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머스: "결국 관념론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데이비드 차머스가 "Idealism and the Mind-Body Problem"의 서두에 쓴 흥미로운 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처음에는 유물론자로 시작하여, 그다음에는 이원론자가 되고, 이어서 범심론자가 되며, 결국에는 관념론자로 끝난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현대 심리철학의 흐름이 점점 관념론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설명을 제시하는 글이네요.

When I was in graduate school, I recall hearing “One starts as a materialist, then one becomes a dualist, then a panpsychist, and one ends up as an idealist”. I don’t know where this comes from, but I think the idea was something like this. First, one is impressed by the successes of science, endorsing materialism about everything and so about the mind. Second, one is moved by problem of consciousness to see a gap between physics and consciousness, thereby endorsing dualism, where both matter and consciousness are fundamental. Third, one is moved by the inscrutability of matter to realize that science reveals at most the structure of matter and not its underlying nature, and to speculate that this nature may involve consciousness, thereby endorsing panpsychism. Fourth, one comes to think that there is little reason to believe in anything beyond consciousness and that the physical world is wholly constituted by consciousness, thereby endorsing idealism.

Some recent strands in philosophical discussion of the mind – body problem have recapitulated this progression: the rise of materialism in the 1950s and 1960s, the dualist response in the 1980s and 1990s, the festival of panpsychism in the 2000s, and some recent stirrings of idealism. In my own work, I have taken the first two steps and have flirted heavily with the third. In this chapter I want to examine the prospects for the fourth step: the move to idealism.

내가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나는 “사람은 처음에는 유물론자로 시작하여, 그다음에는 이원론자가 되고, 이어서 범심론자가 되며, 결국에는 관념론자로 끝난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이것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생각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첫째, 사람은 과학의 성공에 감명을 받아 모든 것에 대해, 그리고 따라서 마음에 대해서도 유물론을 받아들인다. 둘째, 의식의 문제에 의해 자극을 받아 물리학과 의식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보게 되고, 그리하여 물질과 의식이 모두 근본적이라고 보는 이원론을 받아들인다. 셋째, 물질의 불가해성에 의해 자극을 받아 과학은 기껏해야 물질의 구조만을 드러낼 뿐 그 근저의 본성은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을 깨닫고, 그 본성이 의식을 포함할 수도 있다고 추측하게 되며, 그리하여 범심론을 받아들인다. 넷째, 의식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믿을 이유가 거의 없다고 여기게 되고, 물리적 세계가 전적으로 의식에 의해 구성된다고 생각하게 되며, 그리하여 관념론을 받아들인다.

최근 심신 문제에 관한 철학적 논의의 몇몇 흐름은 이러한 진행을 다시 되풀이해 왔다: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유물론의 부상,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이원론적 대응, 2000년대의 범심론의 향연, 그리고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관념론의 몇몇 움직임들이다. 나 자신의 연구에서 나는 처음 두 단계를 거쳤고, 세 번째 단계와도 상당히 깊이 관계를 맺어 왔다. 이 장에서 나는 네 번째 단계, 곧 관념론으로의 이행의 전망을 검토하고자 한다.

David J. Chalmers, "Idealism and the Mind-Body Problem", The Routledge Handbook of Panpsychism, William Seager (ed.), Routledge: New York, 2019, p. 353 ChatGPT 번역.

차머스 자신이 명확하게 관념론을 지지하는 것까지는 아니라고 보입니다. 다만, 이 논문의 마지막은 관념론이 딱히 다른 입장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네요. 논문이 이렇게 끝나거든요.

I do not claim that idealism is plausible. No position on the mind–body problem is plausible. Materialism is implausible. Dualism is implausible. Idealism is implausible. Neutral monism is implausible. None-of-the-above is implausible. But the probabilities of all of these views get a boost from the fact that one of them must be true. Idealism is not greatly less plausible than its main competitors. So even though idealism is implausible, there is a non-negligible probability that it is true.

나는 관념론이 설득력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심신 문제에 관한 어떤 입장도 설득력 있지 않다. 유물론도 설득력 있지 않다. 이원론도 설득력 있지 않다. 관념론도 설득력 있지 않다. 중립적 일원론도 설득력 있지 않다. 그 어느 것도 아니라는 입장도 설득력 있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견해의 개연성은, 그중 하나는 반드시 참이어야 한다는 사실로 인해 일정한 상승을 얻는다. 관념론은 그 주요 경쟁 입장들에 비해 크게 덜 설득력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관념론이 설득력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참일 무시하지 못할 만한 개연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David J. Chalmers, "Idealism and the Mind-Body Problem", p. 370 ChatGPT 번역 후 인용자 수정.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오늘날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 중에서 아주 완고한 유물론자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맥락에서, 완고한 유물론을 철학적으로 고집하는 것은 철학계의 주류 경향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가령, 차머스가 지적하는 것처럼, 심리철학에서는 '의식의 어려운 문제' 때문에 오늘날에는 범심론이나 관념론이 점점 힘을 얻고 있죠. 분석 형이상학에서도, '보편자', '기체', '4차원 시공간 지렁이', '부분 전체론적 합' 같은 형이상학적 실재들을 도입하는 철학자들이 상당히 많기도 하고요. 수리철학과 논리철학을 전공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괴델처럼 수나 논리의 실재성을 강력하게 옹호하시는 분들을 정말 많이 보았습니다. 저처럼 철학적 해석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결국 이 모든 논의들이 특정한 언어적 실천에 근거한 '해석'일 뿐, 모든 것을 정초하는 물리적 토대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하고요. 여러 방면에서, 철학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유물론은 오늘날 받아들이기 어려운 입장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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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범심론은 일원론이 세트로 오는 경우가 많은 거 같은데, 일원론을 얼마나 받아들일지 모르겠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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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건 근래 심리철학계에서의 전통적인 마음의 형이상학 분야와 심리학의 철학 분야 간의 실질적인 분리,

그리고 잘 알려진 무신론과 종교철학 전공자의 역설

이 둘이 결합되어 발생한 면모도 있지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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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철학 분야에 많아서 일종의 편향이 나타난 것일 수도 있지만, 저는 관념론을 포함하여 비유물론적 사조가 최근에 득세하게 된 몇 가지 주요한 '계기'들이 있다는 점에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해요. 가령, 차머스가 심신 문제에 대해 지적한 것처럼, 본래 50-60년대만 하더라도 행동주의 같은 유물론적 사조가 이 분야에서도 득세를 했다가 '의식의 어려운 문제'가 제기되면서 주류가 뒤바뀐 거잖아요. 분석 형이상학에서도 본래 논리 실증주의가 득세하다가 50년대의 콰인의 등장 및 80년대의 루이스와 크립키의 활약으로 변화가 일어났고요. 심지어 종교철학도 원래 기성 철학자들이 거의 아무도 참여하지 않는 분야였다가, 알빈 플란팅가의 등장으로 70년대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적어도, 이렇게 학계의 판 자체를 뒤집는 변화는 단순히 학자들 개인의 편향만으로는 설명되기 어렵지 않은가 하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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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데로 항상 어떤 '계기'들이 생기고 그런 문제의식으로 부터 새로운 사조가 생기죠.

20세기 심리철학에서 제기된 문제들이 유물론적 시각을 범심론, 관념론으로 이끌었다면, 최근에 이 문제에 대해 또다른 '계기' 들에 의한 변화가 생기게 된다면 어떨까요?

2020년대부터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LLM등 'AI 기술의 발전'은 비록 아직까지는 그정도 까지는 아닐지라도, 계속 발전해가게 된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따르면 이런 기존의 문제의식을 뒤엎고 기계와 인간을 비교하면서 다시 물리-화학현상으로 보게되는 유물론으로 돌아가게 될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어떤 또다른 관점'이 생길까요? 아니면 그냥 큰 변화가 없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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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술 발전이 심신 문제에 대한 논의에 어떤 변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 유물론, 이원론, 범심론, 관념론 중 어느 쪽에 더 유리하게 해석될 만한 계기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행동주의나 기능주의처럼 유물론에 가까운 입장에서는, AI와 인간 사이에 아무런 본질적 차이도 없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죠. 그런데 이런 관점은 범심론이나 관념론도 얼마든지 취할 수 있죠. 가령, 물질 속에 애초에 의식의 단초가 언제나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범심론의 입장에서는 AI도 의식이 있을 수 있다고 쉽게 인정할 것 같아요. 비슷하게, 관념론도 세계가 전적으로 의식을 통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AI가 의식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볼 것 같고요.

(그런데 정작 저는 심신 문제에서 기능주의에 가까운 입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 범신론이나 관념론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 반드시 달갑게 느껴지지만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철학적 성찰 없이 너무 손쉽게 유물론이 마치 우리 시대의 대세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과 달리, 실제 각각의 철학 분야에서 일어나는 형이상학 논쟁에서는 상황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인상적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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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 문제에 딱히 스탠스는 없지만, 의식의 어려운 문제 (hard problem of consciousness)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기능주의보다 범심론이 관념론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왜냐면 범심론/관념론을 채택하게 되면 현상적인 성질이 근본적이게 되기 때문에 어떻게 물리적인 성질에서 현상적인 성질이 나오는지 설명을 할 필요가 없으니깐요. 다만 의식의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범심론/관념론이 너무 많은 비용을 감수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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