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글( 비트겐슈타인의 기존 해석에 대한 의문 )에서 대화를 나눈 뒤, 사이트에 관찰의 이론적재성이나 통약불가능성에 관한 자료가 올라와 있는지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관찰의 이론적재성 자체에 대해서만 명확하게 정리된 자료는 사이트에 없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관련 내용을 정리한 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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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리-토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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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흑백 스케치 한 장을 떠올려 보자. 이것은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오리의 옆모습일까? 아니면 긴 귀를 세운 오른쪽 토끼의 얼굴일까? 같은 잉크 자국이지만,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은 “오리 그림이다”에서 “아, 토끼였네”로 순식간에 의견을 전환한다. 하지만 토끼와 오리를 동시에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한 번에 한 측면만 알아 볼 수 있다. 나아가 이 그림이 또 다른 어떤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한계로 인해 그렇게 보기란 어렵다.(Wittgenstein 1953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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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책 『철학적 탐구』(1953) 2부에서 이를 ‘측면-보기(aspect-seeing)’의 고전적 사례로 제시하며, “무엇으로 본다(~seeing as)”라는 문장의 의미는 외부자극이 아니라 관찰자의 개념적인 틀과 함께 결정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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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자 노우드 핸슨과 토머스 쿤은 이 모호한 형상을 과학논쟁으로 확장했다. 핸슨은 “본다는 것은 해석하는 것이다” 라고 선언하며, 오리-토끼 그림처럼 같은 시각 자극도 서로 다른 이론적 배경을 통해 볼 때 ‘다른 사실’로서 인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Hanson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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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 역시 패러다임 전환을 “과학자의 게슈탈트 전환”으로 비유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한 순간 과학자는 다른 세계에 살게 된다” 고 말했다. 이때 일어나는 인식의 뒤집힘은 측면전환 그림의 오리-토끼 그림에서 ‘오리’가 ‘토끼’로 바뀌는 순간과 유사한 형태를 띤다는 주장이다.(Khun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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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코 브라헤와 요하네스 케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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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우드 핸슨은 그의 책 『Patterns of Discovery』 (1958). 속의 유명한 예에서,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와 요하네스 케플러는 둘 다 동틀 녘의 하늘을 관찰했지만, 브라헤는 지구가 정지해 있고 태양이 도는 옛 이론(천동설)에 따라 “태양이 떠오른다” 고 본 반면 케플러는 태양이 정지해 있고 지구가 자전한다는 새로운 이론(지동설)에 따라 “지구가 회전하여 태양이 나타난다”고 보았다고 적고 있다. 즉 핸슨은 이러한 예시를 통해 같은 일출 현상도 지동설과 천동설이라는 그것을 설명하는 각자의 이론 틀에 따라 서로 다른 관찰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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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슨은 대부분의 과학자는 티코 브라헤처럼 당대 관점에 따라 이론적재적인 관찰을 한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누가 함부로 기존의 이론을 뒤집을 수 있겠는가? 위에서 언급한 케플러 같은 과학자는 예외에 속한다. 대담하게 기존 이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Hanson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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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이론적재성을 둘러싼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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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과학철학에서 관찰의 이론적재성(theory-ladenness of observation)이란, 관찰 행위가 순수하게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이론적 배경과 함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다는 개념을 가리킨다. 관찰은 외부 정보를 그냥 받아들이는 수동적 과정이 아니며, 관찰자는 자신의 사고를 거쳐서 어떤 이론을 전제한 시각을 통해 대상을 보기 때문에 (오리-토끼 그림의 측면전환 예시처럼) 관찰 순간 이론을 통해서 이미 정보에 대한 해석이 함께 개입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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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말해, 무엇을 “무엇으로 보는지(~seeing as)”에 대한 견해가 관찰자가 속한 이론적 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Wittgenstein 1953 2부). 비트겐슈타인은 오리-토끼 그림처럼 다의적인 이미지에서 한 형태만을 지각하고 다른 형상은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를 ‘상맹(像盲)현상’이라 불렀다. 이러한 문제는 과학 지식의 객관성과 합리성에 대한 논쟁에서 중요한 함축을 지니는데, 만약 관찰이 이론에 의존한다면 과학 이론의 검증에서 관찰 증거가 중립적 판단 근거가 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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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관찰의 이론적재성에 대한 세 가지 대표적 입장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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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론중립성 입장 (관찰에 이론과 무관한 중립적 요소가 있다고 보는 견해, 이론적재성 부정) - 논리실증주의, 반 프라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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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약한 이론적재성 입장 (관찰에 이론의 영향은 있으나 어느 정도 극복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입장, 공약불가능성 부정) - 칼 포퍼, 노우드 핸슨, 임레 라카토스, 앨런 프랭클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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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한 이론적재성 입장 (관찰이 철저히 이론에 의존한다는 강한 입장) - 토마스 쿤, 파울 파이어아벤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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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각 입장의 주장과 논거를 간략히 소개하고, 관련된 주요 과학철학자들의 견해를 인용하며 정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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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립적 관찰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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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적 관찰의 입장은 전통적인 경험주의자들과 일부 현대 철학자들의 견해로, 관찰 언어와 이론 언어를 엄격히 구분하여 관찰을 이론으로부터 독립된 완전히 객관적인 토대로 삼을 수 있다고 믿는 시각이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기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과학 언어를 관찰 용어와 이론 용어로 구별하여, 관찰 용어의 의미는 직접 경험을 통해 고정된다고 보았다. 루돌프 카르납 등은 “관찰적 용어의 의미는 직접적 관찰로 고정되므로 이 관찰 언어는 이론에 상관없이 불변이다”라고 가정하여, 이러한 이론-관찰 분리 전략 덕분에 과학적 사실의 축적과 비교가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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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들어와서도 바스 반 프라센과 같은 구성적 경험주의자는 관찰과 이론의 구분을 일정 부분 옹호한다. 반 프라센은 과학의 목표를 “경험적으로 타당한 이론(empirically adequate theory)을 세우는 것”으로 규정하는데, 여기서 경험적 타당성이란 이론이 산출하는 모형이 실제 “현상(appearances)”과 맞아떨어지는가의 여부를 뜻한다. 쉽게 말해, 이론이 예측하거나 설명하는 내용이 우리에게 관찰되는 모든 현상을 빠짐없이 포괄하면 그 이론은 성공한 것으로 간주하며, 이론 속에 등장하는 전자나 쿼크 같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실재성 여부는 굳이 믿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이는 이론의 역할을 ‘보이는 현상을 체계화하는 도구’로 한정함으로써, 관찰 영역에서는 비교적 이론 중립적인 평가가 가능하다고 보는 견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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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반 프라센은 무엇을 관찰 가능한 것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우리 인간의 감각 능력에 근거한 현실적 기준을 제시한다. 예컨대 “우리 같은 유한한 존재가 적절한 조건에서 직접 볼 수 있거나, 필요한 경우 망원경 같은 도구를 이용해서라도 볼 수 있는 대상” 이면 관찰 가능한 것으로 간주하고,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원리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은 관찰 불가능한 것으로 구분한다. 이런 구분에 따르면, 목성의 위성이나 세포 구조 등은 언젠가 인간이 직접 관찰할 수 있으므로 관찰언어로 기술될 수 있지만, 전자나 쿼크처럼 인간의 감각 범위를 영원히 벗어나는 대상은 아무리 이론적으로 중요해도 관찰언어로 다룰 수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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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반 프라센의 관점은 관찰 진술의 영역을 최대한 이론의 추측으로부터 분리해 유지하려는 현대판 노력이라 볼 수 있다. 관찰에 이론 독립적인 의미와 역할이 일부라도 존재한다고 본다면, 과학은 공통 관찰 사실에 기반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고, 이론들 간의 우열도 경험적 성과에 비추어 평가할 수 있다. 관찰의 중립성 가능성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관찰의 이론의존성을 거의 인정하지 않으며, 여전히 “사실”이라 부를 수 있는 관찰이 과학 지식의 최종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해야 과학이 다른 담론에 비해 현실에 대한 신뢰할 만한 설명을 제공한다는 점이 확보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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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약한 이론적재성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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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대비되는 ‘약한 이론적재성’ 입장에서는 관찰이 이론에 어느 정도 영향 받는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적 관찰의 객관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이론의존성 교정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며, 서로 다른 이론을 가진 과학자들도 부분적으로 겹치는 관찰 진술이나 경험적 내용을 공유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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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철학자 칼 포퍼는 『과학적 발견의 논리』(1934)에서 “우리가 아무런 이론 없이 순수한 관찰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는 믿음은 부조리하다”며 관찰에 이론적 관점과 문제의식이 일단 전제됨을 지적했다. 그는 “관찰은 언제나 선택적이다. 관찰하려면 관심 있는 대상을 분류해야하고, 뚜렷한 과제와 관점이 필요하며, 기술에 사용되는 언어 속에는 이미 분류와 속성 개념이 전제된다” 고 말하면서, 무목적의 ‘순수 관찰’이라는 개념을 비판했다. 이와 같이 포퍼를 비롯한 많은 분석철학자들은 관찰의 이론의존성 자체는 받아들이면서도, 과학자들이 비판적 토론과 검증을 통해 이론 간 객관적 비교와 합리적인 선택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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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포퍼는 (오늘날에는 뒤엠-콰인 논제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관찰 진술을 시험 가능한 가설의 형태로 제시하고, 반증의 과정을 거쳐 잘못된 이론을 걸러내는 반증주의라는 과학적 방법론을 제안함으로써, 이론적재성을 인정하면서도 과학적 진보의 개념 지켜내고자 했었다.(Popper 1934) 라카토스도 그의 스승이었던 칼 포퍼를 따라 이런 견해를 지지하였다.(Lakatos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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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이론적재성 개념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노우드 핸슨도 오늘날 흔히 토머스 쿤과 유사한 강한 입장을 지지한 것으로 오해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약한 이론적재성의 관점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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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슨은 관찰이 이론에 의존적이라고 보았지만, 개인의 이론적 신념이 그 사람의 경험적 현상학―곧 세계가 눈앞에 나타나는 방식을―고정되도록 결정하거나 근본적으로 바꾼다고는 보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으로 보기(~seeing as)’의 방식이 앞으로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볼 수 있을지’를 절대적으로 가두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핸슨의 관점에서 우리는 자신의 개념 틀에 갇혀 있지 않으며(종종 쿤이나 파이어아벤트가 그랬다고 여겨지는 것과 달리) 경험을 새롭게 조직하는 방식은 언제나 열려 있고, 그런 새 조직 방식은 다시 규범적으로 다른 것과 서로비교 평가 가능한 성격을 지닌다.(Lund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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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학사 속 무수한 이론적 투쟁이 잘 보여주듯, 새로운 개념 체계를 만들어 내는 일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다. 새로운 이론을 만들 때 우리는 기존 이론 틀을 재료 삼아 새 개념 패턴을 구축해야 하지만, 이전 틀에서 어떤 요소를 옮겨 쓸지, 어떤 요소를 버릴지를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다. 과학자들 역시 앞선 개념·기호 체계로부터 물려받은 전제가 시야를 가려 그런 ‘맹목’ 상태에 빠지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핸슨이 관찰에 대해 논의한 것의 목표는 과학의 주관성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관찰과 지식 사이의 연관을 밝히는 데 있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발견은 세상을 ‘다르게 봄’으로써 이루어지며, 이는 세상을 새로운 개념적 배열을 통해 이해하는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Lund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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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로, 앨런 프랭클린 등의 과학철학자는 실험 설계와 데이터 해석의 개선을 통해 이론 편향의 영향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프랭클린은 “오늘날 관찰의 이론의존성으로 인한 철학적 문제들은 상당 부분 해결되었으며, 과학자들이 절차적으로 이론 중립적인 실험을 고안함으로써 상이한 패러다임도 비교 가능함을 보일 수 있다”고 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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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과학연구자들은 이중 맹검 실험, 교차 검증, 엄격한 계측 기준 등의 방법을 통해 실험자나 이론의 편향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통제하려 노력한다. 또한 한 분야에서 얻은 관찰 결과를 다른 이론 배경의 과학자들도 재현하고 검토함으로써, 완전히 동일한 의미는 아닐지라도 공통된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합의하는 경우도 많다. 요컨대 약한 이론적재성 입장은 “모든 관찰이 이론에 물들어 있음을 인정하되, 과학은 그런 한계를 인지하고 교정하는 규범과 도구를 발전시켜왔다” 는 현실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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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지과학에서도 지각의 모듈성 대 인지적 침투에 관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일부 심리학자들은 인간 지각 체계가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작동하여 “이론적 믿음이 지각 경험에 항상 높은 수준의 직접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라고 보고한다.(천현득 2020) 이러한 연구는 적어도 초기 감각 단계에서는 관찰이 이론으로부터 부분적으로 소통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파이어아벤트나 쿤이 말한 강한 이론적재성 사례는 특정 조건에서만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리하면, 약한 입장은 이론과 관찰의 밀접한 연결을 인정하면서도 과학자들이 합리적 대화와 경험적 증거를 통해 이론 선택을 논증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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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한 이론적재성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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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강한 이론적재성’을 지지하는 입장에 따르면 모든 관찰은 본질적으로 이론에 의해 물들어 있으며, 서로 다른 이론을 가진 관찰자는 동일한 현상도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에 따라 다르게 보며 완전히 상호비교가 불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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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주장했던 예시에서와 같이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와 요하네스 케플러는 둘 다 같은 동틀 녘의 하늘을 관찰했지만, 브라헤는 지구가 정지해 있고 태양이 도는 옛 이론에 따라 “태양이 떠오른다” 고 본 반면 케플러는 태양이 정지해 있고 지구가 자전한다는 새로운 이론에 따라 “지구가 회전하여 태양이 나타난다” 고 보았다. 즉 같은 일출 현상도 지동설과 천동설이라는 각자의 이론 틀에 따라 서로 다른 관찰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관점은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1962)에서 제시한 패러다임(paradigm) 이론에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론-)을 받아들인 과학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지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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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과 파이어아벤트는 나아가 각자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이라는 급진적 주장도 펼쳤다. 공약불가능성이란 서로 다른 이론을 위한 공통의 중립적 언어가 없으며, 각 패러다임에서 사용하는 관찰 개념의 의미마저 달라지기 때문에 두 이론의 결과를 직접 비교하거나 서로 상호 교차적으로 번역하고 검증하여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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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입장은 결국 관찰은 이론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며, 어쩌면 과학 이론의 선택이 합리적 판단보다는 사회적·역사적 요인에 좌우될 수 있다는 상대주의적 해석까지 나올 수 있다. 물론 쿤은 파이어아벤트와 다르게 이러한 상대주의적 입장을 경계하면서 온건한 상대주의적 입장에 따라 “현실은 직접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우리의 인식에 저항하여, 스스로 들어난다” 는 칸트주의적 관점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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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파이어아벤트는 『방법에의 도전』(1975)에서 관찰과 이론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뒤집으며, 과학에는 고정된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결국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급진적인 입장을 통해, 매우 강력한 형태의 이론의존성을 개념을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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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강한 이론적재성 입장은 때때로 과학자들이 자신의 이론적 안경을 쓰고 세계를 본다는 통찰을 주지만, 동시에 과학 지식의 객관성과 합리적 비교 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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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강한 이론적재성을 뒷받침하는 실제 사례가 과학자들 사이에서 존재하는지는 아직 명확히 확인된 바가 거의 없다는 점이 이 관점의 큰 난제로 지적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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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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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이론적재성을 둘러싼 논쟁은 과학철학에서 관찰과 이론의 관계, 나아가 과학 지식의 객관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깊게 만드는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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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이론적재성” 입장은 관찰이 철저히 이론에 의존한다고 하여 과학자마다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음을 강조했고, 한편 “약한 이론적재성” 입장은 관찰이 이론에 영향을 받더라도 과학적 방법론과 공동체의 노력으로 그 영향을 상당 부분 교정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공약불가능성을 부정하고 과학의 합리성을 수호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관찰 중립성”을 옹호하는 입장은 관찰 언어의 객관적 기준을 확립함으로써 이론 사이의 의미 소통과 사실 공유가 가능하다고 보았고, 이는 과학이 어떤 고정된 경험적 근거 위에서 발전할 수 있다는 전통적 믿음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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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현대 과학철학의 흐름은 스탠포트 철학백과의 『Theory and Observation in Science』 문서에 따르면 단순한 관찰기반만으로는 과학을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이론과 경험이 서로 밀접히 얽혀 상호보완적으로 과학 지식을 형성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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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관찰의 이론적재성에 대한 논의는 과학이 어떻게 관찰자의 주관적인 경험에 기반을 두면서도 이론적으로 진보하는지를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철학적 노력의 일부이다. 주로 분석철학의 관점인 이 논쟁을 살펴보는 것은, 과학 지식의 신빙성과 합리성을 뒷받침하는 논증 구조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우리는 역사에서 과학자들이 완전히 “이론 없는” 순수한 눈은 가질 수 없지만, 자신의 관찰이 어떤 이론적 전제를 깔고 있는지 자각하고 서로의 결과를 비교·조정해 나감으로써, 현실 세계에 대한 신뢰할 만한 설명을 구축해 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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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과 이론 사이의 미묘한 연관 속에서 과학은 발전해 왔으며, 이론에 물든 관찰이라는 숙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대한 철학자들의 통찰은 앞으로도 과학적 탐구의 방법과 방향을 성찰하는 데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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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은 광전효과와 콤프턴 효과에 대해 아인슈타인과 콤프턴에 반대되는 해석을 하였다. 오늘날은 할펀, 하이젠베르크,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이 봄의 접근법에 반대한다. ‘자연철학’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때가 이러한 상황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물리적 문제의 개념적인 측면과 싸움을 하는 것이다. (...)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간은 그들에게 개념적 가능성으로서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그 무언가에 대해 거의 알 수가 없다.
노우드 러셀 핸슨 (1958), 『Patterns of Discov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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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Hanson, N. R. (1958). "Patterns of Discovery". (관찰의 이론적재성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논한 고전)
- Kuhn, T. S. (1962).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패러다임과 공약불가능성 개념 제시)
- Popper, K. R. (1963). "Conjectures and Refutations". (관찰의 선택성과 과학적 합리성 논의)
- Feyerabend, P. (1975). "Against Method". (강한 이론적재성과 과학방법론에 대한 급진적 견해)
- van Fraassen, B. (1980). "The Scientific Image". (경험적 적합성과 관찰/비관찰 구분 제시)
- Lund, Matthew D. (2010) "N.R. Hanson: Observation, Discovery, and Scientific Change". (노우드 핸슨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개요서, + 장하석 교수 소개문)
- Franklin, A. (2015). "The theory-ladenness of experiment", Journal for General Philosophy of Science, 46(1). (과학 실험의 이론적재성에 대한 철학적 분석)
- Boyd, Nora Mills and James Bogen, "Theory and Observation in Science", The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pring 2025 Edition), (스탠포드 철학백과 관련 문서)
- 천현득. (2020). 지각의 인지적 침투와 관찰의 이론적재성. 과학철학, 23(1), 75-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