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개념적 심적 내용에 대한 옹호

(1) 비-개념적 심적 내용이란 무엇인가? 개념적 심적 내용이 아닌 것이다. 개념적 심적 내용이란, 개념(concepts)로 구성된 명제(proposition)로 이루어진 심적 내용이다. 예컨대, "나는 X를 믿는다/욕망한다/희망한다" 등의 명제 태도를 들 수 있다.
[이 고전적 정의에서 개념이란, 여전히 언어에 속박되어 있어 보인다. 언어(자연 언어이든, 자연 언어를 기반으로 구성된 인공 언어든)가 곧 개념이며, 개념의 최소 단위를 정한다. 이 정의는 논쟁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2) 비-개념적 심적 내용과 개념적 심적 내용의 관계에 대해서는 두 입장이 있다. (2-a) 둘은 서로 구별되는/완전히 다른 내용이라는 주장이다. ("content" 입장) (2-b) 둘은 하나의 대상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이라는 주장이다. ("state" 입장)
오늘날에는 후자의 입장이 주로 지지된다. 왜냐하면 이 입장이 우리의 직관과 맞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과"라는 시각적 이미지와 "사과"라는 개념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이 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비-개념적 심적 내용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전략은, 개념적 심적 내용으로 환원되지 않는 특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 전략은 크게 3가지가 있다.

(3-1) 첫째는 sub-personal한 인지 능력을 주장한다. (sub-personal라는 단어가 깔끔하게 번역하기 애매하다. 대략, 인간의 의식 밑에서, 의식적 활동의 기반이 되는 여러 정신적/신체적 작용의 층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 sub-personal한 인지 능력의 대표적인 예시가 '언어'이다. 우리는 단순한 소리에서, 여러 음소들을 구분하고, 그 음소들을 문법에 맞추어서 이해하고 -사용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문법''음소'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론 ; 이 문제는 개념-비개념의 문제라기보단, 자기 인식의 문제로 보인다. 우리는 단순히 저 문법/음소라는 '개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불과해 보인다. 인식하지 못하고 사용한다고 해서, 그 인지 능력 - 혹은 대상이 '비개념적 심적 내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강한 주장으로 보인다.

(3-2) 비언어적/전-언어적 존재의 의식 활동을 주장한다. 우리는 동물 혹은 아기처럼,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존재의 의식 활동을 인정한다. 더 나아가, 이 의식 활동은 단순한 주입 - 결과의 기계적 인과 과정이 아니라 '모종의 선택/취향'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의 활동은 개념이 없는, 비-개념적 심적 내용에 의한 활동의 예시라고 보아야한다.

반론 ; 이 문제는 지나치게 '언어'의 범위를 좁게 잡고 있어 보인다. 과연 동물들이 비-언어적 존재인가? 적어도 인간이 사용하는 자연 언어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언어가 '특정한 형태로 규정된' '내용을 서로 전달하는 형식'으로 정의한다면, 동물이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그들은 우리가 '언어라고 생각하지 못한' 어떠한 수단(호르몬, 초저주파수 혹은 색깔)을 단위로 하는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

(3-3) 감각 지각의 내용은 단순히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크게 두 가지 예시가 있다. 첫째는 환영이다. 예컨대,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오리-토끼' 그림 혹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그림처럼, 인간은 하나의 시각 이미지에서 서로 다른 여러 개념들을 '동시에' 볼 수 있다. 그러나 개념은 이런 '모순'을 허용할 수 없으므로,("A는 토끼다."와 "A는 오리이다."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는가?) 감각 지각의 내용은 개념 이상의 것이다.

반론 ; 지금까지 나왔던 의견 중에서 그나마 신빙성이 있다. 허나 개념주의자들은 단순히 저 '오리-토끼' 그림이 '"A는 오리-토끼다."라는 개념으로 이해된다고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3-4) 감각 지각의 내용이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두번째 주장은 감각 지각이 가지고 있는 '결의 순도'가 개념과 다르다는 점이다. 예컨대, 책상이라는 개념과 우리 눈 앞에 있는 책상이라는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책상이라는 이미지 속에서, 우리는 그것의 색깔, 형체, 재질에서부터 미세한 흠집 등을 찾아낼 수 있다. 반면 책상이라는 개념 속에서는 이것이 어려워보인다. 이처럼 책상이라는 개념은 '일종의 디지털'이고, 책상이라는 이미지는 '일종의 자연적인 것' 같은 차이가 보인다.

개인적으로 비-개념적 심적 .내용을 주장할 때, 가장 타당하다고 보는 견해다. 책상의 이미지는 책상이라는 개념과 동일한 것을 지칭(?)하지만, 책상이라는 개념이 가지는 것보다 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 보인다. [앞서 말했듯, 이 주장은 인간의 언어 밖의 무언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개념이라는 최소 단위로 환원되지 않는 - 다른 단위가 있다는 주장에 가깝다(고 나는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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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다른 입장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반박을 다셔서 3-4에 대해서만 논의를 한정지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책상"이라고 할 때, 과연 그 때의 책상 개념이 이데아처럼 존재하는 것인지의 문제부터 따져야 할 것 같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 개념은 우리의 낱말이나 개념이 어떤 순수한 이데아를 표상하거나 상정할 필요 없이, 유사한 대상들의 집합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책상 개념의 이미지와 그와 유사한 다른 책상이 여러 다른 요소를 지니지만 똑같이 "책상"이라고 불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개념적이지 않은 어떤 심적 개념을 상정해야할 충분한 이유를 찾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미 주어진 개념으로 충분히 유사한 대상들과 그렇지 않은 대상들을 잘 구분해왔고, 그 구분의 평가도 공동체의 평가 내지는 교정이라는 개념으로 파악될 수 있는 과정으로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3-4와 같은 논변이 성공하려면 비개념적인 심적 속성을 상정하는 것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설명적으로 우수하다거나, 아니면 그것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를 논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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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선 여기서 전제된 비-개념적 심적 상태는, 글 서두에 제가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듯, 특정한 (그리고 제가 동의하지 않는) 개념에 대한 정의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제된 '개념'은 자연언어 혹은 자연언어를 기반으로 한 인공 언어에서의 개념으로, 단순히 말해 명제를 이루는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여기서 옹호하는 건, '비-언어적 개념' 심적 내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제가 옹호하는 주장입니다.)

  2. 개념이 A와 ~A를 구분하는 것, 이라는 정의라면, 저 역시도 동의합니다. 따라서 '비언어적 개념'이 가능하다는 건, 비개념에 방점이 있는게 아니라, 비언어적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한 예시로, 시각적 심상 - 이미지를 주장한겁니다.

  3. 언어 개념보다 이미지 개념이 더 효과적으로 사태를 설명하는 경우는, 유사한 대상 간의 구분에서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산책 중인데, 앞에 소나무가 두 그루있습니다. 이 두 소나무는 똑같은 "소나무 - 언어 -개념"이지만 명백히 둘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구분 가능을 두 개별 소나무가 가진 언어-개념적 차이보단 이미지-개념적 차이로 설명하는게 더 타당하고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만약 언어-개념적으로 본다면, 우리는 고전적인 예시처럼 소나무1, 소나무2 같은 우스꽝스러운 이름붙이기를 해야할겁니다. 아니면 소나무-언어-개념에 다른 부가적인 언어-개념(더 휘어져있다, 더 갈색이다 등)을 덧붙여야하는데, 이는 제 설명보다 훨씬 군더더기가 많아보입니다.

  4. 또한 이 주장은 content와 state의 구분에서처럼, 언어-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 이미지/이미지-개념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아닙니다. ("환원"이라고 쓴 이유는 엄밀하지 못한 사용이라서 그렇습니다.)
    그저 다르게 묶이는, 구별을 위한 최소단위로서의 별개의 개념이 존재하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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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만달라님을 주술사로 오해할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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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주술도 좋아합니다. (쏙닥쏙닥) 다만 여기가 철학 커뮤라서 본격 종교학 내용을 안 올릴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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