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투쟁 개념 해석과 아곤적 투쟁의 메커니즘에 관한 두 입장

니체가 평화보다는 투쟁과 그를 통한 승리를 강조하고 추구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그의 입장은 "내(차라투스트라)가 권하는 것은 평화(Frieden)가 아니라 투쟁(Kampf)과 승리(Erfolg)다"에서 집약적으로 잘 드러난다. (Z1, 10) 그렇기에 '투쟁'은 니체 철학에서 주요 개념어로 자리 잡는다. 니체가 높이 사는 투쟁의 성격에 관해서 대립하는 두 가지 갈래의 독법이 있다. 한쪽은 그것을 '조절되고 조정된 형태의 투쟁'으로 해석하는 반면, 또 다른 한쪽은 '조절되지 않은 완전히 폭력적인 형태의 투쟁'이라 말한다. 후자는 니체의 투쟁 개념을 폭력 혹은 테러리즘에 가벼이 연결시키므로 그는 극복대상으로 정립되고,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투쟁 개념은 사회철학 계열에서 그를 공격하는 전거가 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이런 해석은 조잡하거나 지지하는 텍스트 근거가 별로 없다. 반면 니체가 우수히 여기는 투쟁이 전자(조절되고 조정된 형태의 투쟁)의 것에 가깝다는 입장을 지지할만한 근거는 상대적으로 많으며, 많은 니체 주석가들이 이러한 입장에 서있다. (그렇기에 내가 전자를 '해석'이라 칭하고 후자를 '말한다'고 작성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아곤 문화에 대한 그의 텍스트들이 주목할만 근거이다. 그 부분에서 니체는 호전적으로 절제되지 않은 형태의 경쟁(contest)에 반대하며, 동시에 절제된 형태의 경쟁의 에토스를 기반으로 하는 아곤 문화를 단호하게 옹호한다. 이는 니체의 아곤적 경쟁(Wettkampf)과 죽음을 향한 투쟁(Vernichtungskämpfe)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HC, pp. 95-97) 요약하자면 니체는 절제된 형태의 투쟁이자 개인 혹은 단체들이 뛰어나기 위한 노력을 행하는 경쟁적 실천인 아곤을 지지할 뿐, 상대를 몰살시키는 형태의 투쟁은 배격한다. (KSA 7:16[22]; KSA 7:21[14] 등)

하지만 문제는 이 아곤의 절제[조절]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명료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조절 메커니즘을 해석하는 방향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기-절제(self-restraint) 혹은 존중(respect) 모델이라 불리며, 그 메커니즘을 참여자들의 태도를 통해 설명하는 내생적(endogenous) 입장이다. 이 해석 라인에 따르면 그들은 자기 절제를 통해 자발적으로 페어 플레이를 한다. (Hatab, Connolly) 이와 대립하는 해석이 카운터밸런싱(counterbalancing) 모델으로, 이는 내재적 요소가 아닌 외적인 요소에서(exogenous) 그 메커니즘을 찾는다. 이들에 따르면 아곤적 행위에서 참여자들의 목표와 태도에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파괴적이고 압제적인 투쟁에 동기를 부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즉, 참여자들은 지배를 위해 투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간의 끊임 없는 경쟁을 통해 아곤에서는 독점(monopoly)이 이루어지지 않고 조절이 이루어진다. (Honig)

두 해석 라인 중 어느 한쪽 입장의 손을 들어주기는 힘들다. 두 입장 모두 자신을 지지할만한 텍스트 근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에 둘다 텍스트 해석을 내생적/외인적 이라는 양자택일으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두 입장은 종합 불가능한가? 잘 모르겠지만 카운터밸런싱 모델을 조금 약화시킨다면 충분히 절제 모델과 양립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실제로 이루어낸다면, 어느 한쪽의 텍스트적 근거를 배격하고 있지 않은 더 우수한 해석일 것이다.

4개의 좋아요

지난 번에 샹탈 무페에 대해 글(샹탈 무페 사상 기본구도)을 쓰셨던데, 이번 글을 읽어보니 니체의 아곤적 투쟁 개념과 무페의 경합 개념이 서로 연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개의 좋아요

네 정확히 지적하셨습니다. 그래서 샹탈무페의 책을 보면 다른 경합 모델들과 자신의 것을 비교하는 구절이 있는데, 거기서 그녀는 니체의 것도 소개 및 비판합니다.
예전에 간략히 요약한 글이 있는데 링크 첨부해두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봤는데 원문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조금 이해하기 힘들게 적은 실패작인 것 같긴합니다만 ㅠㅠ)
https://blog.naver.com/ehdbs7822/222843865594

1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