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공부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부생입니다. 며칠을 끙끙 앓다가 글을 올립니다.

뒤늦게 헤겔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만 헤겔 철학 자체가 굉장히 체계적이고, 헤겔 연구도 전문화 되어 있어서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참 막막합니다. 질문을 정리하면 대강 다음과 같습니다.

  1. 헤겔을 공부할 때, 어떤 텍스트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지금은 프레데릭 바이저의 [헤겔 - 그의 철학적 주제들]을 먼저 읽고 나서, 한자경 선생님의 [헤겔 정신현상학의 이해]와 같이 헤겔의 [정신현상학](임석진 역, 2006)을 천천히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다만 사변적인 주제와 내용을 다루는 [정신현상학]으로부터 출발해도 되는 건지, 조금 더 구체적인 다른 텍스트들로부터 출발해야 하는건지 고민입니다.

  1. 혹시 헤겔을 공부할 때, 꼭 참조해야 할 주요한 연구자들이 있을까요?

열심히 서강올빼미의 게시판을 눈팅하면서 미국의 헤겔 연구자들 및 헤겔을 이론적 배경으로 두고 있는 영미권 철학자들 이름을 좀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이들 외에도 참조하면 정말 좋을 연구자들이 있을까요...?

  1. 영미권 헤겔 연구 외에 대륙 쪽 헤겔 연구 동향이나 지평이 어떤지 조금 궁금합니다.

혼자 찾아보려는 노력 없이 손쉽게 정보를 얻고 싶어하는 무례한 질문인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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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유사한 경로로 헤겔에 처음 입문하였습니다.

(2)

스탠퍼드 철학백과에 있는 '헤겔' 항목에서 Life, Work, and Influence의 마지막 단락에 중요한 연구자들이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특히, 아래의 연구자들이 우리 시대의 주요한 인물들입니다.

https://plato.stanford.edu/entries/hegel/

In the 1960s the German philosopher Klaus Hartmann developed what was termed a non-metaphysical interpretation of Hegel which, together with the work of Dieter Henrich and other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revival of interest in Hegel in academic philosophy in the second half of the century. Within English-speaking philosophy, the final quarter of the twentieth century saw something of a revival of serious interest in Hegel’s philosophy with important works appearing such as those by H.S. Harris, Charles Taylor, Robert Pippin and Terry Pinkard in North America, and Stephen Houlgate and Robert Stern in Great Britain. By the close of the twentieth century, even within core logico-metaphysical areas of analytic philosophy, a number of individuals such as Robert Brandom and John McDowell had started to take Hegel seriously as a significant modern philosopher, although generally within analytic circles a favorable reassessment of Hegel has still a long way to go.

(3) 디터 헨리히 이외에는 대륙쪽에서 헤겔 연구 자체만으로 유명한 인물이 바로 떠오르지는 않네요. 다만 헤겔에게 영향을 받은 유명한 대륙철학자들로는 사르트르, 가다머, 아도르노, 블로흐, 라캉, 크리스테바, 버틀러, 호네트, 지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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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세심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일단은 지금의 방법으로 천천히 읽어나가야겠어요.

  • 알려주신 연구자들의 텍스트도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겠습니다...! (헉 홀게이트가 영국 사람이었군요... 왜 여태까지 미국 사람으로 알고 있었지...)

  • 대륙 쪽 헤겔 연구자들은... 조금 더 찾아보겠습니다...!

늦은 밤에 답변 달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언해주신대로 한번 살펴보도록 할게요..!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relax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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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헤겔을 처음 접할 때에 대체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난감해 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직 저도 미숙하기 짝이 없는 대학원생입니다만, 그래도 경험을 함께 공유해보고자 댓글을 남겨봅니다.

제 경우에는 찰스 테일러의 '헤겔'로 시작했었고, 서술이 친절하고(마냥 쉽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테일러가 재구성해낸 헤겔의 지적 배경 등이 굉장히 설득력 있어서 보람차게 읽어나가긴 했었습니다. 그러나 대략 10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본문의 양과 내용이 너무 방대할 뿐더러(대략 '정신현상학'으로 시작해서, '엔치클로페디'에서 드러나는 헤겔 체계의 전모가 전체적으로 다루어집니다), 도중에 원문을 참고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번역이 있었던 기억이 있어서, 사실 '처음' 헤겔을 공부하시겠다는 분께 차마 추천은 못하겠어요. 물론 그 거장 Axel Honneth가 이 책에 대해서 남긴 서평(극찬 그 자체)을 고려한다면 결코 경시할만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약간 기념비... 같은 느낌이네욤.

저 역시 바이저의 책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꽤 핫한 주제인 헤겔의 형이상학에 대한 바이저의 견해가 조금은 고리타분하지 않나하는 느낌도 조금은 받습니다 (YOUN님이 인용해주신 SEP Entry에서 바이저는 사실상 1세대 학자로 다루어지고 있죠. 특히 그 책 서론이나 주석 몇몇에서 볼 수 있듯이 소위 비-형이상학적 헤겔에 대해서 무척이나 적대적인 입장이 견지되고 있는데, 그러한 비판에 논거가 충분하게 제시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전혀 설득되지 못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바이저쯤되는 대가가 헛소리를 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알기로 바이저는 헤겔의 형이상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던 인물이고, 따라서 충분히 그에 대해 전문적인 견해를 표명할 정도의 레벨이 되는 학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바이저의 비판이 조금 감정적이라는... 느낌을 받네요 ㅠㅠ 이 부분은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고요. 이미 읽으셨으니, 이런 쟁점도 한번 생각해보시면 재밌지 않을까 합니다.

'정신현상학'은 사실상 헤겔 철학의 오메가이기도 하겠지만 현 시점에서는 '헤겔 연구 자체의 오메가'이기도 하지 않나 생각해요. 아마 바이저도 그 책 후반부의 참고문헌 목록에서 이와 비슷하게 적었던걸 기억이 있습니다. '논리의 학'도 그만큼 중요하겠지만 무턱대고 접했다가는 주화입마의 우려가 너무나도 큰 부분이지 않을까... 아마 조금 더 구체적인 다른 텍스트로 '미학 강의'나 '법철학' 등을 염두에 두신 거라면, 그보다는 정신현상학이 헤겔의 철학을 전반적으로 훨씬 잘 보여주는 텍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이미 헤겔의 미학적-정치철학적 견해들이 대부분 예비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임석진 선생님의 '정신현상학' 번역본에 관해서는 너무나도 논란이 많습니다. 2005년 한길사 번역본을 진지하게 참고하시는 연구자(+ 학생들 포함)를 사실 저는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수업시간에도 거의 참고되지 않는 것 같고요. 물론 제가 번역평론을 할 수준이 전혀 아닌지라 말을 가려서 해야겠지만, 새 번역본을 준비하고 계신 이종철 선생님께서도 언론에서 비슷한 평가를 내리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지금 국역본을 읽으시면서 좌절 중이시라면, 영문판을 참고하시면서 읽으시는게 보다(훨씬) 유익하리라 감히 읍소드리고 싶네요.

여튼 저는 테리 핀카드의 '헤겔' 전기를 읽으면서 되게 많이 배웠던 기억이 있어요. 정말 강추하고 싶은 책이고요. 분량이 꽤 많긴 하지만, 아무래도 전기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따라 내려가다보니 정말 재밌게 잘 읽히고요. 그리고 사상에 대한 내용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신현상학'의 내용 자체는 조금 소략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 앞에 그보다 많은 양으로 써둔 지성사적 배경 등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었어요 ('논리의 학'과 관련해서는 내용이 조금 부실하다고 느꼈었어요). 그 외에도 최근에는 스티븐 훌게이트의 '정신현상학 입문'이 되게 좋았었네요. 사실 국내에 헤겔 관련해서 좋은 문헌들이 워낙 많이 나와 있어서....

그냥 주저리주저리 이름만 나열한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삭제했습니다. 아래 TheNewHegel님이 알려주신대로 Hyppolite와 Kojeve는 손꼽히는 고전이겠고요! 정신현상학을 조금 벗어나서는 Theunissen의 '존재와 가상'이나 Hosle의 '헤겔의 체계' 정도도 나름 아직 현재적인 것 같습니다. 또 83년도에 풀빛출판사에서 '헤겔변증법연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온게 있어요. Rolf-Peter Horstmann이 편집해 78년도에 Suhrkamp에서 출판했던 논문집인데, 조금 구식인 듯하지만 아직도 읽히고 인용되는 문헌들이 몇몇 수록되어 있는 듯합니다. 조금 심화된 공부를 하고 싶으시다면 참고할만한 책이 아닌가 합니다.

이건 저도 정말 궁금하네요. 안그래도 저도 얼마 전에 독일에서 박사하시는 선생님께 '2차적 자연'과 관련해서 연구가 핫하다는 말씀을 전해들은 바 있었어요. 이 부분은 정말 제가 아는게 1도 없어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락하겠습니다.

퇴근 준비하면서 이것저것 끄적여봤는데, 혹시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고요. 본문과 관련해서 다른 분들의 의견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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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부분에 공감이 많이 되네요. 바이저의 책이 참 명료하고 포괄적으로 헤겔을 다루고 있긴 한데, 가끔 '형이상학'이라는 단어 자체에 너무 집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몇 년 전에 바이저의 형이상학적 헤겔 해석에 대해 비판적인 쪽글(?)을 써본 게 있는데, 여기에도 한 번 공유해봅니다.

https://blog.naver.com/1019milk/22054926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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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한 조언 정말 감사드립니다...! 테일러의 [헤겔]의 두께를 보고 엄청 놀랐던 적이 있었는데, 다음에 도서관 갈 때 책 반납할 겸 빌려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지금 임석진 선생님 번역본으로 정신현상학을 읽고 있는데, 가끔 번역된 문장이 잘 와닿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읽을 때마다 많이 헷갈리게 됩니다... 마침 핀카드의 미출판된 정신현상학 번역을 구했으니 같이 참조해서 봐야겠습니다 :) 전에 전대호 선생님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번역이 곧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봤었던 것 같은데, 정말 기대가 많이 되네요...!

뒤징이나 토이니센, 아른트 같은 분의 이름은 교수님께서 몇번 말씀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대신에 정말 처음 들어보는 연구자들도 많네요... 학교 도서관에 저 분들 저서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틈틈히 빌려서 보도록 해야겠습니다.웬만해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서가에 없는 책들도 꽤 있어서...

다시 한번 정말 세심한 조언과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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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건 다른 분들이 다 이야기를 해주셔서, 그냥 몇 마디 사족만 달아봅니다.

-저도 그 두꺼운 찰스 테일러의 『헤겔』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1부(1장~3장)를 읽으면서 서서히 감을 잡았던 기억이 있고, 『정신현상학』 읽을 때도 자주 참조했습니다. 바이저의 『헤겔』도 두 말할 필요 없는 좋은 책이고요. 하지만 제일 이해에 도움이 됐던 건 헤겔을 전공하신 교수님의 정신현상학 강독수업이었네요. 도저히 이해가 안 되거나 하는 부분들을 도움받거나, 헤겔을 읽다가 빠질 수 있는 오해와 오독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사실 직접 수업을 듣는 게 제일 좋다고 느꼈습니다..

-대륙에는 프랑스의 '헤겔 르네상스'를 촉발했다고 이야기되는 알렉상드르 코제브(Alexandre Kojeve)와 장 이폴리트(Jean Hyppolite)의 헤겔 연구도 있습니다. 코제브의 『헤겔 독해 입문』(Introduction à la lecture de Hegel)은 『역사와 현실 변증법』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온 적이 있고(절판입니다), 이폴리트의 책은 『헤겔의 정신현상학』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헤겔 정신현상학의 발생과 구조』(Genèse et structure de la Phénoménologie de l'esprit de Hegel)나, 『논리와 존재』(Logique et existence)가 있습니다. 이들의 연구는 헤겔 연구 자체뿐만이 아니라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의 헤겔 이해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코제브의 독해는 표준적인 해석과는 다소 거리가 멉니다.

-임석진 선생님의 2005년 한길사 번역판은 여러 가지 말이 많지만, 구판 번역(지식산업사에서 나온 1982년도 번역)은 개인적으로 좋다고 생각하고, 자주 참조합니다. 헤겔의 문장에 비교적 가까우면서도 이해나 번역이 어려운 문장들을 자연스럽게 옮겼다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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