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들어보신 분도 계시겠지요.
저야 이 책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이 책에 대해 비판하는 포스팅을 본적은 있습니다. (책 소개에서 드는 한 가지 의문이 있다면 정작 본인이 도입하는 "단어 토폴로지"라는 말은 왜 '토폴로지'라고 그대로 음차해서 쓰는가 하는 건데요.. 그 외에도 초판에서 바뀐 번역어라고 언급된 다섯 가지 용어가 있는데 전혀 납득이 안 가는 번역어이긴 하네요)
이 저자가 최근에 순수이성비판을 새로 번역했나 봅니다.
뭐 번역본 하나 더 나오는 게 대수냐 싶을 수 있겠지만, 번역자가 현재 있는 학술번역에 대한 강한 반감을 표한 바 있고, 그에 대한 대체재로서 제시한 번역본이므로 학술 커뮤니티에서도 한 번 관심을 가져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소식을 공유합니다.
그나저나 작업의 퀄리티는 차치하고서라도, 남 까는 건 쉬워도 대안을 제시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점에서 역자의 끈기는 인정할 만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 동일 저자의 글을 보고 "철학이 난해한 건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번역자들 때문이다"라는 발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루는 글을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직접 『순수이성비판』 번역까지 냈군요.
번역어 한두 개 정도가 눈에 띄네요. 일단 본인 스스로 "Verstand"를 인간의 능력이라고 설명하면서 "지식"이라고 번역하는 게 별로 납득이 안 갑니다. 이 사람이 호소하는 일상 한국어의 자연스러움과 딱히 들어맞지 않는 번역 같아서요. 우리는 일상 한국어에서 "지식"이라는 단어를 결코 능력이라는 의미로 쓰지는 않으니까요. 또 "Ausdehnung"을 "크기"라고 번역하는 것도 의아합니다. 그러면 "Größe"는 뭐라고 번역하고, "Ausdehnung"과 매칭되는 형용사인 "extensiv"는 뭐라고 번역할지, "extensive Größe"는 뭐라고 번역할지 (설마 "크기의 크기"는 아니겠죠) 궁금하네요.
저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번역본의 존재가 철학의 난해함을 번역 탓으로 돌리는 류의 주장을 그 자체로 반증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하이데거는 일상어를 가져와서 자기 방식대로 전유해서 철학을 하고, 국내에서 널리 활용되는 이기상 선생님의 번역본도 최대한 한국어 일상어를 활용해서 용어들을 번역했지만, 『존재와 시간』은 여전히 독일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해설서가 따로 필요할 정도로 난해한 책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이 생각 납니다. 예전에 이경숙이라는 이가 도올이 『도덕경』을 완전히 엉터리로 해석하고 있다며 도올에 대한 책 두 권 분량의 맹비난을 출판한 다음 자기가 『도덕경』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번역해서 내겠다고 자신만만하게 공언해서 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는데, 그렇게 출간된 『도덕경』 번역본은 학계와 대중 양쪽으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했죠. 차이점이 있다면 코디정이라는 사람은 그때의 이경숙과 달리 유튜브 활동 등으로 대중적 인지도는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는 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