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종 교수님의 『구도자의 일기』를 읽고선 책에서 나오는 비트겐슈타인적 종교-윤리관에 푹 빠져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을 이해한 바로는;
신이 곧 윤리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심에 둔 신앙
신비에 대한 현학적 이론과 체계를 위한 정당화 대신 몸으로 전례에 참여하는, 의식 행위의 우위 정도입니다.
물론 교부로부터 이어져 온 복잡한 철학적 신학에 대해 완전히 부정적이진 않지만, 정작 삶에서의 체험과 결단에 도움이 되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키르케고르 같은 발언만 잔뜩 한 기분인데, 아무튼 그런 점에서 요즘 제가 이해한 비트겐슈타인적 종교-윤리관과 그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킬 수 있는 윤리-종교철학 도서를 찾고 있습니다. 혹시 알고 계신 좋은 책들 있으면 추천 해주세요. 미리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비트겐슈타인 회상록』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가까운 지인들이, 비트겐슈타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증언한 내용입니다. 특별히 종교와 관련해서는 M. O C.’ 드루어리의 글들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비트게슈타인이 단순히 추상적인 '종교'가 아니라 구체적인 '기독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많이 보여주는 일화들을 담고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이렇게나 기독교에 대해 진지했나?'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읽으면서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가령, 드루어리와 비트겐슈타인의 마지막 대화는 구약성서를 주제로 하였는데, 한때 목사가 되려 했던 드루어리 본인은 정작 구약에 등장하는 잔인한 이야기들을 꺼려하는 반면, 비트겐슈타인은 성경에서 함부로 우리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만 골라내려 하면서 불쾌한 이야기들은 무시하거나 폄하해버리려 하는 식의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매우 단호하게 이야기하죠. 당황한 드루어리가 의도적으로 구약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정작 비트겐슈타인은 드루어리와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구약에 대해 다시 언급하면서 이 주제로 편지를 쓰겠다고 했다면서요.
드루어리: 구약성경의 어떤 내용은 상당히 불쾌한 기분이 들어요. 예를 들어, 아이들이 예언자 엘리사를 대머리라며 놀리는 이야기요. 아이들이 "올라가라, 대머리야"라고 놀리자 신이 숲에서 여러 마리의 곰을 내보내 아이들을 잡아먹게 했지요.
비트겐슈타인: [매우 단호하게] 그런 식으로 원하는 구절을 골라서는 안 되네.
드루어리: 그렇지만 이보다 더 적당한 구절은 없는걸요.
비트겐슈타인: 구약성경이 키르케고르 같은 사람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기억하게. 결국 아이들은 곰들에게 죽임을 당했어.
드루어리: 네, 그렇지만 그 같은 비극이 특정한 악행 때문에 신이 직접 내린 처벌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신약성경에는 정반대의 이야기가 나오지요. 실로암 탑이 무너질 때 그 아래 깔린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악하지 않다고 말이에요.
비트겐슈타인: 그 구절은 지금 내가 말하는 내용과 관련이 없네. 자네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고.
나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랐다. 이 대화가 그를 불쾌하게 만든 것 같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잠시 뒤에 우리는 좀 더 사소한 문제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역에 갈 시간이 됐을 때, 피곤할 테니 굳이 그러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역까지 함께 가겠다고 한사코 고집을 부렸다. 역으로 가는 길에 그는 갑자기 조금 전 구약성경에 대한 우리의 논쟁을 언급했다.
비트겐슈타인: 그 문제에 대해 편지로 이야기하겠네.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에 그가 말했다. "드루어리, 어떤 상황에서도 생각을 멈추지 말게." 이 말이 그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아래 대화도 흥미롭더라고요. 비트겐슈타인이 테르툴리아누스 같은 초대 기독교 교부들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점, 자신의 사상을 '히브리적'이라고 강조했다는 점, 최후의 심판이라는 사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는 점 등이 나와 있어서요.
나는 비트겐슈타인에게 몇몇 초기 교부들에 대해 읽고 있으며, 지금 읽는 부분은 테르툴리아누스에 대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비트겐슈타인: 자네가 그런 책을 읽고 있다니 기쁘군. 그런 책들은 꾸준히 읽어야 하네.
드루어리: 전에는 오리게네스를 읽었어요. 오리게네스는 세상이 끝나는 날 만물이 궁극적으로 회복될 거라고 가르치더군요. 심지어 사탄과 타락한 천사들조차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거라고요. 이 개념이 제 관심을 끌었는데, 즉시 이단으로 비난을 받았더군요.
비트겐슈타인: 당연히 그 개념은 거부되었지. 나머지 모든 개념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릴 테니까.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궁극에 가서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면, 인생의 모든 진지함은 사라지고 말거야. 자네의 종교 사상은 언제나 성서보다 그리스 종교에 더 가까운 것 같아. 반면에 내 사상은 백 퍼센트 히브리적이지.
드루어리: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가령, 플라톤이 신들을 이야기할 때, 거기에는 우리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는 성경 전체에서 느끼는 경외감이 빠져 있지요. “그러나 그가 오는 날, 누가 당해내랴? 그가 나타나는 날, 누가 버텨내랴?”(말라기 3:2)
비트겐슈타인: [가만히 서서 나를 골똘히 바라보며] 자네 방금 아주 중요한 말을 한 것 같네. 이 말은 자네가 깨달은 것 이상으로 훨씬 중요해.
이외에도, 비트겐슈타인 개인사적으로나, 종교철학적 관점으로나, 사상사적 관점으로나 아주 흥미로운 일화들이 많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종교개혁자 칼뱅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는 점이나, 비트겐슈타인이 20세기 최고의 개신교 신학자인 칼 바르트에 대해서 처음에는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나 나중에는 극찬을 하게 되었다는 점 등도 나와 있어요.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철학 강의도 이영철 교수님을 통해 번역되어 있죠.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철학을 연구하기 위한 자료로 아주 중요하긴 하지만, 이 책은 비트겐슈타인의 강의를 학생들이 단편적으로 기록한 것이라 다소 산만한 데다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서 약간 아쉽더라고요.
『문화와 가치』도 비트겐슈타인의 예술관, 윤리관, 종교관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로 자주 언급되죠. 특별히, 여기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우리 시대에 비트겐슈타인의 종교관을 가장 잘 계승하고 있는 학자 중 한 명을 꼽자면 개신교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가 있을 것 같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철학과 칼 바르트의 신학을 결합시킨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고, 현대신학계에서 '예일학파'라는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신앙이 세속사회 속에서 정말로 의의를 지니기 위해서는, 신앙 자체의 고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세속사회를 변혁시키는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인물입니다. 국내에도 저작이 꽤 여러 권 소개되어 있기는 한데, 정작 하우어워스가 쓴 학술적인 논문이나 저작은 좀 덜 번역된 것 같아서 저로서는 좀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우어워스에 대한 몇 가지 소개글들을 가져와 봅니다.
이러한 바르트의 도전은 한스 프라이(Hans Frei)와 조지 린드벡(George Lindbeck)과 연관되어 있는 예일학파 또는 탈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알려진 출현과 함께 보다 최근의 형태로 뉴헤이븐에 이어졌다. 바르트를 따라서 예일학파는 신학적 서술에 있어서 계시를 세속적인 틀과 상관시키거나 종합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둘의 상반성을 강조하고 계시가 세속적인 틀을 전복시키는 방식을 강조하면서 성경의 계시적인 면을 재평가하고자 했다. 바르트와 탈 자유주의자들 사이의 차이점은 바르트가 하지 않았던 언어로의 방향전환을 예일학파는 꾀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일학파는 비트겐슈타인과 방향을 함께하여(프린스톤 바르트주의자들은 이에 저항하지만) 결국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연구에서 구체화되는 노스캐롤라이나 덜햄 위성 기획을 생산해 낸다.
제임스 K. A. 스미스, 『급진정통주의 신학』, 한상화 옮김, CLC, 2011, 54-55쪽.
바르트/비트겐슈타인의 통합은 하우어워스에게 중요하다. 그가 말하는 바와 같이 "나는 바르트를 나의 방식으로 읽는다. 즉 교의학이 기독교적 언어의 훈련 교재로서 해석되어야만 할 뿐 아니라 어떻게 언어가 그 말해진 것에 적합한 방식으로 화자를 형성하는지를 제안함으로써 With the Grain of the Universe에서 보이고자 했던 방식이다."(Stanley Hauerwas, "Hooks: Random Thoughts by Way of a Response to Griffiths and Ochs", Modern Theology 19 [2003]: 93)
제임스 K. A. 스미스, 『급진정통주의 신학』, 한상화 옮김, CLC, 2011, 55쪽, 각주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