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당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철학 전공자들의 컨센선스인가?
아마도 많은 전공자분들이 위의 교수님이 하신 말씀에 동의하실 것 같습니다. 철학이 특정한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대답을 내려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제가 최근에 기독교인들과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나 맡게된 게 있는데, 그 강의에서 처음으로 이야기한 내용도 이 점이었습니다. 강의안 중 일부를 여기에 옮겨보겠습니다.
현대철학은 종종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준다. 현대철학을 통해 실존, 타자, 무의식, 사회, 폭력, 정의, 법 등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가진 사람들 중 대부분은 20세기 이후에 출판된 고전적 철학 텍스트를 실제로 읽고 나서는 허무해한다. 가령,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는다고 해서 죽음과 불안을 바라보는 대단한 실존적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를 읽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주장을 마치 컴퓨터처럼 논리적으로 빠르게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을 읽는다고 해서 성경과 같은 텍스트가 지닌 깊고 넓은 의미가 훤히 보이게 되는 것은 아니다. 레비나스를 읽는다고 해서 타인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푸코를 읽는다고 해서 사회 곳곳에 숨겨진 권력과 폭력의 구조를 비판할 수 있는 날카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라캉을 읽는다고 해서 인간의 심리를 꿰뚫을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각각의 텍스트가 너무 어려워서 우리가 핵심을 놓치다 보니 텍스트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대철학은 실제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문제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철학은 사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이론적 문제를 다룬다. 즉, 우리가 실천적으로 어떠한 윤리를 따라야 하는지, 어떠한 정당을 옹호해야 하는지, 어떠한 법을 수립해야 하는지, 어떠한 공동체를 지향해야 하는지는 안타깝게도 현대철학에서 논의되는 주된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 시대의 고전적 철학자 중에서 실천적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대답을 제시하는 인물은 많지 않다.) 오히려 현대철학은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론적 가정에 주목한다. 가령, 영미권 정치철학에서 1980년대 이후 부각된 소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논쟁을 떠올려 보자. 해당 논쟁은 현실 정치에서 정치인이나 정당이 어떠한 선택을 내려야 하는지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는 않는다. 시장의 자유를 확대해야 하는지 복지를 확대해야 하는지, 낙태죄 폐지에 찬성해야 하는지 반대해야 하는지, 모병제를 실시해야 하는지 징병제를 실시해야 하는지와 같은 구체적 문제에 대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해당 논쟁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해당 논쟁에서 쟁점이 되는 사안은 사회와 문화의 맥락에 국한되지 않는 관점의 존재 여부이다. 즉, ‘인간의 본성’, ‘합리적 선택’, ‘정의의 원칙’처럼 우리가 현실정치에서 실천적 결정을 내리기 위해 의존하고 있는 이론적 개념이 과연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선입견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지가 논쟁의 대상이다. 해당 논쟁 자체만으로는 현실정치에서 우리가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가 곧바로 도출되지는 않는 것이다.
(2) 철학자는 "인류/세계에 대한 통찰"을 주는가?
아마 "인류/세계에 대한 통찰"을 기대하시고 철학을 공부하게 되시면, 실망을 하실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철학자들이 줄 수 있는 통찰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통찰들 중 일부가 역사 속에서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과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세계관'이나 '패러다임'을 주는 것은, 철학의 역할이라기보다는, 종교나 예술의 역할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오늘날의 전문화된 강당 철학에서는 세계관이나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를 찾기는 다소 힘듭니다. 굳이 말하자면, 오늘날의 철학은 명시적으로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작업보다는, 각각의 패러다임에 들어 있는 형이상학적-인식론적 가정이 무엇인지, 논쟁에서 각각의 입장이 문제 삼고 있는 쟁점이 무엇인지, 각각의 입장들이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갖는지를 분석하는 작업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3) 철학을 배우면 실존에 변화가 있다?
굳이 "있다/없다" 둘 중에 하나를 이분법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없다"라고 보는 쪽입니다.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가장 밑바탕에 있는 토대 믿음들은 철학적 논증으로 도출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철학적 논증을 시작하기 위해서조차 미리 전제된 토대 믿음에 의존해야 합니다. 즉, 어떠한 믿음을 내 삶의 가장 기초적인 신념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비트겐슈타인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확실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논증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결단의 문제입니다. 철학은 우리가 그 신념들을 받아들였을 때 어떠한 다른 신념들에도 추론적으로 개입하게 되는지(가령, "양적 공리주의의 원칙을 받아들인다면,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도 정당하다고 말해야 한다.")를 성찰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개념적 장치들을 제공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비슷한 주제로 토론회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