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정의가 '임금노동' 아닌가요?

( https://forum.owlofsogang.com/t/topic/6496 ) 아래 글에 댓글 논쟁을 보고 생각이 나서 올립니다.

"[자본]의 존재에 대한 역사적 조건은 단순히 화폐와 상품의 유통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의 소유자가 시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의 판매자로서 자유로운 노동자를 발견할 때에만 발생한다."[Marx, 『Capital, vol. 1』, p. 264)

"정치경제학은 원칙적으로 두 가지 매우 다른 종류의 사유재산을 혼동한다. 하나는 생산자 자신의 노동에 기반하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노동에 대한 착취에 기반한다. 정치경제학은 후자가 전자와 정반대일 뿐만 아니라 전자의 무덤에서만 자라고 다른 곳에서는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 자본주의 체제는 끊임없이 생산자가 제기하는 장애물에 부딪힌다. 생산자는 자신의 노동 조건의 소유자로서 자본가가 아닌 자신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 그 노동을 사용한다. 이 두 정반대 경제 체제의 모순은 바로 이 두 체제 사이의 투쟁에서 실질적으로 드러난다." (Marx, 『Capital, vol. 1』, p. 931)

"생산수단과 생계수단은 직접 생산자의 소유로 남아 있는 한 자본이 아니다. 그것들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지배의 수단으로 동시에 기능하는 상황에서만 자본이 된다." (Marx, 『Capital, vol. 1』, p. 938)

"노동자들이 각자의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서로 상품을 교환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상품들은 자본의 산물이 아닐 것이다." (Marx, 『Capital, vol. 3』, p. 938)

"생산의 목적, 즉 상품을 생산하는 것은 생산 도구에 자본의 성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 상품 생산은 자본의 존재를 위한 전제 조건 중 하나이다. (…) 생산자가 자신이 생산한 것만 판매하는 한, 그는 자본가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도구를 사용하여 타인의 임금 노동을 착취하는 순간부터 자본가가 된다." (Engels, 『Marx-Engels Collected Works』, pp. 179-80)


-『Capitalism does not equal the market(시장은 자본주의와 같지 않다)』 (2009) 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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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주로 읽은 건 프루동주의에 관한 글들이긴 하지만,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는 단순히 '시장(Market)'이나 '재산(Property)' 그 자체로 정의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둘 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도 이미 존재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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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정의는 ‘시장(Market)’이나 ‘재산(Property)’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핵심 요소는 바로 '임금노동(Wage Labor)'이라는 특정한 사회적 관계로 즉, 무산자들(생산수단이나 거주지 같은 생활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유산 계급(생산수단과 거주지 등을 소유한 사람들)이 정한 조건 하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거나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는 ‘임금노동(Wage Labor)’이라는 구조적 종속 관계가 자본주의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며 비판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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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관점의 자본주의 비판의 핵심은 무산 계급이 유산 계급에 종속되는 이 구조 자체를 문제 삼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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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장’과 ‘사유재산’이라는 요소는 자본주의의 필수적인 특징이 아니라,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한 특정한 사회관계로 자본주의가 정의되는 걸로 알고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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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래서 전통적인 마르크스 관점에 따르면 사업이 생산자들 자주관리가 되지 않는다면 그냥 지금 중국 같은 경우도 ‘기업위주의 자본주의’ 가 아닐까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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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몇 가지 사례 중 하나일 순 있겠으나, 임금노동 = 자본주의에는 같은 생각을 가지지 않습니다.

말씀하셨던 중국의 시장 경제 같은 경우도 사회주의의 경제 체제에 자본주의를 일부 도입한 형태로 유지되어 있죠. 크게 양극화된 사회주의, 자본주의 둘 중 하나를 콕 집어 고르기는 애매한 형태인 것 같습니다.

사유화를 대규모로 진행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사유화를 하지 않은 것 또한 아니죠.
전통적으로 보였던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차별점인 여러가지의 다양한 소유 형태를 지닌 재산을 인정하고 있지만, 반대로 시장 개입에도 적극적이죠.

결국 중국의 시장 경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 한 채 여러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는 시점이라고 보여집니다. 공유제를 외치지만 경제적 불평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것처럼요.

결국 글 쓰신 분이 말씀하신 '생산자들의 자주관리'의 책임을 누구에게 묻는가?에 따른 관점의 차이에서 생각이 나뉘는 것 같네요.

대표적으로 국유기업을 주식회사로 변환하는 둥, 소유권과 경영권을 분리시키는 경우도 더러 존재하죠. 그렇기에 '생산자의 자주관리'의 개념에 대해 자세히 묻고 싶습니다.

중요 핀포인트는 '무산 계급이 유산 계급에 종속되는 구조' 와 '생산자의 자주관리' 두 가지로 나눌 수 있겠네요.

결국 '누군가의 소유'를 인정하게 되는 이상 '특정 품목'등에선 가진 자와 가지지 못 한 자가 나뉠 수 밖에 없죠. 특히 현금 혹은 부동산과 같은 실물 자산의 경우엔 더더욱요. 생계 수단과 같은 직접적인 생존을 위해 필요한 부분을 누군가가 가지고 있을 때 일어나는 불평등 및 불균형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고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구조의 형태를 띄는 게 일반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과 개인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만이 무산 계급과 유산 계급으로 나뉘지는 않는다는 게 제 견해입니다. '국가와 개인'의 사이에서도 성립 되는 말이니까요.

생산자는 수요에 따른 공급을 할 것이고, 소비자는 수요에 따른 소비를 할 겁니다.

당연한 이치이며 현대 사회에 이르러 '여러가지 자본의 형태'로 거래를 할 뿐이죠. 인간은 이와 같은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생존하기 위해 먹어야하며, 자야하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죠.

마르크스가 말한 능력에 따른 개인에서 필요에 따른 개인으로의 원칙과 공동 소유의 위에 세워진 인간 사회 안에서도 또 다른 형태를 가진 '임금노동'과 비슷한 형태를 띈 무언가는 있을 수 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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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원초적인 생존 본능과 신체적 한계에 따라 수요와 공급은 존재할 수 밖에 없으며,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가 온다고 해도 또 다른 형태의 '임금노동'이 자리잡을 수 밖에 없을 것이 제 생각입니다. '임금노동'을 중점으로 바라보았을 때, 나의 노동으로 타인이 이득을 보는 것과 나의 노동으로 단체가 이득을 보는 것은 결국 관점의 차이일 뿐이니까요.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에서의 자본주의는 '임금노동'으로 정의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음, 일단 사실 이 부분은 제가 여러 자리에서 종종 말씀드리게 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만, 사회주의자 중에서도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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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벤자민 터커나 피에르 프루동 같은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들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에 기본적으로 동조하면서도, 재산의 개념과 제도를 개혁하는 방법으로 자본주의와는 다른 형태의 ‘반자본주의적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했습니다. 특히 프루동은 이를 상호주의(mutualism)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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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주의(mutualism) 한국어 위키백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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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장과 자본주의가 동일하지 않다는 견해이며 물론 이들이 사상이 주장하는 목표를 실제로 달성할 수 있는지는 별도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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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역사적으로 보면,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사상가들도 임금노동제도를 비판하고 자유로운 시장 안에서 노동자들이 직접 관리하는 자주적인 신디케이트 기업들 중심의 경제체제를 옹호하며 일종의 시장사회주의 사상을 제안했습니다. (다만 국내에는 밀이 자유주의자라고만 알려져 있고 시장사회주의자 였다는게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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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분석적 마르크스주의자들 중에서도 시장사회주의적 성향을 가진 학자들이 여러 존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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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사회주의(Market socialism)영어 위키백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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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회주의 개념을 오직 국가의 통제나 국유화 같은 형태로만 한정짓는 건, 지나치게 주류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서, 오히려 탈중앙화되고 분산적인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구현하려 했던 다양한 역사적 시도들이 지워질 수 있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우려스러워서 그런 시각을 잘 언급하지 않습니다.(Mckay 2008 F.1, I.1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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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양한 입장들은 서로 조금씩 차이를 보이긴 했지만, (마르크스 포함해서)대부분 공통적으로 비판의 초점을 맞춘 건 임금노동을 통한 착취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시장방식이든 아니든) 노동자 통제개념을 주장했습니다. 저 역시 이렇게 보는 관점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벤자민 터커 같은 경우는 무정부사회에서 비착취적 형태의 임금노동이 가능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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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사회주의를 단순히 시장 개입이나 국가 통제와 동일시하는 시각은 좀 더 다양한 사회주의 사상과 실천의 역사적 맥락을 놓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자본주의의 정의는 임금노동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부자연스럽기도 하고 몇몇 주요 개념들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임금노동' 뿐 만 아니라 '착취', '상품', '교환' 등이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의 핵심이라면 말이에요. 차라리 "자본주의란 시장에서의 상품 교환을 통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상품을 만드는 임금 노동자를 고용하고, 이때의 이익은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로부터 나오는 체제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 더 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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