로 하며, 그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경고하듯이 "이러한 문자적 표면 아래에서 다채로운 실체를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이다. (로드니 스타크, 『기독교 승리의 발자취』, 427쪽.)

실제로, 니케아 공의회 이전에 활약한 신학자들 중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 2-3세기의 교부 오리게네스는 창세기를 결코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그의 대표작인 『원리론』은 기독교 신앙의 논리를 체계적으로 저술한 '최초의 조직신학 저서'이기도 하죠. 흥미롭게도, 그는 『원리론』에서 어느 누구도 창세기의 내용이 상징적 표현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매우 확고한 어조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첫날과 이튿날과 사흘날 및 저녁과 아침"에 해와 달과 별들이 없었으며, 이른바 첫날엔 하늘조차 없었다(창세 1,5-13 참조)고 어떤 이성적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하느님께서 농부인 사람처럼 동쪽에 있는 에덴에 낙원을 심으셨고 그곳에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생명 나무를 두셨으며, 육체적 이[齒]로 그 나무의 과일을 맛보면 생명을 얻으며, 또한 이 나무에서 딴 과일을 씹어 먹으면 선과 악에 [관한 것에] 참여할 수 있다고(창세 2,8-9 참조) 생각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하느님께서 저녁에 낙원을 거니셨고 아담이 나무 뒤에 숨었다"(창세 3,8-9)라고 쓰여 있다면, 나는 이것들을 문자 그대로(σωματικώς)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럴듯한 이야기 형태로 어떤 신비를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라는 것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오리게네스, 『원리론』, 하성수, 최원오, 이형우, 이성효 옮김, 아카넷, 2014, 775-776쪽 인용자 강조.)


오리게네스

기독교 신학의 체계를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4-5세기 교부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성경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을 경계합니다. 그의 책 『그리스도교 교양』은 '최초의 성경 해석학 교본'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이 책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을 어떤 상황에서 본의적으로 읽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 표상적으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문자주의적으로만 성경을 읽으려는 시도가 '정신의 비참한 예속'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합니다.

문자를 추종하는 사람은 전의적 어휘를 고유적인 것으로 간주해 버리며, 고유한 어휘로 표시되는 바를 다른 의미로 소급시킬 줄 모른다. 예를 들어 (그런 사람들은) '안식일'이라는 말을 들으면 하루 이틀 연속되는 이레 중의 하루만을 연상하고, '희생'이라는 단어를 듣더라도 가축이나 땅의 소출을 바쳐 일루어지곤 하는 행사 이상은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이처럼 (다른 것을 가리키는) 표지를 마치 사물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감각적 피조물을 넘어서 영원한 광명을 흡수하는 경지로 정신의 안목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것은 정신의 비참한 예속이라고 하겠다.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교 교양』, 성염 옮김·주석, 분도출판사, 2011, 269쪽 인용자 강조.)

특별히,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해석학적 기준을 창세기 독해에 직접 적용시키기도 합니다. 그는 7일 동안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하는 창세기의 기록이 문자주의적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a) 해와 달의 창조보다 낮과 밤의 변화를 먼저 묘사하는 창세기의 기록은 문자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을 뿐더러, (b) 하나님은 낮과 밤 같은 시간의 지속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세상을 단번에 창조할 능력이 있는 분이시고, (c) 집회서 같은 외경은 애초에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께서 만물을 함께 창조하셨다."(집회 18, 1)라고도 말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문자주의적 해석에 매달려서 세상이 7일만에 창조되었다고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낮'과 '밤'이 일종의 예술적 표현으로서, 비지성인들도 창조를 이해하기 쉽도록 묘사한 내용이라고 주장합니다.

[…]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께서 만물을 함께 창조하셨다"라고 기술한 성경 저자는, 성령에 따라 하느님의 작업 방식을 성찰하였다. 그러나 이 창세기에서는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만물에 관한 서술이 시간의 간극에 따라서 행한 것처럼 적절하게 기술되었다. 이는 나약한 영혼들이 확실한 성찰을 통해 (이러한 서술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야기 방식의 순서에 따라 그들 눈에도 이해되기 위해 그렇게 제시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 『마니교도 반박 창세기 해설/창세기 문자적 해설 미완성 작품』, 정승익 옮김·주석, 분도출판사, 2022, 351쪽.)


아우구스티누스

16세기 스위스의 종교개혁자이자 장로교 신학의 기틀을 다진 인물로 유명한 칼뱅 역시 창세기를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는 매우 명확한 어조로 창세기에서 "천문학이나 고도의 기술을 배우려 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하고 있기도 합니다. 가령, 창세기 1장은 하늘에 '궁창(히브리어: 라키아)'이라는 특수한 벽이 있어서 이 세상의 물들이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뉘어져 있다고 서술하는데, 이 내용은 하늘에 대한 물리적 서술이 아니라는 거죠.

그[모세]은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고 말하는데, 이 귀절은 상당히 어렵다. 왜냐하면 물이 하늘 위에 있다는 것은 상식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믿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 내 견해에는 하나의 분명한 원칙이 있는데, 즉 이 귀절에서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귀절에서 천문학이나 고도의 기술을 배우려 해서는 안 된다. (존 칼빈, 『구약성경주석』, 제1권, 존 칼빈 성경주석출판위원회 옮김, 성서교재간행사, 1987, 54쪽 인용자 강조.)

오히려 칼뱅은 '궁창'과 '물'에 대한 창세기의 서술이 인간을 둘러싼 혼돈에 대한 서술로 읽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창세기가 말하는 '궁창 위의 물'이란 우리에게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거대한 혼돈의 힘을 상징한다는 거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들어서 물을 막고 계신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큰 홍수 같은 재난으로부터 인간을 지키고 계신다는 이야기로 읽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해석은 오늘날의 고대 근동학이나 구약 성경 신학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매우 통찰력이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같은 커다란 강 유역에서 문명을 일구었기 때문에, 언제나 하천의 범람에 시달리곤 하였습니다. 또한, 고대에는 아직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먼 바다로 나가는 일은 풍랑 앞에 목숨을 거는 일이기도 하였죠. 그래서 고대인들의 신화에서 '물'은 대개 '혼돈'의 힘을 상징하였습니다. 바빌로니아 신화에서 혼돈의 신 티아마트가 물의 신이기도 하다는 점이 이런 사실을 잘 드러냅니다.


장 칼뱅

그래서 창세기는 이 세상이 거대한 혼돈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또한 그 물들이 우리 머리 위로 당장 쏟아지지 않는 이유가 하나님이 '궁창'으로 물을 막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죠. 인간의 삶은 언제 혼돈의 홍수에 휩쓸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얼핏 당연한 듯 보이는 우리의 일상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것이 창세기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궁창 위에 있는 물에 대해서 자신의 무지함은 생각하지 않고 신앙으로 그것을 깨달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세의 의도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공공연하고 명백한 문제에 대해 더 이상 파고 든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실제로 우리는 머리 위로 구름이 공중에 떠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구름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우리에게는 숨쉴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에 의해 이러한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다. 실제로 우리는 비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대홍수와 같은 하늘의 큰비를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시면 우리는 구름 속에서 쏟아지는 폭포에 휩싸이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하나님께서 구름을 만드시어 우리의 머리 위에 두셨으며 이 구름 속에서 갑자기 물이 터져 우리를 삼키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지키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존 칼빈, 『구약성경주석』, 제1권, 55쪽 인용자 강조.)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칼뱅은 모두 '주류' 기독교 신학을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다윈보다 훨씬 이전에 활동하였는데도, 근대의 과학적 성과와는 전혀 무관하게 성경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을 경계하였죠. 성경을 문자주의적으로 읽으면 안 된다는 주장은 과학의 발달 이후에야 종교와 과학을 조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임시변통적 논리가 아니라, 기독교 전통에 아주 오래 전부터 뿌리박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최초의 조직신학 저서'와 '최초의 성경 해석학 교본'에서부터 문자주의적 해석에 대한 경계가 나타나니 말입니다.

물론, 기독교는 워낙 오랜 세월동안 서구의 지배적인 종교였기 때문에, 분명히 기독교인들 중에는 문자주의적으로 성경을 읽고서 과학에 반발하였던 인물들도 있습니다. 1000년이 훨씬 넘는 시간동안 서구에서는 지성인부터 돌팔이까지 모두가 기독교인이었으니, 그 중에는 별별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죠. 그렇지만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온 우주를 설명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무한동력'이나 '지구평평설'을 믿는 괴짜들이 있다고 해서 결코 그들이 과학계의 '주류'는 아닌 것처럼, 성경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은 결코 기독교 신학의 '주류'가 아닙니다.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자들의 사례를 들어 종교와 과학이 서로 갈등한다고 보는 것은 문제를 너무 과장하는 셈인 것이죠.

4. "자, 이제 골라보시오."

종교와 과학 사이의 관계에 대한 화이트헤드, 스타크, 호트의 설명은 과학사를 바라보는 일종의 '대안적 이야기'입니다. 볼테르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종교와 과학을 대립 관계로 놓는 이야기를 만들었고, 도킨스 같은 무신론 과학자들이 이 이야기를 마치 '정설'인 것처럼 퍼트리고 다녔다면, 화이트헤드, 스타크, 호트는 그와 정반대편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퍼뜨리고 있는 거죠. 종교는 과학과 대립하지 않을 뿐더러, 과학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를 말이에요.

개인적으로, 저는 기독교인이긴 하지만, 그리고 세 인물들의 대안적 이야기를 열심히 설명하기는 하였지만, 제가 그들의 이야기를 완전히 신뢰하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저는 종교와 과학을 서로 대립하는 관계로 놓는 이야기든지 종교와 과학을 서로 지지하는 관계로 놓는 이야기든지, 모두 일종의 '과장'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종교와 과학 사이의 관계는 결코 일면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보수 종교계가 과학의 발전에 많은 해악을 끼쳤다는 것도 틀린 이야기가 아니고, 근대의 수많은 과학자와 철학자가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세계의 합리적 질서를 탐구하려 했다는 것도 틀린 이야기가 아니죠. 저로서는 굳이 두 측면 중에서 어느 한쪽만을 특별하게 부각시켜야 하는 이유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그렇지만 화이트헤드, 스타크, 호트의 이야기를 소개한 것은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입장이 결국 모두 '이야기'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과학사에 대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이야기에서는 종교와 과학 사이의 대립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지만, 저는 그 이야기나 대안적 이야기나 결국 모두 '이야기'라는 점을 좀 더 널리 알리고 싶네요. 이런 태도는 제가 공부하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 배운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과거의 해석과 새로운 해석이 모두 '임의적'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말한 적이 있죠. 단순한 '해석'에 지나지 않는 것을 마치 실재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거죠.

나는 때때로 새로운 해석들을 제시하기도 할 것이지만, 이는 그 해석들이 옳다고 제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존의 해석과 새로운 해석이 동등하게 임의적임을 보이기 위해서이다. 나는 단지 어떤 새로운 해석을 발명해서 이것을 기존의 것과 나란히 놓고 "자, 이제 골라보시오."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단지 이전의 연기를 몰아내기 위해 [새로운] 연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의 기초에 관한 강의』, 코라 다이아몬드 엮음, 박정일 옮김, 올, 2010, 20쪽 인용자 강조.)

과학사를 설명하면서 완전히 가치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주어진 사안을 자신의 관점에서 다룰 수밖에 없죠.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항상 특정한 '관점'을 가지고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특별히, 스스로 '계몽'과 '합리성'을 추구한다고 자부하는 입장일수록 더욱 자신의 관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해야겠죠.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지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보는지는 사실 그다지 핵심이 아닙니다. 다만, 저로서는 우리의 '교양'이 틀에 박힌 관점들을 벗어나 좀 더 다양한 관점들을 포함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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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에 동의합니다. 과학이든 종교이든, 스스로가 완전히 메타적인 위치에서 가치중립적인 태도를 가지고 현상을 바라볼 수 없다는 한계를 자각하기만 해도, 훨씬 더 대화가 원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종종 과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의무는 저버린 채, 자신들은 종교와 달리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이성에 호소하는 듯한 것을 볼 때 거북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제가 리오타르를 적절히 이해한 게 맞다면, 메타내러티브 역시도 신화와 서사에 기초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러한 기초를 완전히 부정하고 보편적 이성에만 호소하고, 그러한 설명이 서사나 이야기를 근거하고 있는 설명보다 높은 지위를 가지는 듯한 태도에 종종 거부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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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h20인가?에서 장하석 교수님이 화학혁명에 대해 서술하던 것이 생각나네요. 라부아지에 이론이 플로지스톤 이론을 "논파"했다는 대부분에 통설과 달리 플로지스톤 이론이 그 당시에 합리적 관점에서 볼때 라부아지에 이론과 이론적 지위에서 동등했다. 오히려 라부아지에주의자들의 독단주의 때문에 과학에 발전이 저해됬다는 것을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화학혁명이 진짜 "혁명"인가? 그냥 화학"독재"아닌가?라는 생각이 읽으면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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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종교와 과학의 역사적 관계를 다루는 선생님의 이 글에서 주로 철학자나 신학자들의 견해가 제시되어 있어서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과학사학자들이 이에 대해 연구한 reference를 조금 제시해 보고 싶어요. 우선 누구보다도 제 닉네임이기도 한 영국의 과학사학자 Frances Amelia Yates를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녀는 "Giordano Bruno and the Hermetic Tradition" 등에서 르네상스기의 마법 및 비교적(esoteric) 전통이 과학혁명에 끼친 영향을 다루고 있죠. 이런 테제는 정식화되어 "예이츠 테제"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Giordano Bruno and the Hermetic Tradition Amazon.com

또다른 사학자 Brian Copenhaver 역시 계몽주의 시기 마법의 영향에 대해 연구하였죠. < Magic in Western Culture : From Antiquity to the Enlightenment>를 참고문헌으로 들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Jason Josephson-Storm은 < The Myth of Disenchantment: Magic, Modernity, and the Birth of the Human Sciences>에서 현대사회가 탈주술화되었다는 믿음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하지요.

알라딘: The Myth of Disenchantment: Magic, Modernity, and the Birth of the Human Sciences (Paperback)

참고로, 과학자 뉴튼은 연금술에 심취했고, 천문학자 케플러의 어머니 카타리나 케플러는 witch로 알려졌으며 케플러 자신도 점성술사였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과학적 방법론을 수립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저술에는 마법적 세계관이 기술되어 있기도 하고요. 과학과 종교, 신비주의/마법적 전통의 문제는 복잡하게 얽힌 문제입니다.

많은 좋은 글들 올려주시는데, 처음 댓글을 달아본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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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최근에 경남대 이종흡 교수님의 『마술, 과학, 인문학』이라는 아래 책을 알게 되었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도 아마 예이츠의 접근법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겠네요.

http://aladin.kr/p/ZPW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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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예이츠 테제 자체를 명시적으로 주된 주제로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17세기 자연과학 및 근대에 이르기까지 비학적 전통의 연속성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읽어본지 꽤 되어서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많네요...하지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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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에 중세-르네상스/초기 근대의 "연금술"에 집중한 단행본이 한국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관심 있으실 분들이 계실거 같아서 링크 남깁니다.

(2)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 연금술만큼이나 흥미롭고 궁금한 분야가 "광학"인듯합니다.
얼핏 듣기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조명" 개념의 영향으로 빛이 곧 직관의 매개체로서 이해되었었다 듣었기도 하고, 르네상스 시기 미술의 발전과 연관된 투시도법 등도 광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보았거든요.
언젠간 관련된 단행본도 번역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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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야망>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르네상스기 광학 및 마법에 대해 관심 있으신 분을 위해 저도 책 소개해 드릴게요.

<Giambattista Della Porta's De Refractione of 1593> 라는 르네상스기의 저서가 있고요, Giambattista Della Porta와 그의 저서에 대하여 Giona Hon, Arianna Borrelli, Yaakov Zik 등이 집필한 연구 논문들을 수록한 <The Optics of Giambattista Della Porta (CA. 1535-1615): A Reassessment>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Giambattista Della Porta란 사람은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의 자연철학자(이자 동시에 마법사라는 논란이 있는 인물)였는데요, 그가 저술한 책 "Magia Naturalis" 즉, "자연 마법"이란 책 안에 근대 광학에 영향을 준 과학적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고 하죠.

그리고 참고로, 아이작 뉴턴의 <광학(Opticks: or, A Treatise of the Reflexions, Refractions, Inflexions and Colours of Light)>은 한국어로 번역도 되어 있습니다.

지암바티스타의 책이 1593년, 뉴턴의 책이 1704년에 출간되었으니 110년 정도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는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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