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도 오랜 시간 철학사와 철학 사이의 간극—또는 표현해주신 대로 ‘주석가의 일’과 ‘철학자의 일’ 사이 간극—에 대해 고민해온 지라 지나칠 수 없었네요. 지금은 그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확신을 갖고 있는데, 철학사를 일종의 언어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마치 독일인과 대화하려면 독일어를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철학사를 공부함으로써 철학을 하는 길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특정한 문헌군을 진지하게 독서하는 일과 철학자가 되는 일 사이의 괴리를 좁히는 데 저에게 도움이 된 전략(?)이 몇 가지 있어, 영감이 되실까 해 공유합니다.
a. 철학사로부터 독립적이어도 괜찮은may 연구 질문을 철학사를 통해 사유하기: 저는 철학을 ‘(실재를 반영하는/진리를 분유하는) 개념을 생산하고 정교화하며 교정하는 작업’이라고 거칠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사를 언어로 간주하는 일이란 철학사에서 비롯한 개념을 활용해 별도의 연구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일 수 있겠습니다. (해답이 없다면 왜, 어떤 의미에서 없는지 탐구하는 과정이겠고요.) 예를 들어 ‘선the good의 내용은 인간 주체에 의해 규정되는가, 아니면 인간의 외부에서 이미 규정된 바가 주체에게 다만 주어지는가’라는 메타윤리학적 연구 질문이 있다면 이를 보부아르, 베유, 머독의 문헌을 통해 고민하는 것입니다. 퍼블리케이션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물론 연구 질문을 훨씬 더 전문화해야 하겠지만, 마음 깊은 곳, 지성의 뿌리에서만큼은 (한정된 의미에서) 초역사적인 연구 질문을 갖고 있는 게 도움이 되었어요.
b. 탐독하고 있는 문헌의 특이성peculiarity/singularity에 주목하기: 그 어떤 철학적 주장도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즉 어떤 주장이나 그것이 갖고 있는 이론적 장점과 단점 들이 있으며, 이것들이 이루는 성좌와 같은 것이 한 문헌의 특이성을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1) 해당 문헌을 어떤 특이성을 가진 것으로서 사유할 것인가; (2) 그처럼 특이해짐으로써 해당 문헌이 취하는 것과 잃게 되는 것이 무엇인가; (3) 이론적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또는 정당화하기 위해 해당 문헌의 저자가 취하는 전략이 무엇이며, 얼마나 성공적인가 등의 해석적 질문들이 따라나올 것입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좁은 의미에서의) 주석을 위한 해제력 이상의 철학적 상상력, 해석자의 개성이 개입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단계에서부터는 사실상 문헌의 탐독을 넘어 자신의 사유를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저자의 빈틈을 노리는 작업이기에……
c. 연구 질문에 걸맞게 개념 응용하기: 앞서 초역사적인 연구 질문을 염두에 둔 채 역사적인 문헌을 읽는 것이 제게 도움이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사실 저의 연구 질문은 저의 것이고, 저자의 연구 질문은 저자의 것이기에 주어진 문헌이 저의 질문에 완벽하게 답을 줄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문헌에서 한 개념이 사용되는 방식을 성실하게 익힌 후, 독서의 성과를 제 연구 질문에 걸맞게 응용하는 일이 단순히 제가 진정한 철학자로 거듭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구 자체를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경우가 생기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후설의 문헌에 드러나는 육화나 키네스테제의 개념을 응용해, 일부 조현병 환자가 겪는 신체의 통제력 상실을 ‘탈육화disembodiment’로 사유함으로써 환자의 체험을 이해하고자 하는 일이 가능하겠네요(Fuchs 2009).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PMS나 생리통을 겪는 여성의 체험은 ‘과육화overembodiment’로 이해해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연구의 대상이 되는 개념(일종의 재료)을 연구 질문에 걸맞게 조각하는 과정에서, 성실한 독서가 성실한 철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담을 해도 괜찮다면…… 문헌을 이해하기만도 벅찬 또는 체계 자체가 너무나 아름답게 완성되어있어서 응용하기가 어려운 철학이 있는가 하면(e.g. 개인적으로 플라톤, 스피노자), 그렇지 않은 철학, 좋은 의미에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많은 철학(e.g. 개인적으로 대륙 현상학자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철학으로 오면 올수록 2차 문헌의 축적 양이 다른 문제도 있고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woo님의 고민이 현재 연구하고 계신 문헌의 특수성으로부터 비롯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혹시 하시는 고민이 너무 숨 막히는 순간이 온다면, 잠시 다른 문헌을 읽으며 바람을 쐬는 것은 어떨까요. 이전에 헤겔을 읽다 오 이러다 내가 죽겠군 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틈틈이 현대 덕 윤리로 시선을 돌려서 스스로를 구제한 적이 있었네요.
하지만 당연히 정답은 없겠지요. 다만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분이 있다는 데, 그리고 제 생각을 언어로 풀어내는 기회를 주신 데 대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