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소민의 논문에 대해 브레넌이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은 대답을 그의 저서 Against Democracy에서 발견한다. 나아가, 브레넌의 저서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먼저,
브레넌도 Against Democracy에서 이 지점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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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The Rule of the Knowers", 5절 "Restricted Suffrage and Plural Votings"의 p. 212. "The point is that we have to rely on real people with their own agendas and ideologies to design as well as implement any such 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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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10절 "Who Decides What Counts As Competence?"의 p. 223. "In the real world, I'd expect there to be a political battle to control what goes on any voter qualification exam. ... The question is just how badly abused the system would be."
브레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I'm not arguing, and need not argue, that epistocracy will be wart free." (p. 223.)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공정성은 에피스토크라시만의 문제인가? 소민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비용으로서는 이 문제가 크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무지한 등의 사람들이 만드는 문제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bite the bullet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그는 먼저, 정치적 분업을 주장한 Thomas Christiano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 8장 4절 "Values-Only Voting"의 p. 208. "Yet ... if they lack the social scientific knowledge needed to choose among different candidates' policy platforms, they will presumably also lack the social scientific knowledge needed to determine whether the legislators have competently and faithfully chosen policies that will realize citizens' aims."
즉 브레넌은 시민들이 다양한 후보의 정책 공약 중에서 선택할 때 필요한 사회과학적 지식이 부족하다면, 그들은 입법자가 시민의 목표를 현실화할 정책을 능숙하고 신의성실하게 택했는지 판단하는 데 필요한 사회과학적 지식도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소민의 반론 자체도 이미 책에서 다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 8장 10절, p. 225. "One might object that if citizens are competent to decide what counts as competence, why aren't they thereby competent to choose good candidates for office? ... The answer is that it's much easier for citizens to articulate a concrete view of political competence than to identify and vote for competent candidates."
마지막으로,
이에 대해서는
8장 10절, p. 223. "In the real world, I'd expect there to be a political battle to control what goes on any voter qualification exam. ... The question is just how badly abused the system would be."
내가 문제시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그의 다음 문장이 설득적이지 않다:
8장 10절, p. 224. "The average citizen could produce a reasonable concrete theory of competence."
이미 내가 인용했듯이:
8장 10절, p. 225. "The answer is that it's much easier for citizens to articulate a concrete view of political competence than to identify and vote for competent candidates."
그러나 - 물론 무지한 정도를 어떻게 잡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 이것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정치적 관점을 구체화하고 명료화하는 것조차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때로 자신의 감정을 명료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점을 생각해 보라. 가장 사적이고 가장 자신에게 직접적이라고 볼 수 있을 자신의 감정조차도 사람들은 확실하게 짚어내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다. 감정보다 복잡하게 인식될 수 있을 정치적 관점을 사람들은 명료화할 수 있을까?
게다가 사람들은 비일관적인 믿음을 가지기도 한다. 이러한 비일관적 믿음을 옆에서 지적해주지 않는 한, 그들은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상함을 인지한 뒤에도 합리화를 시도한다거나 (사람은 모순된 존재라는 식으로) 그 비일관성을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기도 한다. 그들이 정치적 관점을 명료화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비일관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무지"를 통해 유권자로 산입/제외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무지한 사람을 배제하여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Enfranchised Lottery"처럼 2개 (이상)의 메커니즘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브레넌이 제시하는 것처럼 1차적으로는 정치 지식을 위한 시험을 치른다. 그렇게 하위 x%를 배제한다. 그런 뒤에는 그 정치 지식을 응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배제해야 한다. (아마 서술형 문제나 면접형 시험이 필요할 것이다.)
정치 지식을 아는 것과 그것을 응용하는 것은 다르다. 모든 정치 문제는 각국의 경제 상황, 국제 정세, 세수나 국방에 관련된 것 등, 다각도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의 논의가 투표로 국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간접적이거나 아주 적은 비율이라 할지라도 이런 것들은 고려 대상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이 응용 능력이 비르투에 연관된다고 (또는 극단적으로 말해 비르투가 곧 그 응용력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나에게 제시될 법한 문제는 비르투를 어떻게 현시할 것인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런 조건에는 현실성이 있는가? 이것의 평가에 대하여서는 조작이 개입할 여지가 어떻게 되는가? 요컨대 브레넌이 받았던 대부분의 문제를 나 또한 받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볼 것이며, 이 점에 대한 연구를 더 발전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