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을 왜 철학과에서 안 읽는지 모르겠다. 나는 가라타니의 칸트 해석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고, 헤겔에 대한 비판은 틀렸다고 생각하고, 어소시에이션에 대한 전망도 다소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평가하지만, 이 사람이 제시하는 논의 구도 자체는 정말 말 그대로 ‘혁신적’이다.
특별히, ‘사변적(speculative)’ 형이상학에서 발생하는 이성의 월권행위에 대한 칸트의 비판을 ‘투기적(speculative)’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공황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과 접목시킨 것은 정말 놀라운 발상이다. 칸트가 라이프니츠의 교조주의와 흄의 회의주의를 모두 비판하면서 이성의 이율배반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처럼, 마르크스 역시 리카도의 고전파 경제학과 베일리의 신고전파 경제학을 모두 비판하면서 협동 조합의 이율배반을 극복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20세기의 '국가사회주의'와 분명하게 구분한다. 또한 '어소시에이션이즘' 혹은 '리버테리언 사회주의'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시민사회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열어준다. 더 나아가, 세계사 전체를 그 비전을 통해 이해해 볼 수 있는 관점 역시 제시한다. '자본=국가=네이션'으로 요약되는 오늘날의 국가 체제는 바로 그 비전을 바탕으로 비판받는다.
가라타니의 주장에 동의하든지 동의하지 않든지, 칸트와 마르크스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세계사 전체에 대한 고찰로 나아가는 그의 논의는 정말 놀랍다. 이 정도 스케일의 논의를 조직할 수 있을 만큼 대범하고 야심만만한 사상가는 찾기 힘들다. 더군다나, 그 논의 속에서 가라타니가 고전적 철학 텍스트들을 독해하는 방식도 대단히 참신하고 주목할 만하다.
나는 칸트보다는 헤겔을 좋아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대해서도 별다른 거부감이 없고, 가라타니가 지향하는 '어소시에이션'이라는 조직도 현실성이 거의 없다고 보는 입장인데도, 가라타니가 정말 대단한 사상가라는 사실만큼은 그가 쓴 책들을 읽으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라타니에 대해 비판적인 지젝이 가라타니의 주저 『트랜스크리틱』을 "현대 자본 제국에 대한 대항의 철학적・정치적 기초를 다시 주조하는 가장 독창적인 시도 가운데 하나"라고 매우 높이 평가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