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올빼미 분들은 평소 철학사 연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일상 속에서 콰인의 말, 즉, "철학 자체와 단순한 철학사"의 엄밀한 구분을 생각보다 많이 의식한다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이건 아마도 제 안에서, 철학 연구의 대부분은 과거에 이미 논의되었던 어느 한 철학 체계에 레퍼런스를 둘 수밖에 없다는 요상한 직관과, 진정한 "철학함"은 단지 옛 성현들의 말을 달달 외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충돌해서 생긴 결과인 듯 합니다.

마치 베넷이 스피노자와 더불어 행위철학의 전문가였듯, 로우가 로크와 더불어 심리철학의 전문가였듯, 브렌타노가 아리스토텔레스와 더불어 인식론의 전문가였듯 저도 철학 연구가로서 이 양방향의 덕목을 모두 갖출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이건 이 사람들이 모두 저와는 다르게 천재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다보니....

어렵네요. 위키피디아는 저명한 주석가들(이를테면 게루나 캉부시네 같은)을 "철학자"로 소개하고 있지만서도, 지금 제가 가고자 하는 이 길을 밀어붙였을 때 과연 저는 나중에 "주석가"가 아닌 "철학자"로 불릴 수 있을지가 궁금한 요즈음입니다.

(물론 당연히, 현실적으로는 철학계에 작게나마 기여하는 주석가가 되는 것조차도 이미 너무나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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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해서 철학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시거나 혹은 이에 준하는 트레이닝을 받으신 후에 철학사 연구로 논문을 지속적으로 내신다면 주석가라고 불리실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정식 코스를 밟은 혹은 밟는 중인 철학사 연구자를 철학자가 아니라 주석가라고 부루는 경우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설사 있더라도 그것은 wooplayer님을 주석가라고 부르는 사람의 인성 문제이지 wooplayer님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최소한 저는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고중세근대철학 전공자를 철학과에서 철학자가 아닌 주석가라고 부르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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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도 오랜 시간 철학사와 철학 사이의 간극—또는 표현해주신 대로 ‘주석가의 일’과 ‘철학자의 일’ 사이 간극—에 대해 고민해온 지라 지나칠 수 없었네요. 지금은 그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확신을 갖고 있는데, 철학사를 일종의 언어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마치 독일인과 대화하려면 독일어를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철학사를 공부함으로써 철학을 하는 길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특정한 문헌군을 진지하게 독서하는 일과 철학자가 되는 일 사이의 괴리를 좁히는 데 저에게 도움이 된 전략(?)이 몇 가지 있어, 영감이 되실까 해 공유합니다.

a. 철학사로부터 독립적이어도 괜찮은may 연구 질문을 철학사를 통해 사유하기: 저는 철학을 ‘(실재를 반영하는/진리를 분유하는) 개념을 생산하고 정교화하며 교정하는 작업’이라고 거칠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사를 언어로 간주하는 일이란 철학사에서 비롯한 개념을 활용해 별도의 연구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일 수 있겠습니다. (해답이 없다면 왜, 어떤 의미에서 없는지 탐구하는 과정이겠고요.) 예를 들어 ‘선the good의 내용은 인간 주체에 의해 규정되는가, 아니면 인간의 외부에서 이미 규정된 바가 주체에게 다만 주어지는가’라는 메타윤리학적 연구 질문이 있다면 이를 보부아르, 베유, 머독의 문헌을 통해 고민하는 것입니다. 퍼블리케이션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물론 연구 질문을 훨씬 더 전문화해야 하겠지만, 마음 깊은 곳, 지성의 뿌리에서만큼은 (한정된 의미에서) 초역사적인 연구 질문을 갖고 있는 게 도움이 되었어요.

b. 탐독하고 있는 문헌의 특이성peculiarity/singularity에 주목하기: 그 어떤 철학적 주장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즉 어떤 주장이나 그것이 갖고 있는 이론적 장점과 단점 들이 있으며, 이것들이 이루는 성좌와 같은 것이 한 문헌의 특이성을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1) 해당 문헌을 어떤 특이성을 가진 것으로서 사유할 것인가; (2) 그처럼 특이해짐으로써 해당 문헌이 취하는 것과 잃게 되는 것이 무엇인가; (3) 이론적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또는 정당화하기 위해 해당 문헌의 저자가 취하는 전략이 무엇이며, 얼마나 성공적인가 등의 해석적 질문들이 따라나올 것입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좁은 의미에서의) 주석을 위한 해제력 이상의 철학적 상상력, 해석자의 개성이 개입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단계에서부터는 사실상 문헌의 탐독을 넘어 자신의 사유를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저자의 빈틈을 노리는 작업이기에……

c. 연구 질문에 걸맞게 개념 응용하기: 앞서 초역사적인 연구 질문을 염두에 둔 채 역사적인 문헌을 읽는 것이 제게 도움이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사실 저의 연구 질문은 저의 것이고, 저자의 연구 질문은 저자의 것이기에 주어진 문헌이 저의 질문에 완벽하게 답을 줄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문헌에서 한 개념이 사용되는 방식을 성실하게 익힌 후, 독서의 성과를 제 연구 질문에 걸맞게 응용하는 일이 단순히 제가 진정한 철학자로 거듭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구 자체를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경우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후설의 문헌에 드러나는 육화나 키네스테제의 개념을 응용해, 일부 조현병 환자가 겪는 신체의 통제력 상실을 ‘탈육화disembodiment’로 사유함으로써 환자의 체험을 이해하고자 하는 일이 가능하겠네요(Fuchs 2009).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PMS나 생리통을 겪는 여성의 체험은 ‘과육화overembodiment’로 이해해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연구의 대상이 되는 개념(일종의 재료)을 연구 질문에 걸맞게 조각하는 과정에서, 성실한 독서가 성실한 철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담을 해도 괜찮다면…… 문헌을 이해하기만도 벅찬 또는 체계 자체가 너무나 아름답게 완성되어있어서 응용하기가 어려운 철학이 있는가 하면(e.g. 개인적으로 플라톤, 스피노자), 그렇지 않은 철학, 좋은 의미에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많은 철학(e.g. 개인적으로 대륙 현상학자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철학으로 오면 올수록 2차 문헌의 축적 양이 다른 문제도 있고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woo님의 고민이 현재 연구하고 계신 문헌의 특수성으로부터 비롯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혹시 하시는 고민이 너무 숨 막히는 순간이 온다면, 잠시 다른 문헌을 읽으며 바람을 쐬는 것은 어떨까요. 이전에 헤겔을 읽다 오 이러다 내가 죽겠군 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틈틈이 현대 덕 윤리로 시선을 돌려서 스스로를 구제한 적이 있었네요.

하지만 당연히 정답은 없겠지요. 다만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분이 있다는 데, 그리고 제 생각을 언어로 풀어내는 기회를 주신 데 대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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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현재 있는 학교 (조지아 주립 대학교) 에서는 철학사/철학의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분석 철학만이 진짜 철학이며, 1950년 전의 철학사는 오래되고 outdated됐을 뿐더러, 철학보다는 문헌적인 것에 집중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생각들은 대학원생뿐 아니라 교수들에게도 가끔씩 보입니다. "I don't care about what those people thought. I care about the truth." "I never did well in doing bibliographical works." 라는 말들은 전부 교수님들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는 제 학교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사 교수님들도 제게 "미국에서 철학을 한다면 철학사에 대한 편견을 갖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만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고 앞으로도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작성자분과 같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철학'이 아닌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비춰지긴 너무 싫거든요. 그래서 제가 찾은 협의점은 분석철학에 대한 공부를 간간히 하면서 철학사가 분석철학에 어떤 말을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작업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작성하고 있는 Writing Sample도 헤겔이 메타형이상학이 갖고 있는 explanatory gap을 채워준다고 주장을 하고요. 예전에도 올렸던 Work in Progress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작업물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분석철학을 살펴보면 "철학"을 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철학사에서 나왔던 대안들보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 물론 남들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지조있게 철학사를 하시는 분들도 꽤 있고, 존경을 많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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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sophical/systematic 과 historical/exegetical 사이의 간극은 관찰가능한 실존하는 사태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많은 현대철학자들은 철학사에 관심이 없고, 반대로 많은 철학사 연구자들 역시 현대철학적 주제들에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경계가 (바람직하게도)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은 올빼미에서도 이미 여러번 다루어진 지점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주 연구 분야가 어느 쪽이든 간에, 둘 모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생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HARIBO 님이 지적한 것처럼, 둘 모두 중요한 "언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미 현대철학에서 숱한 주제들에 대한 첨예한 논쟁들이 이루어져 왔고 그에 따른 응답과 해결책들이 무수히 쌓여 있는데, 철학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이 축적된 성과들을 싸그리 무시하는 것은 그 역사적 철학자를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현대의 논쟁점들에 대해서 해당 역사적 철학자가 무엇이라고 답할까를 고민하면서 그 철학자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더 깊어지기도 합니다.

반대로 이미 철학사의 거장들이 남긴 논쟁의 자취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보지 않고 마치 해당 문제가 20세기에 이르러 처음 발견된 것인양 논의하는 현대철학자들을 볼 때 답답함을 느낍니다. 셀라스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철학사라는 아주 훌륭한 lingua franca가 있고, 이것들이 때로는 더 근원적인 통찰들을 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들을 무시하고 제로베이스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 역시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태도겠죠.

저 역시 철학사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철학사 연구자에 한정해 본다면, "해당 철학자가 왜 중요한가?"에 대한 물음과 그에 대한 대답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해당 역사적 철학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그룹이 아닌, 그 외의 철학 연구자들에게 (예컨대) "왜 스피노자가 중요한가?"를 묻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유형의 대답이 가능하겠습니다만, 제가 선호하는 대답의 유형은 "스피노자가 이러이러한 현대철학적 문제의 선구자이다"라는 유형의 대답을 넘어서 (이 경우 역시 스피노자 연구가 유의미하긴 하지만, 현대철학 연구자들이 "굳이" 스피노자를 볼 이유가 없을 수도 있겠죠), "현대철학의 논의가 놓치고 있는 지점을 오히려 스피노자가 잘 보여주고 있다"와 같은 대답입니다. 이러한 대답을 가지고 있다면, 스피노자 연구자 집단 뿐만 아니라 다른 철학사 연구집단이나 현대철학 연구자들에게도 "나의 작업을 읽으라!"하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지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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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좋은 댓글들이 많이 있고, 또 저 역시 그 댓글들의 의견에 크게 동의하긴 하지만, 약간 다른 경험을 나누어보고 싶기도 하네요. 댓글을 쓰신 대부분의 분들이 '철학 자체'에 강조점을 두고서 '철학사' 혹은 '문헌'을 연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말씀해 주셨잖아요. 또, 이러한 공감대에 근거해서, '철학 자체'에 강조점을 두는 연구자들이 '철학사' 혹은 '문헌'에 강조점을 두는 연구자들을 종종 낮추어 본다는 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고요. 그런데 저는 철학사를 전공하시는 분들이 철학 자체에 강조점을 두려는 작업에 대해 미심쩍어 하시는 경우를 훨씬 더 자주 접해서요.

가령, (제가 국내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분위기가 약간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자기를 소개할 때 "칸트 전공자", "헤겔 전공자", "하이데거 전공자"처럼 특정한 인물을 내세우는 경우가 더욱 흔한 것 같아요. 또, 분석철학을 제외하면, 출판되는 연구들도 주로 특정한 인물들의 개념이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크게 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요. 오히려 철학사적 인물들의 논의를 바탕으로 현대적인 주제들을 다루려고 하면 "칸트가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말했나?"라거나 "헤겔 하나도 제대로 연구하기 어려운데, 헤겔을 그렇게 적용하려 한다고?"처럼 다소 냉소적이거나 시큰둥한 반응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칸트나 헤겔을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작업은, 일단 칸트나 헤겔의 대가가 되고난 다음에야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물론, 탄탄한 텍스트 독해에 근거한 적용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에는 당연히 동의하지만, (사실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는 전공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솔직히 저는 종종 답답할 정도로 텍스트 독해 자체를 신성시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던 경험이 있어요. 사람마다 어느 정도 수준을 '탄탄한 텍스트 독해'라고 인정할 것인지가 다를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인물'을 전공하시는 분들 중에는 그 독해의 벽을 꽤 높게 잡으시는 분들이 많아서 종종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거든요. (제 개인적인 경험도 있지만, 다른 분들이 지나치게 혹독하게 평가받는 모습을 주변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경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글을 쓸 때마다 '철학'과 '철학사' 사이에서 도대체 어느 지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그 분야 전공자들을 만족시키면서도 제가 하고 싶은 철학적 아이디어들을 말할 수 있을지 항상 헤매게 되더라고요. 아마도 학계에 남아 있으려는 한 누구든지 영원히 헤매게 될 문제인 것 같긴 하지만 말이에요.

철학사를 좀 더 강조하는 경향이 국내 철학계의 특징인 것인지, 아니면 철학사 연구자들 사이의 일반적인 특징인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물론, 저는 결코 국내 철학계가 단순히 수준이 낮아서 해외의 연구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다 보니 철학사와 철학자를 사대주의적으로 추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제 경험으로, 국내에서는 여전히 철학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의 입김이 상대적으로 더 강한 것 같고, "칸트 전공자", "헤겔 전공자", "하이데거 전공자"처럼 특정한 인물을 중심으로 자신의 연구 범위를 설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연구자의 전문성이 우선 '의심'의 대상이 되기 매우 쉬운 것 같아요. 아마도, 이런 현상에는 '잡마켓'의 영향도 한 몫 하는 것 같긴 한데, 말하자면, '고대', '중세', '근대', '현대' 같은 철학사적 도식에 따른 교수 임용 자리는 수많은 대학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심리철학', '논리철학', '정치철학' 같은 주제에 따른 교수 임용 자리는 많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철학사에 더 강조점을 두는 현상이 정확히 왜 생겨나는 것인지, 이런 현상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 것인지 저로서는 아직 확실히 의견이 서지는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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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오해가 생기지 않게 말하자면, 제가 말한 경험들은 주로 현대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서 들은 말이었어요. 미국에서도 철학사를 하시는 분들은 텍스트 독해에 벽을 높게 잡는 것 같긴 합니다. 실제로 최근에 클라크 울프라는 헤겔 학자랑 제 Writing Sample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클라크 울프가 제 Writing Sample에 대한 피드백을 주시면서 줌미팅을 제안해주셨는데, 줌 미팅 때 제게 했던 비판 중 하나가 '문헌적 근거가 없다' 혹은 '헤겔을 공부하는 것인지 riffing on Hegel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였어요. 다만 클라크 울프가 헤겔에 대해서 워낙 독특한 해석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실제로 클라크 울프가 저 말을 하고 나서 자신이 "sociological minority"라는 말을 덧붙였거든요.

이 부분에서 덧붙이자면, 저희 학교 교수님 중에 수지 러브라는 분이 계십니다. 칸트의 독해에 집중을 한다기 보다는 칸트의 철학을 현대 철학에 적용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으신 분이에요. 그 교수님께서도 저널에 투고를 하실 때, "나는 나의 칸트의 해석에 변호를 하지 않겠다. 그냥 이런 해석을 전제하고 논리를 전개시킨다"라는 말을 넣었는데도 불구하고, "이건 올바른 칸트 독해가 아니다," "자신의 독해에 대한 변호가 부족하다" 라는 코멘트를 많이 받아서 화가 났던 적이 많았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한국 학계뿐 아니라 미국 학계에도 적용이 되고, 실제로 교수님들도 겪고 있는 문제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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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디터 헨리히의 Between Kant and Hegel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읽은 적이 있어요. 헨리히가 1973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독일관념론을 강의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인데, 이 책에서 헨리히 자신도 그렇고, 책의 편집자 파시니(David S. Pacini)도 그렇고, 헨리히가 하버드 대학교의 분석철학자들을 매우 의식하면서 독일관념론을 소개했다는 점을 강조하더라고요. 당시 하버드 대학교가 분석철학의 중심지였으니, 그런 학교에서 독일관념론을 납득시키려면 단순히 독일관념론 자체에 대한 해석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이겠죠.

From the outset, Rawls and Cavell had expressed the hope that I would make the classical tradition of philosophy in Germany accessible to American students and scholars. I responded to their request by offering a course that attempted to uncover the motivations and systematic structure of the philosophy of Kant and his successors. I also tried to interpret their theories and arguments—omitting, for example, their frequently exaggerated claims—in a way that analytically trained colleagues and students could take seriously. The reception of the lectures by a surprisingly large audience of students and colleagues from various departments was strong—in fact enthusiastic. (Henrich, 2003: vii)

The presence of an interpreter of the intricacies of German idealism in the Harvard philosophy department in the early 1970s was a notable anomaly. The analytic mindset of the department at that time harbored a skepticism, deriving in part from G. E. Moore and Bertrand Russell, toward the tradition Henrich was interpreting: their wariness deemed such thinking little more than a pastiche of metaphysical phantasmagoria. Yet it was precisely such a skepticism that Henrich sought to address. (Pacini, 2003: ix-x)

이런 점을 볼 때, 철학사 연구자 내부의 경향은 미국철학계나 국내철학계나 둘 다 비슷하더라도, 철학사 연구자가 취하는 대외적인 태도에서는 미국철학계와 국내철학계 사이에 다소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미국은 분석철학이 오랜세월동안 주류철학이었다 보니, 철학사 연구자들이 분석철학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지만, 국내철학계는 굳이 그렇게 눈치를 보지는 않는 것 같아서요. (오히려 종종 분석철학자들이 소수라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철학계에서는 철학사 연구자들이 적어도 대외적으로 자신의 작업물을 소개할 때는 '분석철학적'인 방식으로 그 작업물을 현대의 문제들과 연관시키는데, 국내철학계에서는 오히려 철학사적 '정통성'을 더 강조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런데 어느 쪽 경향이 더 좋은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철학사 연구자들이 분석철학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도 딱히 바람직하지 않지만, 철학사 연구자들이 너무 안일하게 '정통성'을 명목으로 내세워 특정한 진영을 옹호하는 것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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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개인적 경험에도 한국 철학계는 @YOUN 님께서 말한 경향이 더 있는 것 같아요. 가령 니체나 헤겔 연구자들은 니체나 헤겔에 가해진 비판들을 오롯이 니체나 헤겔의 철학에 근거해서 반박하고 옹호하려는 쪽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니체나 헤겔은 분명 이런 점에서 틀렸는데, 내가 보기엔 해당 문제는 현대 철학에서 논의되는 이러저러한 점들을 참고하면 해결 가능하고, 또 그 해결책이 니체나 헤겔 철학의 정신과 크게 상충하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은 비교적 적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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