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나조차도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기울게 하는가? 나는, 말하자면, 생각을 해본다. 만약 그가 죽음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다른 모든 사람처럼 무덤에서 썩었을 것이다. 그는 죽었고 썩었다. 그 경우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교사이고, 우리를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다. 우리는 또 다시 고아가 되었고 혼자 남겨졌다. 그리고 우리는 고작 지혜와 사변으로 버텨야 할 뿐이다. 이것은 마치 지옥에 있는 것과 같다. 우리가 천국을 꿈꿀 수는 있지만, 말하자면 천장에 막혀 있는 것처럼, 천국으로부터 차단된 장소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구원받아야 한다면, 나는 지혜나, 꿈이나, 사변이 아니라 확실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확실성이 신앙이다. 그리고 신앙이란 나의 심장이,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신앙이지, 사변적 지성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한 신앙이 아니다. 나의 영혼이, 영혼의 열정과 함께, 말하자면 영혼의 살과 피와 함께, 구원받아야 하는 것이지, 나의 추상적 정신이 구원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직 사랑만이 부활을 믿을 수 있다." 혹은 "부활을 믿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구원하는 사랑은 부활조차 믿는다. 그 사랑은 부활까지도 굳게 붙잡는다.""
(L. Wittgenstein, Culture and Value, Revised Edition, G. H. von Wright (ed.), P. Winch (trans.), Blackwell Publishing, 1998, 38-39.)
부활절 기념(?)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견해를 올려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잘 알려진 내용인데, 아마 대중적으로는 낯설 것 같아서요.
이 구절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마치 키에르케고어를 연상시키는 실존주의적인 어조로) 지혜나 사변 따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신앙만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만을 따로 떼어 놓으면 비트겐슈타인은 거의 확실히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죠.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은 종종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이 구절 바로 위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차마 예수를 '주님'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도 말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은 '주님'이라는 말을 유의미하게 발화할 수 없으며, 특별히 예수가 자신을 심판하러 온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요. 그 구절만 떼어 놓으면, 비트겐슈타인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죠.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은 종종 자신이 종교인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이런 양면성으로 인해, 비트겐슈타인의 종교관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과 논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입장들을 일종의 철학적 은유나 상징인 것처럼 받아들이려고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비트겐슈타인이 일종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고 있기는 하였지만 톨스토이처럼 정통 신앙에서 벗어난 다소 독특한 그리스도교를 믿었다고 보기도 하죠.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그리스도인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비트겐슈타인학(Wittgensteinology)'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종교철학 일반의 관점에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가 읽기에, 비트겐슈타인은 절대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은유나 상징 따위로 풀어내려 하지 않고, 자신만의 특수한 교리를 세우지도 않거든요. 오히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모든 종류의 환원주의나 교조주의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종교를 철학이나 과학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를 거부하면서도, 종교를 독단적인 교리 체계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까지 역시 거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철학을 독해하는 데 있어서 쟁점이 되겠죠.
비트겐슈타인 본인은 이런 제3의 길을 걷는 것이 신앙을 신앙으로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이라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그리스도인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개인적 신앙관을 묻는 질문을 넘어, 종교철학에 있어 제3의 길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하죠. 즉, 그 질문은 (a) "환원주의와 교조주의를 모두 넘어서는 종교관이란 정말 존재하는가?", (b) "그 종교관은 '그리스도교'와 같은 전통적 종교들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 (c)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종교관은 '그리스도교'와 같은 전통적 종교들의 입장을 어떤 점에서 근본적으로 대변하고 있는가?"라는 질문들로 이어집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철학을 매개로 삼아 종교철학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게 되는 거죠.
언젠가 이런 식의 연구를 해보고 싶기는 한데, 당장 눈앞에 닥친 과제들이 너무 많아서 지금으로서는 이런저런 책만 뒤적이고 있는 게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