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비평에서 틈만나면 부활하는 사람들

데리다, 푸코, 들뢰즈, 가다머, 라캉

저는 예술 비평 관련 글을 읽을 때가 많은데 저 5명이 언급이 가장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저 5명이 언급량이 가장 많으면서 좀 받아들이지 못하겠는 비평들이 많더라고요 저 5명의 공통점이라고 할만한 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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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비평의 관계에 대한 제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특히 예술 비평이든 문학 비평이든, 어떠한 이론(theory)을 사용할 때 굉장히 느슨하게 사용하고 그걸 딱히 문제시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경향과 대비되는 미술사학적 - 분석 미학적/인지과학적 접근을 하시는 분들도 많고, 혼합된 경향도 많습니다. 다만 서술하신 5명은 대표적으로 '문학 이론'으로 사용되는 철학자라서, 이리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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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비-철학과에서의) '이론'의 지위와 실천성 등등에 대한 흥미로운 글이 2023년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렸습니다. 정민우님의 <불가능한 퀴어 이론>이라는 글입니다.

문학동네 (munhak.com)

저도 원문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모로 흥미로운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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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질문하셨던 분이네요? 그런데 질문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거친 감이 있습니다. 저들의 예술 비평 중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텍스트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왜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시면 답변 또한 구체적이 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좀 뜻밖이면서 흥미로운 질문이어서 답변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일단 5명의 생몰 연대를 봅시다.

  • 한스게오르크 가다머(1900-2002)
  • 자크 라캉(1901-1981)
  • 질 들뢰즈(1925-1995)
  • 미셸 푸코(1926-1984)
  • 자크 데리다(1930-2004)
  1. 이 다섯 명은 모두 20세기 사상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군요. 가다머가 큰형뻘이고, 데리다가 막내동생뻘이네요. 흥미롭게도 가다머와 데리다는 1980년대에 공개 논쟁을 벌인 철학자들이기도 하네요. 이 두 사람은 '해석학'이라는 분야로 묶을 수 있습니다. 예술 비평이라는 행위 자체가 결국은 작품 해석이므로 예술 비평에서 해석학자들이 많이 언급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철학적 해석학은 예술 비평에 국한되지 않고, 역사 비평이나 문화 비평 같은 다른 분야에서도 큰 역할을 합니다.

  2. 라캉은 구조주의 사상가, 푸코와 들뢰즈는 구조주의를 비판하는 후기 구조주의 사상가로 볼 수 있습니다. 라캉은 소쉬르의 언어학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재해석하여 아주 복잡한 이론을 만든 사람인데, 글이 너무 어려워서 라캉에 대해 설명해 놓은 개론서를 봐도 내용 파악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라캉의 욕망 이론에서 시각과 관련된 개념, 특히 '응시' 개념이 1980년대 이후 영화와 미술 비평에서 자주 활용되었고, 그래서 이걸 모르면 영화와 미술 평론을 할 수 없었던 (눈먼) 시절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미술 평론가 중에 로잘린 크라우스라는 이가 있는데, 이 사람이 라캉 이론으로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을 해석해서, 라캉의 『에크리』가 미술 평론가들의 필독서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문학에서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라캉을 모르면 간첩, 그러나 정작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그리고 라캉의 상징계 이론은 프랑스와 미국의 페미니즘 및 젠더 이론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습니다.

  3.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세르반테스와 벨라스케스 같은 예술가들의 유명한 작품들을 예로 들었을 뿐만 아니라, 「저자란 무엇인가?」 같은 문학 비평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같은 미술 비평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기 저작에 등장하는 독특한 개념들, 예컨대 파레시아, 헤테로토피아, 실존 미학 같은 개념들은 국내외 예술 비평가들에 의해 자주 사용됩니다. 들뢰즈는 『천 개의 고원』 같은 대표작에서 음악을 비롯한 여러 예술을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프루스트와 기호들』 같은 문학론, 『프랜시스 베이컨』 같은 회회론, 『시네마』 같은 영화론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본주의 비판은 여러 비평가들에게 큰 지적 자극을 주었습니다. 현재 들뢰즈의 철학은 신유물론(또는 새로운 물질주의) 담론에서 새롭게 소환되고 있습니다.

  4. 언급하신 5명의 사상가 중에서 라캉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은 니체와 하이데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니체와 하이데거는 실체와 본질을 논하는 전통 형이상학을 비판하고 해체했습니다. 그리고 가다머, 들뢰즈, 푸코, 데리다는 각각 자신들의 방식으로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발전시켜서 21세기 철학을 위한 밑거름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동시대 예술에 관한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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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트렌드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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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학적 실천에 대해서 말하거나 이에 적용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예술비평에서 역시 차용될 수 있는 것이겠죠. 가다머는 애초에 해석학을 표방한 사람이고, 라캉의 정신분석은 증상에 대한 해석적 실천입니다. 데리다의 차연, 들뢰즈의 차이, 푸코의 에피스테메 역시 차이 및 타자 간의 해석의 문제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입장을 동반하곤 합니다.

사상가들 간의 동일성 및 차이에 대해서, 동일성에 너무 매몰되는 것도, 차이성을 과장되게 부각시키는 것도, 학문적으로는 별로 생산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자들이 상이한 개념적 도식을 사용하는 한에서 사상들 간의 완전한 동일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거의 trivial한 사실입니다. 반대로, 외계인의 언어로 씌여진 것도 아닌데 "둘 사이의 직접적 대화가 전혀 불가능하다"라는 과장된 수사 역시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둘 사이의 의미론적 번역이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맥락이라면, 그것이 바로 철학 연구자들이 할 일입니다. (이러한 의미론적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 몇몇 사상가들에 의해 개진된 바 있지만, 그 대담한 주장과는 별개로 실제 학문공동체에서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사상들 간의 유사성과 차이점, 그리고 이러한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에 대한 담담한 서술이 학문적으로는 더 유의미하고 생산적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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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싹다, 강연 도중에 시가 필것 같이 생긴거랑 니체에 미띤넘들인것 같다.
푸코, 들뢰즈, 가다머는 서로 그 니체를 통해서 주체라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다르고 어떤식으로 가치전복의 전술을 받았는지도 다르지만 쨋든 니체 함량 50%이상이 분명함. 데리다랑 라캉은 츤데레 느낌으로 니체에 대해서 전혀 관심 없는 것처럼 구는데 사실 해체사상은 존재 자체가 도덕의 계보 제2 논문이랑 현상학 그 자체이고 라캉은 하이데거한테 영향을 받았으니깐.. 걍 다 니체라는 동일한 의지 아래에 해석학, 정신분석, 실존주의, 구조주의(사실 넷 다 담화에 집중해있음) 그런 경우들에 얼마나 영향받았는가의 차이라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