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와 의성/의태어(에 대한 잡담)

(1) 개인적으로 인간 언어 현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비유-은유와 의성/의태어입니다.

인간은 어떻게 은유를 이해할까요? 물론 때때로 어떠한 비유는 누군 이해하지만, 누군 이해하지 못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해하는 비유들도 있죠.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오요.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 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 김동명, <내 마음은 호수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는 시이고, 아마 누구나 보편적으로 이해할 비유를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비유에 대해서 여러 가설들이 제기되었지만, 이건 논문도/레포트도 아니므로 기존 이론들을 서머리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가설만을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오래전, 전 비개념적 심적 내용에 대해서 옹호한 적이 있습니다. 이걸 정확히 표현하자면, 비-언어적 심적 개념이라고 하는 것이 명확할 듯합니다.

예를 들어, 저희는 "나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것이 무엇을 지칭하고, 지칭하는 대상이 어떠한 특징들을 "대체로"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한편, 우리 눈 앞에 실제로 있는 나무를 볼 때, 우리는 "나무"라는 단어로는 환원되지 않는, 보다 높은 밀도의 정보들을 얻게 됩니다. 그것들의 색채, 미묘한 결들. (다만 제가 이것들이 언어로 지칭되지 않거나, 언어로 묘사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밀도? 조합이 다르다고 해야할까요? 우리가 "나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의 정보값과 개별 나무 하나를 지각할 때 가지는 정보값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2-1) 그렇다면 비유는 비-언어적 심적 개념과 언어적 심적 개념을 매개하면서 그 효과를 가지는 것이 아닌가,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예시로 든 시로 돌아가면, 우리는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비유를 보았을 때, 내 마음이라는 '언어적 개념'이 곧 호수가 가지는 여러 비-언어적 심적 개념 ; 넓음, 광대함, 고요함, 어떠한 것들을 포괄하는 느낌 - 과 접합되고, 이를 통해 비유가 작동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 의성어/의태어는 한 카테고리로 묶이지만, 사실 둘을 설명하는 방법은 꽤 다릅니다. 의성어는 흔히 들리는 소리를 각 자연 언어가 가지는 음소로 '전환해서' 묘사하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태어는 그러기가 어렵습니다. "깡총깡총" 흔히 동물이 위로 점프해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묘사할 때 쓰는 의태어지만, 우리는 왜 이 의태어를 이해할 수 있는지 애매합니다. (사실 의성어/의태어의 구분이 애매한 단어도 있습니다. "드르륵"처럼 맷돌이나 믹서기가 돌아갈 때 쓰는 표현은, 이 둘이 돌아갈 때 나는 소리를 묘사한 것일까요, 아니면 움직이는 동작에 기원한 것일까요?)

사실 사과를 "사과"라 하거나, "apple"이라 하는 것마냥, 언어의 역사성과 공동체성에 기대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하고픈 유혹을 느끼긴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다른 언어의 의태어들을 직관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이건 비유와 꽤 다른 점입니다.)(대표적으로 일본어 '니코니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싱글벙글, 생긋생긋 - 즉 웃는 모습을 표현한 의태어입니다.)

쓰다보니, 저도 "그냥 그런가보다"라는 의견에 가까워지고 있긴 합니다만, 여전히 제 언어적 직관은 오늘 먹은 "사과"를 배라는 단어로 지칭하는 것과 토끼가 뛰는 모습을 깡총깡총 대신 충콩충콩으로 바꾸는 것은 다르다고 느낍니다.

3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