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경험/귀납의 삼각관계

오늘 장하석 교수님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와 칼 포퍼의 반증가능성 및 합리주의, 그리고 크립키 모형을 공부하다가 다음과 같은 메모를 쓰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셋의 개념적 관계는 어떠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 세 가지를 연역과 대비되는 류의 맥락의 개념 안에러, 셋을 '동일'하지는 않더라도 연역에 대비된다는 비슷한 범주에 함께 넣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생각이 그렇게 엄밀하지는 않은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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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선 과학/경험/귀납 모두 거대하고 어떻게 엄밀히 정의하느냐에 따라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어 보입니다. 나아가 "지식"이라는 개념조차 명확히 정의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 보이고요.

(지식의 정의에 관한 문제라면 제가 예전에 번역한 다음 글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2) 우선 경험적 지식의 범위부터 문제가 될 듯하네요. (오감을 다 가진) 인간의 감각 지각만 포함되나요, 아니면 망원경이나 X선 같이 도구를 통해 확장된 감각 지각까지 포함하나요?

(3) 귀납도 쉽게 정의하기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보통 반례 하나만 있어도 귀납 지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여깁니다. 따지고보면 이러면 귀납 지식이란 영원히 성립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협력을 통해 지금 이 시점 백조에 관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순 있지만,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에 있을 모든 백조에 관한 정보는 얻을 수 없으니깐요.

그럼에도 저희는 귀납을 통해 얻은 정보를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다 여깁니다. (적어도 찍은거라 여기진 않죠.) 그렇다면 이 신빙성의 기준은 무엇이고 왜 있다 여기는걸까요?

(3) 마지막으로 과학조차 쉽게 정의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러한 진짜/가짜 과학의 구분이 어렵다는 점 뿐 아니라, 물리학과 생물학 같은 개별 과학 분과들이 하나의 통일된 이론을 가지는지조차 학자들 간의 논쟁이 있습나다.

(올빼미에서도 생물학에서의 설명과 물리학에서의 설명을 동일하게 볼 수 있는지에 관한 논쟁이 있었었죠.)

(4)

마지막으로 귀납적 지식과 연역적 지식이 과연 그렇게 엄밀히 구분가능한 것인지조차 철학 내에서는 논쟁이 있습니다.
흔히 콰인이 논리실증주의에 대한 반박으로 제출한 <경험론의 두 독단>을 통해 두 지식의 엄밀한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테제를 주장하였고 이는 여전히 논쟁적입니다. (올빼미에 어렴풋이 이것과 관련된 글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찾지 못하겠군요.)

(5)

그래서 저의 견해는 무엇인가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과학은 여러 학자들이 여러 방법(비단 경험적이거나 귀납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을 통해 (1차적으로) 경험 가능한 이 세상에 있는 것에 관한 어떠한 보편적 이론/설명을 제시하려는 시도"들"이다.
(특히 물리학/화학, 생물학, 고생물학/지리학 등의 역사에 대한 과학. 이 셋은 방법론과 우선시하는 증거들, 정당화의 기준, 설명의 목적이 다 사뭇 다르다 느낍니다.)(아마 제가 잘 모르는 천문학이나 컴퓨터 공학 같은 학문들도 꽤 다를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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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모든 귀납적 지식은 (선험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라면) 경험적 지식이지만, 모든 경험적 지식이 귀납적이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귀납적 지식이라 함은 귀납추론을 통해 획득된 지식일 텐데, 예를 들어 '내 눈앞에 컵이 있다'는 단순한 지식을 제가 경험으로써 획득할 때 (정의상 단순하지 않고 여러 사례가 그 속에 복합되어있는) 귀납추론을 수행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사실 '경험적 지식'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심장하고, 정의하기에 따라 다른 얼굴을 내보일 것 같아요. 모든 지식을 경험에서 오는 것으로 규정하는 논자에게라면 '경험적 지식'이라는 말이 '지식'과 동일하기도 하겠고요. 이 문제는 과학적 지식과 경험적 지식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고요.

과학적 지식과 귀납적 지식 사이의 관계는 전문적인 문제인 듯해 더 어렵네요. A.F. 차머스 같은 경우 과학적 지식이 귀납적 지식으로 구성된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로 '정당한' 귀납추론의 기준을 내세우기 어렵다, 관찰 사실만을 활용하는 귀납 논증은 관찰 불가능한 것, 이를테면 양성자나 유전자 등에 대한 지식을 가져다줄 수 없다, 귀납의 시작인 오류 가능한 측정값들로부터 수학적으로 표현되는 엄밀한 과학 법칙이 도출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등등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A. F. 차머스, 신중섭•이상원 옮김, ⟪과학이란 무엇인가?⟫, 서광사, 2003의 4장). 저 개인적으로는 귀납추론이 과학적 지식의 형성에 유용하다, 과학적 지식은 귀납적 지식의 활용에 의해 도움을 받는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귀납추론 외에도 과학이 사용하는 지적 도구가 너무 많으니까요(기존의 이론에 대한 배경지식 등을 전제로 삼은 연역도 그 중 하나겠고요). 물론 모든 과학적 지식이 귀납추론을 요구하는지, 귀납추론을 조금도 활용하지 않고 형성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이 있는지는 다시금 과학적 지식 자체의 정의를 되묻게 만드는 논의거리가 될 것 같아요.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해보았는데, 결론적으로 삼자 간의 개념적 관계를 정립하기 전에 각각의 카테고리의 엄밀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밌는 질문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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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개인적 정보의 누적
귀납=집단적 정보의 누적
과학=전체적 정보의 누적

정도로 표현 가능하네요.

원소, 집합, 전체.
기준관점에 보편발상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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