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자유로운) 윌리엄 뉴먼, <프로메테우스의 야망>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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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올빼미에도, 근대 과학 혁명과 근대 철학 사이의 관계 (혹은 그 전과 그 후의 학문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글이 올라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주제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프로메테우스의 야망>을 꼭 읽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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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야망>은 '겉보기에는' 인간 복제 시대를 맞이해서, 자연(nature)과 인공/기예(art/artifact)의 구분이 문제가 되는 시기에, 이미 이 문제를 다루었던 중세 연금술을 통해 한번 교훈을 얻어보자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뉴먼이 연구비를 타내고, 책을 출판하기 위한 '마케팅적인 레토릭'이라고 전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뉴먼은 1) 난 중세 연금술 책을 엄청 읽었고 이게 재미있어서 너네한테 설명해줄 건데 2) 특히 학계 너네, 매번 연금술이 a) 이상한 신비주의 (엘리아데, 융)나 b) 실패한 아무것도 아닌 전-과학으로 여기던데 그거 아님 ㄴㄴ. 연금술은 중세-스콜라 철학의 '질료형상론'을 '실험'이라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원자론'으로 전환시키는데 결정적인 '다리' 역할을 했다. 3) 물론 대중들은 이런 것에 관심 없을테니 일단 복제양 돌리 이야기로 쓰긴 할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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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연금술 책을 엄청 읽었던 독후감답게, 사실 각 파트의 연결은 조금 기묘합니다. 각 챕터들은 연관성이 있지만, 전체를 놓고보면 도대체 복제양 돌리로 시작한 서문과 베이컨/보일의 원자론 - 실험을 통한 검증론이 연금술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중간에 나오는 굉장히 긴 파라겔수스의 '호문쿨루스' 실험은 왜...?)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이런 '두서 없는 정보 나열'에 있습니다. 이 책이 아니라면, 도무지 들어보지도 못했을 사람들 이름과 책들. 그리고 이것들이 '아리스토텔레스 - 중세 스콜라 철학'이라는 거대한 틀에서 해석되었는지, 이런 지엽적인 정보가 재미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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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간략한 각 챕터에 대한 이야기들

[1장]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자연/기예의 구분을 말하고, (이와는 독립적으로 형성된) 고대 연금술 전통을 말합니다.

자연/기예 구분은 사실 처음부터 문제적이었습니다. 깔끔하게 나누기에는 너무나 많은 분야들이 있었던 탓이죠.
예컨대 a) 회화나 조각처럼 '자연을 모방해서' (실질적인 형상은 없는) '모방하는 기예'(라고 하지만, 이조차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이상적인 형태'를 향해 자연의 부분들을 조합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상적인 형태'가 어떻게 자연보다 열등하다 할 수 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이는 '뭐가 되었든 표면적 모방'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전제하는 질료-형상이라는 형이상학이 제거되면 어찌되는거지? 그리고 이걸 마침내 제거한 사람이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보일입니다.)

b) 의학이나 농사처럼 '자연이 내재한 속성? 본질?'을 '완전하게' 만드는 기예. (병든 사람을 건강하게 해주고, 씨앗을 자라게 해주는 등)

하지만 가장 문제적인 범주는 (뉴먼이 제대로 다루지 않는) c) '자연을 정복하는 기예'입니다. <역학 문제>들 이라는 위-아리스토텔레스 저서에서 나오는 문제, 즉 물리학 - 기계공학적인 영역입니다. 이 문제를 이해할려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물질의 운동/변화는 4원소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눅눅한 물, 뜨거운 불 등등.

그렇지만 역학적 특성을 따라 만들어진 기계들의 운동/변화는 이러한 질료/4원소와는 별개입니다. 도르레를 쇠로 만들든, 금으로 만들든, 나무로 만들든 기계는 똑같이 작동합니다. 그러니 아리스토텔레스-페리파토스 학파 입장에서는 설명하기가 영 어려운, 난감한 영역이었을 겁니다.

[2장]

이제 무대는 중세 유럽과 연금술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연금술은 어떤 기예일까?

i) 연금술을 비판하는 학자들은 a) 회화/조각처럼 표면만을 바꾸는 모방하는 기예로 연금술을 봅니다. 그 이유는 x) 인간은 신보다 열등하므로, 자연의 창조 과정보다 열등할 수 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 연금술의 '변성'은 그저 도금 같은 것이지 실제 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고로 실제 금을 만든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기치는 일인 셈입니다!)

여기에 대한 ii) 연금술사 들의 반박은 흥미롭습니다. 이들은 연금술을 b) 완전하게 만드는 기예로 보기 때문이죠. 이들은 x) 인간과 신의 우월/열등이라는 문제를 굳이 건드리진 않습니다. 그저 y) 자연의 창조 과정과 인간의 창조 과정이 사실상 '같다' 옹호할 뿐입니다.

벼락이 쳐서 생긴 불이든, 인간이 불을 붙여 만든 불이든 '같은 불'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면 행위자가 인간이든 자연(신)이든 사실상 같은 '자연'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자연의) 금속 생성과 연금술이 도대체 뭔 차이가 있는 것이냐? 이것이 연금술사들의 응답인 셈이죠.

이에 대한 재반박에는 형이상학적 요소나 신학적 요소가 숨겨져 있습니다.
iii) 신학적 비판은 "그래? 그러면 넌 인간과 신이 동일하다 주장하는 것이냐? 이 놈의 이단! 악마에게 영혼을 판 놈!" 이에 대한 반응은 연금술을 성경과 같은, 신에 의해 주어진 '기적' 혹은 '능력'이라 주장하는 것입니다.
iv) 형이상학적 비판은 "그래 경험적으로 연금술의 금과 자연의 금이 같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경험할 수 없는 그 '형상'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한 반응은? 사실 이 주장은 가불기입니다. 이걸 뭐 어떻게 반박하나요? 사실상 권위 - 그리고 이 이론이 가진 압도적인 설명력으로 내리 찍고 있으니 뭐라 반박하기가 어려울 뿐입니다.
이 주박은 마지막 장에 가서, "근데 경험 불가능한 것을 굳이 옹호할 필요가 있나? 그냥 오컴의 면도날을 생각해서 제거하면 그만이잖아?"라는 매우 간단한 원리(와 그것이 수용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서 나온) 로버트 보일에 의해 해결됩니다.

[3장]

시각 예술과 연금술의 티격태격입니다. 연금술사들이 연금술을 옹호하기 위해 "우리는 열등한 조각/회화 같은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만드는 기예야!'"라 주장하면서, 시각 예술을 엄청 내려쳤습니다. (그리고 이는 연금술 - 시각 예술가 간의 후원금을 둘러싼 정치적 암투이기도 했죠.)(이처럼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자기 분야가 우월하다고 '우기는' 장르를 파라고네[paragone]라고 합니다.)

당연히 이에 대한 예술가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습니다. 다빈치나 조르조 바사리는 연금술에 대한 반박을 그대로 수용해, "도금을 금이라 우기는 사기꾼들"이라며 연금술사들을 비난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뉴먼이 다루지 않는 재미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1장에서 나왔든 c) 역학에 의한 사물들은 어떤 의미에서 회색 지대 속에 존재했죠. 그리고 알다시피 다빈치를 비롯한 르네상스 시기 시각 예술가들은 단순힌 미술가가 아니라 장인이기도 했습니다. 화가이자 조각가이자 무대 장치 미술가이자, 건축가 등등 여러 역할을 겸하는 것이 르네상스 시대 장인들이었죠.
특히 다빈치는 여러 기계 공학적 장치들을 제시한 것을 유명한데, 다빈치는 자신의 역학적 영역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그리고 이와 시각 예술/연금술의 관계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반노초 비링구치오[Vannoccio Biringuccio] 같은 야금기술자, 대포 기술자는 어찌보았을까요?)
(르네상스 - 바로크 시기에는 '경이의 방'에 온갖 미술 작품, 진기한 생물의 박제, 광물은 물론 이러한 오토마타나 대포, 천체 관측 장비 등이 모두 '동등하게' 전시되어있었다는 점을 상기해봐야 합니다.)

이와 같은 또다른 회색지대를 보여주는 것이 베르나르 팔리시(Bernard Palissy)입니다. 뉴먼이 팔라시를 시각 예술로 분류했지만, 사실 좀 애매합니다. 팔라시는 도예가이기 때문이죠.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도예가는 흙을 굽고 유약을 바르는 '연금술'에 가까운 작업을 합니다. (유리나 도자기 등은 연금술사들이 '변성'을 다룰 때 항상 말하던 예시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것이라면 접붙이기 한 식물이 있죠.)

그러니 팔라시는 (다빈치보다 수월하게) 연금술보다 자신의 '도예'가, 예술이 더 우월하다 생각합니다. 왜냐? 자신은 동물/인간/식물과 똑닮은 도자기를 통해서, 흙을 '생물체'로 변성한 셈이니깐요. (이러한 생물체의 변성이라는 주제는 다음 장에서 다룰 파라겔수스의 영향이기도 했습니다.)(다만 팔라시가 변성해서 만든 '생물체'는 움직이며 활동하는 생물체가 아니라, '화석'입니다. 당대 생물학적 발생론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인데, 기본적으로 당대에는 생물이 '자연 발생'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유래한] 유서 깊은 견해였습니다. 썩은 고기에서 벌이 생기고 모기가 생기고 뭐 그렇다는 것이죠. [물론 인간은 유성 생식합니다.] 팔라시는 파라겔수스 이론을 따라서, 이런 생물체에서 제 1 본질[물기]이 사라지면 화석이 생긴다 여겼습니다.)

(여담 1 ; 팔라시를 비롯해, 당대에는 그로테스크한 도상들이 유행했습니다. 그로토[Grotto]라고 자연 동굴에 자연물에서 생물체로 변화하는 듯한 오묘한 조각상들이 유행해이었죠. 대표적으로 이탈리아의 잠볼라냐가 있습니다.)

[4장]

이제 파라겔수스로 들어옵니다.
연금술사들은 자신들의 금속을 '다른 종'으로 변성시킬 수 있다 주장했습니다. 근데 이게 가능하다면, 인간을 비롯한 생물체의 변성 역시 가능하지 않을까? 이게 호문쿨루스와 파라겔수스의 생각입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래한 인간의 유성 생식 이론을 전제해야합니다. 간략히 말하면, 남성의 정액이 형상을 주고, 여성의 생리혈이 질료를 주고 자궁에서 적절한 열을 가해서 인간이 탄생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열을 '인공적인 열'을 대체해도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열은 인간이 만들든 자연이 만들든 똑같잖아?) 그럼 어디 생리혈이라는 열등한 육신을 제외한, 형상만으로 이루어진 인간도 만들어볼 수 있지않을까? (킁킁, 어디서 종교적인 냄새가 나지 않나요? 연금술은 신의 기적과 동등하다는 주장의 여파를 여기서도 볼 수 있습니다.)

파라겔수스는 기묘한 인물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기묘한 인물은 1) 일관되게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구 평평론이든 큐어넌이든 얼치기 논증의 음모론이지만 일관된 주장을 하죠. 2) 그렇다고 헛소리를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헛소리를 하는 사람은 광대거나 광인이거나 시인이죠. 굳이 의미니 진리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기묘한 인물은 3) 굉장히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논증을 이어다가다, 어느순간 이 논증이 극단에 도달해서 도무지 현실적이지 않은 광기 어린 결론에 도달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시작은 논리적이고 결론은 미치광이인데 도무지 이 전환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파악할 수 없는 사람들. 이들이 기묘한 사람입니다. (파라겔수스 외에 한 명 더 뽑자면, 마르키 드 사드를 뽑겠습니다.)

파라겔수스는 정액을 혐오했습니다. 근거는 뭐...여러 개가 있긴 했죠.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발생론과 호문쿨루스의 가능성 ("자궁 이외의 열로 인한 생명의 발생")을 인정하면, 우리가 자위를 통해 내보낸 정액조차 '예기치 않은' 괴물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고로 자위는 금지입니다.)
그럼 금욕을 하라는 건가? 아뇨. 파라겔수스에 따르면, 금욕도 해롭습니다. 정액이 배출되지 않으면, 인간의 몸에 다시 '흡수되고' 인간의 신체를 '자궁 삼아' 괴물/벌레들을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남색 행위로 장에 들어가면 회충이 되고, 그냥 금욕을 하면 몸에 생기는 모기나 종기 등의 병이 됩니다.)

그럼 뭐 어쩌라는 거지? 파라겔수스의 결론은 둘 중 하나입니다. 결혼해서 신성한 자손 번식을 하거나, 거세(!)를 하라고요. 진지합니다. 건강하게 살려면 거세해야합니다. (근데 놀랍게도 이는 과학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내시들이 평균 남성보다 오래 살았다고 하네요 하하하....)

(여담 2 ;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발생론 - 연금술을 거쳐, 파라겔수스를 통해 나온 괴물/호문쿨루스 발생론은 이후, 바로크 - 계몽주의 시대 괴물 담론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앞서 파라네시/잠볼라냐 등의 그로토에서 말했듯, 은근 이 시기 사람들은 기기괴괴한 것을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이 이후 시기에 나온 괴물 담론으로는 이충훈 선생님의 <자연의 위반에서 자연의 유희로>라는 단행본과, 번역하신 여러 책들 [라 메트리의 <인간 기계론>, 드 모페르튀의 <자연의 비너스>, 디드로와 사드 등등]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여담 3 ; 파라겔수스와 장미십자회의 연관성을 연구가 덜 된 분야입니다. 파라겔수스에 의해서 i) 연금술을 통한 생명의 변성 ii) 변성에 대한 지식이 곧 신이 주신 지식과 동등해지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장미십자회와 이후의 파라겔수스주의자들에 의해 보다 '사회 정치적 운동'으로 나아간다고 역자는 말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 제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역자이신 박요한 선생님도 딱히 네임 드로핑을 해주시진 않으셨네요.
시공간의 연관선상 푸리에주의랑 연관되어있을려나....? 아니면 사드? 아니면 옹프레의 <반철학사>에서 다루는 여러 쾌락주의/범신론/원자론자들?)

[5장]

이제 마지막 연금술과 근대 과학 혁명/입자론의 등장을 연결시키는 파트에 도착합니다.

말했다시피, 연금술사들은 y) 자연의 창조 과정과 인간의 창조 과정이 사실상 '같다' 옹호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중세 스콜라 철학자 중 유대인 테모와 제네르트 같은 학자들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재현한 자연의 현상을 통해 자연 그 자체를 연구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았습니다. (나아가 경우에 따라서는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이 주장을 받아드린 사람이 로저 베이컨입니다. 베이컨은 "자연이 답을 내놓을 때까지 괴롭히는" 실험을 옹호하면서 (유대인 테모/제네르트 같은 스콜라 철학자 중 자연/기예 구분을 무시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계승하지만) 동시에 스콜라 철학자 질료 형상론에서 벗어나 원자론으로 갑니다.

그리고 계속 말했듯, 이를 더 철저하게 밀고 나간 사람이 로버트 보일입니다. 보일은 "어...경험적으로 알 수 없는 형상 같은 것을, 그냥 없애는 편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형상론을 너무나 손쉽게...제거합니다. 이렇게 근대 과학 혁명의 한 부분이 완성되었습니다.

[에필로그]

이제 뉴먼은 어떻게든 책을 마무리하려합니다. 다윈 이야기도 하고, <파우스트> 이야기도 하고.

하지만 제일 흥미로운 지점은 데카르트를 말하는 짧은 두 페이지입니다. 데카르트에 대해 좀 아신다면, 데카르트가 유명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실겁니다. (데카르트가 '운동'을 정의하면서 기계론을 말했던 사실을 상기해봅시다.)

지금까지 자연/기예에서 항상 소외되던 c) 역학적 체계가 다시 논의의 한복판으로 들어오지만, 여전히 이 주제는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뉴먼도 후속 연구를 딱히 이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역자인 박요한 선생님의 호기심도 파라겔수스와 유토피아 운동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스콜라 철학에서 물리학/역학의 자리는 어디였을까요? (Cambridge history of science 3권, early modern science를 뒤적일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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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4 ; 근대 과학 저서는 사실 철학 저서랑 형식에서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로버트 보일의 <회의적인 화학자>는 대화록의 형식으로, 뉴턴의 <광학>은 유클리드와 같은 공리의 형식으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새로운 두 과학>과 <(천동설과 지동설) 대화>도 대화록 형식이죠.

그렇다면 이때 (아직 과학이라 불리지 않았지만) "과학"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는 방식은 무엇이었을까요? 저 위에 있던 유대인 테모나 로버트 보일, 아퀴나스 등의 저작을 보면 결국 (i) 스콜라 철학의 논리적 방법들 (귀류법, 반박 주석 등)을 사용하는 것 (ii) 권위 있는 혹은 모두가 납득하는 경험적/증언의 사례를 사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기원한 자연 발생론, 성경의 기록들, 맨드레이크나 접붙이기 같은 일상의 사례들)

이 이상의 방법이 있었을까?
(근데 서사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작품들, 즉 알레고리 작품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가?)

14개의 좋아요

근대과학의 발생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뜻밖에도 연금술에 대한 논의와 자주 만나게 되네요. 저로서는 아직 연금술과 과학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살피기 힘들지만, 이 관계가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꽤 새로운 관점을 던져주는 것 같아서 항상 흥미롭다고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1개의 좋아요

(1) 뭐랄까요. 당시 사람들 입장에서 '연금술'은 오늘날 철학자들의 '진화론'이나 '양자역학'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막연히 생각하곤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