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클라우·무페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의 목적
① 정치적 목적: 좌파 사유가 겪는 위기를 해명하기 위해 사회주의 기획을 재정식화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다. 맑스주의나 사민주의가 파악할 수 없는 특수한 신사회운동이 점점 더 중요해지며 비롯됐다.
② 이론적 목적: 계급에 기반을 두지 않는, 곧 경제적 착취의 측면만으로 파악될 수 없는 그러한 운동들의 특수성을 조명해줄 접근법을 발전시키는 것이 이론적 목표이다. 이를 위해서 두 접근법을 도입하며 결합한다. 하나는 포스트 구조주의의 본질주의 비판이고, 또 하나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에서 얻은 통찰이다. 이를 결합한 라클라우·무페의 접근법은 포스트맑스주의 혹은 '담론 이론'이라 칭해진다.1)
- 그들 접근법의 주요 개념들 - 적대 개념과 헤게모니 개념
① 적대: 그들은 적대 개념을 통해 부정성은 구성적이며 결코 극복될 수 없음을 나타낸다. 또한 적대의 관념은 합리적 해결책이 전혀 없는 갈등이 존재함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는 자유주의적 다원주의와 큰 차이를 보인다. 자유주의적 다원주의는 모든 견해가 최종적으로 화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있지만, 적대에 따른 다원주의는 이를 거부한다.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그들은 '정치적인 것'과 '정치'를 구별한다. 후자는 인간의 공존을 조직하려는 목표를 지닌 여러 실천을, 전자는 근절 불가능한 적대의 차원을 의미한다.
② 헤게모니: 그들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과 적대가 항상 현존한다는 가능성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최종 토대가 부재함, 곧 모든 질서에는 결정 불가능성과 우발성의 차원이 존재함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 존재를 사회 질서의 헤게모니적 성격이라 부른다. 다른 말로 하자면, 모든 사회 질서가 궁극적 합리적 토대를 결여한 권력 관계들의 우연적 절합임을 2) 뜻한다. 이로부터 사회는 언제나 우연한 맥락에서 어떤 질서를 창출하려는 실천의 산물이고, 모든 질서는 다른 질서의 배제에 근거함이 드러난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질서는 정치적인 것이고, 동시에 언제나 현재의 사태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절대성에 대한 전복가능성을 마련한다.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의 결과일 뿐, 자연적이고 운명적인 것이 아니므로 그 대안을 구할 수 있다.
- 그들 접근법이 함의하는 바
① 그들은 객관적 힘들이 발전된 결과로 자연적 질서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지배적 헤게모니에 의해 배제된 대안들이 존재함을 혹은 그 가능성을 알 수 있었다. 이로써 정치 투쟁이 언제나 헤게모니의 대결이라면 완벽한 민주주의에 도달했기 때문에 그러한 대결을 멈춰야 한다는 주장이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좌파의 기획은 '급진적이며 다원적인 민주주의'로 재정식화되며, 민주주의적 제도들은 급진화되어야 한다.
결국 좌파는 계속해서 제기되는 새로운 요구들(예를들어 페미니즘, 환경 운동)를 기존의 요구와 연결[절합]해야 한다. 이에 관한 개념이 '등가 사슬'인데, 등가 사슬을 수립한다는 것은 모든 다양한 투쟁 사이에 분리가 아니라 집합적 의지를 창출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페미니즘이 자신의 요구를 규정할 때 순수 젠더 쟁점만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타 다른 민주주의적 투쟁들과 손을 잡아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좌파의 지향점이다.
② 더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밖에 없다는 식의 믿음을 포기하고, 현존하는 제도들에 대한 내재적 비판을 통해 민주주의를 심도 깊게 진전시킬 수 있다. 문제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윤리적-정치적 원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좌파의 전략은 근본적 단절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원리들을 제대로 실행하는 것에 있다.
- 무페의 현실 진단
민주주의의 급진화를 위한 투쟁은 커녕, 근본적인 민주주의 제도들이 더 파괴되지 않도록 맞서 싸울 것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 진보 세력의 현실이다. 예를들어 신자유주의에 맞서 우리 자신들이 그 한계를 비판했던 사민주의/복지 국가의 기본 제도라도 옹호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전 진보 세력의 결속, 즉 등가 사슬의 수립이 필요하다. 3)
이 부분에서 무페는 네그리·하트와 자신의 차이를 드러낸다. 무페의 네그리·하트 해석에 따르면, 그들은 일체의 제도들을 '포획 기계'로 간주하고 근본적인 투쟁은 미시정치의 '분자적' 수준에서 일어나기에 시민사회 운동이 정치 제도들에 개입하는 것을 피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기성 조직들에 대한 극단적으로 부정적 태도를 지니게 한다. 무페는 이를 제2인터내셔널의 경제결정론적 맑스주의를 재상산하는 꼴이라며, 이러한 낡은 결정론적 접근 방식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운동들이 갖는 차이들을 어떻게 절합할것인가와 같은 쟁점을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 다른 정치·사회 이론들과의 차이점 및 비판 - 롤스와 하버마스 그리고 슈미트
① 자유주의: 라클라우·무페는 기존 맑스주의의 결함을 지적할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도 비판한다. 그들에 따르면 자유주의 역시 정치적인 것의 이론을 갖고 있지 않기에 자유주의에서 해결책을 찾길 포기한다. 자유주의가 정치적인 것의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에 내재한 합리주의와 이성을 통한 최종적 화해 가능성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적대의 항상-현존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둘째, 이에 더해 그에 내재한 개인주의는 우리/그들의 관계라는 형태로 구축되는 정치적 동일성을 창출하는 양식['열정']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들이 보기엔 자유주의는 정치적 동일성을 만드는 데 동원되는 정동적 차원[정서와 욕망]을 파악하지 못하고, 집합적 차원을 함의하는 모든 것을 낡은 것 혹은 비이성적인 무엇으로 간주하므로 정치적인 것의 동학을 보지 못한다.
② 슈미트: 슈미트는 자유주의가 정치적인 것에 대해 말하려고 할 경우 경제학 혹은 윤리학에서 빌린 용어를 사용한다고 비판했다는 점에서 라클라우·무페와 공통점을 갖는다. 현대 정치 이론에서는 선호집합 모델과 심의 민주주의 모델(대표적으로 롤스와 하버마스의 것)이 지배적인데, 전자는 경제적 용어를 갖고 정치 영역을 구상하는 모델이고 후자는 윤리적 또는 도덕적 접근법을 사용해 정치를 사유하는 모델으로, 둘 모두 정치적인 것의 이론을 제공하지 않는다
슈미트의 경우 정치적인 것의 적대적 차원, 즉 합리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갈등의 영구성을 마찬가지로 인정하지만, 그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양립불가능하다고 여기기에 다원주의적 자유 민주주의를 실행 불가능한 체제로 본다. 이에 반해 정치적인 것의 차원을 재도입하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를 이해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기에 슈미트와 차별점을 갖는다. 이 차별점은 바로 무페의 '경합' 모델의 기반이 된다.
- 경합 모델의 집합적 동일성 확인 가능성과 벡·기든스 비판
무페는 적대적 갈등을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질서를 부정하는 슈미트와는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며 경합 모델을 제시한다.
① 경합 모델에 따르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친구/적 관계가 아닌 자신들의 대립 진영이 요구를 갖는 것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대결자들 중 하나이다. 대결자들은 자신들의 갈등에 대한 합리적 해결책이 결코 존재하지 않음을 알지만, 이런 갈등이 조절될 것이라는 점에 부응해 일련의 규칙[갈등적 합의]을 받아들인다. 바꿔 말하자면 대결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연합을 조직하는 윤리-정치적 원치들에는 동의하지만, 이 원칙을 해석하는 데에서 의견을 달리한다. 무페는 이렇게 적대와 경합을 구별하여 적대의 근절 불가능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슈미트와는 다른 길, 즉 민주주의와 양립하는 길을 걷는다. 나아가 그녀는 경합적 투쟁이야말로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정치의 특수성을 구성한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녀에 따르면 경합 모델은 집합적 동일성의 창출에서 열정이 하는 역할을 인식할 수 있으므로, 그것을 하지 못하는 선호집합 모델과 심의 모델의 대안이 될 수 있다.
② 경합 모델은 벡·기든스의 것과도 차별화된다. 벡·기든스는 정치의 대립 모델은 무용지물이 됐고, 좌/우를 넘어 사유할 필요가 있다며 '범세계주의적 제2근대성' 4)을 정식화한다. 벡·기든스에 따르면 좌/우 구별의 흐려짐은 민주주의의 진보한 징조이다. 하지만 벡·기든스와 달리 그녀에게 좌/우 구별에서 관건은 합리적 대화로 극복할 수 없는 적대적 갈등들이 존재한는 점이다. 따라서 무페에게 좌/우 구별의 흐려짐은 오히려 민주주의 제도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예를들어 사람들이 정치에 흥미를 잃어가는 이유는 정당들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소멸되면서(예를들어 사민주의 정당들의 중도화)그 결과 현존하는 헤게모니 질서의 대안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민주주의 정치가 집합적인 정치적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지 않는 것의 부정적 결과로는 종교적 형태의 동일시, 지역주의적 동일시, 민족주의적 동일시가 있다. 이러한 동일성들은 경합적 논쟁을 위한 지형을 제공하지 않기에 민주주의에 좋지 않다. 따라서 무페는 우리/그들[좌/우]의 구별이 사회적 삶의 구성 요소이며, 민주주의 저치는 이런 구별을 정치적으로 구축하는 담론, 실천 제도를 제공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 정치적인 것의 도덕화 비판
정치적인 것의 도덕화 비판은 좌/우 구별 비판과 연결된다. 그녀는 옳음/그름의 구별이 좌/우 구별을 대체하고 있다면서, 비록 좌/우를 구별하는 담론이 약화됐다고 하여 이 구별의 필요성이 소멸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옳고/그름 구별으로의 이행, 즉 정치의 도덕화는 '문명적인 우리' 대(對) '야만적인 그들' 과 같은 방식으로 정치적 적대를 구축하여 상대가 대결자가 아니라 오직 적[악]으로 보이게 한다. 동시에 정치의 도덕화는 사회 문제들을 정치적 방식으로 정식화하지 못하기에, 사회 문제들에 대한 정치적 해법을 구상하지 못하는 무능력으로 인해 계속하여 점점 더 많은 쟁점을 도덕적 용어로 표현하게 한다.
- 미디어와 저항
누구나 그러하듯이 무페 또한 미디어가 정치적 주체성의 구축이 벌어지는 지형들 중 하나를 구성하기에 미디어의 중요함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신자유주의 세력이 다수의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고 그것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좌파가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데 무능력한 것을 미디어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그녀는 미디어의 힘을 인정하면서 그 힘을 전용하여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구상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본다.
- 실천적 정치 운동과 신자유주의의 대안 구상
무페는 오늘날 좌파에게 가장 긴급한 투쟁이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구상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녀는 최근 우리가 목격하는 폭력적 반응 형태의 증가가 미국[곧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에 저항할 수 있는 정당한 경로[곧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대안]의 부재 탓이다. 또한 그녀는 세계가 다원체임을 분명히하며 전 지구적 차원만을 고집하며 각기 다른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를 갖추면 안된다고 말한다. 이는 세계를 보편적 단일체로 보며 유일하게 정당한 보편적 대답을 제공해줄 하나의 단일한 민주주의 형태가 존재한다고 믿는 태도를 겨냥하는 것으로, 무페는 전 지구적 차원의 투쟁이나 긴밀한 연계와 연대의 필요성을 물론 인정하지만서도 각자의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고심해야 민주주의를 위한 보편적 투쟁에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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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라클라우·무페 이론은 담론 이론보다는 주로 포스트맑스주의 이론 (중 하나)라고 칭해지는 듯하다. 담론 이론이라함은 푸코-하버마스가 비교적 더 쉽게 떠오른다. 사실 나는 애초에 담론이 뭔지 아직도 정확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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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합(articulation)은 알튀세의 방법론으로,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마디와 마디가 관절처럼 맞춭어 둘이면서도 하나로 작동하는 상태를 뜻한다. 비-맑스주의 이론과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절합을 통해 현실에 맞는 이론적 무기를 재창출하는 방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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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적녹보 연대와 같은 것을 말한다. 한국 현실 운동에서 사례를 들자면 맑스 꼬뮤날레에서 시행된 적녹보 연대 모색 운동 따위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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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근대성' 혹은 '제2의 근대성은' 근대성의 자연스런 기반으로 간주돼 온 여러 가지 특성들이 이제는 더 이상 자명하지 않게 된 상황을 반영하여 만들어진 개념이다. 예를들어 사회와 민족국가의 동일시, 완전고용의 이상, 계급적 대중정당, 남녀역할 구분을 기반으로 한 핵가족 등을 제1의 근대성 지표들이라고 할 때, 이것들이 제2의 근대에 와서 의심받게 됐으므로 사회적 성찰성의 증대를 필요로 한다. 이것이 바로 제2근대성의 중심 의미를 차지한다. 물론 이처럼 제1, 제2의 근대성을 구분한다 해도 공통적인 근대성은 존재한다. 따라서 근대성의 기본 원리들과 제1, 제2의 근대성의 기본 제도들을 구분하는 것은 유의미하다. 예컨대 ‘국가성’이 근대성의 기본 원리라면 ‘민족국가’는 제1의 근대성, ‘코스모폴리탄적 국가’는 제2의 근대성이다.
출처
국역본: 경합들, 샹탈 무페, 2020, pp. 203- 225
원전: Und jetzt, Frau Mouffe? Chantal Mouffe im Gespräch mit Elke Wagner(C, Mouffe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